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을까나?

읽거나 혹은 죽거나 | 2005/03/06 23:55


그러던 중 어느 목요일, 그러니까 한 남자가 기분 전환도 할 겸 이제는 사람들끼리 좀 잘해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나무에 못 박힌 지 약 이천 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어느 목요일, 한 여자가 영국 릭맨스워스라는 마을의 조그만 카페에 혼자 앉아 있다가 이 오랜 세월 내내 무엇이 잘못되고 있었는지를 문득 깨달았다.
- 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中

그러니 네가 할 말이라고는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이것뿐이다. 겨우 그것 때문에 당신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언자를 보내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 사람들이 예언자들의 말을 들을 때는 지났다. 이제는 좀 더 강한 처방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다는 것처럼요? 그래, 안 될 것도 없지 않느냐?
- 주제 사라마구, 「예수의 제 2 복음」 中

I'd wanna know, I'd wanna know my God,
I'd wanna see, I'd wanna see my God,
WHY I SHOULD DIE?
- Jesus Christ Superstar, 「Gethsemane(I Only Want to Know)」 中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은 뛰어난 재담꾼들로, 언제 어디에서 만나 한 판 붙어 보기로 한다. 한 인물을 설정하고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에 합의한 다음, 각자 그 합의된 것으로 마음대로 이야기를 꾸미고, 나중에 만나 누가 잘 꾸몄는지 겨루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씌어진 글이 평론가로 행세하는 몇몇 친구들 손아귀로 들어가게 돼. 평론가들은 평론하겠지. 마태오는 상당히 사실적이지만 메시아 사업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마르코도 나쁘지는 않지만 다소 감상적이다... 루가가 적당한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한은 지나치게 철학적이다... 이런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네 권의 책은 상당히 매력 있는 것이어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게 된다. 네 저자가 이걸 알았을 때는 때늦은 뒤... 바울은 벌써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를 만난 뒤였고, 플리니우스는 근심에 잠긴 황제의 명을 받아 조사를 시작하고.... 4인조의 줄거리를 가지고 무수한 위작가(僞作家)들은 아는 체하면서 써대고...
- 움베르토 에코, 「푸코의 진자」 中

우리 두 사람보다 먼저 앞서의 탐구를 행한 무수한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역사적 예수를 찾는다는 것이 헛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 시대를 통틀어 하나님의 유일한 성육신이었다고 일컬어지는 한 인간의 역사적 존재에 대한 실질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정말 우리에게는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는가?
-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예수는 神話다」 中


어어 취향 다 뽀록난다.

.....S가 다닌 고등학교는 골수 카톨릭 신자가 교장으로 앉은 미션 스쿨이었습니다.
꼬박 3년을 원하지도 않았던 미션 스쿨에 다니면서 원하지도 않는 예배에 강제로 출석하고 원하지도 않는 성경 수업을 오로지 시험 점수 때문에 억지로 들은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이라면 탓이겠으나 아무튼 S는 그게 무엇이든 기독교의 엄숙하고 딱딱한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오해 마십시오, 기독교 자체에는 아무런 유감도 없습니다. 지하철 차량 한 칸에 40분이나 죽치고 서서 예수 불신 유황 지옥을 외쳐대는 인간들이 살떨리게 싫을 뿐입니다-_-)
아니, 예수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화면 어떻고 입심 좋은 이야기꾼들의 동인지면 어떠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싫다고 아버지 하느님께 박박 대드는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예수면 어떻습니까? 막달라 마리아와 통정해서 애를 낳으면 왜 안 됩니까? 듀나 님께서 정곡을 찌르셨다시피 진정으로 신성하고 성스러운 것이라면 우리 땅 위의 하찮은 인간들이 몇 마디 좀 씨부렁댄다고 흠집 하나 나겠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도그마」도 봐야 하는데;) 오히려 저렇게 별별 말이 다 돌고 별별 소리가 다 나오는 것은 무수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색하고 파헤치고 열중한다는 반증이 아닙니까. 관리인이 천학(淺學)이라 그렇다고 몰아붙이면 할 말 없지만 그게 대체 뭐가 나쁜 건지 S는 통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잠보니스틱스에서 바로 이놈, 오사카벤 성경(!)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


오 인도자시여, 말씀에 따르겠삽나이다!!!


.....질렀습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그놈이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할렐루야!!

아니나다를까, 이놈 진짜 물건입니다.

이 「コテコテ大阪弁訳聖書」는 뭐 대단한 종교적 체험이나 깨달음, 진지함과는 애초에 상관이 없습니다. 한 백만 광년 정도로 떨어져 있다고 보면 딱 맞습니다. 다만, 뜨거운 열정을 지닌 진짜배기 오사카 사나이들이, 표준어 성서가 있다면 일본의 방언을 대표하는 오사카벤으로 못할 게 무어냐, 기왕이면 어려운 성서를 좀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어도 보자는 기특한 취지 하에 만들어낸 타코야키 냄새 물씬한 오사카벤 성경일 따름입니다. 내용은 지극히 원전에 충실하고, 결코 해석이 참신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일본어를 배워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오사카벤이 어떤 놈입니까. 솔직히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발음과 지극히 독특한 억양(S가 헤이신에서 멀어진 이유는, '헤이지의 오사카벤 때문에 도무지 시리어스를 진지하게 볼 수 없어서'란 설도 있습니다;)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유머 감각이 맞물려, 만담하면 오사카, 오사카하면 만담, 아모리 소우시가 히코이치의 입을 빌려 열변을 토했듯 나니와(難波)의 인간으로서 농담과 쯧코미 한 마디쯤 상비하고 있지 않으면 오사카에 발 붙이고 살 자격도 없는 법입니다!! (과장) 더구나 이 성서는 '인터넷에서 나도는 오사카벤 번역 소프트 따위'와는 애초에 질이 다릅니다 질이. 오사카 혼에 푹 고아진 토박이들의 수작업이니까요.
자, 이쯤 되면 결과물이 짐작이 가시겠지요.

向こう行かんかい、サタンのおっさん。「あんたの主人の神さんに頭を下げて、ひたすら主人に仕えんかい」と、書いたぁやろが。

せやけど、わては言うとくで。Hな思いで他人の女房を見るもんは、誰でも旣に心の中でその女と寝たんとおんなじごっちゃ。

わてに向こうて、「神はん、神はん」と言いよるもんが皆、天の王国ちゅうとこに入れるわけやあらへんのやで。

ええか、耳かっぽじってよう聞けよ。イスラエルの中でも、こいだけの信仰を見たことないで。

天の神はん、できよることやったら、このごつう苦い杯をわてから取り除いてくれまへんやろか。
せやけど、わての願いどおりやのうて、御心のまんまにしてもうてよろしおます。

そこには、律法学者のじじいやら、長老のじじいやらがゴチャゴチャ集まっとったらしいわ。

(해석은 불가합니다. 알아서 이해합시다)

장난하냐!! >_<

유쾌합니다. 쌈박합니다. 웃다가 미칩니다.
타코야키 120%의 오사카벤과 오사카 감각으로 술술 떠들어대는 예수는 별다른 고뇌나 사색 없이도 그 존재 자체로 엄숙함과 딱딱함을 정면으로 때려부수고 있으니 이를 어이하면 좋겠습니까! 자, 딱딱한 성경이 싫으신 여러분, 당장 서점으로 달려갑시다.
(결국 선전이냐!!!)


덧.
天にいたはる、わてらの神はん、あんたはんの名前が崇められますように願ってまっさ。
ほいで、御国がきますように。
あんたはんの思いのままになりますように。
天にあるように地でもよろしゅうに。
わてらの必要な食いもんは、今日ちょうだいできますように。
わてらの至らんとこは勘弁してちょうだい、そんかわり、わてらも他人はんの至らんとこは許しますよって。
ほいで、どうかわてらを誘惑に遭わさんとってちょうだい、悪い奴らから救ってちょうだい。

....주기도문 맞습니다. (데굴데굴)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H양 말마따나 촌구석도 그런 촌구석이 없는 나사렛 출신의 예수가 뭐 올바르고 고운 표준어를 썼겠습니까. 지독한 사투리였겠죠;;


덧 2.
한국기독교협회는 어서 경상도 방언 성경을 내놔라!! 내놔라!! 내놔라――!!!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요."
"아, 역시? ;;;;"

한국에 이런 유머 감각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무리인 겁니까 OTL

top
Trackback Address :: http://kisara71.cafe24.com/blog/trackback/1040447
수정/삭제 댓글
Hylls 2005/03/06 23:59
우리나라에서는 분명 신성모독일거라니까 -ㅂ- (그리고 어디가 모독이냐고 분노한 경상도사람과 또 지역싸움이 나는 거겠지)
저 책의 ISBN넘버는 외워두고 있는 바요. 이번에 출장갈 때 질러버린다!! (깔깔깔)
수정/삭제 댓글
kritiker 2005/03/07 00:10
으흐흐흐...오사카 사투리는 잘 모르지만, 주기도문 보고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누가 사투리로 예배나 미사 안 해주시려나요...(;;)
수정/삭제 댓글
rumic71 2005/03/07 00:31
한국에는 전라도방언으로 된 판소리 "예수전" 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명맥이 끊긴 것 같습니다만...
수정/삭제 댓글
다인 2005/03/07 10:00
주님은 목사들의 목자시니, 목사들에게 부족함이 없으시도록 하셔야 할테니까요.
수정/삭제 댓글
쇼코라 2005/03/07 22:24
처음으로 남기는 덧글입니다.
...오사카벤 성경이라니...멋지군요. OTL
특히 저 주기도문이....(데굴데굴)
수정/삭제 댓글
KISARA 2005/03/07 23:26
Hylls짱 / 그러게 말이우. 우우, 재미없어 -_-
절대 잊지 말고 질러갖고 오기를 바란다 (깔깔깔)

kritiker님 / 성경 시간이나 예배 타임이 저거의 반의 반만 유쾌했어도 저 툴툴거리며 미션 스쿨 안 다녔다니까요 -3-

rumic71님 / 끊겨 버린 시점에서 안 되는 겁니다! T.T

다인 님 / 헉, 푹 찔렸습니다;

쇼코라 님 / 어서 오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
정말로 멋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한국기독교협회도 어서 경상도 방언 성경으로 독자층을 넓(후략) (<- 아직도 포기 안 했음)
수정/삭제 댓글
悲歌 2005/03/08 19:17
경상도 사투리뿐 아니라 다양한 사투리 버젼(제주도 사투리같은걸로 쓰면.... 못 알아 먹을까나요;)의 성경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그러면 성경 읽기도 한층 즐거울텐데...]
크리스챤이다보니까 성경을 읽기는 하는데... 뭔놈의 한자어가 그리 많은지 뜻을 못 알아 먹겠는게 문제입니다[사실 지루하기도 하고요;]
수정/삭제 댓글
KISARA 2005/03/11 22:40
悲歌 님 / 오사카벤 성경의 취지도 그겁니다. 경상도 방언 성경이 있으면 왜 안 되냐고요. (제주도 방언은...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그 얘기가 나왔는데, 글쎄요, 읽을 수나 있을지;; 한 번 국문 수업에서 제주도 방언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용감한 작자들이 있었는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더라지 뭡니까;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제주도말은 저어기 베텔기우스 행성말이나 마찬가지예요;)
그치만 역시 한국판 성경의 280도 비비 꼬인 말투는 매력적(후략)
수정/삭제 댓글
잠본이 2005/03/12 23:38
아즈망가 오사카양의 목소리로 읽어주면 대박날 듯 합니다. ;>
수정/삭제 댓글
天照帝 2005/03/13 18:23
안녕하세요. 처음 찾아 뵙습니다.
...근데 오자마자 기절하겠군요 으햐;
주기도문은 그나마 좀 점잖(?)은 편인데...;


아. 트랙백 신고 드립니다.
수정/삭제 댓글
베르커드 2005/03/13 19:09
천조제님 블로그 타고 와서 보고 갑니다. 크리스천이긴 하지만 저런 패러디는 참 재밌군요^^
주기도문에 뒤집어지고 갑니다 흐하하하하
수정/삭제 댓글
天照帝 2005/03/13 19:35
rumic71 님> [예수전]은 고 박동진 명창의 창작 판소리인데요?
명맥이 끊기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만.
수정/삭제 댓글
novrain 2005/03/13 20:31
재미있게 웃으면서 글을 남김니다.(생각하면 할수록 웃음이... ) 저렇게 설교하면 졸지 않을텐데... ^^
링크 신고합니다.
수정/삭제 댓글
Initial_H 2005/03/13 20:40
건너건너 왔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최고군요. 아아 배아파요.;ㅁ;b
수정/삭제 댓글
rumic71 2005/03/13 23:15
그러니까 더이상 공연도 녹음도 되지 않는다면 명맥이 끊긴 셈이죠.
수정/삭제 댓글
KISARA 2005/03/14 10:49
잠본이 님 / 그것 참 군침 도는 아이디어가 아닙니까 (쓰읍)

天照帝 님 / 어서 오세요! 몰래몰래 숨어 스토킹;하던 분을 변방의 제 블로그에서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_< 예, 말씀하신 대로 저 주기도문은 비교적 점잖은 편에 속한답니다; 중간중간에 번역자인 나니와 타로가 주석이랍시고 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또 뒤집어질 물건이죠. 꼭 한 번 직접 보셨으면 합니다. (선전?!)

베르커드 님 / 어서 오세요. 어쩐지 天照帝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웃음) 그렇죠! 재미있으시죠!!

novrain 님 / 어서 오세요. 그리고 링크 감사합니다 ^^
저렇게만 설교해 준다면야 저도 애저녁에 개종했을 겁니다. (동기가 불순합니까?)

Initial_H님 / 어서 오세요!
이런 책을 기획하고 세상에 내주는 일본인들에게 Two thumbs up! 입니다.

그리고 天照帝님, rumic71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수정/삭제 댓글
정은냥 2005/03/15 15:42
잠보니님 링크 타고 왔습니다. 너무 즐거운 성경이 되겠군요.;; 덧붙여 모 사투리는 그저 거시기..로 도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나네요.
수정/삭제 댓글
KISARA 2005/03/16 15:21
정은냥 님 / 어서 오세요! 어쩐지, 잠본이 님의 덕도 톡톡히 보게 되는군요 (웃음)
예, 굉장히 즐거운 성경입니다. 거시기로 도배가 되어도 좋고 어느 방언이든 좋으니 그저 내주기만 하면 원이 없겠습니다.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