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김에 생각 좀 해 봤습니다.

잡귀는 물러가라 | 2005/06/20 19:13

우부메의 여름 - 완전히 세키구치 관찰자 1인칭.

망량의 상자 - 세키구치 관찰자 1인칭 + 키바 시점의 3인칭 + 요리코 시점의 3인칭. 놀랍게도 전편 통틀어서 유일하게 에노키즈 시점의 3인칭이 존재합니다!!

교코츠의 꿈 - 무려 세키구치 시점의 관찰자 3인칭. 키바와 후루하타 등의 시점이 간간이 섞입니다.

텟소의 우리 - 다시 세키구치 시점의 관찰자 1인칭 + 이마가와 시점의 3인칭 + 대개 토리구치 혹은 마스다 시점의 3인칭. 토리구치 혹은 마스다 시점의 경우 '들은 이야기이다' 라는 말로 서두를 시작합니다. ABC 살인사건에서 '헤이스팅스 대위가 모르는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제 1 용의자를 쫓아가던 서술 방식을 연상케 하더군요. 가끔 야마시타 경부보 시점의 3인칭이 있습니다.

죠로구모의 도리 - 이사마 시점의 3인칭 + 미유키 시점의 3인칭. 막판에 세키구치의 관찰자 1인칭으로 종막을 내립니다. 프롤로그는 '여자' 시점의 3인칭.

누리보토케의 연회:연회의 준비 편 - 내면 독백에 가까운 세키구치의 1인칭이 간간이 혼합되면서, 아츠코, 키바, 아오키, 토리구치, 마스다 등의 시점에서 3인칭으로 전개됩니다.

누리보토케의 연회:연회의 결말 편 - 아오키, 토리구치, 마스다 시점의 3인칭. 헤비토 마을에 돌입하여 사에키 저택에 들어간 후에는 일부분이 누구누구 씨의 시점에서 1인칭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다만 막판까지 3인칭으로 오인하게 은근슬쩍 연막을 치고 있을 뿐이죠.

백기도연대 시리즈 - 모토시마의 완전 관찰자 1인칭.

온모라키의 상처는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 (왜 당당하냐;) 아마도 세키구치의 관찰자 1인칭... 이겠죠? 항간의 말로는 무려 난데없이 열은 올라서 픽 쓰러져갖고 이불 뒤집어쓰고 죽도록 앓는 에노키즈라는 희대의 진귀한 현상;을 구경할 수 있댑니다. (헉, 신적인 바보한텐 병도 범접 못하는 거 아니었어!? -랄까 걸려도 병인지 모르는 거 아니었어!? <- 어이) 역시 사야 되나... 눈꼴시어서 몸이 배배 꼬여도 사나 되나....
(※ S는 기본적으로 쿄고쿠도 팬이지만 그만큼 에노키즈 팬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S로서는 드물게 '두 놈 다 바람피우면 죽어-_-' 라는 기분이 되어 있....쿨럭쿨럭)


아무튼 이 씨잘데기없는 삽질;에서 뭔가 느끼신 게 있는 분, 손들어 보세요-
예, 그렇습니다. 추젠지 아키히코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점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연 철벽의 방어를 자랑하는 남자, 작가부터가 대놓고 약한 소리 새어나오지 않게 원호 사격을 해주니 독자는 관찰자 시점에서 그를 바라보며 얼마나 이 남자가 정신적으로 심하게 지쳐 있는지 시커먼 눈밑(-_-) 하나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나, 나쁜 사람 같으니... (털푸덕) (이러다 추젠지가 '나쁜 남자' 리스트에 업 되는 게 아니냐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일단 좀 무시하겠습니다;;) 망량의 상자 이후부터는 에노키즈도 '속을 알 수 없는 놈' 대열에 완전히 합류하니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인간의 비율은 두 배로 상승.-_-;;;
그나저나 에노키즈 시점의 3인칭이라니 이게 웬 무시무시한 울림이랍니까. 백기도연대까지 다 읽고 난 후에 망량 편의 이 대목으로 돌아와 보면 여기의 에노키즈는 아직 비교적 '정상'이라는 탄식과 함께 실로 뼛골이 얼어붙는 위화감에 독자는 먼눈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님 왈 네타를 찾아 우부메의 여름을 재독하다 '에노키즈가 보통이라서' 피를 칵 토하며 영구봉인했다 하는데 S는 솔직히 에노키즈 시점의 3인칭 서술이 천 배는 더 무섭습디다;;;

'에노키즈는 나름대로 아버지의 업적을 존경은 하고 있었고, 또 나름대로 일반상식도 머릿속에 넣어두고는 있었다.' (당신한테 그런 게 있었어!!? [초 경악])

'설마 높은 사람은 아니겠죠(偉い人じゃないでしょうね).' (아버님께 이렇게 고분고분했어!?)

'대단해요. 대단하다고요 그 사람은(偉い。偉いんだよその人は).' (지위 고하를 신경 쓰는 사람이었어!?)

'기다리십시오. 사건에 관해서 전 하나도 모릅니다. 의뢰하실 거면 이야기를 해주셔야죠(待ってくださいよ。僕は何も知らないんですよ。依頼するなら話してくれなきゃ).'

님아 누구셈 (헉, 쇼크가 지나쳐 통신체를 써 버렸다!!!!)

너무 무서워....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가 아니라, 당신 도대체 누구야!!!! T.T
순전히 S의 짐작이지만, 쿄고쿠 나쯔히코 선생은 세키구치 관찰자 1인칭으로 우부메의 여름을 완성한 후 정신 상태가 鬱鬱鬱鬱鬱鬱鬱鬱鬱鬱鬱로 피폐해진 나머지(....그러고도 남죠;) 차기작부터는 시점의 혼용 방식을 도입하면서 서술자로 이 녀석 저 녀석 다 시도해 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스오카 변호사를 끌어들이긴 해야 하는데 또 세키구치를 탐정 사무실에 던져 넣는 건 영 안이하니까, 시험 삼아 에노키즈 시점에서 서술해 본 건 아닐까요. 아마 에노키즈의 파괴적인 캐릭터가 2권의 시점에서는 완전히 굳어 있지 않았던 까닭도 있겠지요.
그리고 깨달았을 겁니다. 서술자 위치에 두면 이 남자가 팍삭 얌전해져 막 날아가는 성격이 도저히 구현이 안 된다는 것을....;;; (키바는 보기보다 '섬세한' 성격이니까 문제가 안 됩니다) 그래서 쿄고쿠 나쯔히코 선생은 망량 이후로는 아츠코와 세키구치를 같이 투입하거나(교코츠), 에노키즈를 사건 현장으로 호출하거나(텟소), 마스다를 장미십자탐정사무소 일원으로 추가함으로써(죠로구모부터) 탐정 사무소 내부의 동향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건 애초에 무리한 주문이었습니다. 서술자가 되려면 감정과 사고의 흐름이 어느 정도는 우리 평범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논리적이고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걸 에노키즈 레이지로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립니다 무리;;; 백기도연대 하나만 보더라도, 이 외전이 대놓고 개그물;이고 아직 에노키즈 일파의 파괴력;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소시민 모토시마 군이 1인칭 관찰서술자인 탓도 있겠습니다만 이 무렵, 즉 누리보토케 이후의 에노키즈는 정신구조가 이미 일반인과 삼천만광년-_-쯤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3인칭은 쓰고 싶어도 못 씁니다;;;;
아무튼 아시다시피 이 남자가 신을 자칭하기 시작한 것은 교코츠에서부터, 대놓고 폭주하는 것은 텟소에서부터입니다. 즉 작가가 에노키즈 시점의 서술을 아예 포기해 버렸을 때부터――추젠지 아키히코처럼 독자에게서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로 못 박은 순간부터 에노키즈 레이지로 대명신-_-;의 진정한 폭주도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응?)

생각해 보면 에노키즈가 서술자로 적합하지 못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연못에 집어던져도 입만 둥둥 뜰' 좋게 말해 언령술사요 까놓고 말해 입만 산 남자 추젠지와는 반대로 에노키즈는 극단적으로 언어감각이 희박한 사람입니다. 말발이 딸린다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말로서 상대방을 납득시킬 자세가 애시당초 안 되어 있습니다. 필요한 말만 하면 차라리 몰라요, 이건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말밖에 하지 않으니 참 질이 대박으로 나쁘십니다. 머리 위를 한 번 흘끗 보고 "아, 그거 맛있었어?" 라고 툭 내뱉는 인간과 평범하게 대화가 가능하신 강자는 손들어 주십시오. 절하고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일반인은 '그게' 뭔지 모른단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필연적으로 말이 많아야 하는 서술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될 수 없습니다!! (망량 편의 그 대목이 아무래도 영 어색한 것은, 에노키즈의 시점에서 이런 저런 사항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말할 사람이 아니죠;)
(우부메의 여름에서도 세키구치와 의미불명의 선문답만 하고 있지 말고 저기 굴러다니는 삐─가 안 보이냐!? 라고 한 마디만 더 해줬으면 사건은 220페이지에서 끝났을 것을;;;) (<- 나름대로 네타 방지)

에노키즈 레이지로가 내레이터로 적합하지 못한 이유 그 세 번째. 백귀야행 시리즈의 주인공 추젠지 아키히코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언제나,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서술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합니다. 독자는 관찰자가 그를 바라보고 짐작하고 고찰하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추젠지 아키히코라는 한 인격체를 체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추젠지라는 인물의 윤곽을 드러내보이기 위해서는, 홈즈에게 왓슨이 그랬고 포와로에게 헤이스팅스가 그랬듯이 가까이에는 있으되 대상의 사고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많이는 알지 못하고,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더욱 더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내레이터의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이미 수천 번도 더 외쳤지만 역사상 최악의 횡포 폭군;인 에노키즈 레이지로가 오직 단 하나 대등한 위치에서 대접하는 유일한 인물은 추젠지 아키히코입니다. 이건 뒤집어 말하면, 추젠지에게 있어서도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에노키즈 하나뿐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에노키즈를 말릴 수 있는 게 추젠지 뿐이라면, 추젠지를 힐난할 수 있는 것도 에노키즈밖에 없다는 이야기지요. 더 까놓고 말하자면, 현 시점에서 누구보다도 추젠지의 의중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 즉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만으로 쿄고쿠도와 의사소통이 이루어져 버리는 에노키즈는 추젠지 아키히코의 관찰자는 결코 될 수 없는 겁니다!

「에노 상, 봤습니까?」
「봤어」
몇 명이었죠?」
「한 명」
「남자? 여자?」
「남자야」
「그런가」

     - 누리보토케의 연회:연회의 결말 편, 문고판 786page

이 사람들의 대화야말로 사건의 진상을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라고 S는 주장합니다;

백기도연대 비:나리가마(鳴釜) 편에서도 「아, 고약한 발상이 떠올라 버렸다」는 추젠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에노키즈는 뛸 듯이 좋아하면서 그거 좋은데, 그렇게 하자――고 단박에 동의를 내려버리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척척 작업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계획의 세부 사항을 논의하거나 맞춰본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이건 사실 속닥속닥 잘 논의했는데 내레이터 모토시마 군이 모르는 것뿐이라고 억지로 납득한다손 치더라도, 그 다음 대화는 더 가관입니다.

「더우면 마스크를 벗지 그럽니까. 꼴사납게 붓기라도 했어요?」
「안 부었다」
「그럼 왜――아하, 아예 깽판을 놓아버릴 작정이군」
「잘 맞췄어


――최소한의 대화로 벌써 상대방의 뱃속을 속속들이 간파하고 있습니다. 아・응의 호흡(阿吽の呼吸)이란 바로 이런 것. (어이구 못 살아;)

결론 : 에노키즈 레이지로 시점의 3인칭은 팬픽에서나 찾을 것.

"저렇게 왈왈컹컹 떠들어놓고 결론은 단 한 줄이라 이겁니까."
"결론만이라도 쌈박해야 할 거 아냐!!!"

그래도 조금은 아쉽네요.
에노키즈가 조금만 제정신;이었으면 독설과 이해 만땅의 수다쟁이 내레이터 아치 굿윈의 리모델링 형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웃음) 그렇지만 추젠지 아키히코는 적당히 수수께끼와 비밀에 묻혀 있어야 하는 사람이니 이걸로 만족할랍니다. 철저하게 베일 쓰고 필요한 최저 부분만 살짝살짝 보여줘야 동인녀로서도 망상하는 재미가 있..... 쿨럭쿨럭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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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mic71 2005/06/21 09:26
아치 굿윈과 네로 울프의 사이도 미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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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05/06/24 15:00
rumic71님 / 어떤 의미 홈즈와 왓슨보다 더 므흐흐한 사이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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