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1000page만에 드디어 추젠지가 사건의 현장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완전히 해결을 보기까지 앞으로 300page.... OTL 처음 쿄고쿠도 시리즈를 잡았을 때 우부메의 여름이 길다고 주절주절 불평해댔건만 지금 생각하면 60page만에 본론으로 들어간 우부메는 그나마 양호한 축이었죠;;;; (지금 보면 우부메의 여름이 매우 얇아 보입니다;)
아무튼 추젠지가 움직인 이상 앞으로의 번역은 치명적인 천기누설의 향연이 되겠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그냥 뒤로 돌아 도주하셔서 죠로구모의 도리를 사 보시길 바랍니다. (선전!?)
...and less.
(註 1) 인버네스 : 원문에서는 니쥬마와시(二重回し). 인버네스 쪽이 음률이 좋아서 은근슬쩍 바꿨습니다 -3- 메이지 당시에 인버네스 코트, 즉, 셜록 홈즈가 흔히 입는 케이프를 붙인 민소매의 남성용 코트를 기모노용으로 개량한 것입니다. 형태가 솔개를 닮았다고 해서 톤비(トンビ)라고도 불립니다. 메이지와 다이쇼 때 크게 유행했지요. 실물은 대충 요렇게 생겼습니다.
이걸 입고 다닌단 말이냐, 당신...!! (버닝버닝)
(註 2) 키나가시(着流し) : 남성용 기모노에서 하카마(袴)를 입지 않은 평소의 약식 복장. ....즉, 까닥하면 맨다리가 보일 수 있다는 뜻입(푸헉!!!)
(註 3) 쯔키모노(憑き物)는 쉽게 말하면 사람에게 들린 마귀입니다. 추젠지의 경우는 정신을 갉아먹는 질투, 망집, 공포, 원한, 편견 등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그냥 원문 그대로 살렸습니다. (...사실은 쯔키모노오토시란 울림이 좋아서라고는 말 못한[후략])
(註 4) 주반(襦袢) : 맨 몸에 직접 입은 짧은 홑속옷. 기모노를 입을 때는 반드시 입습니다. 긴 팔과 짧은 팔이 있고, 여성용은 색채가 화려하고 무늬도 고운 게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천 한 장으로 되어 있습(후략)
(註 5) 유젠(友禅) : 방염(防染)풀을 사용하여 비단에 꽃・새・산수 등의 무늬를 화려하게 염색하는 방법, 혹은 그 방법으로 염색한 평직의 비단을 말합니다. 교토에 유명한 직인(職人)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교토의 치소(千総)라는 유젠 가게는 무려 올해로 창립 450주년(!)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럽게 비쌉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쿄고쿠도의 노예인 S로서는 버닝버닝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웃겨서; 뱃가죽이 절라리 땡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상상 좀 해 보십시다. 홍해 갈라지듯 쭈욱 둘로 찢어지는 경관들 사이로 마스오카 변호사가 나타나고 그 뒤로 아오키와 이마가와가 등장해서, 둘이 양쪽으로 쫙 갈라지니 중앙에 추젠지가 표표히 서 있대잖아요. 저게 '모모 님 행차시다 길을 비켜라~' 가 아니면 대체 뭡니까. 호위병을 셋씩이나 거느리고 나타나셨으니 이게 대체 언놈의 높은 분의 행찬가요. 세상에 '인류 절반이 종복인 남자' '자칭 절대신'인 에노키즈도 이렇게 등장한 적은 없단 말입니다! (...에노키즈는 혼자 등장해도 거창하고 요란합니다만;)
게다가 기껏 등장하더니 대뜸 범인 앞에서 키바 말마따나 있는 뜸은 다 들여가며 쯔키모노오토시의 복장으로 갈아입습니다. S가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흰눈이 되어 '당신, ....변신 소녀?' 라고 중얼거렸다 해서 S를 비난할 사람은 절대 없으리라 봅니다.
아니, 추젠지니까요, 사실 이것도 전술의 일부분이겠죠. 징치고 북치고 꽹과리 울리고 (안 했어!!) 온갖 개폼은 다 잡아가며 거창하게 등장해 초반부터 목표물의 정신을 홀라당 빼놓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일 겁니다. 실제로도 이 연출은 스기우라한테도 미도리한테도 경찰들에게도 사전에 에노키즈에게 단단히 세뇌당한; 미유키에게도 너무나 잘 먹혀서, 제 1차 목표인 스기우라는 어느 틈엔가 추젠지의 말발에 휘말려 들어가는가 하면 추젠지가 쯔키모노오토시에 필요한 시간을 달라고 청했을 때 아라노 경부는 좀 툴툴대는 척하다 결국은 홀까닥 넘어갑니다.
그렇지만 웃긴다고요 웃기는 걸 어쩝니까;;;; 추젠지 씨 당신, 설마 아닌 척하지만 (점잔은 혼자 다 빼고 있더니 백기도연대에서 에노키즈 못지않은 악동;;이란 게 들통난 전적을 고려할 때) 그런 점에서도 에노키즈와 동류인 건 아니겠..... 아니아니 서로의 명예를 위해서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하긴 내가 이래서 당신을 좋아하지 >_<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옥상에 죽치고 앉아 대기하고 있었던 에노키즈.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당신 진짜 도라에몽보다 편리하구먼요;; (적이 있으면 알아서 섬멸하고 구할 사람이 있으면 알아서 구하고 치울 게 있으면 알아서 치워주고)
마지막 대목에서 버닝으로 불타다 돌아버릴 뻔했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 하오리의 소매, 왜 이제 오느냐고 구박하는 탐정에 당신이 이렇게 뛰어다니다니 별 일 다보겠다고 태연히 응수하는 기도사. 사이가 너무 좋은 거 아닙니까, 당신네들...? OTL
추젠지는 학원으로 향하기 전에 마스다에게 '에노키즈가 학원에 있느냐'고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너무 행간을 읽는 건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에노키즈라면 두 수 앞 정도는 너끈히 내다보고 앞질러서 스기우라의 자살을 막아줄 거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좀 안 믿기는 일이긴 합니다만 이마가와나 쿠온지 노인의 증언에 의하면 에노키즈는 장기도 바둑도 수준급이고 게다가 도저히 앞을 읽을 수 없는 플레이스타일이라 합니다. 즉, 몇 수 앞을 예측하는 건 손바닥 뒤집기라 이 얘깁니다) 아무 믿는 구석이 없었고서야 속속들이 철저한 추젠지가 언제 뛰어내릴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남자에게 애초에 빠져나갈 틈을 주었을 리가 없죠. S라도 먼저 스기우라부터 진작에 키바에게 넘겨주고 봅니다.
저 둘이 꿍짝이 척척 맞는 거야 백기도연대에서 온 천하에 피로된 일이고, 서로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으니 별반 놀라지도 않고 이 와중에 자연스럽게 만담이나 하고 있는 거죠. 앗싸 좋구나 중년 부부 >_<
......사실은 이 다음 턴이 더 가관입니다; OTL
(전략)
시간은 정지하고, 찰나가 무한대로 펼쳐졌다.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계단 밑에서 잔물결과도 같은 웅성웅성하는 소음이 파고들어와,
마침내 쿵쾅거리는 잡음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한순간에 흘러내렸다.
미유키는 눈을 몇 번이고 깜박거린 후에야 몸을 돌렸다.
인의 장벽이 갈라졌다. 마치 좌중을 고조하듯, 화려한 은테 안경을 쓴 정장의 남자가 선두에 나타났다. 그 뒤로 동안의 청년과 기묘한 얼굴을 한 기모노 차림의 남자가 나란히 섰다.
그 두 사람이 좌우로 갈라진다.
칠흑의 암흑을 두른――사신이 그곳에 있었다.
검은 인버네스. 소매 밑으로 엿보이는 의복도 역시 새까맣다.
이 사람이――.
탐정이 부른 남자다.
스기우라는 일순 넋나간 얼굴이 되었다가, 몸을 긴장시켰다.
쯔바타도 경관들도 일제히 의문 어린 시선을 던진다.
이곳 전체가 동요하고 있다.
사신은 스기우라를 올려다보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인버네스를 벗었다. 시바타의 뒤에서 은테 안경의 사내가 귓전에 무슨 말인가를 빠르게 속삭였다. 시바타의 눈이 크게 벌어진다. 사신은 스기우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인버네스를 기묘한 얼굴의 남자에게 넘겼다.
검은 키나가시(着流し). 검은 버선에 검은 게다. 끈만이 새빨갛다. 손에 든 하오리도 역시 검은빛이다.
사신은 품에서 검은 손덮개를 꺼내 손목에 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까만 하오리를 펄럭이며 걸쳤다.
정체된 공기가 단숨에 날뛰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뜸들이는구만」
키바가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경관들의 틈새를 뚫고 계단으로 향했다.
경관들은 몹시 혼란스러운 듯, 마치 사양이라도 하는 것처럼 좌우로 쫙 벌어져 길을 내주었다. 선두의 경관들은 표적을 잃은 권총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남자는 맨 앞에 섰다.
「스기우라 상――」
탁 트인, 울림이 좋은 목소리다.
스기우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맹수처럼 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도리의 목을 움켜쥔 세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힘없이 늘어진 미도리가, 긴 속눈썹에 감싸인 커다란 눈을 떴다.
――저 눈은.
둥글고 검은 눈동자의 홍채가, 한순간――수축했다.
――놀란 거야.
예상하지 못한 적의 출현으로, 미도리는 동요하고 있다.
「심히 몹쓸 것에 사로잡혀 있군요. 하지만 스기우라 상. 당신까지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죽고 싶지는 않겠지요. 당신의 쯔키모노(憑物)를――」
――꿰뚫어보고 있다.
「――퇴치해 드리겠습니다」
「쯔, 쯔키모노」
「쯔키모노입니다. 피안과 차안의 경계에 도사리며 사람에게 위해를 입히는 위험한 것이죠」
「다――당신은 누구야!!」
「죽은 자의 사자(使者)입니다. 망자가 피안에서 곤란해 하고 있습니다. 주반(襦袢) 한 겹으로는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군요. 그러니――」
쿵.
남자는 한 걸음, 계단을 올랐다.
「――그 유젠(友禅)을 돌려주십시오. 마에지마 야치요 상에게」
「뭣이!!」
키바가 외쳤다.
「어이, 쿄고쿠, 그건――」
「조용히」
남자는 손을 들어 키바를 제지했다. 그리고,
「경찰 여러분. 저 사람은 인질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조금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쿵.
남자는 계단을 오른다.
「오지 마! 이, 이 아일 죽이겠어!!」
스기우라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미도리가 가냘픈 소리를 쥐어짰다.
「사, 살려줘요――」
「그럴 생각입니다」
미도리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사신에게 어설픈 연극은 통하지 않는다.
「못된 장난이 지나치군요――어른을 함부로 놀리면 못씁니다. 스기우라 상, 그 아이는 당신이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이미 아시다시피,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요」
「무――무슨 말을」
「작년 여름――불행한 사건에 휘말려든 한 소녀가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분명 키도 모습도 다르지만, 그 아이의 생김새는 그 사람을 닮았을지도 모르겠군요. 허나 스기우라 상. 그 아이와 그 사람은 다릅니다. 당신도 처음부터 훤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망자의 대용품으로 취급해서야 그 아이도 가엾지 않습니까」
「그 사람을――아는 건가」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누구지?」
「말씀드린 대로, 죽은 자의 사자입니다. 망자와 산 자의 경계를 긋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스기우라 상, 당신 때문에, 그 소녀는 완전히 망상에 사로잡혀 버린 겁니다――」
미도리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 경계의 대부분이 애매모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 지키지 않고서야 세계가 성립되지 않는 경계선이 존재합니다. 생사의 경계선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사람은 살해하면 죽어 버립니다. 그러니」
쿵.
「그 아이를 죽이는 건 중단하십시오」
――뭐?
스기우라의 손가락에서 힘이 빠졌다.
미도리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미도리 상. 당신의 마법은 실패했습니다. 스기우라 상은, 바로 직전까지――진심으로 당신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미도리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두 눈을 한계까지 벌리고 목을 비틀어, 스기우라의 얼굴을 응시했다.
「――혼다 코조와 와타나베 사요코를 살해한 것처럼」
스기우라의 표정이 변했다.
스기우라는 미도리의 목줄기에서 오른손을 떼고, 쓸어안듯이 미도리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뭐가――어떻게 된 거지.
미유키는 백지처럼 새하얘진 머리로 주춤주춤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바타도 키바도 형사들도 교장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지 못한다.
「미도리 군. 이 사람이 자네의 순종적인 종자로 존재하는 것은, 그 기모노를 입고 있지 않을 때뿐이다. 잘 듣게, 미도리 군. 지금의 스기우라 상은 그 기모노를 입고서야 비로소 스기우라 다카오로서 기능하고 있어. 자네의 마법에 걸려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야. 스기우라 상은 스스로의 의지로 살해한 걸세」
쿵.
「싫어!!」
미도리가 절규했다.
「싫엇!! 너도 나를――」
미도리 군, 너는――시바타의 갈라진 목소리가 떨렸다.
둔감한 호청년의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너는――설마, 네가――」
미도리는 한순간 시바타를 커다란 눈동자로 쏘아보고는, 더러운 손을 치워――라고 외치며 스기우라의 굵은 팔에서 빠져나와,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거짓말쟁이! 쓸모없는 놈!!」
미도리는 양팔을 휘두르며 스기우라를 때렸다. 죽어, 죽어버려! 라고 악을 쓰면서 미친 듯이 기모노를 벗겨내려고 했다. 스기우라는 도망치듯이 반 바퀴 돌고 문을 요란하게 들이받았다. 미도리는 기모노를 움켜쥔 채로 떠밀려나가 벽에 부딪혔다.
스기우라는 말했다.
「저는――벌레 같은 인간입니다. 쓰레기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되다만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그렇다면――」
미도리가 외쳤다.
「죽어버렷!!」
검은 옷의 남자는 한달음에 뛰어올라가 미도리의 팔을 나꿔채 뺨을 세차게 때렸다.
「작작하지 못하겠나. 자네는 나중이다! 키바슈!!」
남자는 미도리를 확 밀쳐냈다. 경관대를 밀치고 달려온 키바가, 넋을 잃은 미도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그보다 한 걸음 빨리.
스기우라는 문을 열어젖히고 옥상으로 뛰쳐나갔다.
남자는 스기우라를 쫓았다. 그것을 계기로 경관대가 움직이고, 미유키도 뒤를 따랐다.
――스기우라가 미도리를 죽이려 했다고?
――미도리의 수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죽으라는 명령을 받고――스기우라는――.
미유키는 옥상으로 달려나왔다.
그날. 사요코를 쫓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관들이 아연실색하여 못 박힌 듯 멀거니 서 있다. 미유키의 뒤로, 시바타와 미도리의 팔을 붙잡은 키바가 올라왔다.
바람이 세차다.
남자는 검은 옷의 소매를 바람에 나부끼며 서 있었다.
혼다의 시체가 굴러다니던 자리에 스기우라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다. 등 뒤로 오른팔을 비틀어 꺾이고, 어깨를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찍어누르고 있는 사람은――.
「타――탐정님!!」
탐정은 뒤를 쫓아가는 대신, 앞질러서 옥상으로 올라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여학생! 내가 뭐랬나. 나는 항상 반드시 옳다네! 숭배하도록」
탐정은 높은 목소리로 명랑쾌활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검은 옷의 남자를 보고,
「늦어, 이 굼벵이」
라고 말했다. 남자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웬일로 열심이군요」
그렇게 대꾸했다.
시간은 정지하고, 찰나가 무한대로 펼쳐졌다.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계단 밑에서 잔물결과도 같은 웅성웅성하는 소음이 파고들어와,
마침내 쿵쾅거리는 잡음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한순간에 흘러내렸다.
미유키는 눈을 몇 번이고 깜박거린 후에야 몸을 돌렸다.
인의 장벽이 갈라졌다. 마치 좌중을 고조하듯, 화려한 은테 안경을 쓴 정장의 남자가 선두에 나타났다. 그 뒤로 동안의 청년과 기묘한 얼굴을 한 기모노 차림의 남자가 나란히 섰다.
그 두 사람이 좌우로 갈라진다.
칠흑의 암흑을 두른――사신이 그곳에 있었다.
검은 인버네스. 소매 밑으로 엿보이는 의복도 역시 새까맣다.
이 사람이――.
탐정이 부른 남자다.
스기우라는 일순 넋나간 얼굴이 되었다가, 몸을 긴장시켰다.
쯔바타도 경관들도 일제히 의문 어린 시선을 던진다.
이곳 전체가 동요하고 있다.
사신은 스기우라를 올려다보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인버네스를 벗었다. 시바타의 뒤에서 은테 안경의 사내가 귓전에 무슨 말인가를 빠르게 속삭였다. 시바타의 눈이 크게 벌어진다. 사신은 스기우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인버네스를 기묘한 얼굴의 남자에게 넘겼다.
검은 키나가시(着流し). 검은 버선에 검은 게다. 끈만이 새빨갛다. 손에 든 하오리도 역시 검은빛이다.
사신은 품에서 검은 손덮개를 꺼내 손목에 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까만 하오리를 펄럭이며 걸쳤다.
정체된 공기가 단숨에 날뛰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뜸들이는구만」
키바가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경관들의 틈새를 뚫고 계단으로 향했다.
경관들은 몹시 혼란스러운 듯, 마치 사양이라도 하는 것처럼 좌우로 쫙 벌어져 길을 내주었다. 선두의 경관들은 표적을 잃은 권총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남자는 맨 앞에 섰다.
「스기우라 상――」
탁 트인, 울림이 좋은 목소리다.
스기우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맹수처럼 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도리의 목을 움켜쥔 세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힘없이 늘어진 미도리가, 긴 속눈썹에 감싸인 커다란 눈을 떴다.
――저 눈은.
둥글고 검은 눈동자의 홍채가, 한순간――수축했다.
――놀란 거야.
예상하지 못한 적의 출현으로, 미도리는 동요하고 있다.
「심히 몹쓸 것에 사로잡혀 있군요. 하지만 스기우라 상. 당신까지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죽고 싶지는 않겠지요. 당신의 쯔키모노(憑物)를――」
――꿰뚫어보고 있다.
「――퇴치해 드리겠습니다」
「쯔, 쯔키모노」
「쯔키모노입니다. 피안과 차안의 경계에 도사리며 사람에게 위해를 입히는 위험한 것이죠」
「다――당신은 누구야!!」
「죽은 자의 사자(使者)입니다. 망자가 피안에서 곤란해 하고 있습니다. 주반(襦袢) 한 겹으로는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군요. 그러니――」
쿵.
남자는 한 걸음, 계단을 올랐다.
「――그 유젠(友禅)을 돌려주십시오. 마에지마 야치요 상에게」
「뭣이!!」
키바가 외쳤다.
「어이, 쿄고쿠, 그건――」
「조용히」
남자는 손을 들어 키바를 제지했다. 그리고,
「경찰 여러분. 저 사람은 인질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조금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쿵.
남자는 계단을 오른다.
「오지 마! 이, 이 아일 죽이겠어!!」
스기우라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미도리가 가냘픈 소리를 쥐어짰다.
「사, 살려줘요――」
「그럴 생각입니다」
미도리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사신에게 어설픈 연극은 통하지 않는다.
「못된 장난이 지나치군요――어른을 함부로 놀리면 못씁니다. 스기우라 상, 그 아이는 당신이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이미 아시다시피,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요」
「무――무슨 말을」
「작년 여름――불행한 사건에 휘말려든 한 소녀가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분명 키도 모습도 다르지만, 그 아이의 생김새는 그 사람을 닮았을지도 모르겠군요. 허나 스기우라 상. 그 아이와 그 사람은 다릅니다. 당신도 처음부터 훤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망자의 대용품으로 취급해서야 그 아이도 가엾지 않습니까」
「그 사람을――아는 건가」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누구지?」
「말씀드린 대로, 죽은 자의 사자입니다. 망자와 산 자의 경계를 긋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스기우라 상, 당신 때문에, 그 소녀는 완전히 망상에 사로잡혀 버린 겁니다――」
미도리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 경계의 대부분이 애매모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 지키지 않고서야 세계가 성립되지 않는 경계선이 존재합니다. 생사의 경계선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사람은 살해하면 죽어 버립니다. 그러니」
쿵.
「그 아이를 죽이는 건 중단하십시오」
――뭐?
스기우라의 손가락에서 힘이 빠졌다.
미도리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미도리 상. 당신의 마법은 실패했습니다. 스기우라 상은, 바로 직전까지――진심으로 당신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미도리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두 눈을 한계까지 벌리고 목을 비틀어, 스기우라의 얼굴을 응시했다.
「――혼다 코조와 와타나베 사요코를 살해한 것처럼」
스기우라의 표정이 변했다.
스기우라는 미도리의 목줄기에서 오른손을 떼고, 쓸어안듯이 미도리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뭐가――어떻게 된 거지.
미유키는 백지처럼 새하얘진 머리로 주춤주춤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바타도 키바도 형사들도 교장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지 못한다.
「미도리 군. 이 사람이 자네의 순종적인 종자로 존재하는 것은, 그 기모노를 입고 있지 않을 때뿐이다. 잘 듣게, 미도리 군. 지금의 스기우라 상은 그 기모노를 입고서야 비로소 스기우라 다카오로서 기능하고 있어. 자네의 마법에 걸려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야. 스기우라 상은 스스로의 의지로 살해한 걸세」
쿵.
「싫어!!」
미도리가 절규했다.
「싫엇!! 너도 나를――」
미도리 군, 너는――시바타의 갈라진 목소리가 떨렸다.
둔감한 호청년의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너는――설마, 네가――」
미도리는 한순간 시바타를 커다란 눈동자로 쏘아보고는, 더러운 손을 치워――라고 외치며 스기우라의 굵은 팔에서 빠져나와,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거짓말쟁이! 쓸모없는 놈!!」
미도리는 양팔을 휘두르며 스기우라를 때렸다. 죽어, 죽어버려! 라고 악을 쓰면서 미친 듯이 기모노를 벗겨내려고 했다. 스기우라는 도망치듯이 반 바퀴 돌고 문을 요란하게 들이받았다. 미도리는 기모노를 움켜쥔 채로 떠밀려나가 벽에 부딪혔다.
스기우라는 말했다.
「저는――벌레 같은 인간입니다. 쓰레기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되다만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그렇다면――」
미도리가 외쳤다.
「죽어버렷!!」
검은 옷의 남자는 한달음에 뛰어올라가 미도리의 팔을 나꿔채 뺨을 세차게 때렸다.
「작작하지 못하겠나. 자네는 나중이다! 키바슈!!」
남자는 미도리를 확 밀쳐냈다. 경관대를 밀치고 달려온 키바가, 넋을 잃은 미도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그보다 한 걸음 빨리.
스기우라는 문을 열어젖히고 옥상으로 뛰쳐나갔다.
남자는 스기우라를 쫓았다. 그것을 계기로 경관대가 움직이고, 미유키도 뒤를 따랐다.
――스기우라가 미도리를 죽이려 했다고?
――미도리의 수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죽으라는 명령을 받고――스기우라는――.
미유키는 옥상으로 달려나왔다.
그날. 사요코를 쫓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관들이 아연실색하여 못 박힌 듯 멀거니 서 있다. 미유키의 뒤로, 시바타와 미도리의 팔을 붙잡은 키바가 올라왔다.
바람이 세차다.
남자는 검은 옷의 소매를 바람에 나부끼며 서 있었다.
혼다의 시체가 굴러다니던 자리에 스기우라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다. 등 뒤로 오른팔을 비틀어 꺾이고, 어깨를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찍어누르고 있는 사람은――.
「타――탐정님!!」
탐정은 뒤를 쫓아가는 대신, 앞질러서 옥상으로 올라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여학생! 내가 뭐랬나. 나는 항상 반드시 옳다네! 숭배하도록」
탐정은 높은 목소리로 명랑쾌활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검은 옷의 남자를 보고,
「늦어, 이 굼벵이」
라고 말했다. 남자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웬일로 열심이군요」
그렇게 대꾸했다.
(註 1) 인버네스 : 원문에서는 니쥬마와시(二重回し). 인버네스 쪽이 음률이 좋아서 은근슬쩍 바꿨습니다 -3- 메이지 당시에 인버네스 코트, 즉, 셜록 홈즈가 흔히 입는 케이프를 붙인 민소매의 남성용 코트를 기모노용으로 개량한 것입니다. 형태가 솔개를 닮았다고 해서 톤비(トンビ)라고도 불립니다. 메이지와 다이쇼 때 크게 유행했지요. 실물은 대충 요렇게 생겼습니다.
이걸 입고 다닌단 말이냐, 당신...!! (버닝버닝)
(註 2) 키나가시(着流し) : 남성용 기모노에서 하카마(袴)를 입지 않은 평소의 약식 복장. ....즉, 까닥하면 맨다리가 보일 수 있다는 뜻입(푸헉!!!)
(註 3) 쯔키모노(憑き物)는 쉽게 말하면 사람에게 들린 마귀입니다. 추젠지의 경우는 정신을 갉아먹는 질투, 망집, 공포, 원한, 편견 등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그냥 원문 그대로 살렸습니다. (...사실은 쯔키모노오토시란 울림이 좋아서라고는 말 못한[후략])
(註 4) 주반(襦袢) : 맨 몸에 직접 입은 짧은 홑속옷. 기모노를 입을 때는 반드시 입습니다. 긴 팔과 짧은 팔이 있고, 여성용은 색채가 화려하고 무늬도 고운 게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천 한 장으로 되어 있습(후략)
(註 5) 유젠(友禅) : 방염(防染)풀을 사용하여 비단에 꽃・새・산수 등의 무늬를 화려하게 염색하는 방법, 혹은 그 방법으로 염색한 평직의 비단을 말합니다. 교토에 유명한 직인(職人)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교토의 치소(千総)라는 유젠 가게는 무려 올해로 창립 450주년(!)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럽게 비쌉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쿄고쿠도의 노예인 S로서는 버닝버닝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웃겨서; 뱃가죽이 절라리 땡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상상 좀 해 보십시다. 홍해 갈라지듯 쭈욱 둘로 찢어지는 경관들 사이로 마스오카 변호사가 나타나고 그 뒤로 아오키와 이마가와가 등장해서, 둘이 양쪽으로 쫙 갈라지니 중앙에 추젠지가 표표히 서 있대잖아요. 저게 '모모 님 행차시다 길을 비켜라~' 가 아니면 대체 뭡니까. 호위병을 셋씩이나 거느리고 나타나셨으니 이게 대체 언놈의 높은 분의 행찬가요. 세상에 '인류 절반이 종복인 남자' '자칭 절대신'인 에노키즈도 이렇게 등장한 적은 없단 말입니다! (...에노키즈는 혼자 등장해도 거창하고 요란합니다만;)
게다가 기껏 등장하더니 대뜸 범인 앞에서 키바 말마따나 있는 뜸은 다 들여가며 쯔키모노오토시의 복장으로 갈아입습니다. S가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흰눈이 되어 '당신, ....변신 소녀?' 라고 중얼거렸다 해서 S를 비난할 사람은 절대 없으리라 봅니다.
아니, 추젠지니까요, 사실 이것도 전술의 일부분이겠죠. 징치고 북치고 꽹과리 울리고 (안 했어!!) 온갖 개폼은 다 잡아가며 거창하게 등장해 초반부터 목표물의 정신을 홀라당 빼놓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일 겁니다. 실제로도 이 연출은 스기우라한테도 미도리한테도 경찰들에게도 사전에 에노키즈에게 단단히 세뇌당한; 미유키에게도 너무나 잘 먹혀서, 제 1차 목표인 스기우라는 어느 틈엔가 추젠지의 말발에 휘말려 들어가는가 하면 추젠지가 쯔키모노오토시에 필요한 시간을 달라고 청했을 때 아라노 경부는 좀 툴툴대는 척하다 결국은 홀까닥 넘어갑니다.
그렇지만 웃긴다고요 웃기는 걸 어쩝니까;;;; 추젠지 씨 당신, 설마 아닌 척하지만 (점잔은 혼자 다 빼고 있더니 백기도연대에서 에노키즈 못지않은 악동;;이란 게 들통난 전적을 고려할 때) 그런 점에서도 에노키즈와 동류인 건 아니겠..... 아니아니 서로의 명예를 위해서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하긴 내가 이래서 당신을 좋아하지 >_<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옥상에 죽치고 앉아 대기하고 있었던 에노키즈.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당신 진짜 도라에몽보다 편리하구먼요;; (적이 있으면 알아서 섬멸하고 구할 사람이 있으면 알아서 구하고 치울 게 있으면 알아서 치워주고)
마지막 대목에서 버닝으로 불타다 돌아버릴 뻔했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 하오리의 소매, 왜 이제 오느냐고 구박하는 탐정에 당신이 이렇게 뛰어다니다니 별 일 다보겠다고 태연히 응수하는 기도사. 사이가 너무 좋은 거 아닙니까, 당신네들...? OTL
추젠지는 학원으로 향하기 전에 마스다에게 '에노키즈가 학원에 있느냐'고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너무 행간을 읽는 건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에노키즈라면 두 수 앞 정도는 너끈히 내다보고 앞질러서 스기우라의 자살을 막아줄 거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좀 안 믿기는 일이긴 합니다만 이마가와나 쿠온지 노인의 증언에 의하면 에노키즈는 장기도 바둑도 수준급이고 게다가 도저히 앞을 읽을 수 없는 플레이스타일이라 합니다. 즉, 몇 수 앞을 예측하는 건 손바닥 뒤집기라 이 얘깁니다) 아무 믿는 구석이 없었고서야 속속들이 철저한 추젠지가 언제 뛰어내릴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남자에게 애초에 빠져나갈 틈을 주었을 리가 없죠. S라도 먼저 스기우라부터 진작에 키바에게 넘겨주고 봅니다.
저 둘이 꿍짝이 척척 맞는 거야 백기도연대에서 온 천하에 피로된 일이고, 서로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으니 별반 놀라지도 않고 이 와중에 자연스럽게 만담이나 하고 있는 거죠. 앗싸 좋구나 중년 부부 >_<
......사실은 이 다음 턴이 더 가관입니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