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가 나루미 아유무에게 허걱하고 넘어간 건, 그야 기본으로 갖춘 미모라던가 팽팽 잘 돌아가는 머리라던가 형에게 품고 있는 초 복잡한 애증에 가까운 감정이라던가 하필이면 형수가 첫사랑이란 거라던가 그 잘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어찌나 치였는지 소심하고 자신감 없고 음울한 주제에 또 해야 할 때는 하고 불평은 한도 끝도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남의 불행은 그냥 못 넘기는 냅둬도 오래는 못 살 성격이라던가 스즈켄의 또랑또랑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라던가 여러 가지로 많긴 하지만, 사전에 결말을 왕창 네타당하고 14권까지 본 후 비로소 확신했다.
나는 이 아이의 '자기 자신에 대한' 심상찮은 무심의 포스에 풍덩 빠졌던 것이다.
네타바레 만재라는 H양의 지적을 받고 찔끔해서 얼른 가리는 S.
본편에서 자기 입으로 벌써 몇 년째 울어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실제로 울지도 않거니와 거의 웃지도 않는다. 곤란한 얼굴, 당황한 얼굴, 그리고 이 녀석 안면 패턴의 70퍼센트(근거 없음)를 차지하고 있는 무표정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무심~~~한 얼굴은 산더미처럼 떠오르나 웃는 얼굴은 머리를 있는대로 쥐어짜봤자 기껏 기억나는 것은 리오 편 라스트 혹은 형수님께 흉중에 묻어둔 심정을 고백할 때의 잔잔한 미소 정도. 소년답게 배잡고 마음껏 웃어젖히는 모습 따위는 애초에 기대를 말아야 한다. 상대가 경동맥에 칼을 밀어붙이며 험악하게 을러대는데 고작해야 죽일 테면 죽이쇼, 칼날이 차가우니 얼른 해주지 않겠소-_-의 달관하다 하다 못해 우화등선해 버린 반응밖에 보이지 않는 16세에게 뭘 바라라고. 히즈미가 맥이 빠져 나가떨어져도 할 수 없지.
헌데 자세히 보면 이 대책없는 무심무심 포스의 방향은 오로지 아유무 자신만을 향해 있다. 본편에서도 몇 번이고 보기보다 훨씬 상냥한 아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나루미 아유무라는 인격체를 한 큐에 설명하는 것은 남의 백 마디 말이 아닌 그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이다. 구해달라는 말 하나에 꺼뻑 넘어가 지하철로도 한두 시간은 걸리는 숲까지 갈 멍청이가 요즘 세상에 누가 있느냐고 실컷 주장해놓고 발길은 자동적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만사를 귀찮아하는 소년의 오지랖이 알고 보면 태평양보다도 더 넓고 광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무심하고 타인에게만 유심(....)한 개차반 같은 인간은 언제나 S의 모에 대상이었다. 슬프다.
그랬다. 키리에와 아이즈가 야이바와 키요타카와 블레이드 칠드런에 얽힌 막 나가는 백 스토리를 좔좔좔좔 읊어댈 때 이게 웬 판타지냐고 혀를 쯧쯧 차지만 정작 자신이 블레이드 칠드런을 '구원'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데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당연히 그래야 하는 듯이 아아주 자연스럽게 그 하나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블레이드 칠드런 다섯 명을 두름으로 쓸어서 모조리 짊어져버린다. 울며 불며 나 좀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히즈미에게 무슨 이유로 내가 너까지 구해주어야 하느냐고는 농담으로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당연하게 짐덩이 하나를 또 떠안고 말 뿐이다. (여담이지만 14권의 고백 신[....]은 진짜 걸물이었다. 너만이 날 이해할 수 있으며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그예 살인까지 했고 제발 나 버리지 말라고 '남자애'에게 개처절하게 애걸복걸하는 '남자애'라니 OTL) 종국에는
어서 날 죽이러 오려무나 동생♥ 얼른 동생 손을 빌어 자살해 버릴 생각으로만 해골이 복잡한 키요타카마저도, 죽이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원 안으로 끌어들여' 기꺼이 '끌어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런 아이다.
그 아이가 짊어졌던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았다. 키요타카는 자살 원망을 버리고 약 3년간 끈질기게 기다려주신 마눌님과 논실난실하고 있고(어쨌든 보기에는), 히즈미는 일찍 죽기는 했으되 마지막까지 아유무를 위해서 무언가 해 보려고 애쓰다 간 걸 보면 아마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블레이드 칠드런들은 - 카논이 안 죽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 제 갈 길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설령 야이바의 피의 저주가 덮친다 하더라도 지금의 그 애들은 모두 등을 곧바르게 펴고 끝까지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다. 피의 저주에서 풀려났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반대로 그만큼 희망도 있다. 하지만, 아유무 자신은?
지금 돌이켜보면, 나루미 아유무는 '신'도 뭣도 아니라, 처음부터 고독 혹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물질'들을 진창에서 끄집어내 비교적 곧바른 길로 향하도록 등을 걷어차 주기 위해 선택된 '희생양'이었으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힘겨운 의무에 대해서 한 치 회의도 품지 않고 흔히 품을 수 있는 한 조각 연민도 없이 앞만 보고 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스파이럴 팬들을 몽땅 공황 상태에 빠뜨린 아유무의 결말도, 이 맥락에서 보면 아주 당연한 결론이다. 그 애는 이대로 서서히 죽어가는 게 맞다.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성배로서의 나루미 아유무의 역할은 끝났다. L모 님의 말씀대로, 제물은 살아서 제단에서 내려오면 안 되니까.
그리고 나는, 그 파멸상과 멍청함에 홀랑 반했다....... OTL (취향하고는;)
여러 가지로 횡설수설하고 있지만 결국엔 자신의 짧은 여명조차도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있는 저 빌어먹을 무심함과 초연함이 좋다는 얘기다. -_-;;;; (따지지 마라. 주인장 원래 만연체병이다)
미모와 능력은 기본이고, 어느 틈엔가 좌라락 구축된 하렘에, 쓸데없이 넓기만 한 오지랖에, 무심무심 포스에, 불치병에, 다 두고 튈 폼을 반쯤 잡고 있는 것까지, 너도 잘하면 나쁜 남자 캘러미티급에는 너끈히 등극하겠구나... 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