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웬 바람이 불어 타이거! 타이거! 를 재독했다 기분 잡치다.

읽거나 혹은 죽거나 | 2005/11/05 11:01

S가 걸리버 포일을 죽어라고 싫어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미쳤거나 말거나, 인간이 멋지고 근사하기만 하면 살인한 남자는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살인한 여자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라면 진짜 큰일날 소리이나(당연하죠;) 2차원에서는 사악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평범하고 매력없는 사람 몇을 죽이든 솔직히 '알 바 아닌 거' 맞죠. 한니발 렉터 박사님께 캬아캬아 열광하는 이유가 뭔데요. 기본적으로 토머스 해리스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렉터 박사님 같은 우아하고 멋진 괴물을 창조해 준 데 대해선 엎드려서 절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유가 뭣이었건 간에, 여자를 강간하는 남자는 절대로 용서 못합니다.
(살인보다 강간이 더 질 나쁘고 더러운 범죄라는 기본 신념도 결코 양보 못합니다)

나중에야 어떻게 변하든 일단 포일은 초장부터 S에게 인상을 싸그리 망쳤습니다. S의 사랑이 아무리 제국보다 광대하고 느린 계단식일지언정 둔하고 멍청하고 막돼먹은 사내한테까지 줄 만큼 정 많지 않은데, 포일이 로빈 웬즈베리를 강간하는 꼴까지 봤더니 피가 확 역류했습니다. 야 이 망할 자식아!!
아, 설마 지금 강간은 없었다고 주장하실 분은 없겠죠? 저런 상식도 예절도 없는 따악 짐승 같은 사내놈이 가무잡잡한 피부의 잘 빠지고 아름다운 여자를 소파(인지 침대인지)에 집어던지는 걸로 손 털고 꺼질 리 없다는 당위론은 둘째치고, 후에 병원에서 재회했을 때 내 인생 니놈이 다 망쳤다고 이를 북북 가는 로빈이나 옷 갈아입으며 눈치 보는 로빈을 보면 사태는 아아주 빤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니라고 주장하실 분은, ....그냥 익스플로러 닫고 돌아가세요. -_-
<타이거! 타이거!>가 양념불고기 9인분을 우겨넣은 다음날 아침의 뱃속처럼 불편한 이유는 거기 있습니다. 이 작가, 자세히 보면 로빈을 진짜 함부로 굴립니다. 올리비아 프레스타인이 등장하고 대규모 폭격이 휩쓸고 지나간 그 파티의 밤에, 마치 윤간당한 직후를 암시하는 듯한 로빈의 묘사도 그렇거니와 (진짜 막 나가네 이 작가;) 소행성에서 버리고 튀었던 지즈벨라에겐 덜덜 떨면서 복수가 끝나면 날 죽여도 좋다고 한 주제에 오죽하면 자살까지 시도했을 만큼 처절하게 짓밟아 놓은 로빈에게는 사죄 한 마디 없는 포일은 어떻습니까. ("당신에게 그렇게 심한 짓을 많이 했는데..." 가 사죄로 보인다는 사람도 돌아가세요. 에비에비) 포일에게는 파리야 신부로서의 기능을 하는 등 - 물론 품격은 한참 떨어짐; - 분명 어느 정도 대접을 받고 있는 지즈벨라와 아주 뻘밭에 콱 처박혀 있는 로빈, 이 둘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지즈벨라는 백인이고 로빈은 흑인이라는 겁니다. (오호라 백인 여자는 존중해 줘야 하지만 흑인 여자는 함부로 굴려도 된다 이거냐, 젠장 White Male이란!!!) 빌어먹을, 이럴 바엔 이년 저년 할 거 없이 다 짜증만 팍팍 나는 <신들의 사회>가 나았다!!!

그야, 무지하고 단순하지만 또한 순진하고 선량하여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젊은이 에드몽 단테스와 우아하고 고상한 몽테 크리스토 백작보다 거칠고 둔하고 짐승 같고 쪼끔 교화는 됐어도 여전히 야수가 따로 없는 걸리버 포일이 훨씬 현실적이고 남자란 생물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면야 그 점에 대해선 할 말 없습니다. (여전히 막판의 포일의 대오각성-_-;;;;이 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뭐 넘어가고)
하지만 어차피 픽션이라면 품위 있는 미중년의 세련되고 차분한 복수극을 보고 싶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말이죠, 주인공의 복수극에 공감을 품으려면 문제의 주인공에게 팍팍 감정 이입을 해야 하는 건 아아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주인공의 입장에서 저 벼락맞을 놈들에게 분노를 품고 하나하나 파멸하는 꼴에 얼싸 좋다 환호하는 게 복수극의 기본 아닙니까? 적어도 S는 때려죽여도 저런 짐승 같은 스키에겐 공감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보가 호를 때려잡겠다 날뛰어도 아, 그러셔-_-;;고 (랄까, 이렇게나 머리가 잘 돌아가게 됐고 재벌도 되셨으니 오히려 보가 호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_-) 절 버리고 날라버린 문제의 선장 앞에서 마구 울부짖어도 어서 개가 짖나...며 시큰둥할 뿐. 인물도 저 망할 놈의 스키;;; 아니면 으응? ;;; 이고 스토리도 으음...;;; 이고 카타르시스도 ......어이어이;;;; 면 대체 이 소설에서 뭘 건져야 한다는 겁니까? 아, 퍽퍽 몰아치는 문체라던가 타이포그래피요? 그건 좋았습니다. 인정하죠.
우씨, SF판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랍시고 되도 않은 기대를 품게 만든 카피라이터 누구야!! 니들 다 죽었어!!!

이상, <타이거! 타이거!>를 다시 봤다 기분만 잡친 S의 투덜거림이었습니다.
(예전 포스팅에서는 최대한 욕설을 억누르고 있었음을 깨달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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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삭제 댓글
†血惡† 2006/01/01 20:10
음. 전체적인 줄거리가 SF판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저도 좀더 세련된 '암굴왕'같은 줄거리가 좋지만 SF판이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죠. SF에 복수극은 그다지 멋지게 융합할 수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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