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동인녀의 망상이 폭진하면 먹잇감은 이렇게 된다'의 진리를 온몸으로 구현하는 최량의 샘플, 동인계에서는 보통 로스 형님(ロス兄)으로 통하는 사지타리우스의 아이올로스의 생일이었죠. 로스사가 마니아를 자청하는 여인으로서 뭔가 휙휙 갈겨써서 올리려 했었건만 결국 시간을 맞추지 못하여 오늘이 되었습니다.... 젠장 OTL (그 대신 염원의 초코 크로아와 자허토르테를 먹으며 형님의 생일을 기렸으므로 좀 봐주시면... 덜덜덜;) (자허토르테는 맛있었습니다 >_<)
덤으로 1월 3일 본 블로그 개통 이후로 하나도 챙겨드리지 못한 슈라 씨(1월 12일), 빙상의 기행자귀공자 효가탕(1월 23일), 와가시(2월 7일), 아프로(3월 10일), 므우 님(3월 27일), 시온 님(3월 30일), 성역의 성역 알데바란(5월 8일), 만악의 원흉 사가와 카논 쌍둥이(5월 30일), 뎃짱(6월 24일), 잇키 형님(8월 15일), 그 형님의 동생이란 죄로 피박은 다 뒤집어쓰는 리아(8월 16일), 슌(9월 9일), 사이비 부처님(9월 19일), 시류(10월 4일), 노사(10월 20일), 명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중간관리직의 비애 라다망(10월 30일), 미로링(11월 8일), 있어도 그만이나 없으면 성립 안 되는 도넛의 구멍(...)같은 주인공 세이야(12월 1일)까지 모두모두 생일 축하합니다! (젠장 더럽게 많다! ;;;;)
(여신님은 마침 우리 애기와 겹쳤던 까닭에 용케 챙겼음;)
아무튼 예전 氷雪 님(독음을 너무나도 내추럴하게 일본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죄송;)과의 불타는 메신저 토크에서 영감을 얻은 이후 계속 쓸까 말까 쓸까 말까 고민하던 소재에 누구 씨의 생일 축하를 핑계로 문재(文才)의 궁핍함을 과감히 무시까고 배째라 정신으로 덤벼드는 누가 같은 사자자리 아니랄까 봐 맨 몸으로 포세이돈에게, 청동성의로 하데스에게 잘도 개긴 잇키 형님의 무모함만 은근슬쩍 닮은 S입니다. 개그도 못 되고 있는 어설픈 문체와 골수 팬의 어쩔래 나 막 나간다 정신이 용서되지 않는 분은 그냥 잊어주세요. 와하하하하하하하.
관리인, 예전부터 불타는 팬심으로 웬만한 삑사리는 대충 넘기고 살아온 세이야에 꼭 한 가지 불만이 있었으니, 어째서 저토록 고강하고 강력하신 시온 님이 사가 따위(....)에게 암살당하셨단 말인가!!!? (시온 님은 후발 설정이라는 쯧코미는 모른 척해주는 센스) 인간 중에선 아무도 못한 주인공 4인방 일거에 패대기치기의 쾌거를 이룩하신 유일한 분이 어찌하여 수도 한 방에 명계로 발을 들이셨더란 말인가. 역시 향년 248세(...)가 나빴던가? 연륜은 젊음에 이길 수 없단 말인가!! 그럴 리가 있냐아아아아아!!! 뼛속까지 오지콤인 관리인, 스스로의 생각에 심히 분개하여 리벤지의 열망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한다.
한편 모처에서 타이밍 좋게 주워들은 모님의 '로스가 살아서 무사히 교황이 됐으면 성역은 지금보다 백 배는 유쾌한 곳이 됐을 것'이라는 고견에 마음을 빼앗겨 고개를 떨어져라 위아래로 붕붕붕 흔들던 차, 동인계에는 어디든지 문만큼 아아주 편리한 것이 있음을 문득 깨달았나니 그것인즉슨 일본에서 패러렐이라 하고 서양에서 AU(Alternative Universe)라 부르는 물건이었더라. 팬심은 무서운 것이니 한 번 삘이 꽂히면 그것으로 게임은 오버인즉슨, 본좌는 칼을 물고 자결하는 이의 심정으로 깽판에 도전하고자 결심하였더니라.
패러렐 혹은 AU가 무엇인지 모르는 순진한 처자 혹은 용납하지 못하는 순수 원작파는 여기서 잠자코 물러날진저.
하지마아아아아아안!!! 황금 팬이라면 누구나 즐겨 채택하여 이젠 정설로 뿌리박힌 '황금 전원 생환설'도 엄밀힌 패러렐이란 말이다아아아아아아아아!!!!
* 경고했듯이 원작을 무지막지하게 왜곡하고 쥐어튼 패러렐입니다.
* 관리인의 사감과 매우 개인적인 원작 해석과 더 개인적인 설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 시온 님이 깡패입니다.
* 사가가 전혀 신과 같이 고결한 남자가 아닙니다.
* 꿈과 망상이 폭주한 결과 로스 형님이 뭔가 심하게 이상해져 있습니다.
* 쓰는 인간이 인간인 만큼 일단은 로스사가(로스+사가?)이나 달달한 연애질은 한 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오히려 로스 VS 사가일지도? ;;;
* 카논이 로리콘(....)일지도 모릅니다.
* 황금들은 여전히(....) 전원 바보입니다.
* 관리인은 황금+알파를 모두 심히 사랑합니다. 사랑하니 마구 망가뜨리자는 위험한 사상의 소유자일 뿐입니다... 푸헉.
이상의 사항과 개그 미만의 시베리아 썰렁썰렁함을 감당할 각오가 되신 분은 밑으로 내려가십시오.
* Prologue *
여기는 오로지 교황만이 등정하여 천구의 움직임을 읽는 것이 허락되는 성역의 스타힐.
나흘 전 아테나의 강림을 기해 교황 양위의 폭탄 선언을 터뜨리고 하는 김에 후계자도 후딱 지명하는 위업을 일거에 달성한 성역 39대 교황 아리에스의 시온은 거센 바람에 법의자락을 흐트리며 품위 있게 별빛 총총한 밤하늘을 응시하고, 역시 기품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로 나즈막히 뇌까렸다.
"……흉성(兇星)이 선명하구나."
참으로 폼발 나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진짜로 폼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렇지만, 근 두 세기하고 반을 한결같이 꿈에 그리던 엔조이 라이프★가 현실로 코앞에 아른대는 마당에 뇌리가 꽃밭이고 우후후아하하인데 별의 궤도고 나발이고 눈에야 보이되 머릿속까지 뭔 수로 들어올까. 교황도 인간이란 말이다.
여신의 지상 대리인이자 아테나의 반려, 성역의 실질적 통치자 등등 갖은 화려한 칭호를 꿰찬 본직을 거쳐간 서른 아홉 중 최다초과근무과로졸도직전상을 단독 수상해 마땅한 시온의 들어줄 사람도 없는 변(弁)에는 일리가 있었다.
동료들을 잃고 싸느라히 식어가는 아테나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며 도코와 단 둘만이 살아남은 성전 이후로 약 230여 년, 여신의 마지막 명을 받들어 오로봉으로 향해야 했던 친구마저 떠나보내고, 새로운 교황으로서 시온은 뼛골이 빠지고 쌔도 빠지도록 일에 매달렸다.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했다. 폐허가 된 성역을 재건하고 제도를 정비하고 백은과 청동을 새로이 육성하는 따위의 내부 관리는 그러려니 하더라도, 재수도 없게 두 번의 세계대전과 수천 번의 내전과 전세계를 동서로 양분한 냉전과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이 불러온 무수한 재난으로 피칠갑된 격변기에 교황자리에 앉고 만 죄로 적절히 균형을 잡아가며 어디까지나 비밀리에, 비/밀/리/에 암약하기 위해 닥닥 쥐어짠 신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개가 무량하다.
……정작 기력의 대부분은 툭하면 히스테리 걸핏하면 자폭인 꼭꼭 막힌 모범생과 천연 보케의 압박이 가히 재난급인 대책없는 마이페이스를 위시하여 성역사상 유래가 없는 말썽쟁이로 기록될 현 황금의 아쉐이들을 두들겨패는 와중에 깡그리 소모했지만.
220년 용케 안 휘었던 등골이 단숨에 뿌직 휘어진 지난 10년을 회상하고 시온의 이마에 힘줄이 빠직 솟았다.
제 힘으로 크로스를 쟁취해야 하는 백은과 청동과는 달리, 황금은 오로지 아테나의 강림을 전후해서만 크로스가 직접 주인 될 자를 선택한다.
여신의 귀환을 예비하여 첫 번째 황금성투사가 성역으로 온 것이 10년 전. 그 후로 몇 달, 혹은 몇 년의 간격을 두고 크로스의 부름에 이끌려 하나둘씩 모여들어, 마침내 열두 명이 전부 갖춰진 것이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2주 전, 마침내 아테나가 인간의 몸을 빌어 성역으로 되돌아왔다.
설령 그것이 하데스와의 치열한 성전을 예고한다 한들, 성역의 지주인 여신과 주축을 이루는 황금성투사가 다시 한 자리에 모임은 분명 최대의 경사이리라.
다만.
설마 짠 듯이 경이적으로 말 안 들어처먹는 놈놈들만 골라갖다놨을 줄 누군들 알았느냔 말이다.
원래 개성이 좀 지나치다 못해 아슷흐랄라로 나르는 건 황금성투사의 전통이지만 이번 대는 유난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는 문제아들의 대집합인지라, 눈도 감고 적당히 무시하고 관대해지려 발버둥치고 엉거주춤 스텝으로 스리스리 넘겨줘도 도리가 없는 같잖은 사투로 대략 스물 두 번 초전박살나고 여덟 번 폭설에 덮이고 다섯 번 망령의 소굴이 되고 아테나 엑스클러메이션이 세 번 발동할 뻔한 십이궁의 참사를 역사 매니아의 슬픈 본성으로 쓸데도 없이 꼼꼼하게 되짚어낸 시온은 이번의 성전은 절대 하데스 진영과의 피터지는 싸움에서 곱게 막내려주지 않을 듯한 예감에 식은땀을 한순간 삐질댔으나, 에라이 아무렴 어떻단 말인가. 나흘 전에 양위 선언을 터뜨린 이상 곧 은퇴할 몸이다. 부작용은 교황 권위로 대충 뭉개밟고 냉큼 차기 교황 즉위식을 거행하면 진절머리나는 업무의 산산산산과는 바이바이사요나라아우프비더젠자이찌엔이다. 앗싸 가오리다. 나머지야 새로 찍힌 아이올로스가 알아서 어떻게든 할 일이다. 오로봉에 틀어박혀 도코와 부어라 마셔라 일배일배부일배로 술이나 푸면서 꽃다운 열 여덟에 울며 겨자먹기로 반납한 청춘을 구가하리라! (후임이 더 앞날이 창창 구만리인 열 넷이라는 사실은 무시한다)
물론 책임감과 사명감이 충분히 투철한 유능 교황으로서, 스물 두 번의 붕괴와 여덟 번의 폭설과 다섯 번의 백귀야행과 세 번의 아테나 엑스클러메이션(인지 뭔지)를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뭘. 아하하하하하하" 로 쌈빡히도 까먹는 오지랖이 블랙홀보다 광대한 건지 그냥 새대가린지 심하게 헷갈리는 차기 대권주자의 기질이 참으로 찝찝한 노릇이나, 할 때는 또 야무지게 하는 놈이다. 굳이 지분지분 고민할 이유는 없으리라. ……아마도.
"교황 예하."
긴긴 상념은 훼방꾼의 등장으로 거기서 끊겼다.
시온의 정수리에 분노 마크가 뽁뽁뽁 튀어올랐다.
양위 선언 이후로 언젠가는 기어코 오밤중에 사생활을 침범할 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멀쩡한 교황 처소를 냅두고 굳이 스타힐까지 졸졸 따라오는 덴 할 말도 없다. 가끔 일부러 사람 엿먹이고 있지 싶은 때아닌 피해망상격 음모론까지 대두할 정도로 항상 미묘하게 타이밍을 못 맞추는 녀석을 사정없는 이단옆차기로 절벽에서 데굴데굴 굴리고픈 충동을 꾸우우욱 억누르고 시온은 우아하게, 어디까지나 우아하고 고매하게 몸을 돌려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는 목소리의 주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힘들다.
"사가가 아니냐. ……교황 외에는 오르지 못할 이 스타힐에 네가 어찌하여."
어조만 신경 써 관리하면 되는 마스크는 이럴 때 편리하다.
사가는 실로 쿨하게 훗 웃으면서 답했다.
"──교황께서도 노구를 이끌고 등정하시거늘 신과 같다 하는 제가 오르지 못할 사유가 어디 있겠는지요."
시온의 관자놀이에 어여쁜 사거리가 뿌득 돋았다. 200년 만의 황금이라 오냐오냐했더니 (= 열 대 팰 거 여덟 대만 팼더니) 이젠 아주 위대하고 위대하고 또 위대하시어 머리 박고 경배해도 성이 안 찰 선진을 대놓고 방법하는 새시까만 후배 놈에게 조직의 쓴맛을 보여주자 법의자락 밑의 혈기방장한 근육이 들고 부르짖음을, 교황의 거룩한 마음가짐으로 혀까지 비집고 나온 갖은 육두문자를 필터로 걸러 근엄히 말했다.
"과연 신과 같은 남자로 칭송받는 사나이답구나. 그래, 내게 무슨 용무라도 있느냐 사가."
머릿속에선 사가를 엎어놓고 멍석 말아 다굴하고 있다.
"교황 예하……"
싸가지를 밥말아먹은 태도를 순식간에 접고 사가는 한층 심각하게 고개를 숙였다. 호사가들이 그리스 미학의 진수라 입담을 아끼지 않는 단정한 얼굴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한참을 우물거리며 단어를 고르고 있던 사가는, 인내심 임계점의 호소를 받아들여 진짜로 멍석 말아 속씨원하게 쥐패고 스타라이트 익스팅션으로 장외홈런을 날리는 선택지를 무려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한 시온의 시커먼 코스모에 격심한 프레셔를 받았는지 그냥 배째라 심정이 된 건지, 마침내 입술을 독하게 깨물며 피를 토하듯 말을 쏟아부었다.
"──어째서 제가 아닌 아이올로스를 차기 교황으로 선택하셨습니까?"
"……네가 지금 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냐?"
열과 성을 다해서 보좌하겠다고 맹세할 땐 언제고 나흘도 더 지나서 이 자식, 을 감쪽같이 삼키는 데엔 상당한 노력과 뜸들임이 필요했다.
"아닙니다! 다만……" 보는 사람마저 덩달아 가슴이 꽉 막힐 비통한 얼굴로, 정갈한 선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사가는 외쳤다. "……다만, 외람된 말씀이오나, 저는……인 · 지 · 용 어느 면에서도 아이올로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아니 오히려 앞선다 여기고 있으며, 주위의 평가 또한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째서……말씀해 주십시오 예하!"
한 마디 한 마디에 배어든 처절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비명과도 같은 진언에, 시온은 순간 망설였다.
교과서와 사전에 모범우등생의 예시로 실려도 만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할 사가와 죽으나 사나 제 페이스요 코퀴토스에 거꾸로 처박혀도 대략 저 꼴리는 대로 룰랄라 할 듯한 아이올로스. 백 중의 아흔 아홉은 교황 지명전에서 필시 사가의 손을 들어주리라. 그만큼 객관적인 스펙은 누가 보아도 사가가 위였다. 태평하기 짝이 없는 아이올로스는 그 사실을 아아주 당연한 듯이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널널함을 10분의 1만, 아니 100분의 1만 나눠받았어도 인생이 좀 덜 피곤했을 사가가 아이올로스에게 기묘한 열등감을 꽁꽁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은 필사적으로 아닌 척 안 그런 척 열심히 가장하고 있지만, 한 수 아래가 틀림없어 보이는 동기에게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해 괴롭고,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어 괴롭고, 질투같은 천박한 감정에 사로잡힌 자신이 한심해서 괴롭고, 남은 미칠 지경인데 뱃속 편한 상대는 것도 지극히 순수한 의도에서 틈만 나면 사가 대단하다를 연발하는 통에 더욱 괴롭다는 걸, 시온은 오랜 관록과 혜안으로 단박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러고 하세월 한 겹 한 겹 쌓여온 열등감과 상처입은 자존심이 차기 교황 지명에서 결국 폭발한 것이다. 이래저래 난해하기가 페르마의 정리보다 더한 10대의 파릇파릇한 청춘이나 적어도 노골적으로 뒷마다를 까고 사람을 깎아내릴 만큼 인간성이 그르지는 않았을 터인데.
여기서 너는 1인자가 되기에는 결정적인 요소가 부족하다거나, 지도자는 만능이 될 필요는 애초에 없으며 사람 보는 눈과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지 않는 결단력만 있으면 장땡이라거나, 넌 척 보기에 유능하고 꼼꼼한 보좌관이 딱인 관상이라거나, 저놈의 골칫덩이 애새끼들은 패가며 키워야 하는데 매를 아끼다 자식 망치는 부모의 전형적인 사례인 네가 할 수나 있겠느냐거나, 넌 다 좋은데 꼭 막판에 흐물흐물해져서 탈이라거나, 교황 자리에서 떨려난 이유를 대라면 논브레스로 한숨에 열 가지는 줄줄이 두름으로 딸려나온다. 그러나, 아무리 등빨 좋고 세상을 움직이는 누군가의 농간으로 성우마저 같은 S모 학교의 테니스부 부장 흡사하게 실 나이보다 두 배는 삭아보일지언정 상대는 아직 열 다섯 살의 창창하기 그지 없는 소년,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힘들게 허덕이고 있는 아이에게 '넌 진짜 걔보다 딸리거든'의 확인 사살을 때리기란 좀 안됐기도 하고, 시온이 사관들이 입을 모아 공인하는 파시스트 독재자라도 영 내키는 노릇은 아니었다. 미우나 고우나 키운 정이라고, 할아버지는 결국 손주에게 물렁한 법이다.
0.4초 내에 휘리릭 머리를 굴려 광속으로 결론을 내린 시온은 그나마 곱게 물려보낼 핑계를 재빨리 떠올렸다.
"좋다. 이유를 말해주마. ……분명 너는 교황으로서의 자질도 자격도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너의 내부에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어두운 기운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느니라."
"……!!!"
"나 스스로 너에게 아테나와 성역을 일임하기에는 위험하다 판단하였다. ……알았으면 그만 물러가거라……─!?"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 고 마음속으로 덧붙인 시온은 한순간 숨을 헉 삼켰다.
등뒤에서 폭발적으로 일렁이는 코스모는, 사가의 것이되 사가가 아니었다. ……어둡고, 사악하고, 불쾌한 이 코스모는.
"크크큭……역시 교황 예하는 만만치 않으신데 그래."
악의로 가득한 목소리도, 경박한 어조도 10년간 질리도록 보아온 사가가 아니었다.
황급히 시선을 되돌린 시온의 눈에, 원래의 청금빛을 잃고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머리카락과, 핏빛으로 충혈된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비쳤다.
"설마 내 존재를 눈치챘을 줄은 전혀 몰랐다."
머리카락이, 마지막 한 올까지 암흑에 잠겼다.
"사, 사가……네 녀석은……!"
"죽어라!! 늙은이!!!!!!"
원래의 면영은 흔적도 없는 흑(黑) 사가의 손끝이 번개같이 날아 시온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었어야 했는데.
"……허걱;"
흑 사가의 탐스러운 뒤통수에 개그풍의 커다란 땀이 매달렸다.
망토에 먼지 한 톨 안 묻히고 성전에서 살아남은(에피G 참조) 전설의 맹자(猛者) 아리에스의 시온은 먼 옛날 어찌어찌 도코에게 전수받은 필살 백열 칼날잡기로 1cm 직전에 정지시킨 흑 사가의 손끝을 움켜쥐고 우드드드득 쥐어비틀며 이를 뿌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갈았다.
"오냐……내 모처럼 키운 정을 봐서 좋게 좋게 달래려 하였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구나……?"
"에 또……교황 예하, 문명인은 역시 대화로 해결,"
시온의 이마에 특대급 힘줄이 뿔룩 솟는 것을 신호로 서릿발같이 솟구치던 열받음의 코스모가 폭발했다.
"까불지 마라! 애송이들아──!!!!"
아리에스의 시온 최대 필살기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경사났네 경사났어.
자,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덤 하나.
"헤에."
중책을 떠맡거나 말거나 여전히 훌라훌라 마이페이스인 사수자리의 세인트는 계단을 내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문득 짤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성이다. ……소원은 뭘로 할까나~아, 그렇지. 사가의 북 치고 장구 치는 이중인격이 얼른 낫기를."
유성의 궤적이 어째 비정상적으로 지평선에 가깝다거나, 유성에서 어쩐지 많이 익숙한 코스모가 느껴진다거나, 왠지 어디선가 "두고 보자 망령난 늙은이이이이이이……" 비스무리한 환청이 희미하게 울려퍼지는 것 같기도 하더라거나, 그러고 보니 이중인격인 줄 뻔히 알면서 지금껏 입 꾹 다물고 있었던 거냐 인간아라던가, 애시당초 유성에게 소원을 빌려면 연달아 세 번 읊어야 쓰지 않겠냐는 상식은 나 몰라라 알 게 뭐냐.
훗날 사관원(史官院)의 만장일치로 아리에스의 시온을 누르고 「역대 최악(여러 의미로)의 교황」에 등극한 사지타리우스의 아이올로스 현재 14세, 될성그른 나무는 떡잎부터 엇자란다는 예시로 아주 훌륭했다.
글쎄, 정말로 이어질진 S도 모르고 며느리(누구야)도 모릅니다... 우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