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오늘도 계속되는 테러의 향연. 나 요즘 왜 이렇게 끈질기지? ;;;;
SIDE A-33. 마중나와 보니(迎えに来たら)
여전히 낯뜨거운 놈들일세그려.... (먼 눈)
S의 뮤즈 지모 님께서 찾아내신 말미잘 이미지에 영감이 번득여(...) 갈겨쓴 물건.
뭐 저 다음은 어떻게 될진 안 봐도 삼천리라. 결국 욕실 플레이(....)에 너무 열중하다 모터쇼에 가지 못해 침대에 처박혀 끙끙 앓는 H모 군에게 온갖 원망은 다 들었다던가 어쨌다던가 하는 후일담이 있다던가 없다던가. (....)
빨간 리본의 커다란 곰 인형은 미즈모리의 생일북 HEAVEN-MADE MAGIC!! 의 앙케트에서 하야토에게 주고 싶은 선물 3위로 꼽힌 것이다. (물론 1위는 카가 씨;였다...) 객관식도 아니고 주관식이었는데 빨간 리본을 달고 무지무지 크고 곰인형, 이 세 가지 요소가 답변들 사이에 아주 기가 막히게 일치하더란다. 역시 동인녀의 욕망은 거기서 그거라는 건지;; 그리고 돌고래 바디 필로우는 후지오카 유우가 그린 일러스트에서의 네타.
약혼자놈에게 부대껴 성격이 몹시 나빠지고 있는 아스카가 상당히 땡기므로 곧 여성진 강화주간으로 들어갈지도 모름.
왕짜증.
스고 아스카@올해 스물 셋의 꽃다운 나이에 남자 하나 잘못 봐 인생 대박 피곤한 처자의 현 심경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으리라.
다음 주에 꼭 네 살이 되는 학교 선배의 귀엽고 예쁜 딸아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걸 도와달라고 (덤으로 짐꾼으로도 좀 부려먹으려) 데려왔더니 하라는 일은 한 개도 안 하고 특정 코너 근처에 껌딱지 붙듯 쩔꺽 들러붙어 어드멘가의 물건에만 참으로 지대한 관심을 쏟아붓는 잘나신 약혼자의 뒤통수에 그녀는 예수와 부처와 보살의 자비심을 모조리 긁어모아 오늘 이미 다섯 번째가 되는 질문을 꽂아넣었다.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을 면하나니.
".....하야토, 정 마음에 들면 사지 그러니.....?"
"응? 아냐, 됐어. 이 나이에 무슨. 딱히 탐나지도 않고."
토씨 하나 구두점 하나 안 틀린 대답도 이것으로 다섯 번째. 이예이. 땡기지 않는 인간이 꼬박 두 시간을 그놈의 반경 3미터에 짱박고 요리 갔다 조리 갔다 어슬렁대며 2분 간격으로 만졌다 쓰다듬었다 들었다 안았다 내려놨다 당겨봤다를 줄창 반복하고 계시나 그래 요즘은 그런 걸 '딱히 탐나지도 않는다'고 하나 보지 국어란 참 어렵기도 해라 오호호호호호. 날카로운 스틸레토 힐로 저놈의 등짝을 스핀 걸어 짓밟고 싶은 욕구를 하느님이 보우하사 보더라인에서 겨우겨우 이겨내고 있는 아스카의 애잔한 마음이야 ZERO의 영역은 엇다 팔아먹고 나 몰라라의 하야토는 질리지도 않고 문제의 물건을 진열장에서 도로 답싹 들어올려 딱 세뱃돈을 뭉치로 받은 어린애 같은 우하우하한 얼굴로 포옥 껴안아보고 있겠다. 빠직. 인내심의 철사줄이 끊겼다. 주먹 부르쥐고 냅다 돌진하여 단박에 품에서 그놈을 휘떡 낚아챈다.
사태를 파악 못해 그저 어안이벙벙한 하야토를 찌릿 째려보았다.
"아, 아스카?"
"됐네 이 아저씨야! 차라리 내가 사줄게! 이의 없지, 얘기 끝!"
"엣!? 아니, 저기, 아스카!?"
들어줄 귀는 없었다.
카가는 좀 많이 난감했다.
난감한 심정으로 새근새근 기분좋게 잘도 자는 하야토를 내려다보았다.
어렵사리 쥐어짜낸 오프에 CF 테마 파크에서 개최되는 모터쇼에 같이 가기로 하고 약속대로 데리러 왔더니 주인장은 킹사이즈 침대를 독차지하고 아침 나절의 달콤한 꿈길에서 허부적허부적 헤매고 있는 것이다. 담요를 휘감고 푹신한 시트에 푹 파묻혀서, 팔에는 커다란 인형까지 껴안고.
무려 인형을 안고 잔다는 사실이 충격일 시기는 지났다. 첫째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둘째로 어차피 인간이란 어떠한 쇼킹도 최종적 비주얼만 대략 그럴 듯하면 대충 용서해 버리는 슬픈 습성의 종족이므로. 그리고 하야토는 어울린다. 희한하게. 이상하게. 불가사의하게. 자타가 공인하는 여자 얼굴에 레이스 백 겹의 압박을 맨정신으로 소화하는 란돌 왕자님보다 더. 웬만큼 비위가 있으면 태연자약히 귀엽다는 표현을 감히 사용해도 별 문제가 안 될 정도로는.
인형 껴안고 뒹굴뒹굴하는 폼이 대박 어울리고 마는 스물 한 살짜리 청년이란 생물도 참으로 기이하고 깨울 일도 태산같지만, 당장 카가를 골아프게 하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하야토가 놓칠세라 꼬오옥 껴안고 있는 물건이 낯이 설다. 구데리안이 줬다던 거의 저만한 크기의 돌고래 모양 바디 필로우도 아니거니와 팬이 선물했다는 빨간 리본이 앙증맞은 포동포동하고 거대한 갈색 곰도 아니고 클레어가 사다준 실물보다 쪼끔 작은 사자 인형도 아니며 출처 미상의 지 몸통 절반에 맞먹는 아스라다 봉제 인형도 아니고, (왜 하나같이 대형이며 어째서 카가는 인형 목록을 좔좔 꿰고 있는 건지 깊게 생각하면 못 쓴다) 대략 축구공만한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녹색의 물체. 대략 최근 2년 봉제 인형의 4강이 굳건히도 지켜온 철벽의 아성을 단숨에 깨고 급부상한 저 다크호스는 대관절 무엇인가.
아무튼 일단은 애부터 깨우고 봐야 할 일이다.
"어이 하야토─하야토 군~나 왔다, 이제 좀 깨지?"
"우... ...카가 씨....?"
"얼렁 빠릿하게 일어나라. 열을 셀 때까지 일어나길 거부하면서 개길 경우 그에 합당한 처벌을 감수하겠단 의미로 간주한다. 하나, 둘, 셋,"
"...예에 예 예, 지금 깼어요... 씻고 올게요...."
졸린 눈을 부비작부비작, 혀짧은 소리로 종알대고는 안고 있던 인형을 얌전히 카가의 품에 떠넘기고 담요자락을 꼬옥 움켜쥐고 질질 끌며 비척비척 욕실로 향하는 하야토에게 니가 라이너스냐, 라며 입속으로만 딴지를 건 후 문제의 인형을 차근히 살펴보았다.
연보랏빛의 토실토실한 몸. 헤설피 웃는 둥글둥글한 눈과 커다란 입. 너불너불한 초록빛 촉수.
".......웬 말미잘?"
요리 보고 저리 보고 45도로 틀어봐도 말미잘이었다.
제법 귀엽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더구나 이 중간 크기의 산호충류는 주인님을 뺏기고 좀 외로워 보이는 돌고래와 사자와 곰만 훑어도 알 수 있듯 대개 제가 안기도 버거운 큼지막한 포유류를 선호하는 하야토의 취향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무려 아스라다를 왕자(王者)의 자리에서 밀어낼 만한 이놈만의 메리트가 대체 뭐일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초록색 촉수가 왠지 신경쓰인단 말야... 통통한 촉수를 하릴없이 잡아당기면서, 카가는 뭔가 잡힐 듯 잡힐 듯 뺀질뺀질 도망다니는 기시감을 열심히 추적하며 하야토를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뭔가가 머릿속에서 벼락쳤다.
양손에 때아닌 말미잘 인형을 들고 목덜미까지 멋지구리하게 시뻘개져 넋이 오락가락하는 얼굴로 어버버버하며 허공을 바라보는 블리드 카가란 무수한 팬들과 그를 좀 안다는 지인들과 특히 하야토, 하여간 세상 누구에게도 도저히 뵈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 어느 강심장인들 비명이 안 나올까. 우리는 그를 이해해야 한다.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착각이라니까. 난 좀만 비행기 태워주면 얼싸 좋다 하는 인간이잖아?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이 되는데 이게....!
ZERO의 영역 저편에서 오래 전에 가 버린 친우가 정답이라 박힌 팻말을 흔들고 있는 광경을 얼핏 본 것도 같았다.
카가는 말미잘에 홧홧해서 당장 폭발할 듯한 얼굴을 처박고 포효했다.
"크아악~! 이 창피한 인간아!! 너란 놈은... 너란 놈은 정말.....!!"
그 나이가 되도록 섹스에 면역이 딸려 침대에 들어갈 때마다 창피해서 몸둘 바를 몰라하고 일 한 번 치를라치면 대체 어떻게 눈썹 하나 까닥 안 할 수가 있어요, 넉살도 좋으셔, 카가 씨 신경은 뭘로 된 거예요, 자꾸 흘금흘금 보지 마세요! ;;;; 어쩌구 저쩌구 밑도 끝도 없이 툴툴툴툴툴툴툴툴툴대는 주제에 하야토는 카가라면 낯뜨겁고 안면에 불나고 쪽팔려서 백만금을 준대도 절대 못할 짓거리는 태연히도 해치워 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디자인은 같고 색이 다른 파자마를 두 세트 사서 하나를 생글거리며 카가에게 안겨준다던가 해마다 발렌타인 데이와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꼬박꼬박 준비한다던가 별 생각없이 떼어준 피어스를 받고 미친듯이 좋아한다던가 폭탄맞을 초끔찍 대사를 낯색 하나 안 붉히고 좔좔좔좔 읊어댄다던가 이.... 이 인형이라던가 etc etc etc. 26년 인생 철저히 삐딱 노선을 타 온 카가로서는 당최 뭘 먹고 살면 저리 자랄지 가늠도 안 되는 감추는 거 하나 없고 서투른 줄다리기를 시작부터 거부하는 솔직하고 스트레이트한 애정 표현 앞에 차라리 한 마리 타조 되어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플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으랴.
그래서, 싫냐고?
─좋아서 입 찢어진 게 안 보이냐, 젠장.
카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미잘을 고이 나이트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후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8시 3분. 거의 확정은 되었으되 다만 아직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이론을 정설로 못박을 시간은 충분하다. 설령 입장 개시 시각에 30분쯤 늦는다 한들 모터쇼가 어디로 내뺄 것도 아니고. 아무렴.
무엇보다, 걸어온 승부에 응하지 않는 취미는 없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욕실에 향했다.
리드미컬하게 찰랑이는 선명한 녹색 머리카락.
그리고 AOI ZIP의 레이싱복은 연보라색이다.
스고 아스카@올해 스물 셋의 꽃다운 나이에 남자 하나 잘못 봐 인생 대박 피곤한 처자의 현 심경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으리라.
다음 주에 꼭 네 살이 되는 학교 선배의 귀엽고 예쁜 딸아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걸 도와달라고 (덤으로 짐꾼으로도 좀 부려먹으려) 데려왔더니 하라는 일은 한 개도 안 하고 특정 코너 근처에 껌딱지 붙듯 쩔꺽 들러붙어 어드멘가의 물건에만 참으로 지대한 관심을 쏟아붓는 잘나신 약혼자의 뒤통수에 그녀는 예수와 부처와 보살의 자비심을 모조리 긁어모아 오늘 이미 다섯 번째가 되는 질문을 꽂아넣었다.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을 면하나니.
".....하야토, 정 마음에 들면 사지 그러니.....?"
"응? 아냐, 됐어. 이 나이에 무슨. 딱히 탐나지도 않고."
토씨 하나 구두점 하나 안 틀린 대답도 이것으로 다섯 번째. 이예이. 땡기지 않는 인간이 꼬박 두 시간을 그놈의 반경 3미터에 짱박고 요리 갔다 조리 갔다 어슬렁대며 2분 간격으로 만졌다 쓰다듬었다 들었다 안았다 내려놨다 당겨봤다를 줄창 반복하고 계시나 그래 요즘은 그런 걸 '딱히 탐나지도 않는다'고 하나 보지 국어란 참 어렵기도 해라 오호호호호호. 날카로운 스틸레토 힐로 저놈의 등짝을 스핀 걸어 짓밟고 싶은 욕구를 하느님이 보우하사 보더라인에서 겨우겨우 이겨내고 있는 아스카의 애잔한 마음이야 ZERO의 영역은 엇다 팔아먹고 나 몰라라의 하야토는 질리지도 않고 문제의 물건을 진열장에서 도로 답싹 들어올려 딱 세뱃돈을 뭉치로 받은 어린애 같은 우하우하한 얼굴로 포옥 껴안아보고 있겠다. 빠직. 인내심의 철사줄이 끊겼다. 주먹 부르쥐고 냅다 돌진하여 단박에 품에서 그놈을 휘떡 낚아챈다.
사태를 파악 못해 그저 어안이벙벙한 하야토를 찌릿 째려보았다.
"아, 아스카?"
"됐네 이 아저씨야! 차라리 내가 사줄게! 이의 없지, 얘기 끝!"
"엣!? 아니, 저기, 아스카!?"
들어줄 귀는 없었다.
카가는 좀 많이 난감했다.
난감한 심정으로 새근새근 기분좋게 잘도 자는 하야토를 내려다보았다.
어렵사리 쥐어짜낸 오프에 CF 테마 파크에서 개최되는 모터쇼에 같이 가기로 하고 약속대로 데리러 왔더니 주인장은 킹사이즈 침대를 독차지하고 아침 나절의 달콤한 꿈길에서 허부적허부적 헤매고 있는 것이다. 담요를 휘감고 푹신한 시트에 푹 파묻혀서, 팔에는 커다란 인형까지 껴안고.
무려 인형을 안고 잔다는 사실이 충격일 시기는 지났다. 첫째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둘째로 어차피 인간이란 어떠한 쇼킹도 최종적 비주얼만 대략 그럴 듯하면 대충 용서해 버리는 슬픈 습성의 종족이므로. 그리고 하야토는 어울린다. 희한하게. 이상하게. 불가사의하게. 자타가 공인하는 여자 얼굴에 레이스 백 겹의 압박을 맨정신으로 소화하는 란돌 왕자님보다 더. 웬만큼 비위가 있으면 태연자약히 귀엽다는 표현을 감히 사용해도 별 문제가 안 될 정도로는.
인형 껴안고 뒹굴뒹굴하는 폼이 대박 어울리고 마는 스물 한 살짜리 청년이란 생물도 참으로 기이하고 깨울 일도 태산같지만, 당장 카가를 골아프게 하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하야토가 놓칠세라 꼬오옥 껴안고 있는 물건이 낯이 설다. 구데리안이 줬다던 거의 저만한 크기의 돌고래 모양 바디 필로우도 아니거니와 팬이 선물했다는 빨간 리본이 앙증맞은 포동포동하고 거대한 갈색 곰도 아니고 클레어가 사다준 실물보다 쪼끔 작은 사자 인형도 아니며 출처 미상의 지 몸통 절반에 맞먹는 아스라다 봉제 인형도 아니고, (왜 하나같이 대형이며 어째서 카가는 인형 목록을 좔좔 꿰고 있는 건지 깊게 생각하면 못 쓴다) 대략 축구공만한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녹색의 물체. 대략 최근 2년 봉제 인형의 4강이 굳건히도 지켜온 철벽의 아성을 단숨에 깨고 급부상한 저 다크호스는 대관절 무엇인가.
아무튼 일단은 애부터 깨우고 봐야 할 일이다.
"어이 하야토─하야토 군~나 왔다, 이제 좀 깨지?"
"우... ...카가 씨....?"
"얼렁 빠릿하게 일어나라. 열을 셀 때까지 일어나길 거부하면서 개길 경우 그에 합당한 처벌을 감수하겠단 의미로 간주한다. 하나, 둘, 셋,"
"...예에 예 예, 지금 깼어요... 씻고 올게요...."
졸린 눈을 부비작부비작, 혀짧은 소리로 종알대고는 안고 있던 인형을 얌전히 카가의 품에 떠넘기고 담요자락을 꼬옥 움켜쥐고 질질 끌며 비척비척 욕실로 향하는 하야토에게 니가 라이너스냐, 라며 입속으로만 딴지를 건 후 문제의 인형을 차근히 살펴보았다.
연보랏빛의 토실토실한 몸. 헤설피 웃는 둥글둥글한 눈과 커다란 입. 너불너불한 초록빛 촉수.
".......웬 말미잘?"
요리 보고 저리 보고 45도로 틀어봐도 말미잘이었다.
제법 귀엽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더구나 이 중간 크기의 산호충류는 주인님을 뺏기고 좀 외로워 보이는 돌고래와 사자와 곰만 훑어도 알 수 있듯 대개 제가 안기도 버거운 큼지막한 포유류를 선호하는 하야토의 취향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무려 아스라다를 왕자(王者)의 자리에서 밀어낼 만한 이놈만의 메리트가 대체 뭐일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초록색 촉수가 왠지 신경쓰인단 말야... 통통한 촉수를 하릴없이 잡아당기면서, 카가는 뭔가 잡힐 듯 잡힐 듯 뺀질뺀질 도망다니는 기시감을 열심히 추적하며 하야토를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뭔가가 머릿속에서 벼락쳤다.
양손에 때아닌 말미잘 인형을 들고 목덜미까지 멋지구리하게 시뻘개져 넋이 오락가락하는 얼굴로 어버버버하며 허공을 바라보는 블리드 카가란 무수한 팬들과 그를 좀 안다는 지인들과 특히 하야토, 하여간 세상 누구에게도 도저히 뵈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 어느 강심장인들 비명이 안 나올까. 우리는 그를 이해해야 한다.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착각이라니까. 난 좀만 비행기 태워주면 얼싸 좋다 하는 인간이잖아?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이 되는데 이게....!
ZERO의 영역 저편에서 오래 전에 가 버린 친우가 정답이라 박힌 팻말을 흔들고 있는 광경을 얼핏 본 것도 같았다.
카가는 말미잘에 홧홧해서 당장 폭발할 듯한 얼굴을 처박고 포효했다.
"크아악~! 이 창피한 인간아!! 너란 놈은... 너란 놈은 정말.....!!"
그 나이가 되도록 섹스에 면역이 딸려 침대에 들어갈 때마다 창피해서 몸둘 바를 몰라하고 일 한 번 치를라치면 대체 어떻게 눈썹 하나 까닥 안 할 수가 있어요, 넉살도 좋으셔, 카가 씨 신경은 뭘로 된 거예요, 자꾸 흘금흘금 보지 마세요! ;;;; 어쩌구 저쩌구 밑도 끝도 없이 툴툴툴툴툴툴툴툴툴대는 주제에 하야토는 카가라면 낯뜨겁고 안면에 불나고 쪽팔려서 백만금을 준대도 절대 못할 짓거리는 태연히도 해치워 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디자인은 같고 색이 다른 파자마를 두 세트 사서 하나를 생글거리며 카가에게 안겨준다던가 해마다 발렌타인 데이와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꼬박꼬박 준비한다던가 별 생각없이 떼어준 피어스를 받고 미친듯이 좋아한다던가 폭탄맞을 초끔찍 대사를 낯색 하나 안 붉히고 좔좔좔좔 읊어댄다던가 이.... 이 인형이라던가 etc etc etc. 26년 인생 철저히 삐딱 노선을 타 온 카가로서는 당최 뭘 먹고 살면 저리 자랄지 가늠도 안 되는 감추는 거 하나 없고 서투른 줄다리기를 시작부터 거부하는 솔직하고 스트레이트한 애정 표현 앞에 차라리 한 마리 타조 되어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플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으랴.
그래서, 싫냐고?
─좋아서 입 찢어진 게 안 보이냐, 젠장.
카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미잘을 고이 나이트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후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8시 3분. 거의 확정은 되었으되 다만 아직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이론을 정설로 못박을 시간은 충분하다. 설령 입장 개시 시각에 30분쯤 늦는다 한들 모터쇼가 어디로 내뺄 것도 아니고. 아무렴.
무엇보다, 걸어온 승부에 응하지 않는 취미는 없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욕실에 향했다.
리드미컬하게 찰랑이는 선명한 녹색 머리카락.
그리고 AOI ZIP의 레이싱복은 연보라색이다.
여전히 낯뜨거운 놈들일세그려.... (먼 눈)
S의 뮤즈 지모 님께서 찾아내신 말미잘 이미지에 영감이 번득여(...) 갈겨쓴 물건.
뭐 저 다음은 어떻게 될진 안 봐도 삼천리라. 결국 욕실 플레이(....)에 너무 열중하다 모터쇼에 가지 못해 침대에 처박혀 끙끙 앓는 H모 군에게 온갖 원망은 다 들었다던가 어쨌다던가 하는 후일담이 있다던가 없다던가. (....)
빨간 리본의 커다란 곰 인형은 미즈모리의 생일북 HEAVEN-MADE MAGIC!! 의 앙케트에서 하야토에게 주고 싶은 선물 3위로 꼽힌 것이다. (물론 1위는 카가 씨;였다...) 객관식도 아니고 주관식이었는데 빨간 리본을 달고 무지무지 크고 곰인형, 이 세 가지 요소가 답변들 사이에 아주 기가 막히게 일치하더란다. 역시 동인녀의 욕망은 거기서 그거라는 건지;; 그리고 돌고래 바디 필로우는 후지오카 유우가 그린 일러스트에서의 네타.
약혼자놈에게 부대껴 성격이 몹시 나빠지고 있는 아스카가 상당히 땡기므로 곧 여성진 강화주간으로 들어갈지도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