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항례의 50*2제 SS가 나갑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도 나갑니다 아아 나갑니다.
SIDE B-28. 밟다(踏む)
역시 교코 씨는 여왕님이어야...! (감동의 부르르르) 감히 입술을 빼앗은 무례한 자에게 싸대기 한 대도 날리지 않는 여왕님은 여왕님이 아니므로 나는 SAGA 6화의 사건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으르렁크르렁꽤액꽤액.
하여간 카가 씨와 교코 씨의 관계는 이 정도가 베스트라고 생각함. 어차피 평소부터 카가 씨는 아오이 교코 인생의 애물단지 제 3호로서 여왕님 위가 쿡쿡 쑤시도록 말썽만 피우고 있으므로 가끔 가다 좀 밟혀줘도 손해될 건 없으리라. 아니 오히려 좀 밟혀줘야지 수지타산이 맞지?
어쨌거나 늘 운대가리도 없는 신죠에게 명복을. 언젠가는 쥐구멍에도 햇볕 들 날이... 올까나;; (모든 게 불행 신죠를 너무 좋아하는 내 탓이니 부디 용서해라 총각;)
"싫습니다요! 안 해요! 거부! VITO! 딴 사람이나 찾아보시죠!"
"카가 군!"
"쳇, 눈에 힘주고 바락거리셔도 소용없네요! 안 한다면 안 해! 이 얘긴 끝! Finish! 완결!"
"당신 정말 이러기예욧!?"
대략 10분 전부터 남녀의 쌀벌한 입씨름에 없는 지붕도 들썩들썩하는 이곳은 세계 굴지의 기업 AOI 본사 빌딩 52층의 사장실. AOI의 여왕님 즉 아오이 교코는 입술을 앙다물고 탁자 너머에서 본때 있게 팔짱까지 척 끼고 개기고 있는 AOI 휘하 사이버 포뮬러 그랑프리 팀의 톱 드라이버를 노려보았다. 참으로 진부하고 유치하고 클리셰 중의 클리셰다운 표현이나 그녀의 눈이 화염방사기였더라면 이미 52층은 하 옛날에 싸그리 전멸했을 일이며 설령 무슨 신종 무기가 아니어도 사람 잡는 눈빛이란 바로 이런 종류임을 온 몸으로 과시하는 그 살기의 범상찮은 프레셔란 웬만한 범인은 개거품 물고 기절할 만한 레벨의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프레셔의 핀 포인트 타깃─블리드 카가는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태도로 사장실에 충만한 살인적인 압박을 뱃심좋게 생까고 꼰대를 부리고 있다.
주력 분야는 자동차이되 문어발식 대기업의 미덕으로 차근차근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AOI의 비즈니스 파트너에는 물론 각종 코스메틱 회사도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마땅히 칙사 대접을 해야 할 주요 거래처의 모 유명 향수 회사가 최근 20대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CF 촬영에 착수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카가를 섭외하고 싶다는 의사를 갑작스리 타진해왔다. 말이 좋아 타진이지 고이 포장해서 얼른 잘 갖다 바쳐야 할 판이다. 그놈의 촬영 일정이 하필이면 몇 달 전부터 이만은 지켜달라고 핏대를 세우던 오프 기간을 홀랑 잡아먹는 것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죄책감을 느끼며, 그러나 이 바닥은 까라면 까야 할 냉혹한 세계이므로 교코는 이 무슨 성격에 안 맞는 삽질이냐는 자가 태클을 깔끔히 파묻고 카가를 불러다 알아듣게, 차근차근, 무한한 참을성을 갖고 조근조근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출연료도 가히 파격적이겠다, 업계에선 이미 전설로 굳어진 수전노 근성에 돈의 망자(亡者)로 악명높은 이 남자를 어떻게든 달랠 수 있기만을 천지신명께 열심히 바랬더니 지가 안 내키면 경상감사도 싫다 도리질하는 그놈의 청개구리 기질만 플러그가 서 버렸는지 향수의 ㅎ도 채 나오기 전부터 안한다 못한다 미쳤냐 약 먹었냐의 발악 온퍼레이드다. 내가 기껏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좋게 좋게 말로 하려 했더니! 생각 같아선 코웃음까지 픽픽 까며 보란듯이 외면하는 저놈의 매끈한 면상에 7cm짜리 핀힐을 푸악 꽂아버렸으면 얼마나 좋으리. 십년 묵은 체증도 훌러덩 내려가겠다. 그러나 아아 안되지 안되고 말고, 요즘 세상에 미형의 상품가치가 얼만데! 몸에 흐르는 철두철미하게 상인혼에 젖은 피를 저주하며 교코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인내심을 닥닥 긁어모았다.
"카가 군, 내가 꼭 계약서를 짚어가며 하나하나 따져줘야 하나요?"
"진작에 약조된 금쪽같은 오프까지 팔겠다고 계약한 적은 없습니다?"
"잠시도 가만 못 있고 일 찾아 제발로 달려가는 중증의 워커홀릭이 오늘따라 왜 이리 튕기실까!"
"그거야 할 짓이 없을 때 얘기죠? 석 달 전부터 골머리 앓아가며 짜놓은 일정이란 말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양보 못하네요!"
"나도 그 점은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예요! 대신 최대한 편의는 봐주겠다 약속했잖아요!? 그리고, 출연료 액수는 뭐 뉘집 개 이름인 줄 알아요!?"
"돈으로 만사를 해결하려는 그 태도부터 안 고치면 영원히 시집 못 갑니다!"
"핫, 500엔짜리 하나 때문에 포크레인 밑까지 기어들어가는 당신이 할 말인가요!"
"어차피 같은 AOI겠다, 신죠라도 대신 보내시지 그래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그쪽이 원하는 건 당신이에요 당신!"
"도대체 향수 CF에 날 쓰겠다는 발상부터가 틀려먹었다구요! 교코 씬 나하고 향수란 물건이 매치가 됩니까 그래!"
"매치가 되건 안 되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건 똥개 발에 페라가모건 내가 알아요!? 그쪽에서 요구했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죠!"
"아무튼 난 안.해.요!!"
거기가 리미트브레이크였다.
교코는 자신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어두운 불꽃을 응시하며 (좀 많~이 음침하게) 후후후후 웃음을 흘렸다. 그래, 잠시 잊었다. 이성적으로 잘 달래려 하면 아주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려 드는 것들이 남자란 놈들이었지...! 그녀는 대리석도 깨먹을 무서운 박력으로 탁자 위에 서류봉투를 콰앙 메다꽂았다. 과연 이건 꽤 공포였던지 다소 움찔하는 카가에게 몹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어디까지나 어조만 부드럽게.
"카가 군, 우선 이것부터 봐 줄래요?"
틀림없어 함정이다 여덟 글자로 단숨에 까맣게 메워지는 배경을 지켜보며 교코는 끈기를 갖고 기다렸다. 한참을 주저하긴 했으되 역시 호기심에는 장사없는지 카가는 마지못해 봉투를 집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호기심은 애꿎은 고양이도 때려잡는다는 진실도 재확인했다.
"....... .............. ...........!! ..............!! .................... ..................!!!!"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 모양인데 한 마디도 나오진 않고 그저 버라이어티한 무지개 컬러만 구사하는 AOI ZIP의 드라이버의 안면을 주시하는 것은 매우 통쾌한 경험이었다. 교코는 여왕님다운 관록으로 다소곳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오호호 웃었다.
"칭찬해 주면 아주 고맙겠어요. 전부 입수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르거든요. ─그렇지만 설마하니 당신에게도 이토록 귀여운 시절이 있었을 줄은 전혀 요만큼도 예상 못했지 뭐예요! 덕분에 구경 참 잘했어요. 호, 호, 호, 호!!!"
봉투의 내용물.
─블리드 카가, 아니 카가 죠타로 군 4살부터 14살♥까지의 파릇파릇한 사진 뭉터기.
"아.. 아하하... 용.....케도 입수하셨습니다그려...? 그래서... 이걸로 뭘 어쩌시려고요...?"
안면근육이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는 청년에게 교코는 화사히 미소를 짓고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저, 이 멋진 사진들을 전부 카자미 하야토 군에게 보내주고 싶어 손이 바들바들 떨릴 뿐이에요."
"...........크윽.....!!"
"─자, 어쩌겠어요 카가 군?"
"헤에... 지금 나한테 이런 졸렬한 협박이 먹힐 줄로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해 봐야지 알죠?"
거의 상대를 태워버릴 듯한 살기로 채색된 양자의 시선이 불꽃을 튀기며 허공에서 치열하게 맞부딪혔다.
그리고.
"─우매한 소신이 미처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나이다 무엇이든 분부만 내리옵소서 여왕마마!"
"오호호호호, 과인이 그 정성에 감복하였으니 경은 고개를 들지어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아까부터 약 다섯 개의 언어로 매우 다채로운 감정 표현을 달달달달 쏟아붓고 있는 카가를 곁눈질하며 신죠는 한숨을 쉬었다. 날 버리면 네놈도 같이 불행해지리란 무시무시한 얼굴로 압박을 쌔우는 악우 - 빈말로도 친우라고는 할 수 없다 - 에게 덜미를 잡혀 두근두근하며 오늘이야말로 죠노우치에게 데이트를 신청해 보려던 결심도 눈물을 머금고 흘려보낸 후 바에 죽치고 앉아 있길 벌써 두 시간째, 악우의 악담 퍼레이드는 도무지 그칠 줄을 모른다. 그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나는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그나저나 카가가 저렇게 언어에 능통한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며 신죠는 이를 득득 갈고 있는 악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어차피 무슨 지뢰를 밟는다 한들 지금 이상으로 불행의 나락에 떨어지기야 하겠는가.
"그렇게 싫어서 몸부림을 칠 거면 딱 잘라 거절했으면 좋았잖아...."
"젠장젠장, 말이라고 해! 그 망할 놈의 사진만 아니었으면 끝까지 개겼다구! 그 마귀할멈, 뭔 수로 사진은 다 입수한 거냐아아아악!!!"
아아 하느님, 저 벼락맞을 단어가 부디 오너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만을.
"거 참, 어릴 때 사진이야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냐. 카자미한테 좀 보여주면 어때서 그래? 에 또...그... 일일이 쑥스러워할 사이도.... 아니지 않아?"
"시끄러- 연상에게는 연상의 자존심이 있는 법이야!"
".........?"
씹듯이 내뱉는 모습이 어쩐지 심각해 보여서 조금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신죠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카가는 스팀을 다짜고짜 대폭발시키며 카운터에 잔을 마구 두들겨댔다.
"크아악 열받는다!! 어이 마스터 여기 한 잔 더! 꾸물대지 말고 너도 마셔 신죠!"
........죠노우치, 나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신죠는 앞일이 불안해졌다.
어쩌다 막 도미했을 무렵의 옛날 고리짝 사진이 책갈피에서 굴러나왔을 때의 하야토의 반응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떡해, 카가 씨 진짜 너무너무 귀여워요─!!'
커다란 눈동자의 경계선을 흐물흐물 무너뜨리며 인정사정없이 반짝반짝반짝반짝 빛내는 5살 연하에게 귀엽다는 소리를 듣고 마는 충격은, 당해보지 않은 자 영원히 모른다.
"카가 군!"
"쳇, 눈에 힘주고 바락거리셔도 소용없네요! 안 한다면 안 해! 이 얘긴 끝! Finish! 완결!"
"당신 정말 이러기예욧!?"
대략 10분 전부터 남녀의 쌀벌한 입씨름에 없는 지붕도 들썩들썩하는 이곳은 세계 굴지의 기업 AOI 본사 빌딩 52층의 사장실. AOI의 여왕님 즉 아오이 교코는 입술을 앙다물고 탁자 너머에서 본때 있게 팔짱까지 척 끼고 개기고 있는 AOI 휘하 사이버 포뮬러 그랑프리 팀의 톱 드라이버를 노려보았다. 참으로 진부하고 유치하고 클리셰 중의 클리셰다운 표현이나 그녀의 눈이 화염방사기였더라면 이미 52층은 하 옛날에 싸그리 전멸했을 일이며 설령 무슨 신종 무기가 아니어도 사람 잡는 눈빛이란 바로 이런 종류임을 온 몸으로 과시하는 그 살기의 범상찮은 프레셔란 웬만한 범인은 개거품 물고 기절할 만한 레벨의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프레셔의 핀 포인트 타깃─블리드 카가는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태도로 사장실에 충만한 살인적인 압박을 뱃심좋게 생까고 꼰대를 부리고 있다.
주력 분야는 자동차이되 문어발식 대기업의 미덕으로 차근차근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AOI의 비즈니스 파트너에는 물론 각종 코스메틱 회사도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마땅히 칙사 대접을 해야 할 주요 거래처의 모 유명 향수 회사가 최근 20대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CF 촬영에 착수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카가를 섭외하고 싶다는 의사를 갑작스리 타진해왔다. 말이 좋아 타진이지 고이 포장해서 얼른 잘 갖다 바쳐야 할 판이다. 그놈의 촬영 일정이 하필이면 몇 달 전부터 이만은 지켜달라고 핏대를 세우던 오프 기간을 홀랑 잡아먹는 것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죄책감을 느끼며, 그러나 이 바닥은 까라면 까야 할 냉혹한 세계이므로 교코는 이 무슨 성격에 안 맞는 삽질이냐는 자가 태클을 깔끔히 파묻고 카가를 불러다 알아듣게, 차근차근, 무한한 참을성을 갖고 조근조근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출연료도 가히 파격적이겠다, 업계에선 이미 전설로 굳어진 수전노 근성에 돈의 망자(亡者)로 악명높은 이 남자를 어떻게든 달랠 수 있기만을 천지신명께 열심히 바랬더니 지가 안 내키면 경상감사도 싫다 도리질하는 그놈의 청개구리 기질만 플러그가 서 버렸는지 향수의 ㅎ도 채 나오기 전부터 안한다 못한다 미쳤냐 약 먹었냐의 발악 온퍼레이드다. 내가 기껏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좋게 좋게 말로 하려 했더니! 생각 같아선 코웃음까지 픽픽 까며 보란듯이 외면하는 저놈의 매끈한 면상에 7cm짜리 핀힐을 푸악 꽂아버렸으면 얼마나 좋으리. 십년 묵은 체증도 훌러덩 내려가겠다. 그러나 아아 안되지 안되고 말고, 요즘 세상에 미형의 상품가치가 얼만데! 몸에 흐르는 철두철미하게 상인혼에 젖은 피를 저주하며 교코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인내심을 닥닥 긁어모았다.
"카가 군, 내가 꼭 계약서를 짚어가며 하나하나 따져줘야 하나요?"
"진작에 약조된 금쪽같은 오프까지 팔겠다고 계약한 적은 없습니다?"
"잠시도 가만 못 있고 일 찾아 제발로 달려가는 중증의 워커홀릭이 오늘따라 왜 이리 튕기실까!"
"그거야 할 짓이 없을 때 얘기죠? 석 달 전부터 골머리 앓아가며 짜놓은 일정이란 말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양보 못하네요!"
"나도 그 점은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예요! 대신 최대한 편의는 봐주겠다 약속했잖아요!? 그리고, 출연료 액수는 뭐 뉘집 개 이름인 줄 알아요!?"
"돈으로 만사를 해결하려는 그 태도부터 안 고치면 영원히 시집 못 갑니다!"
"핫, 500엔짜리 하나 때문에 포크레인 밑까지 기어들어가는 당신이 할 말인가요!"
"어차피 같은 AOI겠다, 신죠라도 대신 보내시지 그래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그쪽이 원하는 건 당신이에요 당신!"
"도대체 향수 CF에 날 쓰겠다는 발상부터가 틀려먹었다구요! 교코 씬 나하고 향수란 물건이 매치가 됩니까 그래!"
"매치가 되건 안 되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건 똥개 발에 페라가모건 내가 알아요!? 그쪽에서 요구했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죠!"
"아무튼 난 안.해.요!!"
거기가 리미트브레이크였다.
교코는 자신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어두운 불꽃을 응시하며 (좀 많~이 음침하게) 후후후후 웃음을 흘렸다. 그래, 잠시 잊었다. 이성적으로 잘 달래려 하면 아주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려 드는 것들이 남자란 놈들이었지...! 그녀는 대리석도 깨먹을 무서운 박력으로 탁자 위에 서류봉투를 콰앙 메다꽂았다. 과연 이건 꽤 공포였던지 다소 움찔하는 카가에게 몹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어디까지나 어조만 부드럽게.
"카가 군, 우선 이것부터 봐 줄래요?"
틀림없어 함정이다 여덟 글자로 단숨에 까맣게 메워지는 배경을 지켜보며 교코는 끈기를 갖고 기다렸다. 한참을 주저하긴 했으되 역시 호기심에는 장사없는지 카가는 마지못해 봉투를 집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호기심은 애꿎은 고양이도 때려잡는다는 진실도 재확인했다.
"....... .............. ...........!! ..............!! .................... ..................!!!!"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 모양인데 한 마디도 나오진 않고 그저 버라이어티한 무지개 컬러만 구사하는 AOI ZIP의 드라이버의 안면을 주시하는 것은 매우 통쾌한 경험이었다. 교코는 여왕님다운 관록으로 다소곳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오호호 웃었다.
"칭찬해 주면 아주 고맙겠어요. 전부 입수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르거든요. ─그렇지만 설마하니 당신에게도 이토록 귀여운 시절이 있었을 줄은 전혀 요만큼도 예상 못했지 뭐예요! 덕분에 구경 참 잘했어요. 호, 호, 호, 호!!!"
봉투의 내용물.
─블리드 카가, 아니 카가 죠타로 군 4살부터 14살♥까지의 파릇파릇한 사진 뭉터기.
"아.. 아하하... 용.....케도 입수하셨습니다그려...? 그래서... 이걸로 뭘 어쩌시려고요...?"
안면근육이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는 청년에게 교코는 화사히 미소를 짓고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저, 이 멋진 사진들을 전부 카자미 하야토 군에게 보내주고 싶어 손이 바들바들 떨릴 뿐이에요."
"...........크윽.....!!"
"─자, 어쩌겠어요 카가 군?"
"헤에... 지금 나한테 이런 졸렬한 협박이 먹힐 줄로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해 봐야지 알죠?"
거의 상대를 태워버릴 듯한 살기로 채색된 양자의 시선이 불꽃을 튀기며 허공에서 치열하게 맞부딪혔다.
그리고.
"─우매한 소신이 미처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나이다 무엇이든 분부만 내리옵소서 여왕마마!"
"오호호호호, 과인이 그 정성에 감복하였으니 경은 고개를 들지어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아까부터 약 다섯 개의 언어로 매우 다채로운 감정 표현을 달달달달 쏟아붓고 있는 카가를 곁눈질하며 신죠는 한숨을 쉬었다. 날 버리면 네놈도 같이 불행해지리란 무시무시한 얼굴로 압박을 쌔우는 악우 - 빈말로도 친우라고는 할 수 없다 - 에게 덜미를 잡혀 두근두근하며 오늘이야말로 죠노우치에게 데이트를 신청해 보려던 결심도 눈물을 머금고 흘려보낸 후 바에 죽치고 앉아 있길 벌써 두 시간째, 악우의 악담 퍼레이드는 도무지 그칠 줄을 모른다. 그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나는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그나저나 카가가 저렇게 언어에 능통한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며 신죠는 이를 득득 갈고 있는 악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어차피 무슨 지뢰를 밟는다 한들 지금 이상으로 불행의 나락에 떨어지기야 하겠는가.
"그렇게 싫어서 몸부림을 칠 거면 딱 잘라 거절했으면 좋았잖아...."
"젠장젠장, 말이라고 해! 그 망할 놈의 사진만 아니었으면 끝까지 개겼다구! 그 마귀할멈, 뭔 수로 사진은 다 입수한 거냐아아아악!!!"
아아 하느님, 저 벼락맞을 단어가 부디 오너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만을.
"거 참, 어릴 때 사진이야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냐. 카자미한테 좀 보여주면 어때서 그래? 에 또...그... 일일이 쑥스러워할 사이도.... 아니지 않아?"
"시끄러- 연상에게는 연상의 자존심이 있는 법이야!"
".........?"
씹듯이 내뱉는 모습이 어쩐지 심각해 보여서 조금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신죠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카가는 스팀을 다짜고짜 대폭발시키며 카운터에 잔을 마구 두들겨댔다.
"크아악 열받는다!! 어이 마스터 여기 한 잔 더! 꾸물대지 말고 너도 마셔 신죠!"
........죠노우치, 나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신죠는 앞일이 불안해졌다.
어쩌다 막 도미했을 무렵의 옛날 고리짝 사진이 책갈피에서 굴러나왔을 때의 하야토의 반응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떡해, 카가 씨 진짜 너무너무 귀여워요─!!'
커다란 눈동자의 경계선을 흐물흐물 무너뜨리며 인정사정없이 반짝반짝반짝반짝 빛내는 5살 연하에게 귀엽다는 소리를 듣고 마는 충격은, 당해보지 않은 자 영원히 모른다.
역시 교코 씨는 여왕님이어야...! (감동의 부르르르) 감히 입술을 빼앗은 무례한 자에게 싸대기 한 대도 날리지 않는 여왕님은 여왕님이 아니므로 나는 SAGA 6화의 사건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으르렁크르렁꽤액꽤액.
하여간 카가 씨와 교코 씨의 관계는 이 정도가 베스트라고 생각함. 어차피 평소부터 카가 씨는 아오이 교코 인생의 애물단지 제 3호로서 여왕님 위가 쿡쿡 쑤시도록 말썽만 피우고 있으므로 가끔 가다 좀 밟혀줘도 손해될 건 없으리라. 아니 오히려 좀 밟혀줘야지 수지타산이 맞지?
어쨌거나 늘 운대가리도 없는 신죠에게 명복을. 언젠가는 쥐구멍에도 햇볕 들 날이... 올까나;; (모든 게 불행 신죠를 너무 좋아하는 내 탓이니 부디 용서해라 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