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벨 님의 블로그에서 하야토가 정식으로 차인 순간(....)을 보고 어찌나 열불이 터졌던지 그 즉시 복수를 맹세하고 카가 씨 당신 나한테 죽었어어어어어어어어!!!! 를 외치며 호노보노한 네타들을 잠시 뭉뚱그려 한쪽으로 치워버린 후 마구 갈겨내려간 SS. 고로 평소와는 노선이 180도 다른 앵스트임. 예이~앵.스.트!
하여간 SIN 이후의 가능한 결말 패턴 1. BGM은 전체적으로 강한 이별의 정서가 깔려 있어 커플송에는 최적인 온갖 노래를 양산해대는 GARNET CROW의 Holy ground.
SIDE B-27. 오랜만(久しぶり)
보복 프로젝트, 역습의 하야토 제 1편(....). 난 정말 카가 씨의 모든 걸 사랑해도 SIN 막판의 만행만은 절대 용서하지 못하므로 이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1. 이 블로그에서 벌써 수백 수천 번은 떠들어댔다시피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달린다, 는 일견 매우 레이서다운 발언은 하야토에게는 진짜로 사활과 아이덴티티가 한꺼번에 걸리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문제임.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신 분은 나오토 님의 글과 본 카테고리의 S의 허튼 소리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쉽게 말해 주행은 이퀄 카자미 하야토의 존재 의의이므로, 나 더 이상 안 달리겠소는 볼 거 없이 더 이상 숨 쉬기도 귀찮다는 명백한 자살 선언이다. 기껏 왕자님의 프로포즈(...)까지 받아들였는데 - 얼른 은퇴해라 원한다면 내가 SUGO까지 책임져 주마는 물론 점점 인간이 아닌 드라이빙 머신이 되어가는 녀석을 보다 못한 발언이기도 하지만 이를테면 왕자님 류의 '몸 하나만 들고 나한테 시집와라' 되겠음;; - 시즌이 끝나기 전에 아이르톤 세나처럼 사고로 죽거나 무사히 은퇴해도 얼마 못 가서 세상 접는다는 데 기꺼이 3만 점 베팅하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SIN까지의 노선을 따라간다면 은퇴하건 안 하건 카자미 하야토는 요절할 수밖에 없다는 팬으로서 몹시 발칙하고 불순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또. (여기서 떠들었다간 본편보다 후기가 길어진다; ...뭐, 늘 있는 일 아니냐고?)
2.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 했지만 이 SS에서 카가 씨는 서른 셋, 하야토는 스물 여덟 설정. 카가 씨는 하나로 묶은 흑발에 설정 오타쿠; 미즈모리가 패러렐물 <왕자와 도둑> 2편 후기에서 슬그머니 그린 모씨와 흡사한 미중년의 길;을 착실히 밟고 있고 하야토는 스물 하나 때나 스물 여덟 때나 변한 게 없음; 31세-26세(하야토가 SIN 당시의 카가 씨 나이라는 잇점이 있음), 32세-27세(32와 27이라는 숫자가 괜시리 좋아서. 단지 그것뿐;), 34세-29세(기왕 후쿠탕판 샤아/아무로인 거 역습의 샤아 노선이나 따라가볼까;;) 사이에서 상당히 오락가락했지만 결국 33세-28세로 낙착을 본 것은 절묘하게 수치가 대칭이 되기 때문. 하야토가 레이스를 안 한 14년과 한 14년, 그리고 K/H가 같이 있었던 7년과 헤어져 있었던 7년.
3. 이 무렵의 여왕님은 아마도 어딘가의 에로 사장을 건져(...) 살아주시고 있을 거라 생각함.
4. 꿀꿀한 기분을 유지하게 해 준 일등공신은 단연 GARNET CROW의 Holy ground지만 무한 반복으로 수백 번을 들었더니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아 버렸다;;; (이런 자폭을;) 하여간 GARNET CROW는 회자정리가 기본 컨셉이자 이별한 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주 테마로 잡고 있어서 웬만큼 좋은 노래는 다 그쪽 방향이라 써먹기가 무지 좋다. (멜로디 하나는 캡 발랄했던 Jewel fish의 실제 가사를 보고 이, 이것도 이별이냐!! 하며 기절초풍한 내가 있었음;) 다만 가사가 약간 지나치게 시적이라 번역하기가 영....;;;
어쨌든 Holy ground의 가사는 다음과 같음. 그리고 물론 의역 천지임;;
당신이 없는 미래는
그저 크나큰 암흑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죽어 버린다면 더 이상 살 필요도 없다는
생각만을 되풀이하고 있었어
은은한 달빛 밑에서
내 안에 충만한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알아버린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어
원했던 것을 마주할 방법을 잃어버리고도
나는 더 살아야 하나요?
지나가 버린 과거의 행복한 시간 앞에
현재는 단지 무의미할 뿐이고
병든 내 마음은
어제까지의 행복마저도 기뻐하지 않는데
애타게 갈구하는 것으로 족했던
나날은 신기루 너머로 사라지고
오늘이 끝나면 오늘로
당신과 만나지 않는 꿈을 꾸면서
또 하루를 보낼 테니까
끝없이 베푸는 것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성지로 갈 수만 있다면
갈 곳을 잃은 열정은
차디차게 식어만 가네
가슴에 품은 불확실한 감정은
집으로 향하는 길을 더듬는 사이에
승화해 허공으로 자취를 감추고
내겐 지켜야 할 것은 무엇 하나 없는데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
온 세상이 따스한 빛으로 감싸이기를...
마치 위선자 같은 소원도 빌어보지만
정말로 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는 깊은 상처보다도
사랑했던 마음만이 남기를
내일이 오면 다시 내일로
쓰러지더라도 상냥함만은 잃지 않을 수 있기를....
어느 날엔가 내 힘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된다면
성지에 발디딜 수 있을까?
갈 곳을 잃은 내 마음은
언젠가 다시 눈을 뜨고
출렁이는 물결을 타고
다시 태어나겠지
사, 사람 살려.... OTL
뻥 뚫린 도로 때문에 약속 시간까지 어쩌다 30분 남아버려서, 시간이나 때우려고 들어간 카페에서 우연히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이 이쪽을 확인하고, 입가가 살짝 웃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카가 씨."
".......하야토?"
"여기 오렌지 케이크가 맛있기로 소문났거든요. 운좋게 인터뷰가 예정보다 조금 빨리 끝나서 얼씨구나 하고 왔죠. 카가 씨는 웬일이세요?"
"아.... 뭐냐, 그....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와 버려서... 여기가 눈에 확 띄길래, 그냥."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버벅대고 있는 자기 자신이 한심해졌다.
"근데 뭐해요? 앉으시지 않고."
".....그.... 괜찮겠어...?"
"괜찮고 말고가 어딨어요. 푸훗, 카가 씨 뭔가 이상해~."
벗은 선글라스 밑에서 드러난 커다란 갈색 눈동자와 구김살없는 웃음이 너무나도 예전 그대로여서, 재촉하는 대로 옆자리에 앉고 말았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얼마만이더라, 에 또...."
"...그럭저럭 7년이지."
"우와... 벌써. 세월 참 빠르네."
"...그러게 말야."
"좀 변하셨네요. 그치만 흑발도 잘 어울려요. 미중년으로 가는 길 일직선이랄까, 남자의 미는 서른부터?"
"멀쩡한 총각더러 미중년이 뭐냐 미중년이. 넌 예나 지금이나 어이없으리만치 동안이구먼."
"앗, 남의 콤플렉스를! 지금도 술집에 좀 갈라치면 신분증부터 요구받아서 신경 쓰여 죽겠는데... 아차."
"니가 지뢰 밟아서 어떡하냐..."
"아무튼 요즘은 어떠세요? 여전히 승승장구?"
"그야, ....지금 당장은 그런 셈이지?"
"뭐, 변함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겠죠. 카가 씬 일이 제발로 찾아오는 타입이고."
"사람을 무슨 워커홀릭 보듯... 너야말로 이런 데 죽치고 있어도 되는 거냐, CF의 제왕님."
"비행기는 안 놓칠 거니까 괜찮습니다!"
"잔소리쟁이 오너에게 설교 들을라."
"클레어 씨랑 부쯔홀츠 씨가 구해주실 텐데요 뭐."
"아스카는 건강해?"
"잘 있대요."
잘 있어요, 가 아니라 잘 있대요.
그들 부부가 4년 전부터 사실상 이혼한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음을 떠올렸을 땐, 하야토가 커피를 홀짝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화제의 방향을 돌린 후였다.
"맞다 맞다, 축하 인사부터 드려야지 안 되겠네요."
"....웬 축하?"
"시치미 떼긴... 곧 결혼하신다면서요."
"아."
"저런저런, 새신랑이 잊고 있어도 돼요?"
"......별 수 없잖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상대는 무려 아야 씨고."
"아야짱이지."
"좀 의외네. 전 카가 씨가 누군가에게 발목 잡힌다면 백에 구십 구 교코 씨일 거라 생각했는데."
"야, 야,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마라. 내가 여왕님을 뭔 수로 감당하냐. 무리야 무리."
"다음 선택지가 아야 씨인 시점에서 뭐 결국 예상을 못 벗어나지만 말예요?"
"못 벗어나서 거 되게 미안하다."
"그치만 아야 씨는 아야 씨대로 카가 씨한텐 벅찬 상대 아녜요~?"
"시끄러 임마."
"웨딩드레스 입은 아야 씨, 틀림없이 굉장히 예쁘겠죠."
"....나만한 미녀를 아내로 맞아서 행운인 줄 알라고 큰소리는 탕탕 치더라만."
"큰소리 좀 치면 어때요. 맞는 말인데. 아~아, 결혼식날 그 옆에서 실은 좋으면서 괜히 얼굴 구기고 있는 카가 씨가 눈에 보일 것 같애... 푸핫!!"
"이게... 너 맞고 싶냐?"
"와! 폭력 반대~!"
모든 게 예전처럼 그저 자연스러워서.
머그컵을 양손으로 포옥 감싸안는 버릇도 뜨거운 액체를 조금이라도 식혀보려고 열심히 숨을 불어넣는 것도 세상 어떤 헤어 디자이너도 두 손 들고 말 대중없이 뻗친 머리카락도 실 나이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얼굴도 생기 있게 반짝거리는 큼지막한 눈동자도 변성기를 갓 넘긴 듯한 목소리도 밥은 먹고 다니는지 의심스러워지는 마르고 가느다란 체구도 약간 어리광이 섞인 어조도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티없는 환한 웃음이 기억 속에 남은 그대로여서.
알았던 꼭 그 시간만큼 잊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정작 녀석은 세월의 침식에서 비켜간 마냥 7년 전과 다름이 없어서.
.....차라리 30분이 어서 지나가 버리기만을 바랬다.
"─그러니까아~! 하다못해 더치페이로 하자니까요~~!!"
"아 거, 키이키이 시끄럽다. 연상의 호의는 순순히 받아들여."
"우...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긴... 제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이 자식, 내가 모처럼 한 턱 낼 마음을 먹었는데 싫단 말이냐."
"치이...나중에 세 배로 갚아야 하잖아요..."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정 부리는 폼까지 예전 그대로.
정말로,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카가 씨는? 어느 쪽이세요?"
"...에? ...아.. 아아... 이쪽."
"그럼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조심해서 가세요."
"....그래, 너도 조심해라."
미련없이 돌아서는 등에 시선을 못박고 있었던 까닭에.
"──아, 그렇지. 깜박했다."
하마터면 하야토가 태평하게 불쑥 내뱉은 말을 놓칠 뻔했다.
"저, 이번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기로 했어요."
"..........뭐.....?"
"란돌한테 졌어요. 재작년부터 계속 그만둬라 그만둬라 들볶아대서... 원한다면 SUGO까지 자기가 책임져 주겠다고 하잖아요 글쎄."
조금 곤란한 듯 웃으면서 말했다.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어져서."
".....그래서.... 그만둔다는 거냐?"
"예. ─뭐니뭐니해도 14년이나 해먹었는걸요. 믿어지세요? 14년이에요 14년! CF가 뭔지도 모르고 살기도 14년이었는데 말예요. 그리 생각하면 참 오래도 붙어 있었죠 저. .....아파요, 카가 씨."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하야토의 양어깨를 으스러져라 움켜쥐고 있었다.
커다란 갈색 눈동자에 비친 자신이 지독하게 절박한 표정을 하고 있어, ─조금 우습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지만, 넌.
살아 있는 한 끝까지 달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의무이자 숙명이라 했던 녀석이었다.
"...저도, 제가 죽는다면 반드시 서킷 위일 줄 알았지만..."
카가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던가. 하야토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이 그의 눈을 곧바르게 마주본다.
"뭐, 이젠 아무래도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좀 지쳤어요."
흡사 오늘 점심의 메뉴를 나열하는 듯한 평이한 목소리로.
"──카가 씨 하나 붙들지 못한 제 레이스에, 더 이상 무슨 가치가 있을지도 의심스럽고요."
어깨에 파고든 손가락을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하나씩 떼어낸다.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카가 씨답지 않아요."
그것은, 어떤 말보다도 명확한 거부의 의사 표시였다.
"이젠 정말 가 볼게요. 안녕히 가세요."
"───하야토!"
"예?"
".....아냐. 잘 가라."
"아하하.. 카가 씨, 오늘 정말 이상해요."
손을 붕붕 흔들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향해, 입속으로 또 보자, 를 나지막히 중얼거리고 역시 발길을 돌렸다.
불러세워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너를 강제로라도 붙잡을 자격을, 나는 필시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
두 번 다시 보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린 그날부터 녀석을 지우기 위해 7년을 발버둥쳐서, 이젠 거의 잊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그들 사이에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렇게나 막막한 건지.
지나간 일은 후회하지 않고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7년 전 그날,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 손을 놓쳐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있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이 이쪽을 확인하고, 입가가 살짝 웃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카가 씨."
".......하야토?"
"여기 오렌지 케이크가 맛있기로 소문났거든요. 운좋게 인터뷰가 예정보다 조금 빨리 끝나서 얼씨구나 하고 왔죠. 카가 씨는 웬일이세요?"
"아.... 뭐냐, 그....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와 버려서... 여기가 눈에 확 띄길래, 그냥."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버벅대고 있는 자기 자신이 한심해졌다.
"근데 뭐해요? 앉으시지 않고."
".....그.... 괜찮겠어...?"
"괜찮고 말고가 어딨어요. 푸훗, 카가 씨 뭔가 이상해~."
벗은 선글라스 밑에서 드러난 커다란 갈색 눈동자와 구김살없는 웃음이 너무나도 예전 그대로여서, 재촉하는 대로 옆자리에 앉고 말았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얼마만이더라, 에 또...."
"...그럭저럭 7년이지."
"우와... 벌써. 세월 참 빠르네."
"...그러게 말야."
"좀 변하셨네요. 그치만 흑발도 잘 어울려요. 미중년으로 가는 길 일직선이랄까, 남자의 미는 서른부터?"
"멀쩡한 총각더러 미중년이 뭐냐 미중년이. 넌 예나 지금이나 어이없으리만치 동안이구먼."
"앗, 남의 콤플렉스를! 지금도 술집에 좀 갈라치면 신분증부터 요구받아서 신경 쓰여 죽겠는데... 아차."
"니가 지뢰 밟아서 어떡하냐..."
"아무튼 요즘은 어떠세요? 여전히 승승장구?"
"그야, ....지금 당장은 그런 셈이지?"
"뭐, 변함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겠죠. 카가 씬 일이 제발로 찾아오는 타입이고."
"사람을 무슨 워커홀릭 보듯... 너야말로 이런 데 죽치고 있어도 되는 거냐, CF의 제왕님."
"비행기는 안 놓칠 거니까 괜찮습니다!"
"잔소리쟁이 오너에게 설교 들을라."
"클레어 씨랑 부쯔홀츠 씨가 구해주실 텐데요 뭐."
"아스카는 건강해?"
"잘 있대요."
잘 있어요, 가 아니라 잘 있대요.
그들 부부가 4년 전부터 사실상 이혼한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음을 떠올렸을 땐, 하야토가 커피를 홀짝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화제의 방향을 돌린 후였다.
"맞다 맞다, 축하 인사부터 드려야지 안 되겠네요."
"....웬 축하?"
"시치미 떼긴... 곧 결혼하신다면서요."
"아."
"저런저런, 새신랑이 잊고 있어도 돼요?"
"......별 수 없잖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상대는 무려 아야 씨고."
"아야짱이지."
"좀 의외네. 전 카가 씨가 누군가에게 발목 잡힌다면 백에 구십 구 교코 씨일 거라 생각했는데."
"야, 야,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마라. 내가 여왕님을 뭔 수로 감당하냐. 무리야 무리."
"다음 선택지가 아야 씨인 시점에서 뭐 결국 예상을 못 벗어나지만 말예요?"
"못 벗어나서 거 되게 미안하다."
"그치만 아야 씨는 아야 씨대로 카가 씨한텐 벅찬 상대 아녜요~?"
"시끄러 임마."
"웨딩드레스 입은 아야 씨, 틀림없이 굉장히 예쁘겠죠."
"....나만한 미녀를 아내로 맞아서 행운인 줄 알라고 큰소리는 탕탕 치더라만."
"큰소리 좀 치면 어때요. 맞는 말인데. 아~아, 결혼식날 그 옆에서 실은 좋으면서 괜히 얼굴 구기고 있는 카가 씨가 눈에 보일 것 같애... 푸핫!!"
"이게... 너 맞고 싶냐?"
"와! 폭력 반대~!"
모든 게 예전처럼 그저 자연스러워서.
머그컵을 양손으로 포옥 감싸안는 버릇도 뜨거운 액체를 조금이라도 식혀보려고 열심히 숨을 불어넣는 것도 세상 어떤 헤어 디자이너도 두 손 들고 말 대중없이 뻗친 머리카락도 실 나이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얼굴도 생기 있게 반짝거리는 큼지막한 눈동자도 변성기를 갓 넘긴 듯한 목소리도 밥은 먹고 다니는지 의심스러워지는 마르고 가느다란 체구도 약간 어리광이 섞인 어조도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티없는 환한 웃음이 기억 속에 남은 그대로여서.
알았던 꼭 그 시간만큼 잊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정작 녀석은 세월의 침식에서 비켜간 마냥 7년 전과 다름이 없어서.
.....차라리 30분이 어서 지나가 버리기만을 바랬다.
"─그러니까아~! 하다못해 더치페이로 하자니까요~~!!"
"아 거, 키이키이 시끄럽다. 연상의 호의는 순순히 받아들여."
"우...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긴... 제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이 자식, 내가 모처럼 한 턱 낼 마음을 먹었는데 싫단 말이냐."
"치이...나중에 세 배로 갚아야 하잖아요..."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정 부리는 폼까지 예전 그대로.
정말로,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카가 씨는? 어느 쪽이세요?"
"...에? ...아.. 아아... 이쪽."
"그럼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조심해서 가세요."
"....그래, 너도 조심해라."
미련없이 돌아서는 등에 시선을 못박고 있었던 까닭에.
"──아, 그렇지. 깜박했다."
하마터면 하야토가 태평하게 불쑥 내뱉은 말을 놓칠 뻔했다.
"저, 이번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기로 했어요."
"..........뭐.....?"
"란돌한테 졌어요. 재작년부터 계속 그만둬라 그만둬라 들볶아대서... 원한다면 SUGO까지 자기가 책임져 주겠다고 하잖아요 글쎄."
조금 곤란한 듯 웃으면서 말했다.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어져서."
".....그래서.... 그만둔다는 거냐?"
"예. ─뭐니뭐니해도 14년이나 해먹었는걸요. 믿어지세요? 14년이에요 14년! CF가 뭔지도 모르고 살기도 14년이었는데 말예요. 그리 생각하면 참 오래도 붙어 있었죠 저. .....아파요, 카가 씨."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하야토의 양어깨를 으스러져라 움켜쥐고 있었다.
커다란 갈색 눈동자에 비친 자신이 지독하게 절박한 표정을 하고 있어, ─조금 우습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지만, 넌.
살아 있는 한 끝까지 달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의무이자 숙명이라 했던 녀석이었다.
"...저도, 제가 죽는다면 반드시 서킷 위일 줄 알았지만..."
카가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던가. 하야토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이 그의 눈을 곧바르게 마주본다.
"뭐, 이젠 아무래도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좀 지쳤어요."
흡사 오늘 점심의 메뉴를 나열하는 듯한 평이한 목소리로.
"──카가 씨 하나 붙들지 못한 제 레이스에, 더 이상 무슨 가치가 있을지도 의심스럽고요."
어깨에 파고든 손가락을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하나씩 떼어낸다.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카가 씨답지 않아요."
그것은, 어떤 말보다도 명확한 거부의 의사 표시였다.
"이젠 정말 가 볼게요. 안녕히 가세요."
"───하야토!"
"예?"
".....아냐. 잘 가라."
"아하하.. 카가 씨, 오늘 정말 이상해요."
손을 붕붕 흔들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향해, 입속으로 또 보자, 를 나지막히 중얼거리고 역시 발길을 돌렸다.
불러세워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너를 강제로라도 붙잡을 자격을, 나는 필시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
두 번 다시 보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린 그날부터 녀석을 지우기 위해 7년을 발버둥쳐서, 이젠 거의 잊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그들 사이에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렇게나 막막한 건지.
지나간 일은 후회하지 않고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7년 전 그날,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 손을 놓쳐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있다.
보복 프로젝트, 역습의 하야토 제 1편(....). 난 정말 카가 씨의 모든 걸 사랑해도 SIN 막판의 만행만은 절대 용서하지 못하므로 이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1. 이 블로그에서 벌써 수백 수천 번은 떠들어댔다시피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달린다, 는 일견 매우 레이서다운 발언은 하야토에게는 진짜로 사활과 아이덴티티가 한꺼번에 걸리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문제임.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신 분은 나오토 님의 글과 본 카테고리의 S의 허튼 소리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쉽게 말해 주행은 이퀄 카자미 하야토의 존재 의의이므로, 나 더 이상 안 달리겠소는 볼 거 없이 더 이상 숨 쉬기도 귀찮다는 명백한 자살 선언이다. 기껏 왕자님의 프로포즈(...)까지 받아들였는데 - 얼른 은퇴해라 원한다면 내가 SUGO까지 책임져 주마는 물론 점점 인간이 아닌 드라이빙 머신이 되어가는 녀석을 보다 못한 발언이기도 하지만 이를테면 왕자님 류의 '몸 하나만 들고 나한테 시집와라' 되겠음;; - 시즌이 끝나기 전에 아이르톤 세나처럼 사고로 죽거나 무사히 은퇴해도 얼마 못 가서 세상 접는다는 데 기꺼이 3만 점 베팅하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SIN까지의 노선을 따라간다면 은퇴하건 안 하건 카자미 하야토는 요절할 수밖에 없다는 팬으로서 몹시 발칙하고 불순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또. (여기서 떠들었다간 본편보다 후기가 길어진다; ...뭐, 늘 있는 일 아니냐고?)
2.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 했지만 이 SS에서 카가 씨는 서른 셋, 하야토는 스물 여덟 설정. 카가 씨는 하나로 묶은 흑발에 설정 오타쿠; 미즈모리가 패러렐물 <왕자와 도둑> 2편 후기에서 슬그머니 그린 모씨와 흡사한 미중년의 길;을 착실히 밟고 있고 하야토는 스물 하나 때나 스물 여덟 때나 변한 게 없음; 31세-26세(하야토가 SIN 당시의 카가 씨 나이라는 잇점이 있음), 32세-27세(32와 27이라는 숫자가 괜시리 좋아서. 단지 그것뿐;), 34세-29세(기왕 후쿠탕판 샤아/아무로인 거 역습의 샤아 노선이나 따라가볼까;;) 사이에서 상당히 오락가락했지만 결국 33세-28세로 낙착을 본 것은 절묘하게 수치가 대칭이 되기 때문. 하야토가 레이스를 안 한 14년과 한 14년, 그리고 K/H가 같이 있었던 7년과 헤어져 있었던 7년.
3. 이 무렵의 여왕님은 아마도 어딘가의 에로 사장을 건져(...) 살아주시고 있을 거라 생각함.
4. 꿀꿀한 기분을 유지하게 해 준 일등공신은 단연 GARNET CROW의 Holy ground지만 무한 반복으로 수백 번을 들었더니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아 버렸다;;; (이런 자폭을;) 하여간 GARNET CROW는 회자정리가 기본 컨셉이자 이별한 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주 테마로 잡고 있어서 웬만큼 좋은 노래는 다 그쪽 방향이라 써먹기가 무지 좋다. (멜로디 하나는 캡 발랄했던 Jewel fish의 실제 가사를 보고 이, 이것도 이별이냐!! 하며 기절초풍한 내가 있었음;) 다만 가사가 약간 지나치게 시적이라 번역하기가 영....;;;
어쨌든 Holy ground의 가사는 다음과 같음. 그리고 물론 의역 천지임;;
그저 크나큰 암흑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죽어 버린다면 더 이상 살 필요도 없다는
생각만을 되풀이하고 있었어
은은한 달빛 밑에서
내 안에 충만한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알아버린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어
원했던 것을 마주할 방법을 잃어버리고도
나는 더 살아야 하나요?
지나가 버린 과거의 행복한 시간 앞에
현재는 단지 무의미할 뿐이고
병든 내 마음은
어제까지의 행복마저도 기뻐하지 않는데
애타게 갈구하는 것으로 족했던
나날은 신기루 너머로 사라지고
오늘이 끝나면 오늘로
당신과 만나지 않는 꿈을 꾸면서
또 하루를 보낼 테니까
끝없이 베푸는 것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성지로 갈 수만 있다면
갈 곳을 잃은 열정은
차디차게 식어만 가네
가슴에 품은 불확실한 감정은
집으로 향하는 길을 더듬는 사이에
승화해 허공으로 자취를 감추고
내겐 지켜야 할 것은 무엇 하나 없는데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
온 세상이 따스한 빛으로 감싸이기를...
마치 위선자 같은 소원도 빌어보지만
정말로 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는 깊은 상처보다도
사랑했던 마음만이 남기를
내일이 오면 다시 내일로
쓰러지더라도 상냥함만은 잃지 않을 수 있기를....
어느 날엔가 내 힘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된다면
성지에 발디딜 수 있을까?
갈 곳을 잃은 내 마음은
언젠가 다시 눈을 뜨고
출렁이는 물결을 타고
다시 태어나겠지
사, 사람 살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