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들여서 또 써 버린 카자미 마야 네타 제 2탄. ....이것아....
전편에서도 그랬듯이 오리지널 캐릭터가 싫으신 분은 뒤로 돌아 힘차게 달아나주시기만을 기원합니다.
하여간 이걸로 전체 중 4분의 1은 클리어한 셈임. (이제 겨우? ;;;) 아자! 힘내자!
SIDE A-40. 이유(理由)
.....마야짱 네타가 너무 재미있어서 곤란해 미치겠다. 머릿속에서 이렇게 되기까지의 중간 과정이 표로 좌르르르르르륵 정리가 되고 있음. 이러면 안 되는데에에에에에!!! (이토록 즐거운 소재를 떡하니 제공해주신 지벨 님 나쁘셈. 흑흑흑흑흑;) (<-뒤집어씌우기)
미묘하게 전편의 SIDE B-35와 연결되지 않고 있지만 생각없이 막 쓰는 SS가 다 그렇지 뭐 에라이 모르겠다.
만년 신혼 모드인 K/H에게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맹렬하게 권유하고 싶음.
하야토는 진심으로 카가 씨한테 딸내미 시집보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내심 보내고 싶음.
하지만 카가 씨는 All or Nothing의 사는 데 도움 절라 안 되는 피곤한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 하야토에게는 아스라다와 카가 씨와 아스카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점을 찾아내 그 셋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이고 공존시키는 게 가능할지 몰라도 카가 씨는 저어어어어어얼대 불가능할 거라 본다. 한 마디로 흘리는 거 하나 없이 완전히 손에 넣지 못할 바에는 그냥 처음부터 마지막 흔적 하나까지 싹싹 지워버리고 잊어버리는 쪽을 택할 부류란 얘긴데, SIN, 특히 그 빌어먹을 막판에서 가히 저 사람 뭐 잘못 먹었나? ;;; 싶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휘떡 날아가버린 것도 그놈의 제로-섬 근성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결과지 싶음. 어떻게 보면 뼛골까지 속속들이 A형이고 사는 요령 진짜 없는 남자. 아아 애정도가 또 오르고 있다...! ;;; 혹여 나는 카가 씨의 한심함의 한계를 실험하고 있는가? ;;;
하여간 저 K모 씨는 일단 마음을 줄 경우 그 대상자에게 최후의 한 조각까지 내줄 사람이 되어놔서 - 그렇게 못할 바에는 시작부터 안 주고 말거든 - 그런 이유로 마야에게는 (엄청 미안하지만) 승산이 없는 거 되시겠음. 미안타... 쓰는 년 잘못 만나 고생만 고생대로 하고....;;;
하여간 저 All or Nothing은 꼭 한 번 진지하게 다루어보고 싶은 소재다. 앵.스.트!! 예이~! (....)
평균 수명 98세의 반도 아직 못 채웠다고는 하나 역시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남자가 소녀 취향의 파스텔톤 케이크점에 덤으로 현역 여고생을 맞은편에 두고 죽치고 앉아 있기란 여간 낯이 두껍지 않고서야 좀처럼 클리어할 수 없는 과제인 법이다. 그리고 현재 카가 죠타로 씨(舊 블리드 카가)가 타고난 쇠심줄 신경을 십분 발휘하길 강력히 요구당하고 있는 난감한 상황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현 정황의 최대 원흉인 탁자 건너의 정문을 통해 팩토리로 당당하게 쳐들어와 수라장을 틈타 다짜고짜 데이트를 요구한 맹랑한 열 여섯 살 소녀에게 눈길을 고정한 채로 나오려는 한숨을 도로 꿀꺽 삼켰다. 때때로 이쪽을 향하는 주위의 시선이 꽤나 따끔따끔하지만 제발 비노니 원조 교제 아닌 부녀 사이로 봐 주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실제로도 아빠와 딸만큼 나이 차이가 있으려니와─그는 아장아장 서툴게 걷고 눈에 뵈는 건 몽땅 입 속에 우겨넣던 쬐만한 꼬맹이 시절부터 이 애를 알아왔으니 잠시 아버지 행세를 한다 해서 죄 받지는 않으리라.
레이스계의 살아 있는 신화 카자미 하야토가 상당히 곤란한 방식으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만치 예뻐하는 외동딸 카자미 마야(風見マヤ)에 대해, 카가는 친부모만큼은 알고 있다고 나름대로 자신하고 있었다.
하여간 데이트야 뭐 좋다 치고 - 단어 선택에 약간의 회의를 느끼기는 하나 - 하필이면 고르고 고른 장소가 느글느글한 낭만지향성의 분위기가 충만한 케이크 가게라는 점은 그다지 환영할 건덕지는 못 되었지만 종류별로 시킨 케이크를 열성껏 베어물으며 학교와 일과 친구와 기타 등등으로 쉴새없이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마야가 귀여우니까 대충 용서하기로 하자. 다소 젠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평소의 새침한 어른스러움을 깔끔히 벗어버린 까닭에, 보통은 잘 눈에 뜨이지 않는 제 아버지를 한 판에 박은 이목구비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여 왠지 겸연쩍은 기분이 되었다.
카가는 마음속으로 소녀의 생김새에 포토샵 손질을 가해 보았다. 얼굴선에 살짝 남자다운 직선적인 느낌을 가미하고, 눈 크기를 아주 조금만 줄이고, 피부색의 명도를 약간 낮추고 헤어스타일을 바꾸면─딱 저 나이 때의 하야토가 된다. 어디 보자, 그 녀석이 16살이었을 때는... 젠장, 시속 600킬로미터로 다운힐 뱅크 들이받고 추락해서 다 죽다 겨우 살아났었지. 그게 벌써 20여 년 전인가. 세월 한 번 빠르구먼.
거기에 두름으로 꿰여 줄줄이 사탕으로 떠오르는 온갖 추억에 잠겨 도중 멋대로 감개가 무량하고 있는 카가에게 경찰의 호루라기, 아니 메조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급제동을 걸었다.
"....씨! 카가 씨이~~!! 카가 씨!!!!"
"─아?"
거기서 정신을 황급히 수습해 보니 눈앞의 소녀는 볼을 잔뜩 부풀리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 말, 전혀 안 듣고 계셨죠!"
웃, 토라진 얼굴도 제 아빠 판박이로세. 순간 불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다.
─마야가 언급하기도 싫어하고 듣기도 싫어하고 생각하기조차 거부하는 게 있다면, 그녀 자신이 하야토를 닮았다는 사실이니까.
"미안 미안, 아저씨가 그만 잠~깐 정신이 딴 데로 날아갔지 뭐야."
"몰라요. 카가 씨 미워! 사람이 기껏 진지하게 갖은 용기를 다 쥐어짜서 말을 꺼냈는데, 딴 생각이나 하고!"
"우와 우와, 잘못했다니까. 내가 나빴다구. 제발 삐지지 마라, 응?"
"....제 부탁, 다 들어주시는 거죠?"
"오, 그래그래. 마야짱 부탁이라면 뭔들 못하겠냐."
마야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이것도 하야토 판박이.
"자, 그럼 새끼손가락, 새끼손가락 이리 내세요 어서."
"어이어이, 손가락까지 걸어야 할 만큼 내가 신용이 없단 말야?"
"듣지도 않았으면서."
"잘못했습니다."
재촉하는 대로 순순히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까지 꾹 찍었다. 어기면 침이 천 방이에요, 라고 신신당부하는 폼이 귀여웠다.
그래 말만 해라. 디즈니랜드냐 파르페냐 아니면 인형이냐.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평범하게 교회에서 치르긴 싫지만 너무 유난 떠는 것도 질색이고... 그거야 뭐 천천히 생각해도 될 테고요."
".......에?"
"하지만 카가 씨 진짜 근사할 거예요. 꺄아♡ 후후후, 드레스는 어디서 맞출까?"
"..........응?"
"허니문은 어디가 좋을까요? 아냐아냐, 꼭 한 군데만 가야 한다는 법도 없지. 1년 잡고 세계일주도 괜찮겠어요."
"..............저기?"
"역시 아들 하나 딸 하나는 있어야겠죠?"
"어이, 이봐, 마야짱, 여보세요....?"
"네?"
".....지금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어머 이제 와서 무슨 말이세요 카가 씨."
마야는 벌레 한 마리 못 죽일 청순가련한 얼굴로 꽃도 울고 가도록 화사히 웃었다.
정작 카가에게는 지옥의 한복판에 도사린 악마대왕의 미소로 보였을지언정.
"방금 결혼해 달라는 제 프로포즈를 받아들이셨잖아요?"
맹렬하게 스톱 사인을 흔들어대는 본능의 절규를 들었어야 했다.
결혼. 結婚. Marrige. Matrinomio. Ehe. Coniugium. 성인 혹은 준성인의 두 사람이 사랑 혹은 이해 관계에 의하여 법적으로 결합해 한 가족이 되는 행위.
카가는 얼떨떨하게 결혼의 사전적 정의를 쓸데도 없이 두 번 세 번 되씹어보고 내일의 죠 마냥 새하야니 바래 재기동을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뇌세포를 어떻게든 굴려 무언가 결론을 도출해 보려 부단히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리고 제정신을 채 되찾기 전에, 혀가 먼저 헛미끄러졌다.
".....오늘, 4월 1일이었나?"
전언 철회.
애들이란 어른이 까맣게 모르는 사이 지들이 알아서 막 자라기 십상이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게 웃을 일이냐!"
마호가니 탁자에 엎어져 반들반들한 면을 쾅쾅 두드리며 숨넘어가라 웃어젖히는 녀석의 무릎을 냅다 걷어찼다. 그 즉시 아프잖아요~! 쨍알쨍알 격렬히 쏟아지는 항의를 아프라고 깠는데 당연하지, 로 단방에 묵살한다. 살의를 품은 구두 뒤축에 찍힌 내 발등의 부당한 고통을 죽으면 죽었지 나 혼자 감수할까 보냐. 물귀신 근성은 오늘도 투철했다.
걷어채인 무릎을 문지르면서 뭐라뭐라 종알대는 하야토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았다.
"제대로 부모 노릇을 할 때가 드디어 왔다. 말려. 저지해! 지금 당장 못하게 막아!"
"설마 진심으로 마야한테 제 말이 먹힐 줄 여기는 건 아니시겠죠. 한다면 하는 애예요?"
"......하긴 그렇다."
"거 보세요."
"─아니아니, 이게 아니라~~!! 어이 하야토, 너 뭘 믿고 이렇게 태연자약하냐! 하나뿐인 니 딸이 지금 너보다 나이 많은 놈한테 시집가겠다고 설쳐대는 판국인데! 최소한 허걱, 이라거나 이럴 수가, 라거나, 어느 틈에 내 딸을 꼬드겼냐던가 하다못해 충격 먹고 비틀거리기라도 해야 마땅하지 않아!?"
"왜요?"
"왜라니. 네놈이 아무리 세상을 감만으로 막 살아도 그렇지 왜라니!"
"말이 심하시네... 그렇지만, 늦건 빠르건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걸요. 기정 사실에 일일이 놀랄 만큼 체력 남아돌지 않아요 저."
"알아? ....언제부터?"
"병원에서, 유리 너머로 옹알거리는 마야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네 녀석의 제로는 대체 어디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는 거냐..... 예지해도 정도란 게 있잖아!"
"요즘 트랜스 상태가 잦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제로하고는 상관없어요?"
"문제성 발언을 얼렁뚱땅 전제로 깔지 마!!!"
"─그 애, 제 딸이니까요."
"이 자식, 지금 아주 내추럴하게 씹고 넘어갔겠다. 기왕지사 씹으려면 알아듣게 올바른 국어를 구사해, 알아듣게."
"마야가 들으면 식칼 들고 너 죽고 나 죽자고 펄펄 뛸지 모르는데... 그 앤 사실 아스카보다 제 쪽을 더 많이 닮았거든요."
"....그렇지. 그래서?"
"그래서죠."
"하아?"
양손으로 턱을 괴고, 마치 화끈한 장난을 생각해낸 악동처럼 하야토는 웃었다.
"카자미 하야토의 DNA는 카가 씨에게 이끌리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틀림없이."
옛날부터 낯색 하나 바꾸지 않고 불의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건 이놈의 장기였다.
젠장, 그렇지만 내가 이 나이에 새삼 귓불까지 시뻘개져야겠냐!!
"....미치겠군."
"네?"
"지금. 무지하게 끌어안고 싶어졌어."
"원하시는 대로."
"껴안는 데서 끝나지 않을 확률 100퍼센트다만?"
"언제부터 일일이 눈치 봐 가며 행동에 옮기는 겸허한 인물이 되셨죠?"
"카자미 하야토 한정. 더 이상 미움받으면 아무리 내가 털난 염통이기로서니 감당하기 힘들거든."
"카가 씨 한정으로 뭘 하셔도 용납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위험 발언에도 정도가 있지. 나중에 뭐라고 불평해도 진짜 못 들은 척할 거다?"
"정력도 좋으셔. 생물학적으로 이미 내리막길 된지 오래라고요, 저나 카가 씨나."
"그것도 카자미 하야토 한정."
"영광입니다."
"...아~아, 하지만 진짜 유감이네요."
"뭐가?"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하는 건데. 우리 딸애의 기념할 만한 첫 프로포즈를 최소한 사진으로라도 영구 보존했어야 하는 건데!"
"하지 마!! ;;;"
"초등학교 때 처음 사귄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는 장면은 남겨놨어요. 나중에 들켜서 일주일 간 말도 못 붙였지만."
"이런 팔불출."
"왜요, 귀여웠는데. 생각해 보니 그 남자애, 카가 씨랑 눈매라던가 약간 닮았었네요. 과연."
"노골적으로 감명받지 마라, 응?"
"그런데 정말 어쩌실 거예요?"
"아?"
"손가락까지 거셨다면서."
".........침 천 방 맞고 말란다."
"우와~아 여러분 이 사람 좀 보세요. 글쎄 내 딸을 퇴짜놓겠대─."
"너 뭐냐 대체!?"
"에~그치만, 딸 가진 아버지로서 어느 집에서나 쌍수 들고 대환영할 사윗감을 눈 뻔히 뜨고 놓칠 수야 없잖아요. 아깝게스리."
"빙장 어른과 놀아나는 사위 좋기도 하겠다."
"한때의 젊은 혈기인 셈치고."
"말이 되냐!"
"있죠."
"아?"
"제가 이런 말하기도 좀 우습지만, 마야는 정말 좋은 애예요."
"........."
"카가 씨도 진심으로 좋아하고. ─한때의 스쳐지나가는 동경이나 그런 게 아니라."
"......하야토."
"그리고, 이미 아시겠지만, 저───"
"───하야토!!"
"............."
"이 이상 한 마디만 더 벙긋해봐라. 진짜로 화낸다."
".....예, 죄송해요."
맥없이 웃으면서 기대오는 갈색 머리칼에 손을 얹어 난폭하게 헤집어 놓았다. 짤막한 항의는 이번에도 단호히 무시.
"너 이 자식, 마야짱은 나한테도 딸이나 마찬가지란 건 잊어먹었지. 세상에 딸이랑 결혼하는 애비가 어딨어?"
"아...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렇네."
"나보다 훨씬 끝내주는 사윗감 찾는 일이라면야 기꺼이 협력하마."
"카가 씨는 마야한테서 도망다닐 걱정이나 하세요. 그 애가 어떤 앤데 그리 간단히 포기할까."
"...큭... 하여간 그 녀석 취미하고는...! 왜 하필 나냔 말이다!"
"제 딸이니까요."
"......젠장, 납득이 된다는 게 서글프다....."
"힘내세요!"
"그리고 살다 살다 이렇게 성의없는 응원도 처음 들어본다!"
그 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 인생은 항상 All or Nothing, 0이 아니면 1이었으니까.
─네게 전부 내주거나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
그 중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현 정황의 최대 원흉인 탁자 건너의 정문을 통해 팩토리로 당당하게 쳐들어와 수라장을 틈타 다짜고짜 데이트를 요구한 맹랑한 열 여섯 살 소녀에게 눈길을 고정한 채로 나오려는 한숨을 도로 꿀꺽 삼켰다. 때때로 이쪽을 향하는 주위의 시선이 꽤나 따끔따끔하지만 제발 비노니 원조 교제 아닌 부녀 사이로 봐 주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실제로도 아빠와 딸만큼 나이 차이가 있으려니와─그는 아장아장 서툴게 걷고 눈에 뵈는 건 몽땅 입 속에 우겨넣던 쬐만한 꼬맹이 시절부터 이 애를 알아왔으니 잠시 아버지 행세를 한다 해서 죄 받지는 않으리라.
레이스계의 살아 있는 신화 카자미 하야토가 상당히 곤란한 방식으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만치 예뻐하는 외동딸 카자미 마야(風見マヤ)에 대해, 카가는 친부모만큼은 알고 있다고 나름대로 자신하고 있었다.
하여간 데이트야 뭐 좋다 치고 - 단어 선택에 약간의 회의를 느끼기는 하나 - 하필이면 고르고 고른 장소가 느글느글한 낭만지향성의 분위기가 충만한 케이크 가게라는 점은 그다지 환영할 건덕지는 못 되었지만 종류별로 시킨 케이크를 열성껏 베어물으며 학교와 일과 친구와 기타 등등으로 쉴새없이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마야가 귀여우니까 대충 용서하기로 하자. 다소 젠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평소의 새침한 어른스러움을 깔끔히 벗어버린 까닭에, 보통은 잘 눈에 뜨이지 않는 제 아버지를 한 판에 박은 이목구비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여 왠지 겸연쩍은 기분이 되었다.
카가는 마음속으로 소녀의 생김새에 포토샵 손질을 가해 보았다. 얼굴선에 살짝 남자다운 직선적인 느낌을 가미하고, 눈 크기를 아주 조금만 줄이고, 피부색의 명도를 약간 낮추고 헤어스타일을 바꾸면─딱 저 나이 때의 하야토가 된다. 어디 보자, 그 녀석이 16살이었을 때는... 젠장, 시속 600킬로미터로 다운힐 뱅크 들이받고 추락해서 다 죽다 겨우 살아났었지. 그게 벌써 20여 년 전인가. 세월 한 번 빠르구먼.
거기에 두름으로 꿰여 줄줄이 사탕으로 떠오르는 온갖 추억에 잠겨 도중 멋대로 감개가 무량하고 있는 카가에게 경찰의 호루라기, 아니 메조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급제동을 걸었다.
"....씨! 카가 씨이~~!! 카가 씨!!!!"
"─아?"
거기서 정신을 황급히 수습해 보니 눈앞의 소녀는 볼을 잔뜩 부풀리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 말, 전혀 안 듣고 계셨죠!"
웃, 토라진 얼굴도 제 아빠 판박이로세. 순간 불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다.
─마야가 언급하기도 싫어하고 듣기도 싫어하고 생각하기조차 거부하는 게 있다면, 그녀 자신이 하야토를 닮았다는 사실이니까.
"미안 미안, 아저씨가 그만 잠~깐 정신이 딴 데로 날아갔지 뭐야."
"몰라요. 카가 씨 미워! 사람이 기껏 진지하게 갖은 용기를 다 쥐어짜서 말을 꺼냈는데, 딴 생각이나 하고!"
"우와 우와, 잘못했다니까. 내가 나빴다구. 제발 삐지지 마라, 응?"
"....제 부탁, 다 들어주시는 거죠?"
"오, 그래그래. 마야짱 부탁이라면 뭔들 못하겠냐."
마야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이것도 하야토 판박이.
"자, 그럼 새끼손가락, 새끼손가락 이리 내세요 어서."
"어이어이, 손가락까지 걸어야 할 만큼 내가 신용이 없단 말야?"
"듣지도 않았으면서."
"잘못했습니다."
재촉하는 대로 순순히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까지 꾹 찍었다. 어기면 침이 천 방이에요, 라고 신신당부하는 폼이 귀여웠다.
그래 말만 해라. 디즈니랜드냐 파르페냐 아니면 인형이냐.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평범하게 교회에서 치르긴 싫지만 너무 유난 떠는 것도 질색이고... 그거야 뭐 천천히 생각해도 될 테고요."
".......에?"
"하지만 카가 씨 진짜 근사할 거예요. 꺄아♡ 후후후, 드레스는 어디서 맞출까?"
"..........응?"
"허니문은 어디가 좋을까요? 아냐아냐, 꼭 한 군데만 가야 한다는 법도 없지. 1년 잡고 세계일주도 괜찮겠어요."
"..............저기?"
"역시 아들 하나 딸 하나는 있어야겠죠?"
"어이, 이봐, 마야짱, 여보세요....?"
"네?"
".....지금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어머 이제 와서 무슨 말이세요 카가 씨."
마야는 벌레 한 마리 못 죽일 청순가련한 얼굴로 꽃도 울고 가도록 화사히 웃었다.
정작 카가에게는 지옥의 한복판에 도사린 악마대왕의 미소로 보였을지언정.
"방금 결혼해 달라는 제 프로포즈를 받아들이셨잖아요?"
맹렬하게 스톱 사인을 흔들어대는 본능의 절규를 들었어야 했다.
결혼. 結婚. Marrige. Matrinomio. Ehe. Coniugium. 성인 혹은 준성인의 두 사람이 사랑 혹은 이해 관계에 의하여 법적으로 결합해 한 가족이 되는 행위.
카가는 얼떨떨하게 결혼의 사전적 정의를 쓸데도 없이 두 번 세 번 되씹어보고 내일의 죠 마냥 새하야니 바래 재기동을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뇌세포를 어떻게든 굴려 무언가 결론을 도출해 보려 부단히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리고 제정신을 채 되찾기 전에, 혀가 먼저 헛미끄러졌다.
".....오늘, 4월 1일이었나?"
전언 철회.
애들이란 어른이 까맣게 모르는 사이 지들이 알아서 막 자라기 십상이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게 웃을 일이냐!"
마호가니 탁자에 엎어져 반들반들한 면을 쾅쾅 두드리며 숨넘어가라 웃어젖히는 녀석의 무릎을 냅다 걷어찼다. 그 즉시 아프잖아요~! 쨍알쨍알 격렬히 쏟아지는 항의를 아프라고 깠는데 당연하지, 로 단방에 묵살한다. 살의를 품은 구두 뒤축에 찍힌 내 발등의 부당한 고통을 죽으면 죽었지 나 혼자 감수할까 보냐. 물귀신 근성은 오늘도 투철했다.
걷어채인 무릎을 문지르면서 뭐라뭐라 종알대는 하야토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았다.
"제대로 부모 노릇을 할 때가 드디어 왔다. 말려. 저지해! 지금 당장 못하게 막아!"
"설마 진심으로 마야한테 제 말이 먹힐 줄 여기는 건 아니시겠죠. 한다면 하는 애예요?"
"......하긴 그렇다."
"거 보세요."
"─아니아니, 이게 아니라~~!! 어이 하야토, 너 뭘 믿고 이렇게 태연자약하냐! 하나뿐인 니 딸이 지금 너보다 나이 많은 놈한테 시집가겠다고 설쳐대는 판국인데! 최소한 허걱, 이라거나 이럴 수가, 라거나, 어느 틈에 내 딸을 꼬드겼냐던가 하다못해 충격 먹고 비틀거리기라도 해야 마땅하지 않아!?"
"왜요?"
"왜라니. 네놈이 아무리 세상을 감만으로 막 살아도 그렇지 왜라니!"
"말이 심하시네... 그렇지만, 늦건 빠르건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걸요. 기정 사실에 일일이 놀랄 만큼 체력 남아돌지 않아요 저."
"알아? ....언제부터?"
"병원에서, 유리 너머로 옹알거리는 마야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네 녀석의 제로는 대체 어디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는 거냐..... 예지해도 정도란 게 있잖아!"
"요즘 트랜스 상태가 잦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제로하고는 상관없어요?"
"문제성 발언을 얼렁뚱땅 전제로 깔지 마!!!"
"─그 애, 제 딸이니까요."
"이 자식, 지금 아주 내추럴하게 씹고 넘어갔겠다. 기왕지사 씹으려면 알아듣게 올바른 국어를 구사해, 알아듣게."
"마야가 들으면 식칼 들고 너 죽고 나 죽자고 펄펄 뛸지 모르는데... 그 앤 사실 아스카보다 제 쪽을 더 많이 닮았거든요."
"....그렇지. 그래서?"
"그래서죠."
"하아?"
양손으로 턱을 괴고, 마치 화끈한 장난을 생각해낸 악동처럼 하야토는 웃었다.
"카자미 하야토의 DNA는 카가 씨에게 이끌리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틀림없이."
옛날부터 낯색 하나 바꾸지 않고 불의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건 이놈의 장기였다.
젠장, 그렇지만 내가 이 나이에 새삼 귓불까지 시뻘개져야겠냐!!
"....미치겠군."
"네?"
"지금. 무지하게 끌어안고 싶어졌어."
"원하시는 대로."
"껴안는 데서 끝나지 않을 확률 100퍼센트다만?"
"언제부터 일일이 눈치 봐 가며 행동에 옮기는 겸허한 인물이 되셨죠?"
"카자미 하야토 한정. 더 이상 미움받으면 아무리 내가 털난 염통이기로서니 감당하기 힘들거든."
"카가 씨 한정으로 뭘 하셔도 용납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위험 발언에도 정도가 있지. 나중에 뭐라고 불평해도 진짜 못 들은 척할 거다?"
"정력도 좋으셔. 생물학적으로 이미 내리막길 된지 오래라고요, 저나 카가 씨나."
"그것도 카자미 하야토 한정."
"영광입니다."
"...아~아, 하지만 진짜 유감이네요."
"뭐가?"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하는 건데. 우리 딸애의 기념할 만한 첫 프로포즈를 최소한 사진으로라도 영구 보존했어야 하는 건데!"
"하지 마!! ;;;"
"초등학교 때 처음 사귄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는 장면은 남겨놨어요. 나중에 들켜서 일주일 간 말도 못 붙였지만."
"이런 팔불출."
"왜요, 귀여웠는데. 생각해 보니 그 남자애, 카가 씨랑 눈매라던가 약간 닮았었네요. 과연."
"노골적으로 감명받지 마라, 응?"
"그런데 정말 어쩌실 거예요?"
"아?"
"손가락까지 거셨다면서."
".........침 천 방 맞고 말란다."
"우와~아 여러분 이 사람 좀 보세요. 글쎄 내 딸을 퇴짜놓겠대─."
"너 뭐냐 대체!?"
"에~그치만, 딸 가진 아버지로서 어느 집에서나 쌍수 들고 대환영할 사윗감을 눈 뻔히 뜨고 놓칠 수야 없잖아요. 아깝게스리."
"빙장 어른과 놀아나는 사위 좋기도 하겠다."
"한때의 젊은 혈기인 셈치고."
"말이 되냐!"
"있죠."
"아?"
"제가 이런 말하기도 좀 우습지만, 마야는 정말 좋은 애예요."
"........."
"카가 씨도 진심으로 좋아하고. ─한때의 스쳐지나가는 동경이나 그런 게 아니라."
"......하야토."
"그리고, 이미 아시겠지만, 저───"
"───하야토!!"
"............."
"이 이상 한 마디만 더 벙긋해봐라. 진짜로 화낸다."
".....예, 죄송해요."
맥없이 웃으면서 기대오는 갈색 머리칼에 손을 얹어 난폭하게 헤집어 놓았다. 짤막한 항의는 이번에도 단호히 무시.
"너 이 자식, 마야짱은 나한테도 딸이나 마찬가지란 건 잊어먹었지. 세상에 딸이랑 결혼하는 애비가 어딨어?"
"아...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렇네."
"나보다 훨씬 끝내주는 사윗감 찾는 일이라면야 기꺼이 협력하마."
"카가 씨는 마야한테서 도망다닐 걱정이나 하세요. 그 애가 어떤 앤데 그리 간단히 포기할까."
"...큭... 하여간 그 녀석 취미하고는...! 왜 하필 나냔 말이다!"
"제 딸이니까요."
"......젠장, 납득이 된다는 게 서글프다....."
"힘내세요!"
"그리고 살다 살다 이렇게 성의없는 응원도 처음 들어본다!"
그 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 인생은 항상 All or Nothing, 0이 아니면 1이었으니까.
─네게 전부 내주거나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
그 중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야짱 네타가 너무 재미있어서 곤란해 미치겠다. 머릿속에서 이렇게 되기까지의 중간 과정이 표로 좌르르르르르륵 정리가 되고 있음. 이러면 안 되는데에에에에에!!! (이토록 즐거운 소재를 떡하니 제공해주신 지벨 님 나쁘셈. 흑흑흑흑흑;) (<-뒤집어씌우기)
미묘하게 전편의 SIDE B-35와 연결되지 않고 있지만 생각없이 막 쓰는 SS가 다 그렇지 뭐 에라이 모르겠다.
만년 신혼 모드인 K/H에게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맹렬하게 권유하고 싶음.
하야토는 진심으로 카가 씨한테 딸내미 시집보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내심 보내고 싶음.
하지만 카가 씨는 All or Nothing의 사는 데 도움 절라 안 되는 피곤한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 하야토에게는 아스라다와 카가 씨와 아스카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점을 찾아내 그 셋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이고 공존시키는 게 가능할지 몰라도 카가 씨는 저어어어어어얼대 불가능할 거라 본다. 한 마디로 흘리는 거 하나 없이 완전히 손에 넣지 못할 바에는 그냥 처음부터 마지막 흔적 하나까지 싹싹 지워버리고 잊어버리는 쪽을 택할 부류란 얘긴데, SIN, 특히 그 빌어먹을 막판에서 가히 저 사람 뭐 잘못 먹었나? ;;; 싶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휘떡 날아가버린 것도 그놈의 제로-섬 근성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결과지 싶음. 어떻게 보면 뼛골까지 속속들이 A형이고 사는 요령 진짜 없는 남자. 아아 애정도가 또 오르고 있다...! ;;; 혹여 나는 카가 씨의 한심함의 한계를 실험하고 있는가? ;;;
하여간 저 K모 씨는 일단 마음을 줄 경우 그 대상자에게 최후의 한 조각까지 내줄 사람이 되어놔서 - 그렇게 못할 바에는 시작부터 안 주고 말거든 - 그런 이유로 마야에게는 (엄청 미안하지만) 승산이 없는 거 되시겠음. 미안타... 쓰는 년 잘못 만나 고생만 고생대로 하고....;;;
하여간 저 All or Nothing은 꼭 한 번 진지하게 다루어보고 싶은 소재다. 앵.스.트!! 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