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만 재미있는 전국 트리비아... 아마도 제 1탄?

불타는 전국의 밤 | 2006/09/16 17:14

1. 사나다 유키무라의 본명은 사실 사나다 노부시게(真田信繁). 우와아 평범해라!!! ;;;;
본디는 신겐이 생전 몹시 아꼈던 동생의 이름이었다고 함. BASARA의 플레이 화면을 눈 크게 뜨고 들여다보면 다케다군에 다케다 노부시게(武田信繁)라는 클론 무장이 하나 있을 텐데 바로 그 사람이다. (실은 진짜 노부시게는 1561년 제 4차 카와나카지마川中島 합전에서 전사했다. 유키무라는 1567년 생. 유령이다...;) 그 무용과 인격에 감명을 받은 유키무라의 아버지 마사유키(昌幸)가 차남에게 그 이름을 주었다던가 어쨌다던가.
그럼 대체 유키무라라는 댑다 희한한 이름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온갖 설만 난립하지 그걸 아무도 모른다;; 일단 당시의 믿을 만한 사료에는 노부시게 자신이 유키무라라는 이름을 썼다는 기록은 저.언.혀. 남아 있지 않음. 후세의 완전 창작일 가능성도 있댄다. 에도 막부가 워낙에 민중에게 인기가 없었던 까닭에 이미 당시부터 평생 도쿠가와에게 철저히 항전한 사나다 일문, 특히 10만 석 봉록 제안을 툭 걷어차고 끝까지 히데요리(秀頼)를 따른 사나다 노부시게의 평판은 하늘을 찌르고 사나다 삼대기(真田三代記)를 비롯해 온갖 팬픽;이 난무했다는데 - 그 와중에 사루토비 사스케를 포함한 사나다 십용사도 은근슬쩍 창작되었다 - 어느 틈엔가 슬그머니 유키무라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범인 누구냣; 하여간 이름을 누가 지었건 간에 다테 가문의 돌림자가 무네(宗)인 것처럼, 사나다 일문의 돌림자인 유키(幸)와 누님 무라마츠히메(村松姫)의 첫글자를 더해서 유키무라(幸村)가 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함. 이게 만약 누군가 팬픽 작가;의 창작이라면 진짜 머리 잘 쓴 셈이다. 노부시게라는 열라 흔해빠지고 딱딱한 이름보다야 유키무라가 훨씬 입에 짝 달라붙고 독특하면서 우아하고 사나다 3대에 통일성도 줄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일석이조. 유키유키라고 부를 수 있으니(...) 나도 유키무라 쪽이 훨씬 좋다.
그나저나 전국 최고의 스타 무장을 아닌 밤중에 바보 변태로 만들어 버린 캡콤의 두둑한 배짱에 건배.

2. 유키무라의 형은 혼담 혼다 타다카츠의 사위.
전국무쌍 2 오프닝에서 사콘과 알딸딸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타다카츠의 딸 이나히메(稲姫 = 코마츠히메小松姫)가 바로 유키무라의 형 사나다 노부유키(真田信幸, 혹은 信之)의 정실이다. (어~이 사콘 당장 떨어져! 남의 마눌님이랑 뭐하냐!) 이에야스가 양녀로 삼았다가 노부유키의 사람됨을 높이 사 시집보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BASARA에 이나히메가 있다면 아부지와 한 판(...)이기를 열렬 희망한다. 건담 매니아(...)인 장남과 하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찍은 게 오슈 필두(...)인 차남. 취미 나쁘기로는 어느 쪽도 마찬가지. 아버지는 지하에서 울고 있다!! (주 : BASARA에서는 마사유키 씨는 이미 사망한 걸로 되어 있음)

3. 전국시대의 막을 내린 오사카성 공방전에서 사나다 유키무라가 전사한 후, 그 유족의 대부분은 다테 가문에 흡수되었다.
유키무라의 셋째 딸 오우메(阿梅)는 코쥬로, 즉 카게쯔나의 장남인 2대 코쥬로 시게나가(重長)의 측실이다. 오사카성 공방전 당시 와병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마사무네 님과 더불어 종군하여 귀신 코쥬로라는 이명을 얻은 시게나가를 평소 눈여겨 본 유키무라가 딸을 맡겼다는 설도 있고, 아버지를 따라 전장에 투신한 오우메에게 반한 시게나가가 쫓아다녀서(...) 잡았다는 설도 있고, 심지어는 유키무라가 마사무네 님을 높이 사서 다테 가문의 장래는 기대할 만하다고 여겨 딸을 보내버렸다는 설도 있음. (꽤액;) 그리고 장남 유키마사(幸昌)는 오사카성에서 아버지와 함께 전사했지만, 차남 다이하치(大八)는 가타쿠라 가에 맡겨져 이후 가타쿠라 쿠메노스케 모리노부(片倉久米之介守信)라 이름하고 다테 가문에 복속했다. (허걱) 2대 타츠노부(辰信)부터는 사나다 성으로 복귀. 이 친구들을 센다이 사나다 일문이라고 한다던가. 참고로 말하자면 다이하치는 교토에서 투석형에 처해진 걸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다테 측에서 정보를 조작했다는 설과 때마침 다테 가에서 죽은 어느 아이와 슬쩍 바꿔쳤다는 설이 있음. (깔깔깔)
모님은 말한다. '차남을 잽싸게 떠맡아서 센다이 사나다 가라는 걸 만들어 버리는 점은, 과연 마사무네 님! 일반인과 스케일이 틀려요!!' (어이)

4. 미야기 현 시로이시(白石) 시에는 사나다 유키무라의 묘가 있다.
역시 마사무네 님의 가신인 타무라 사다히로(田村定広)의 처가 된 유키무라의 여섯번째 딸 오샤부(阿菖蒲)가 시댁의 묘소에 아버지의 비석을 세우고 불공을 드린 게 오늘날까지 남아 있대나. 타무라(田村)가 누구냐 하면 바로 마사무네 님의 정실 메고히메(愛姫)의 친정이고 시로이시는 1602년 센다이 번주가 된 마사무네 님이 가타쿠라 일문에 하사한 봉지임.

5. 일설에 따르면 사나다 일문의 교토 후시미(伏見) 소재 저택은 다테 가문의 저택과 이웃(!!)이었다고 한다. 유키무라와 1대 코쥬로(카게쯔나)는 지기였다나!!

6. 2005년 은영전 스태프가 제작하여 구린 색지정과 아슷흐랄한 전개로 세간의 지탄을 한몸에 받았던 OVA 사나다 십용사에서, 사루토비 사스케의 성우는 호시 소이치로다. (대폭소) 그리고 무려 외계인이다!! (각본가 누구냐!!!!!)
덧붙이자면 키리가쿠레 사이조(霧隠才蔵)는 고야스 다케히토 (데굴데굴데굴)

7. 이에야스는 후계자 히데타다(秀忠)에게 '마사무네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따르도록' 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히데타다는 평소 마사무네 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많은 문제를 상담했다고 한다.
그리고 히데타다는 그 아들 이에미쯔(家光)에게 역시 마사무네 님을 아버지처럼 여기라고 유언하고 있다. 도쿠가와 일문의 전속 아부지인가 마사무네 님은! (깔깔깔)
덤으로 말하자면 행진할 때 말에 매는 장식술을 도쿠가와 일문은 보라색으로 썼는데, 같은 일족에 속하는 가신들이 보라색 술을 사용케 해달라고 청했을 때 완고하게 거부했던 이에미쯔는 유독 마사무네 님에게는 보라색 술을 허가했다고 한다. 짜식, 미중년 좋은 건 알아가지고... (틀려!!)

8. 마사무네 님의 장녀이자 전국 시대의 손꼽히는 미녀였던 이로하히메(五郎八姫)의 이로하는, 사실 郞이 들어간 걸 봐도 알 수 있듯 남자 이름이다.
애처 메고히메의 첫 아이라 당연히 남자일 줄 알고 남자 이름밖에 생각해놓지 않았던 마사무네 님, 새로 짓기 귀찮으셨던지(...) 그냥 지은 그대로 써먹으셨음. 애 이름은 신중하게 지읍시다요...;;;

9. 마사무네 님은 측간(...)에 필기구와 서탁(...)을 두고 아침마다 대략 한 시간씩 처박혀 정신도 좀 차리고 하루의 예정을 세우셨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신문을 읽는 아버지 감각;

10. 마사무네 님은 아침나절부터 대여섯 대를 피워대고 담뱃대를 물고 산 엄청난 헤비스모커에 폭음가. 술에 진탕 취해 칼집으로 시동을 두들겨팬 적도 있다고 함. (爆)

11.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던 마사무네 님의 요리 철학은 '양보다 질'. 100가지 1000가지를 내는 것보다 계절에 맞고 정성을 담은 한두 가지를 올리는 것이 옳다고 평소 늘 주장하셨다나.

11. 생년월일을 가지고 따질 때 마사무네 님이 19세일 경우 쵸소가베 모토치카는 47세, 모리 모토나리는 89세.
모리 모토나리(1497년 생)는 사실 시마즈 영감님(1535년 생)보다도 훠얼씬 윗세대다. (爆) 그렇구나! 오크라의 요정이라 나이를 안 먹는구나! (틀려;)

12. 신겐 공은 애벌레를 무지무지하게 무서워하여(....) 입으로는 까짓 벌레쯤 무섭지 않다고 하면서도 일단 시야에만 들어오면 새파랗게 질려 덜덜덜덜덜 떨었다고 한다!!
마사무네 님도 그렇고 전국 무장들은 어째서 다들 이 모양이냐 (대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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