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치 파파의 애니 데뷔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을 기념한 백업 제 3탄.
이번에도 축하할 마음이 정말 있긴 하냐고 따지고픈 묵직한 시리어스지만 어쩔 수 없다;
존경해 마지 않는 교주님 토오노 사쿠라코(遠野桜子) 님(사이트명 BLUE KINGDOM)의 또다른 걸작, <그대의 품에 꽃다발을(君の手に花束を)> 나갑니다. 문제 되면 물론 싹싹 지워버릴 예정인 거야 언제나와 마찬가지. 그나마 예전 물건보다는 창작이 좀 덜하군;
...and less.
너의 상냥함과, 너의 잔혹함과.
그리고 무엇보다, 너의 행복을 마음 속에.
언제나, 내 마음에.
"춥다.................."
나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옷깃을 바싹 여몄다.
심야의 공원은, <밤>의 존재를 피부로 바싹 느끼게 한다. 흔들거리는 그네의 끼익끼익 하는 높은 소리, 미끄럼틀의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 낮에는 도로를 빠져나가는 자동차의 소음과 아이들의 환호성에 묻혀 버려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시끄럽다며 화내지는 않을까 괜히 걱정도 해 볼 만큼, 크고, 선명하게, 고막을 뒤흔든다.
"카이토?"
타박타박.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온 신이치(真一)가, 벤치에 걸터앉아 있는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피곤해?"
"그런 거 아냐."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눈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내가 피곤해. 집에 가자."
흙 묻은 손을 탁탁 털어낸다. 대체 언제 그런 식으로 마음을 쓰는 법을 배운 걸까.
"그럼, 슬슬 돌아갈까."
그다지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을 써 주는 것이 귀여워서, 푸웃 웃고, 나는 신이치의 자그마한 손을 잡았다. 작은 손. 그래도 기저귀를 간답시고 진땀을 줄줄 흘리던 그 무렵에 비하면, 정말로 많이 자랐다. 포동포동하고, 이쪽에서 손가락을 내밀면, 무심코 놓았다간 세계가 끝장나 버릴 것 같은 엄청난 힘으로 움켜쥐곤 했다. 조건 반사에서 오는 행동이라는 것쯤은 뻔히 알면서도, 뭔지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서, 틈만 있으면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어디 놀러도 갔었어?"
"으으응. 아, 유원지 가자곤 했었지만, 결국 안 갔어."
"박사님, 몸이라도 안 좋으셨니?"
공연이 있었던 1주일 동안, 나는 신이치를 박사님께 맡겨두었다. 방금 전에야 가까스로 돌아와 역에서 곧바로 맞으러 갔다 온 참이다.
데리고 갈 수도 있었지만, 운 나쁘게 스포츠 신문 기자의 눈에라도 뜨여 같잖은 기사거리라도 되는 날에는 보통 귀찮아지는 것이 아니어서 포기해 버렸다. 「젊은 여성에게 인기 높은 마술사, 알고 보니 미혼의 아버지였다!?」라는 헤드라인이 1면에 큼지막히 박힌 신문이, 딱 「!?」부분만 안 보이도록 요령 좋게 반으로 접혀 가판대에 줄줄이 진열되겠지. 상상만 해도 썰렁하다.
"박사님, 이것저것 많이 만들고, 즐거워 보여서 계─속 옆에서 보고 있었어. 카이토한테도 선물하라고 하나 주셨다. 수상한 사람 격퇴용이라구."
".........그거 반가운걸."
바로 얼마 전, 이웃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하교길에 유괴당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박사님의 마음씀씀이는 모르는 바도 아니고 고맙기도 하지만, 대체 이번엔 얼마나 터무니없는 물건일지 걱정이 앞선다. 범죄자를 붙잡고도 위험물소지죄로 걸릴 만한 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아 참, 그리구, 아유미 누나랑 형들이 놀러왔었다. 학교랑 뭐랑, 많이 얘기해줬어."
"그래? 재미있었겠네."
"응."
행복하게 웃는다. 신이치는 아유미짱을 제일 좋아한다. 유치원에 다닐 때, 일이 바빠 데리러 가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마중나가 주기도 해서, 신이치에게는 친누나나 다름없고, 살짝 귀뜸하자면, 첫사랑의 상대이기도 하다. 아유미짱은 귀여우니까. 학교에서도 인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소꿉친구 둘이 입을 모아 투덜댔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주님을 지켜야지, 기사 여러분.
"카이토는 재미있었어?"
"물론. 재미있었어. 대성공이었고."
"TV 봤어. 진짜 굉장했어. 다들 깜짝 놀랐다니까. 있지 있지, 마지막에 보여 준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마술, 어떻게 하는 거야? 어디 딴 곳에 숨어 있었던 거야?"
"노 코멘트. 마법사만의 비밀입니다."
"체에. 비밀 비밀 비밀 비밀. 카이토는 만날 비밀이래. 됐어. 나중에 알아서 맞출 거야."
신이치가 부었다.
"꼭."
입술을 삐죽대는 신이치를 보며, 나는 웃었다.
'꼭.'
또 다른 신이치도 그랬었다. 그렇게 말했었다. 내 눈을 들여다보며, 장마철의 비 올 확률을 나열하는 것보다도 가벼운 어조로,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럼.'
그리고는 나풀나풀 흩날리는 눈 속으로 달려가 버렸다. 집 앞 편의점에라도 가는 것 마냥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반드시.'
아무런 보장도 되지 않는 말만을 남기고, 그는 하얀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 카이토, 지금 웃기지 말라구 생각했지."
내가 웃자, 신이치는 불만이 꽉 낀 얼굴로 꼭 잡고 있던 내 손등을 다른 손으로 찰싹 때렸다.
"나한텐 절대 무리라고 말야!"
"그럴 리가 그럴 리가."
"그럼, 맞거든 꼭 정답이라고 말해 줘야 돼. 빼지 말고."
"안 그런다니까. 못 믿는 거야?"
"아니지만....."
갑자기, 혼날 짓을 했을 때처럼 곤란한 표정이 되어, 신이치는 내 손을 잡은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조건 반사 같은 건, 아주 오래 전에 없어져 버린 손.
조그마한, 손.
"카이토, 가끔씩 대답 안 해 주잖아."
그 말만 하고, 신이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거, 난 싫어."
"신이치......"
윤기 흐르는 까만 머리칼에, 가로등의 빛이 부딪힌다. 불어오는 바람에 살포시 흩날리는 머리카락. 나는 입을 닫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사실을 알고 싶어."
밤의 공기를 뒤흔드는 한 마디. 무엇인가가 내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 얼핏 아물었다가 금세 곪아버리는 가슴 속의 상처를, 정면에서부터 쥐어뜯는다. 선명한 고통. 몸이 차게 얼어붙는다. 머리 속에서, 나 자신을 깊숙이 묻으려는 듯이 흩날리는, 보이지 않는 눈.
눈, 새하얀 눈.
마지막으로 본 뒷모습을 지우고 만, 냉담한 육각의 꽃.
그리고, 새하얀 신이치를 데리고 온 것.
'당신에게, 맡기고 싶어.'
머리와 어깨를 온통 덮은 눈을 털지도 않고, 그 눈보다도 희게 바랜 얼굴의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미안해.'
반 강제로 집안에 들이자,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떠듬떠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본 모습을 되찾아도, 눈 깜짝할 사이에 노화하여 죽던가, 설령 늙지 않아도 얼마 못 가 목숨을 잃던가, 둘 중의 하나. 단 한 가닥 길을 제외하고는, 그런 결말밖에는 없었다고.
모든 것을 <초기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얇은 코트 한 장만을 걸친 그녀가 모포로 몇 겹이고 감싸 안고 온 것은, 아주, 아주 작고 어린 아기였다.
'그 사람이 선택한 게 아니야.'
그라면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할 것이라 여겼었다. 의문을 입에 담기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이렇게 하도록 했어.'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내가, 그 사람을 떠밀었어.'
'이렇게 되도록 떠다밀었어.'
『그 녀석은 뭐든지 심각하게만 생각한다니까.』
신이치가 웃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너도, 쓰잘데없이 나불나불 떠들지 마라.』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녀도, 그녀의 슬픔도, 한없이 소중하게 감싸안고 있었다.
'잘 부탁해.'
어째서 내게 맡겼는지는, 끝까지 묻지 못했다. 지금도 모르고 있다. 얼굴이 닮았기 때문이었는지, 위급하면 웬만한 의사 노릇에서부터 자잘한 처치까지 너끈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거절하지 못하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는지. 그 이전에,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아기를 안고 가는 젊은 어머니로 보이기 위해서, 단지 그것만을 위해 약을 먹었던 그녀는,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해 주지 않고, 한 달 후, 급격하게 노쇠한 몸으로 세상을 떴다.
나는 그 아이에게 「真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新一」라고는, 할 수 없었다.
"신이치."
굳어진 혀를 어떻게든 움직여 이름을 부르자, 신이치는 느릿하게 얼굴을 들었다.
"신이치는, 사실을, 알고 싶어?"
눈을 들여다보았다.
"응."
고개를 끄덕인다. 작은 손이 내 손을 꼬옥 맞잡았다.
"나는, 사실이 좋아."
진실이.
초기화된 세포에, 기억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분명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얼핏 스치는 향기에 그리움을 느끼는 것처럼, 꿈을 반추하는 것처럼, 기억은 발자취를 남기는 것일까.
시선을 주고받은 빌딩의 옥상. 서로의 뒷모습을 좇은 한밤중의 거리. 추락 직전의 낭떠러지에서 움켜잡은 손.
이 작은 눈에, 이토록 자그마한 손에, 나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을까.
언뜻, 자그마한 손의 온기가 사라진다. 신이치가, 내 손을 놓고 길을 달려간다.
조그마한 뒷모습.
가로등이 불빛을 던지고 있는 곳에서, 몸을 돌린다.
"그러니까─! 카이토의 비밀은, 내가 꼭, 전부 맞출 거야!"
자그마한 팔을 한껏 벌린다.
"꼭, 꼬옥, 전부 다!"
'꼭.'
'반드시, 돌아올 거야.'
'그때만 되어 봐라. 거꾸로 휘어잡고 네 녀석의 비밀이란 비밀은 모조리 탈탈 털어낼 테다. 각오하고 있어.'
'반드시.'
가슴 속에서, 눈송이가 흩날린다. 새하얀 꽃이, 무참히 드러난 상처를 파묻고 있다. 한없는 냉담함으로 파고들며, 한편 모든 것을 지워 버리려는 듯이.
"카이토."
그 너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신이치가, 팔을 활짝 벌리고 웃고 있다.
웃고 있다.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신이치의 손을 잡아당겨, 끌어안았다.
"신이치."
자그마한 손. 이번에야말로 그 손에 행복을 안겨줘야 한다고 믿었다. 믿었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다. 모든 기억을 잊은 그는 더 이상 그가 아니다. 이 아이에게는, 다른 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다른 인생을 살고, 다른 행복을 잡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다 해도. 이 손은 언제까지 내 손을 잡아줄 것인가. 내 손을 맞잡아 줄 것인가.
그리고, 이 손이 아무리 자란다 한들 결코 변하지 않을 나를, 정지해 버린 시간의 흐름을 알게 되는 그때도, 변함없이 내 손을 잡아줄 것인가.
영원한 고독에, 기꺼이 팔을 벌려줄 것인가.
'네 녀석의 비밀이란 비밀은, 모조리 털어낼 테니까.'
그래도 그는, 내게 손을 내밀어 줄 것인가.
결코 진실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걸까.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양팔로 한껏 끌어안았다. 어깨에 얼굴을 묻어본다. 어린애 특유의, 그러나 어딘가, 그리운 향기.
"카이토?"
"신이치."
"응."
"신이치."
"......응."
"........신이치(新一)."
"..............응."
조그마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얼음이 녹아내리듯, 무턱대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넘쳐서, 넘쳐흘러서, 멈추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신이치."
"응."
멈추지 않아. 어떻게 해도, 아무리 해도, 멈추지 않아.
'또 보자, 카이토.'
모든 것은 이미, 새하얀 눈의 저 너머에.
너의 상냥함과, 너의 잔혹함과.
그리고 무엇보다, 너의 행복을 마음 속에.
언제나, 내 마음에.
그대의 품에 꽃다발을 |
"춥다.................."
나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옷깃을 바싹 여몄다.
심야의 공원은, <밤>의 존재를 피부로 바싹 느끼게 한다. 흔들거리는 그네의 끼익끼익 하는 높은 소리, 미끄럼틀의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 낮에는 도로를 빠져나가는 자동차의 소음과 아이들의 환호성에 묻혀 버려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시끄럽다며 화내지는 않을까 괜히 걱정도 해 볼 만큼, 크고, 선명하게, 고막을 뒤흔든다.
"카이토?"
타박타박.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온 신이치(真一)가, 벤치에 걸터앉아 있는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피곤해?"
"그런 거 아냐."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눈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내가 피곤해. 집에 가자."
흙 묻은 손을 탁탁 털어낸다. 대체 언제 그런 식으로 마음을 쓰는 법을 배운 걸까.
"그럼, 슬슬 돌아갈까."
그다지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을 써 주는 것이 귀여워서, 푸웃 웃고, 나는 신이치의 자그마한 손을 잡았다. 작은 손. 그래도 기저귀를 간답시고 진땀을 줄줄 흘리던 그 무렵에 비하면, 정말로 많이 자랐다. 포동포동하고, 이쪽에서 손가락을 내밀면, 무심코 놓았다간 세계가 끝장나 버릴 것 같은 엄청난 힘으로 움켜쥐곤 했다. 조건 반사에서 오는 행동이라는 것쯤은 뻔히 알면서도, 뭔지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서, 틈만 있으면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어디 놀러도 갔었어?"
"으으응. 아, 유원지 가자곤 했었지만, 결국 안 갔어."
"박사님, 몸이라도 안 좋으셨니?"
공연이 있었던 1주일 동안, 나는 신이치를 박사님께 맡겨두었다. 방금 전에야 가까스로 돌아와 역에서 곧바로 맞으러 갔다 온 참이다.
데리고 갈 수도 있었지만, 운 나쁘게 스포츠 신문 기자의 눈에라도 뜨여 같잖은 기사거리라도 되는 날에는 보통 귀찮아지는 것이 아니어서 포기해 버렸다. 「젊은 여성에게 인기 높은 마술사, 알고 보니 미혼의 아버지였다!?」라는 헤드라인이 1면에 큼지막히 박힌 신문이, 딱 「!?」부분만 안 보이도록 요령 좋게 반으로 접혀 가판대에 줄줄이 진열되겠지. 상상만 해도 썰렁하다.
"박사님, 이것저것 많이 만들고, 즐거워 보여서 계─속 옆에서 보고 있었어. 카이토한테도 선물하라고 하나 주셨다. 수상한 사람 격퇴용이라구."
".........그거 반가운걸."
바로 얼마 전, 이웃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하교길에 유괴당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박사님의 마음씀씀이는 모르는 바도 아니고 고맙기도 하지만, 대체 이번엔 얼마나 터무니없는 물건일지 걱정이 앞선다. 범죄자를 붙잡고도 위험물소지죄로 걸릴 만한 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아 참, 그리구, 아유미 누나랑 형들이 놀러왔었다. 학교랑 뭐랑, 많이 얘기해줬어."
"그래? 재미있었겠네."
"응."
행복하게 웃는다. 신이치는 아유미짱을 제일 좋아한다. 유치원에 다닐 때, 일이 바빠 데리러 가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마중나가 주기도 해서, 신이치에게는 친누나나 다름없고, 살짝 귀뜸하자면, 첫사랑의 상대이기도 하다. 아유미짱은 귀여우니까. 학교에서도 인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소꿉친구 둘이 입을 모아 투덜댔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주님을 지켜야지, 기사 여러분.
"카이토는 재미있었어?"
"물론. 재미있었어. 대성공이었고."
"TV 봤어. 진짜 굉장했어. 다들 깜짝 놀랐다니까. 있지 있지, 마지막에 보여 준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마술, 어떻게 하는 거야? 어디 딴 곳에 숨어 있었던 거야?"
"노 코멘트. 마법사만의 비밀입니다."
"체에. 비밀 비밀 비밀 비밀. 카이토는 만날 비밀이래. 됐어. 나중에 알아서 맞출 거야."
신이치가 부었다.
"꼭."
입술을 삐죽대는 신이치를 보며, 나는 웃었다.
'꼭.'
또 다른 신이치도 그랬었다. 그렇게 말했었다. 내 눈을 들여다보며, 장마철의 비 올 확률을 나열하는 것보다도 가벼운 어조로,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럼.'
그리고는 나풀나풀 흩날리는 눈 속으로 달려가 버렸다. 집 앞 편의점에라도 가는 것 마냥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반드시.'
아무런 보장도 되지 않는 말만을 남기고, 그는 하얀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 카이토, 지금 웃기지 말라구 생각했지."
내가 웃자, 신이치는 불만이 꽉 낀 얼굴로 꼭 잡고 있던 내 손등을 다른 손으로 찰싹 때렸다.
"나한텐 절대 무리라고 말야!"
"그럴 리가 그럴 리가."
"그럼, 맞거든 꼭 정답이라고 말해 줘야 돼. 빼지 말고."
"안 그런다니까. 못 믿는 거야?"
"아니지만....."
갑자기, 혼날 짓을 했을 때처럼 곤란한 표정이 되어, 신이치는 내 손을 잡은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조건 반사 같은 건, 아주 오래 전에 없어져 버린 손.
조그마한, 손.
"카이토, 가끔씩 대답 안 해 주잖아."
그 말만 하고, 신이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거, 난 싫어."
"신이치......"
윤기 흐르는 까만 머리칼에, 가로등의 빛이 부딪힌다. 불어오는 바람에 살포시 흩날리는 머리카락. 나는 입을 닫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사실을 알고 싶어."
밤의 공기를 뒤흔드는 한 마디. 무엇인가가 내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 얼핏 아물었다가 금세 곪아버리는 가슴 속의 상처를, 정면에서부터 쥐어뜯는다. 선명한 고통. 몸이 차게 얼어붙는다. 머리 속에서, 나 자신을 깊숙이 묻으려는 듯이 흩날리는, 보이지 않는 눈.
눈, 새하얀 눈.
마지막으로 본 뒷모습을 지우고 만, 냉담한 육각의 꽃.
그리고, 새하얀 신이치를 데리고 온 것.
'당신에게, 맡기고 싶어.'
머리와 어깨를 온통 덮은 눈을 털지도 않고, 그 눈보다도 희게 바랜 얼굴의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미안해.'
반 강제로 집안에 들이자,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떠듬떠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본 모습을 되찾아도, 눈 깜짝할 사이에 노화하여 죽던가, 설령 늙지 않아도 얼마 못 가 목숨을 잃던가, 둘 중의 하나. 단 한 가닥 길을 제외하고는, 그런 결말밖에는 없었다고.
모든 것을 <초기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얇은 코트 한 장만을 걸친 그녀가 모포로 몇 겹이고 감싸 안고 온 것은, 아주, 아주 작고 어린 아기였다.
'그 사람이 선택한 게 아니야.'
그라면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할 것이라 여겼었다. 의문을 입에 담기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이렇게 하도록 했어.'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내가, 그 사람을 떠밀었어.'
'이렇게 되도록 떠다밀었어.'
『그 녀석은 뭐든지 심각하게만 생각한다니까.』
신이치가 웃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너도, 쓰잘데없이 나불나불 떠들지 마라.』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녀도, 그녀의 슬픔도, 한없이 소중하게 감싸안고 있었다.
'잘 부탁해.'
어째서 내게 맡겼는지는, 끝까지 묻지 못했다. 지금도 모르고 있다. 얼굴이 닮았기 때문이었는지, 위급하면 웬만한 의사 노릇에서부터 자잘한 처치까지 너끈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거절하지 못하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는지. 그 이전에,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아기를 안고 가는 젊은 어머니로 보이기 위해서, 단지 그것만을 위해 약을 먹었던 그녀는,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해 주지 않고, 한 달 후, 급격하게 노쇠한 몸으로 세상을 떴다.
나는 그 아이에게 「真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新一」라고는, 할 수 없었다.
"신이치."
굳어진 혀를 어떻게든 움직여 이름을 부르자, 신이치는 느릿하게 얼굴을 들었다.
"신이치는, 사실을, 알고 싶어?"
눈을 들여다보았다.
"응."
고개를 끄덕인다. 작은 손이 내 손을 꼬옥 맞잡았다.
"나는, 사실이 좋아."
진실이.
초기화된 세포에, 기억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분명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얼핏 스치는 향기에 그리움을 느끼는 것처럼, 꿈을 반추하는 것처럼, 기억은 발자취를 남기는 것일까.
시선을 주고받은 빌딩의 옥상. 서로의 뒷모습을 좇은 한밤중의 거리. 추락 직전의 낭떠러지에서 움켜잡은 손.
이 작은 눈에, 이토록 자그마한 손에, 나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을까.
언뜻, 자그마한 손의 온기가 사라진다. 신이치가, 내 손을 놓고 길을 달려간다.
조그마한 뒷모습.
가로등이 불빛을 던지고 있는 곳에서, 몸을 돌린다.
"그러니까─! 카이토의 비밀은, 내가 꼭, 전부 맞출 거야!"
자그마한 팔을 한껏 벌린다.
"꼭, 꼬옥, 전부 다!"
'꼭.'
'반드시, 돌아올 거야.'
'그때만 되어 봐라. 거꾸로 휘어잡고 네 녀석의 비밀이란 비밀은 모조리 탈탈 털어낼 테다. 각오하고 있어.'
'반드시.'
가슴 속에서, 눈송이가 흩날린다. 새하얀 꽃이, 무참히 드러난 상처를 파묻고 있다. 한없는 냉담함으로 파고들며, 한편 모든 것을 지워 버리려는 듯이.
"카이토."
그 너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신이치가, 팔을 활짝 벌리고 웃고 있다.
웃고 있다.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신이치의 손을 잡아당겨, 끌어안았다.
"신이치."
자그마한 손. 이번에야말로 그 손에 행복을 안겨줘야 한다고 믿었다. 믿었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다. 모든 기억을 잊은 그는 더 이상 그가 아니다. 이 아이에게는, 다른 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다른 인생을 살고, 다른 행복을 잡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다 해도. 이 손은 언제까지 내 손을 잡아줄 것인가. 내 손을 맞잡아 줄 것인가.
그리고, 이 손이 아무리 자란다 한들 결코 변하지 않을 나를, 정지해 버린 시간의 흐름을 알게 되는 그때도, 변함없이 내 손을 잡아줄 것인가.
영원한 고독에, 기꺼이 팔을 벌려줄 것인가.
'네 녀석의 비밀이란 비밀은, 모조리 털어낼 테니까.'
그래도 그는, 내게 손을 내밀어 줄 것인가.
결코 진실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걸까.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양팔로 한껏 끌어안았다. 어깨에 얼굴을 묻어본다. 어린애 특유의, 그러나 어딘가, 그리운 향기.
"카이토?"
"신이치."
"응."
"신이치."
"......응."
"........신이치(新一)."
"..............응."
조그마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얼음이 녹아내리듯, 무턱대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넘쳐서, 넘쳐흘러서, 멈추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신이치."
"응."
멈추지 않아. 어떻게 해도, 아무리 해도, 멈추지 않아.
'또 보자, 카이토.'
모든 것은 이미, 새하얀 눈의 저 너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