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세상을 사는 나날 ③ : 제 1차 회담 플러스 알파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07/06/13 21:53

지벨 님과 더불어 '삼국도 전국도 울궈먹을 대로 울궈먹었으니 슬슬 막말무쌍을 내놓아라 돈에이 내놓지 않으면 구워살라 먹으리'를 저주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S입니다. 부장만 미인이고 제 1의상이 교토 버전(포니테일), 제 2의상이 하코다테 버전(단발)이기만 하면 뭔 깽판을 쳐도 다 용서하겠다니까?
실은 방금 전 일본 쪽 블로그에서 막말 BASARA에 대한 열망으로 꺄아꺄아거리는 여인네를 발견했음. 동인녀의 망상은 거기가 그거요 우리는 모두 한 자매. 이 유전자를 물려준 건 태초의 여덟 이브 중 대체 어느 썩을 년이냐.

하여간 아닌 밤중에 쓸데없이 개폭한 대목 한 개.

「그러나 실은, <다카스기 신사쿠>라는 이름이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것이다. 하기(萩)의 속론당(俗論党) 정부가 공포에 사로잡힌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다카스기가 자석이 되어, 철분을 급속히 빨아들일 위험성이 크다.
번내에는 불평분자가 많았다. 개중에서 대표적인 존재는, 민병으로 구성된 기병대 이하 <제대(諸隊)>였다. 당장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에게 있어 최악의 정세 하에 몸을 옹송그리고 있지만, 나방이 등불을 갈망하여 모여들듯이 바칸(馬関)에 있는 신사쿠의 밑으로 내달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자칫하면 일대 세력이 되리라고, 하기의 번 정부는 판단하였다」(<세상을 사는 나날> 신장판 4권 47page)

이상, 예상되는 소라치의 애독서 목록에 <세상을 사는 나날> 추가. 당신 실은 시바료 빠돌이지 이 사람아? (타레메)
나는 막말의 그 하고많은 거상들, 발에 채일 만큼 널려 있는 자들 중에서 하필 사람이 없어 다카타야 카헤에(高田屋嘉兵衛)를 고른 것 역시 순전히 시바탱의 <유채꽃의 바다(菜の花の沖)> 때문은 아니었나 무진장 강력하게 의심하고 있다. 점프 만화만 읽고 자란 냄새가 풀풀 나는 딴 작가 놈들이라면 코끝으로 비웃고 넘어가겠으나 <불타라 검>의 열렬한 팬이며 <새벽의 저주>와 <스타워즈>를 사랑하고 <귀신 헤이조 범죄첩(鬼平犯科帳)>을 좋아하며 <노부나가의 야망>을 즐겨 플레이하고 은근슬쩍 다테 마사무네를 편애하는 듯한 - 어디까지나 전부 짐작이라는 게 이 남자의 얄미운 점 - 소라치라면 가능한 얘기닷.

서론(?)이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현재 <토시조 살아서 다시>가 함부로 모에 타령을 할 수 없는 비극으로 흘러가고 있는 관계로 (담담한 어조로 사람 눈물을 좍좍 뽑지 말란 말이다! 나.쁜.년!!) 자중하는 의미에서 - 어디가 자중? - 의미도 없이 <세상을 사는 나날>로 내달려 보는 S.


시바 료타로 作 <세상을 사는 나날> 신장판 제 3권 213page~218page

장관실에서, 쌍방이 대면하였다.
영국 측은, 쿠퍼 제독과 그 외 몇 명, 통역으로는 사토우 외에도 두 명이 더 참석하였다. 죠슈번은 대표인 시시도를 부사(副使) 두 명이 수행하고, 통역인 이토 슌스케가 빈틈없는 시선으로 탁자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시시도의 모습에 대하여 사토우는,
「마왕과도 같은 오연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고 묘사하였다.
신사쿠는, 부사를 통해 예의 「일본방장국주(日本防長国主)」 명의의 「강화서(講和書)」를 건네었다. 쿠퍼로서는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일본방장국주(日本防長国主)」의 문서는 이제까지의 양이 활동을 해명하고 있을 뿐, 항복하는지 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이래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소」
사령관 쿠퍼는, 갈색 눈동자를 신사쿠에게 못박고 말했다. 쿠퍼의 주장에 따르면, 죠슈는 패배했으며, 여러분은 항복하고자 온 것이고, 따라서 사죄장을 지참하지 않는 이상 교섭에는 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항복」
통역 사토우는 그런 표현을 썼다. 이 문서의 어디에도 항복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지 않다고도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마왕은 구태여 사토우를 묵살하고 쿠퍼를 지그시 바라보다, 마침내 「그걸로 됐소이다」라고 말했다.
「방장국주의 문서에는 이후 외국 선함의 시모노세키 해협 통과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되어 있소. 즉 강화를 맺겠다는 의미요. 듣자하니 통역관은 항복을 운운하외만, 일본어에서 항복이란 전쟁에 패배했을 때 쓰이는 말이올시다. 한 번 생각해 보시오. 죠슈번이 전쟁에서 졌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이 말에는 쿠퍼도 사토우도 놀랐다.
쿠퍼는 웃음을 터뜨리고, 선창으로 내다보이는 해안의 풍경을 가리키며, 귀관은 저러고도 지지 않았다고 우기실 작정이시오, 라고 말했다. 포대(砲台)는 파괴되고, 각 지점은 육전대에게 점령되어 대포는 노획당하지 않으면 바다에 버려졌다.
마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지 않았소」
신사쿠는, 그까짓 포대 대여섯쯤,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드리겠으나 전투의 승패는 그러한 것이 아니며, 귀함대의 육전 병력은 불과 2~3천일 뿐이지만 죠슈번은 단지 방장 2개국에 지나지 않으나 20만에서 30만은 동원할 수 있다, 작정하고 육지전을 벌인다면 패배는 오히려 귀국의 몫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강화를 맺으러 왔다, 그러나 항복하러 오지는 않았음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고, 낭랑하게 울리는 어조로 잘라 말했다. 쿠퍼는 사토우의 통역을 듣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쿠퍼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결국 죠슈는 전쟁에서 패배해 강화를 요청하고자 온 것이다.
「다만 이 문서에」
쿠퍼가 말했다.
「모리 씨의 서명이 없는 것은 용납할 수 없소. 이런 경우, 일본방장국주라는 직함만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리 씨 스스로 나와주셔야만 하겠소」
그야 그렇다. 일본의 번주란 어지간히 도도하지만, 쿠퍼 역시 대영제국 국왕의 대리인이다. 모리 가의 가신을 붙들고 토론해야만 할 입장은 결코 아니었다.
「주공은 와병 중이시오」
마왕은 말했다. 더구나, 가신단이 교토에 난입한 죄로 인하여 칙명으로 문책을 받고, 근신하며 공적인 장소에 나가기를 일절 삼가고 있다고도 말했다. 사토우는 쉽사리 이해하였다. 그는 일본의 형벌 중에 <근신>이라는 묘한 풍습이 있으며, 그 형벌이라는 것은 자율적으로 스스로를 자택에 감금된 수인(囚人)으로 삼고, 문앞에 대나무를 심고, 창에 못질을 하고, 문을 닫고 외부와의 왕래를 피하는 일임도 알고 있었다. 이 기묘한 관습은 오래 전부터 유럽의 일본 소개서에 실려 있어,
──일본인은 경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벌하기 때문이다.
이런 속설까지 떠도는 것도 어네스트 사토우는 환하게 알았다.
그 뒤를 이어 여러가지 세세한 조건이 의제로 올랐으나, 이날은 소위 교섭단이 면식을 트는 정도의 의미가 있었을 뿐, 결론을 내기에는 아직 일렀다.
마지막으로 쿠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들이대었다. 배상금 문제였다. 서양에서는 전쟁에 이긴 쪽이 패자에게 계산서를 내민다. 승리를 거두기까지 소요된 일체의 경비를 패자가 지불하는 것으로, 유럽에서는 전쟁이건 민사소송이건 이러한 도리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요코하마에서 시모노세키까지 함대가 항해하는 데 든 석탄값, 배의 소모에 든 비용, 병사의 급료, 전사자 여덟 명과 부상자 서른 명에 대한 위자료, 발사한 포탄의 비용에까지 미친다.
「삼백만 달러」
쿠퍼가 말했다. 그때까지 줄곧 오연한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았던 마왕도 이 요구에는 기가 막혔던지, 처음으로 얼굴을 이토에게로 향했다. 죠슈번이 50년 걸려도 다 지불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
이토가 입을 열었다. 이토의 영어는 너무나도 형편없어, 쿠퍼는 10퍼센트도 이해하지 못했다. 요약하자면 죠슈번은 수확량이 기껏해야 36만석 가량에 불과하며, 그 중 절반은 농민의 것이고, 나머지는 수많은 가신들을 부양하는데 쓰인다, 번주 자신의 수입은 불과 6만 석이고, 이걸로 군사비용을 대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도저히 변제 능력이 없다고, 이토는 말했다.
「전쟁이란 당초에 돈의 계산부터 시작하고 들어가야 하는 일이오. 죠슈인이 양이를 관철하는 것도 좋으나, 패배했을 시에는 어느 정도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지 면밀히 계산한 후 그에 기초하여 착수해야 했었소. 이제 와서 돈이 없다고 해보았자 세계의 통념이 용서할 성 싶소이까」
「과연」
마왕은 서양인의 사고방식이 흥미로운 듯 무릎을 치며 감탄을 표했지만, 그러나 직후에 나온 말은 제독에게는 심히 의외의 발언이었다.
「수사제독(水師提督=쿠퍼)의 말씀은 분명히 이해했소. 허나 죠슈번의 양이는 당번(當藩)의 자의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외다. 조정과 막부의 명에 의한 것이었소. 죠슈번은 기껏해야 철포에 지나지 않소. 발사한 자는 막부요. 그 삼백만 달러는 막부에 요구하셔야겠소」
신사쿠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일본의 정세에 밝은 사토우는 금세 깨달았다. 막부는, 지난 분큐(文久) 3년(1863), 배후의 죠슈번에게 부채질당한 조정에게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양이의 명을 내렸다. 여타 번은 막부의 곤란한 입장을 알고 있는 만큼 양이를 단행하기에 이르지 않았으나, 죠슈번은 기다렸다는 듯이 돌진하였다. 따라서 죠슈번은 어디까지나 막부의 명을 좇아 양이에 나섰다는 주장에는 법 해석풍으로 따져봐도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
더구나 마왕 일행은 참으로 용의주도하게도 조정과 막부의 양이명령서까지 챙겨가지고 왔던 것이다. 부사 중 하나인 와타나베라는 자가 명령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영/미/불/란 4개국 연합함대에 시모노세키가 개박살;이 난 후 어마 뜨거라 싶어진 죠슈가 단단히 앵돌아진 몬타를 애써 달래고 옥에 처박혀 있던 신사쿠를 허겁지겁 끌어내 사절로 기함 율리안스 호에 파견한 결과는 위와 같았다(...). 왜 뜬금없이 시시도인가 하면 사태가 사태인 만큼 사신도 그에 걸맞는 지위를 지녀야 한다는 의미에서 죠슈번의 필두 가신 중 하나인 시시도 비젠(宍戸備前)의 양자, 그러니까 필두 가신 가문 출신이라는 명목을 달고 출동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강화지 사실상 항복 사절로 간 주제에 지네 주장할 건 다 챙겨먹는 저 개배짱을 보라! 덤으로 말하자면 쿠퍼와 사토우는 오히려 이 튕기는 뱃심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심(...).
어쨌건 왜 다들 마왕 마왕 하는가 했더니 사토우의 표현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아 놔 누가 오다 노부나가 팬 아니랄까 봐서 (폭소)

이 자리에서 신사쿠가 부려대는 땡깡(...)은 실상 이케미야 쇼이치로 버전이 더욱 끝내주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야마오카 소하치 버전도 짱으로 웃김;)
고백하자면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신사쿠가 번개같이; 튀었다가 복귀한 이후의 제 2차 회담은 이보다 더 걸작이다;

덤 하나. 어네스트 사토우라니 시바탱 말마따나 무슨 영국 귀화 일본인 같은 이름이지만 확인해 본 결과 정말로 Ernest Satow였음. 괴상한 성이로세.

덤 둘. 오늘 <흑룡의 관>과 <히지카타 토시조 산화>와 소하치의 <다카스기 신사쿠> 도착. 언제 다 읽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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