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란편을 재독한 이후의 짤막한 잡상.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07/08/10 02:20

히지카타 토시조가 평생 곤도 이사미를 자신의 대장으로 인정하고 딴 마음 한 번 품는 일 없이 있는 순정 없는 순정 죄 들어갖다 바친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국장은 부장이 조직 재편하랴 국중법도 작성하랴 전투법 고안하랴 애들 훈련시키랴 신선조 운영에 허리가 휘고 있을 때 말년에 난데없이 정치에 껴들고 뱃속에 딴 속셈 품은 이토 카시타로를 끌어들여 조강지처를 내버리고 애첩에 아주 간이라도 빼줄 듯 목맸다가 신선조 분열의 기회를 제공하질 않나 신선조를 사물(私物) 취급했다 대사들의 격한 반발을 사질 않나 벼락부자처럼 굴질 않나 부장 속을 엔간히도 썩인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고로 90퍼센트 이상이 부장님의 광적인 빠돌빠순들로 구성된 신선조 팬픽작가 역사소설가들의 못난 남편(...) 곤도 국장에 대한 처우는 대충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1. 그래 우리 부장님이 국장이 좋아 죽으시겠다는데 뭘 어쩌겠어 닥치고 버로우해야지 행복하셔야 해요 부장님 어흑흑흑흑흑 파
이쪽에서 곤도는 상당히 호감도 가고 무난하고 서글서글한 아저씨로 그려진다. 그래도 부장님 남편이니 어쩔 수가 없다는 식이다.

2. 빌어먹을 난 인정못해 우리 부장이 뭐가 부족해서 쟤한테 올인해야 하는데 가만 안 둔다 이놈의 고릴라 어디 맛 좀 봐라 파
부장님의 순정까지 부정하진 않아도 곤도에 대해 사정없다. 가차없다. 틈만 나면 험담한다. 이쪽은 대개 부장님의 못난 두 번째 남편(...) 오오토리 케이스케에 대한 평가도 무진장 가혹하다.

소라치는 저기서 1번에 속한다. 쓸모;없는 거야 뭐 곤도 캐릭터가 항상 그렇고 (어이!) 우리의 페어리 오브 고릴라가 나름대로 귀엽고 러블리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걸.
그래서 난 소라치가 상당한 역사 매니아가 아닌지 강력하게 의심하고 있다. 본인은 <불타라 검> 애독자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은혼과 같은 곤도-히지카타 라인은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시바탱이 대놓고 2번인 관계로 거기의 부장님은 국장에 대해 애정이 없는 건 결코 아니어도 내심 경멸할 때도 있고 대체적으로 오만 짜증을 다 내고 있기 때문이다(읽고 있으면 같이 짜증난다;). 국장에 대해 조강지처이다 못해 한 마리 쬐끄만 꿈꾸는 소녀(...)를 품고 사는 은혼의 히지카타 토시로는 오히려 아키야마 여사의 부장님에 무한 근접한다. 아니 뭐 2004년 대하 드라마의 영향도 막강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대로 논실난실알콩달콩신뢰와존경과애정으로가득가득 곤도-히지카타 노선을 유지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읽는 이 역시 평범하게 행복할 일을, 그 길을 스윽 비켜 지나가는 게 이놈의 작가의 진정 악랄한 점이다. 괜히 공포의 마왕 새디스트의 정점 시바탱 파슨(...) 소라치 히데아키가 아니지.


오늘 은혼 19권을 드디어 입수했다.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무서울 정도로 긴히지였다. 톳시에게 일일이 짜증내다 결국엔 냅다 폭발하는 긴상은 정말 안구에 습기가 뭉클뭉클 차오릅디다. 작가가 작정하고 부장을 히로인으로 밀겠다는데 우리 힘없는 독자들이 어이하랴? 닥치고 따라갈 수밖... 아니아니 이게 아니라. 욕망의 중얼거림에서 벗어나라 S.

동란편에서 무척 씁쓸했던 게 이토의 죽음도 죽음이었지만(난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는 놈에게 죽어라고 약하다;),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당신은 우리 신센구미의 혼'이라 단언하고 심지어 국장의 위기에 반응하여 부활까지 한 부장에 반해 국장은 참모의 말만을 믿고 - 마치 <불타라 검>의 곤도가 부장님을 멀리했듯 - 부장을 신센구미에서 근신조차도 아니고 일격에 내쳐 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니 실제 역사가 묘한 데서 묘한 방식으로 반영되어 있는 은혼을 생각할 때 이 역학 관계는 사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뮤즈 님 말씀마따나 발바닥 껍질을 벗겨 사막으로 추방해 버리고 싶어지는 법이다) 읽던 사람 정신을 죄다 발라버린 "나는 곤도 이사오를 지키는 최후의 요새, 신센구미를 지키는 최후의 검" 으로 이번엔 어떻게든 관계의 수복을 봤으나 대신 동란편은 곤도-히지카타 라인이 보기만큼 굳건하지는 않으며 언제든 붕괴하려면 붕괴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겼다.
곤도 이사미와 히지카타 토시조가 나가레야마에서 결렬했듯이 어느 날엔가 곤도 이사오와 히지카타 토시로 역시 처참히 깨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이젠 아무 데도 없다. 은혼이라고 마음 탁 놓고 있었다간 큰 코 다칠 공산이 너무나 크다. 소라치 히데아키가 대체 어떤 종자인데. 다른 점프만화라면 살려서 고향에 돌려보냈을 미쯔바 씨를 가차없이 죽이고, 살려서 감옥에 보냈을 이토를 인정사정없이 숙청한 인간이 저 인간이다. 자기가 쪽팔린다고(...) 좀처럼 안 해서 그렇지 시리어스에 한 번 작정하고 손대면 독자 다 때려잡는 일쯤이야 손가락 하나로도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애초에 히지카타 토시조가 베이스인 이상 부장이 발 뻗고 편히 살기는 시작부터 그른 게 맞지만 이번 동란편으로 은혼의 신센구미는 하코다테에 한 발 다가서고 말았다. 하긴 원래 부장님 팬이라면 도저히 유혹을 떨칠 수 없는 게 바로 '도바/후시미 전투 이후의 히지카타 토시조'다. 내가 못돼먹은 앵스트 서커에다(...) 워낙 하코다테 시절의 부장님에게 모에모에하는 터라 은근히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딴 소리 하는 게 아니라. 정말이라니까.

대장간의 영감님이 부장한테 뭐라 그러대. "그렇게 살면 언제고 자네도 뚝 부러지는 날이 올 거야".
딴 놈들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야!) 부장의 선열한 개고생이 미친듯이 예감되는 요즘. 아아, 불길하다...


덤. 그치만 역시 부장의 칼이라면 무라마샤 아닌 카네샤다(...)여야 한다는 모님의 주장에는 기꺼이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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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2007/08/10 22:54
하코타테 시절의 부장님은 귀신부장님과 다르게 너무나 온화하시고, 그 아름다운 얼굴로 미소까지 지으시니 부장님 팬으로써는 쓰러지지 않고 견딜수 없는것 같습니다. 칸노 아야님께서 만화로 그려주신 '북주신선조(北走新選組)'에서는 그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나와서 볼때마다 행복합니다.(제대로 환하게 웃으시는건 한컷이지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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