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훗날을 위한 정리.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07/09/24 17:30

1. 오키타가 현재 열 여덟임을 감안하고(소라치 공언) 부장과 미쯔바 씨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녀석의 외견 연령으로 추정할 때 진선조가 결성된 것은 (길게 잡아도) 대략 4~5년 전. 박박 우겨서 6년 전쯤? 폐도령이 그 직전에 내려졌다면 - 폐도령 하에서 살 길을 모색하다 마쯔다이라 옷상이 주워갔으니 - 양이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것은 대략 칠팔 년 전쯤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긴상이 스낵 오토세 2층에서 해결사를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무렵. 나쯔메 코코로 씨의 <요로즈야 프로토타입>의 설정은 상당히 그럴듯하고 근거도 있는 셈이다. 이래서 니지구모가 좋다니까.

2. 13권에서 소라치가 말했다. '은혼의 세계에서는 번은 이미 폐지되었습니다. 영주도 여기저기 있는 게 아니라 도쿠가와 장군 한 사람뿐입니다. 즉 장군가, 다시 말해 막부을 위해 일하며 녹을 먹는 진선조와 같은 사람들이 정식 무사이고, 그 밖의 주인도 아무것도 없으며 맘대로 칼을 차고 다니는 카츠라와 긴상 등등이 낭인에 해당됩니다'.

쿠어어어어어 소라치 이런 배신을!! ;;;;
그야 실제 역사상으로 페리 제독=천인이 온 게 1853년이니 20년 후라면 1873년. 폐번치현(廃藩置県)이 1871년이니 시기상으로 맞긴 한데 하코다테 신선조를 쓸 때 아이즈 전쟁을 빼먹으면 천벌 받는단 말이다아아아아아아아아 OTL (시바탱도 스리슬쩍 넘어가지 않았느냔 지적은 결코 받지 않겠다. 시바탱이 괜히 시바탱이겠는가)
다만 대에도라는 지명도 그렇고 (에도가 도쿄로 개명된 건 1868년, 신정부 수립 이후) 즈라가 신짱에게 '막부의 추적을 피해 쿄(京)에 잠복해 있다고 들었다만' 이라 한 거나 곤도가 열차 안에서 '부슈(武州)는 오랜만이다' 라 한 걸 봐서 지명은 폐번치현 이후가 아니라 그냥 그대로 가는 모양이니 어떻게 될 성 싶기도 한데... 끄으으으으응.
막번체제(幕藩体制)를 이해하고자 머리를 싸매고 끙끙댄 끝에, 소설에서이나 당시의 일본은 300여 개의 쬐끄만 국가의 집합체고 막부는 외국애들이 받아들인 것과는 달리 중앙정부가 아니라 그 맹주일 뿐이라는 (그리고 신사쿠가 시모노세키 전쟁 회담 때 요걸 잘 이용해먹어 삼백만 달러라는 억 소리 나올 배상금을 몽땅 막부에다 떠넘겼다;) 얘기가 종종 나오는 관계로 고민고민하다 결국 막부가 중앙정권화하고 미국과 흡사한 연방제로 이행한 걸로 설정하기로 했다. 영주니 번주니 번사니 뭐시깽이니는 다 없어졌지만 번은 그대로 현으로 바뀌고 현재의 현보다는 좀 더 자치권이 강화된 형태인 것으로. 스스로도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합리성이고 뭐시기고 그딴 거 모른다. 아이즈 전쟁은 어떻게든 넣어야 한다고!!!

3. 일단 내가 모델로 삼고 있는 <흑룡의 관(黒龍の柩)>에서 최대 악역은 사이고(쳇)지만, 난 은혼의 당당하기 짝이 없는 오카마 사이고 도쿠모리(西郷特盛) 씨는 꽤 좋아하는데다 그 사람은 지금의 위치에서 벗어나 세상에 다시 나올 생각이 추호도 없어보이므로 흙탕물은 전부 오오쿠보 토시후사(大久保利塞)에게 떠넘기도록 하겠다. 알아보는 당신은 막말 매니아...인가?

4. 까먹지 않기 위해 대강 정리해보는 보신전쟁(戊辰戦争)의 궤적. 젠장, 뭐가 이렇게 기냐.
(날짜는 전부 그레고리우스력으로 변환했다. 걍 음력으로 할 걸 그랬다고 약간 후회 중이다;)

→ 1868년 01월 27일 도바(鳥羽)・후시미(伏見) 전투에서 구 막부군 패배.
→ 1868년 01월 29일 요도센료마쯔(淀千両松) 전투에서 구 막부군 대패, 오사카 성으로 후퇴. 이 와중에 신선조의 이노우에 겐자부로(井上源三郎), 야마자키 스스무(山崎蒸) 등이 전사.
→ 1868년 01월 30일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 오사카 성을 탈출해 에도로 도주. 이후 칸에이지(寛永寺)에서 근신. 구 막부군은 에도로 퇴각.
→ 신정부, 아리스가와노미야 타루히토 친왕(有栖川宮熾仁親王)을 대총독으로 삼아 정동군(征東軍)을 조직, 에도로 진군.
→ 1868년 03월 24일 신선조, 코후진무대(甲府鎮撫隊, 혹은 코요진무대甲陽鎮撫隊)로 명명하고 코후로 출발. 오키타는 도중에 에도로 귀환.
→ 1868년 03월 29일 코후진무대, 신정부군에게 패배(코슈 카츠누마甲州勝沼 전투). 나가쿠라 신파치(永倉新八), 하라다 사노스케(原田佐之助), 신선조 이탈.
→ 1868년 04월 01일 신정부군, 구 막부보병대(충봉대衝鋒隊) 격파.
→ 1868년 04월 05일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와 막부육군총재 카츠 카이슈(勝海舟)의 회담.
→ 곤도, 막부 보병을 모집하여 나가레야마(流山)에 주둔. 직후 신정부군에게 포위되어 자진 투항.
→ 1868년 05월 03일 신정부군, 에도성에 무혈 입성. 요시노부는 미토(水戸)로 출발. 불만을 품은 구 막부군이 속속 에도를 탈출. 히지카타, 오오토리 케이스케(大鳥圭介)와 합류.
→ 1868년 05월 04일 육군을 둘로 나누어 닛코(日光)로 진군. 아키즈키 노보리노스케(秋月登之助)가 지휘하는 선봉군 제 1대는 시모츠마(下妻)로, 히지카타가 지휘하는 제 2대는 시모다테(下館)로 진군. 후발 별동대는 오오토리가 지휘.
→ 1868년 05월 08일 오오토리군, 오야마(小山) 근처에서 신정부군과 전투, 패퇴시킴.
→ 1868년 05월 10일 아키즈키 대, 히지카타 대와 재합류.
→ 1868년 05월 11일 우츠노미야(宇都宮) 전투 발발. 히지카타, 우츠노미야 성 함락.
→ 1868년 05월 15일 신정부군, 우츠노미야 재공격. 히지카타와 아키즈키는 부상으로 이마이치(今市)에 호송되었다가 아이즈(会津) 이동. 직후 우츠노미야 함락. 구 막부군, 닛코・이치카와 방면으로 퇴각.
→ 1868년 05월 17일 곤도 이사미 참수.
→ 1868년 05월 24일 이치카와(市川)・후나바시(船橋) 전투 발발, 구 막부군(철병대撒兵隊) 패배.
→ 1868년 06월 09일 오우진무총독(奥羽鎮撫総督) 쿠죠 미치타카(九条道孝)의 참모로 오슈(奥州) 등지에게 아이즈 침공을 독촉하던 세라 슈조(世良修蔵)가 암살됨으로써 북부는 신정부에 대한 항거 쪽으로 일거에 기움.
→ 1868년 06월 10일 구 막부군, 시라카와(白川) 성 점령.
→ 1868년 06월 11일 신정부군, 이마이치 공략 개시. 이후 10월 8일 와카마츠 성하 돌입까지 닛코구치(日光口) 전투는 계속됨.
→ 1868년 06월 20일 신정부군 시라카와 성 탈환. 이후 9월까지 구 막부군은 시라카와 탈환을 계속 시도하였으나 끝끝내 실패(시라카와구치白河口 전투).
→ 1868년 06월 22일 센다이를 맹주, 요네자와(米沢)를 준맹주로 하는 총 31개 번에 의한 오슈・우슈・엣슈열번동맹(奥羽越列藩同盟) 성립.
→ 1868년 07월 04일 오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郎), 창의대(彰義隊)를 공격. 하루만에 괴멸시킴(우에노 전쟁上野戦争).
→ 1868년 07월 19일 오키타 소우지 사망.
→ 1868년 08월 29일 동맹의 새 맹주, 린노우지노미야 코우켄 법친왕(輪王寺宮公現法親王, 훗날의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北白川宮能久親王)이 열번회의에 출석. 북부정권(北部政権) 성립.
→ 1868년 09월 15일 니혼마츠(二本松) 전투 발발. 신정부군, 니혼마츠 성을 함락한 후 와카마츠로 진군. 신정부군, 나가오카(長岡) 성 및 요네자와번의 니이가타(新潟) 함락(호쿠에츠 전쟁北越戦争).
→ 1868년 09월 16일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 구 막부함대를 이끌고 에도를 탈출. 북부정부의 구원 요청을 무시함.
→ 1868년 10월 06일 보나리 고개(母成峠) 전투 발발. 구 막부군 대패. 히지카타, 쇼나이(庄内)로 원군을 요청하러 떠났으나 실패하고 센다이로 곧바로 이전.
→ 1868년 10월 08일 신정부군, 아이즈 와카마츠(若松)의 성하(城下)까지 돌입. 이후 아이즈번은 와카마츠 성에서 농성전에 들어감. 이때 사이토 하지메를 비롯한 신선조 대사 13명이 센다이 이전을 거부하고 아이즈에 잔류.
→ 10월 중순부터 열번동맹에 참가한 번들이 속속 신정부군에게 항복하기 시작함.
→ 센다이로 퇴각한 구 막부군의 잔병, 에노모토와 합류.

→ 1868년 11월 06일 아이즈번, 신정부군에게 항복.
→ 1868년 11월 07일 열번동맹 최후의 번인 쇼나이번이 항복. 열번동맹은 완전히 와해됨.
→ 1868년 11월 25일 히지카타, 에노모토・오오토리 등 구 막부군과 함께 카이요마루(開陽丸)로 센다이를 출항.
→ 1868년 12월 03일 카이요마루에 승선한 구 막부육군, 에조치(蝦夷地=홋카이도) 와시노키(鷲ノ木)에 상륙.
→ 1868년 12월 08일 하코다테(函館) 및 고료카쿠(五稜郭) 점령. 마쯔마에(松前) 번주 노리히로(徳広)에게 협력을 요청하나 묵살당함. 마쯔마에 공략 결정.
→ 1868년 12월 10일 히지카타, 700명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마쯔마에로 진군.
→ 1868년 12월 18일 히지카타군, 마쯔마에성 함락. 이후 24일부터 패주한 마쯔마에 번병을 추격하여 오오타키(大瀧) 및 에사시(江差)로 진군.
→ 1868년 12월 28일 에사시로 진군한 히지카타군을 원호하기 위해 출항했던 카이요마루 좌초.
→ 1868년 12월 29일 히지카타, 저항선을 돌파해 에사시에 입성. 카이요마루, 히지카타와 에노모토가 지켜보는 가운데 침몰.
→ 1869년 01월 04일 에조치 평정 완료.
→ 1869년 01월 27일 에노모토, 각국 영사를 초빙하여 에조치평정축하회를 개최. 에조공화국(蝦夷共和国=하코다테 정권函館政権) 출범. 히지카타, 선거에서 육군부사령관(陸軍奉行並)으로 선출됨.
→ 4월경, 신정부군, 에조치를 향해 진군.
→ 1869년 05월 06일 구 막부군, 미야코만(宮古湾)에 기항한 스톤월 탈취 작전(미야코만 해전/아보르다쥐 보딩)에 실패.
→ 1869년 05월 20일 신정부군 함대, 하코다테 해전에서 구 막부함대를 격파. 신정부군, 오토베(乙部)에 상륙 개시, 마쯔마에 성 탈환. 후타마타구치(二股口)를 공격(제 1차 후타마타구치 전투). 히지카타군, 16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방어 성공.
→ 1869년 06월 03일 신정부군, 에사시에 상륙, 후타마타구치를 재공격(제 2차 후타마타구치 전투).
→ 1869년 06월 04일 히지카타군, 재방어 성공. 그러나 오오토리군이 키코나이(木古内) 전투에서 패배하여 신정부군이 진군하자 히지카타군은 고립을 피해 퇴각.
→ 1869년 06월 20일 신정부군, 하코다테 총공격 개시. 신선조가 수비하던 벤텐요새(弁天台場)가 포위되자 신정부군함 아사히(朝陽)가 격침된 틈을 노려 히지카타 출진, 잇폰기 관문(一本木関門) 근처에서 격전 중 전사.
→ 1869년 06월 27일 에조공화국 수뇌부, 신정부군에게 항복. 하코다테 정권 멸망. 보신전쟁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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