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311훈 감상용 눈가리고 아웅 - 꿈 by maki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10/06/09 12:56

신역 베니자쿠라편의 흥행 수익이 10억을 돌파했다는 매우 후덜덜한 소식과 함께, 정작 일본판은 아직 뜨지도 않았는데 점프 발매일 바로 당일에 스캔하고 확대하고 보정하고 중국어로 번역하고 식자까지 깔끔하게 박아서 올리는 대륙의 기상에 피를 토하고 311훈을 보았다. 제기랄 이놈의 소라치가 나한테 성실한 포스팅을 강요한다능. 세상에 한 페이지가 전부 은혼이라니 이런 수치가 다 있나!!! OTL
성질나서 비모 님께 뽐뿌질 목적으로 상납하고자 두다다다 번역해버린 maki(사이트명 한중망유閑中忙有) 씨의 SS 꿈(夢)과 확 하나로 합쳐버렸다. 질은 걍 믿지 마시고요. 우선 꼬꼬마 3인조의 이야기부터 나갑니다.


웬일로 수업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즈라가 허겁지겁 굴러들어왔다.
늘상 윤기가 철철 흐르는 곧은 머리카락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지고, 눈도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물론 욕나오도록 고지식하신 우등생께는 입학 이래 최악의 추태였지만.
뒷자리에서 시치미를 뚝 떼고 눈밑마저 시커멓게 죽은 녀석의 옆얼굴을 흘긋거리다, 쉬는 시간이 되기 무섭게 장본인에게 다짜고짜 덜미를 잡혀 뒷마당의 그늘로 질질 끌려갔다.


「대체 뭐야!? 아프다니까! 잡아당기지 마!」

인정사정없이 움켜잡힌 손목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나는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녀석은 내가 뭐라 하건 깔끔히 무시하고, 이번엔 양어깨를 양손으로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움켜쥐고 얼굴을 확 들이밀었다.

「신스케!」

코를 바짝 붙일 기세로 마구 들이대는 통에 나는 자연히 필사적으로 몸을 젖힐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래!」
「혹여 앞으로 얼핏 보기에 지적이고 머리 좋아뵈는 중년사내를 만나더라도 결코 따라가서는 안돼!」

나는 영문을 몰라 하릴없이 눈만 껌벅거렸다. 뜬금없는 말을 뜬금없이 내뱉는 주제에 녀석의 태도는 지극히 침착해서, 도저히 장난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녀석이 누군가에게 쓰잘데없는 수작을 걸거나 장난을 치는 꼴은 이날 이때까지 본 일이 없다. 맛간 언동으로 사람 복장을 뒤집어놓기야 일상다반사지만.

「그 중년은 성실한 척하고 있지만 속은 구제불능의 로리콤이다. 머리는 노랗고 무턱대고 헐벗은 파렴치한 젊은 여자도 피해라. 아무리 네놈을 졸졸 따르며 연모의 정을 보여도 상대해서는 못 써. 아아, 색이 들어간 코안경을 낀, 키 크고 음험하기 짝 없는 사내도 있었구나. 짐작컨대 눈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으나, 동정은 금물이다. 네놈은 어깨에 힘을 주고 있을지언정 은근히 정에 약하니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라. 꼭이다!」
「얌마 지금 대체 뭔 헛소릴」
「아아, 그리고 그놈!」

내 말을 가로막고 대뜸 요란스럽게 비명부터 지르더니 심지어는 머리카락까지 마구잡이로 쥐어뜯는다.
원래부터 이상한 놈이었지만 오늘은 도가 더했다. 뭐가 그렇게 절박한 건지.
나는 어이가 없어져 녀석의 광란을 멀거니 구경하고 있었다.

「그놈은 안돼! 그놈만은, 절대로!!」
「……그놈이 누구야?」
「짙은 색안경을 끼고 머리를 세운 젊은 남자다. 불길한 시커먼 외투를 입고 샤미센을 등에 졌다. ……절대로, 그놈만은 안돼!!」 

포효하다시피 절규하고, 즈라는 내게 달라붙어 꺼이꺼이 통곡하기 시작했다.


***


「헤에. 그래서 뭘 어쨌는데?」
「뭐가 뭔진 모르겠지, 짜증이 확 나서 한 대 먹여줬다」
「어이구, 그래서 오늘도 결석이래?」

점심시간. 나는 다카스기의 풍성한 도시락에서 남은 반찬을 집어먹으며 한가로이 잡담 중이었다.
카츠라는 원인불명의 두통에 여태껏 시달리고 있는지, 오늘로 사흘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글쎄다. 보나마나 또 요상한 꿈이라도 꿨겠지」

다카스기는 이미 흥미를 반쯤 잃은 듯 무심한 어조로 툭 내뱉고, 손 닿는 곳의 교본을 팔랑팔랑 넘기고 있다.
나는 다카스기의 몽실몽실하고 혈색 좋은 뺨을 곁눈질하면서, 노랗게 구워진 달걀부침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지붕에서 눈이 한웅큼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방구석에 기대어 칼을 끌어안고 졸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강의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선생님의 부드러운 목소리만이, 고요한 학당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바로 옆의 장지에 눈길을 주었다. 어젯밤부터 계속 내린 눈은 좁은 정원을 새하얗게 뒤덮고,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반사해 장지를 눈부시게 수놓았다.
빛이 동공을 아프게 찔러와 나는 눈을 가늘게 좁히고, 방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맨 앞줄에 자리잡고 앉아 선생님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다카스기의 옆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흠 하나 없는 피부. 동상이니 거스러미 따위와는 거리가 먼 매끈한 손발. 공들여 지은 옷. 매일같이 끼고 오는 호화로운 도시락.
어디에서 어떻게 보아도, 누가 보아도, 뭇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란 양가의 도련님이었다.


되풀이 꾸는 꿈속의 남자와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 나는 몇 번이고 눈을 깜박였다.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 남자를, 어째서 난, 너라고 생각했던 걸까.

불길하도록 커다란 배를 타고, 취미도 고약한 화려한 기모노를 걸치고, 얼굴 반쪽은 붕대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어째서 난 너인 줄 알아봤을까?

즈라의 꿈에 나왔다던 샤미센 사내는 뻔뻔스럽게도 내 꿈에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 녀석을 옆에 데리고, 본 적도 없는 쓸쓸한 표정으로 웃는 네 등뒤로는, 오늘처럼 새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더랬지.


나오는 하품을 깨물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안온하기 짝이 없어, 내게는 언제나 좋은 자장가였다.

졸음이 잔물결처럼 몰려왔다.

하지만 지금만은, 잠드는 것이 조금이나마 무서웠다.

가물가물하게 녹아드는 의식 한켠으로, 또다시 눈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구 참 찝찝하기도 하시지.... OTL
찝찝한 기분을 안고 311훈 감상의 턴입니다. 이예이.

항례의 311훈 한 줄 감상 : 더럽게 유능하고 냉정하게 미친 알파메일만큼 성가신 놈은 없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kisara71.cafe24.com/blog/trackback/2315335
수정/삭제 댓글
viai 2010/06/11 02:24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화려하게 판돈을 불려가면서, 우주를 건너서-사실 그외엔 방법이 없었다고도 생각되지만- 신스케가 오고 있군요. 긴상, 사랑받고 있네요. 말씀드렸지만 저런 미인이 저정도 머리 써가면서 죽이러 와주신다면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심지어 니조 아자씨는 거기에 얼마나 질투를 했던가요.

이자벨 아자니 영화 중에서 혹 여왕 마고는 보셨습니까. 광년이 포스 충만한 이자벨 아자니가 빛나는 가운데, 기생 오라비 같이 생긴 애인도 괜찮았지만 삼돌이 정식 남편과 여왕님의 신경전이 의외로 로맨틱하게 여겨지더군요.

번역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꼬마들 시각으로 보면 지금의 다카스기의 상황은 어이없게 비극이로군요-.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