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재록] All is Not Gold that Gillters.

아테나께서 보고 계셔 | 2010/09/27 10:13

완매한지 거의 1년도 되었겠다 순전히 내가 보기 위한 재록입니다. 냐옹.

거두절미하고.
아테나의 여든 여덟 세인트는 죄다 부활하였다.

애초부터 안 죽었던 놈들도 있었던 것도 같지만 에라이 아무렴 어떻단 말인가. 세이야의 세일즈 포인트는 황금이다. 황금 플러스 알파만 살아오면 죄다 부활한 거고 만사가 오케이인 것이다. 솔직히 청동 따위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뿐

「근데 말야, 우린 통곡의 벽 앞에서 혼까지 깡그리 소멸하지 않았어?」
「묻지 마」
「뭘 어떻게 무슨 수로 부활해?」
「따지지도 마」
「하지만」
「어허 말이 많구먼. 황금전원부활설은 통곡의 벽에 이어 어영부영한 엔딩이 팬층의 99퍼센트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이후 어느 천재적인 놈의 발상인지는 모르되 20년간 이 바닥을 압도적인 지지율로 지배한 쉰내나는 떡밥일세. 미쳤다고 이치를 논해가며 내역을 상세설명하는 피곤한 짓을 하겠는가 아테나의 가호로 부활했습니다 룰루루루 한 마디로 만사가 해결되는 암묵의 약속이거늘. 그냥 우리의 전능하신 여신께서 혼 몇 개 연성하신 셈 치게」
「대가는 뭐야 대가는. 슴가냐? 어쩐지 예전보다 크기가 좀 줄었」
「오오 카논 그림 같은 스트레이트! 멋졌어!」
「이놈의 꽃게는 필경 입방정 때문에 망하고 말지」
「아, 아, 이의 있습니다! 성역에선 진리의 문을 열 수 없다구요!」
「닥쳐라 애송이! 어느 미친놈이 세이야에서 앞뒤 맞고 납득 가는 설명을 요구하더냐! 프랑스 치즈 저리 가라 구멍 숭숭 뚫린 설정이 어제 오늘의 일이더냐! 무조건 코스모의 섭리요 아테나의 뜻이라 우기기만 해도 십에 십 통하는 바닥에서 뇌주름 단촐한 대로 군말없이 그런가부다 납득하면 될 일을 캐묻기는 뭘 캐묻나!」
「암은요, 따지고 들자면 성층권에서 재도 안 남기고 불타버린 슈라가 무덤에서 좀비마냥 기어나온 까닭부터 해명해야지. 세인트 세이야 문고판 11권 91페이지 참조」
「왜 나는 걸고넘어지나……!」
「다 해도 여든 여덟뿐인 세인트가 수억 수천이 코퀴토스에 잠들어 있다거나, 영구빙결지옥인 코퀴토스에 파묻혀 있다면서 한편으로 환생을 거듭하는 문제도 있었고」
「성투사연구회의 스물한 번째 논문이군요. 그걸 다 알다니 당신 뭐하는 사람입니까」
「순번까지 꿰고 있는 자네야말로 대체 뭐하는 자인가」
「알면 다칩니다」
「다치는 거냐!」
「……어, 저 말인데」
「호오 무슨 일인가 황소. 무엇이든 말해보게 황소. 이 샤카가 한 마디 한 구절도 놓침없이 전부 다 똑똑히 들어주겠네 황소」
「에 또……고마……워, 해야겠지……?」
「쟤 너무 티나게 좋아하는데 일단은 인도라서냐 싯다르타(=최상의 소)라서냐」
「어느 쪽도 아닙니다. 알데바란이 총수이기 때문이지요」
「……농담이겠지?」
「진담입니다」
「샤카! 알데바란이 곤란해 하잖아! 얼른 내려와!」
「시끄럽네. 새끼고양이는 바닥에서 개박하라도 깨물고 있게나」
「누가 새끼고양이냐아아아아아!!!!」
「신불과 통하여 본질을 꿰뚫는 나의 눈에 이의를 제기하는 겐가 무엄하군」
「아니 일단은 뜨고 봐야 한다고 생각해」
「거기 두 놈, 당장 깍지 풀고 떨어지지 못할까! 천일전쟁은 금지다! 어딜 감히 아테나의 어전에서!」
「자네부터 진정하게. 아테나의 어전에서 밥상을 뒤집을 셈인가. 알데바란이여, 무언 말을 하려고 했지?」
「저어 노사, 아까부터 사가가 이상하게 조용합니다만」
「……헉 저건」
「게이지를 모으고 있어!」
「피해라 알데바란!」
「엣?」

「내게는……! 내게는 살아 있을 자격이 없다아아아아아앗!!!!」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역시」
「어쩐지 조용하다 했어. 그럼 그렇지. 그럼 그렇지!」
「자살하지 마 또 목 찌르지 마 자력으로 적시기에 가지 마─────────!!!!」
「붙잡아, 사가를 붙잡아!」
「그는 폭주하고 있……잠깐 이게 아닌데!?」
「어이 동생, 거기 동생! 뭘 손 놓고 멀거니 구경하고 있어 형이잖아 책임지고 어떻게 해 봐!」
「왜 내가! 나도 고를 수만 있었으면 이런 귀찮은 놈이랑 쌍둥이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단 말이다! 이 자식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치이고 맞고 부대끼는 이런 손해뿐인 인생 더는 싫어, 인연 끊을래~!」
「그래봤자 막판에는 형을 애절하게 부르며 소멸했던 주제에」
「……므우, 네 녀석 사실 친구는 키키밖에 없지」
「해보자는 겁니까?」
「야이 괴력남아! 부활한지 얼마나 됐다고 왜 이리 힘이 좋아!?」
「크윽, 사람 셋으로도 안되는 거냐……!」
「도와줘요 호빵맨 아이올로스──────────!!!!」
「야 사수! 사수 어디 갔어! 사수 이 자식아 이놈 좀 말려……쿠헉!!」
「감히 누구더러 반말이냐 꽃게!!」
「오오 저렇게 완벽한 초크슬램 프롬 더 헬은 처음 봐. 과연 성역 제일의 무투파!」
「리아, 어이 아이올리아, 진정해, 너까지 맛이 가면 이 자리 수습이 안된다고! 착하지, 그 아이언 클로를 어서 펴!」
「아 진짜, 언제까지 이놈의 만담을 끌고 갈 거야! 그러잖아도 한국어로는 사람 따라 성격 따라 1인칭과 어미를 차별하는 일본어의 편법이 불가능한데, 구별도 못 하면서 전원을 죄다 한 자리에 구겨넣으니 이젠 누가 누구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잖아!」
「하다못해 대사 앞에 이름이라도 붙이지 않고」
「아아, 한시라도 빨리 이 번잡함을 벗어나 동시베리아의 얼어붙은 대지로 돌아가고 싶구나……내가 없어도 밥은 잘 챙겨먹고, 귀 뒤는 잘 씻고, 어디 아픈 데는 없으며,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효가여, 나의 제자 효가여!」
「……아 괜찮을지도, 최소한 한 명은 누군지 확실해」
「어흐흐흐흐흐흐흑 놓아라! 나는 타르타로스로 돌아가겠어! 나는, 부활하고 싶지 않았어. 지상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무슨 낯으로 세상을 대하란 말이냐! 제발, 날 죽게 내버려둬───────!!!!!」
「아니 누군 부활하고 싶어서 한 줄 아나! 위의 내레이션 못 봤어, 이 물건은 오피셜도 준오피셜도 비오피셜도 세일즈 포인트는 황금이라니까!」
「원래 성역엔 인권도 청보법도 없지만 황금에게는 더더욱 없단 말이다!」
「일단 한 번 찍히면 죽은 후에도 황금 영원히 황금 미래영겁 황금」
「아테나께서 기라면 기고 까라면 무조건 까야 하는 것이 우리의 팔자 아닙니까. 여신께서 냉큼 일어나 세상의 여인들에게 봉사하랍시는데 거역하겠다 이 말인가요 배짱 한 번 두둑하십니다」
「아 생각하고 보니 좀 많이 억울해졌다」
「빌어먹을 세월속에 모두죄다 갈아넣은 내 청춘을 돌려다오────!!!」


────쾅!!!
니케가 사정없이 돌바닥을 내리찍었다. 삼천포를 빠져 남해를 돌고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까지 대책없이 굴러간 논지는 거기서 기적적으로 멈추었고 평균 신장 185cm 평균 연령 22세의 굵직굵직한 남정네들은 일제히 빠직 굳었다.
다양한 색조의 눈동자 열세 쌍이 쭈뼛거리며 조심조심 그들의 여신을 향했다.

상승(常勝)의 군신 아테나는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로 사랑스레 웃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우득 소리나게 꺾으면서.
「그래서, 불만 있나요 여러분?」
「아닙니다 여신님! 그런 거 없습니다 여신님!!!」×13

대답까지 소요 시간 0.00000000000000001초.
어차피 황금 따위, 제우스가 치마만 둘렀으면 지 딸뇬이고 지랄이고 가리지 않는 띠질삼매경에 빠져 대신의 체면 따위 엿바꿔먹고 엉덩이 살랑대는 어린 것들과 앗항날잡아보아용♡ 놀이나 하고 쳐자빠지다 헤라에게 귀를 잡히던 그 아득한 신화의 시대부터 아테나의 충실한 노예였던 족속들이다. 뭘 바래.

살다 살다 이리 성의라곤 먹고 죽으려 해도 찾지 못할 도입부는 처음 보겠다고 시온은 생각했지만, 두 세기 반에 걸친 인생경험을 살려 현명하게 침묵하였다.

*****

사실, 여든 여덟이 죄다 부활하였다는 서두에는 더한 어폐가 있다.
×13인 시점에서 벌써 뽀록났다시피 어떤 의미 사가와 더불어 비극이 하도 지나쳐 급기야 희극을 쳐달리는 이 모든 환장할 사태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28권 내내 죽어 있으며 혼자 뱃속 편하게 사후생활을 구가했던 주제에 세이야 테마의 정점이자 황금의 개판 오분 후 아침 드라마 뺨치는 인간관계의 구심점이고 산 자들을 쥐락펴락 멋대로 잘도 주물렀던 사지타리우스의 아이올로스만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낙 빨빨대고 잘도 돌아다닌 탓에 혼의 소재지가 다소 괴이하게 꼬여 부득이하게 재생을 맨 나중으로 미루었다고 했다. 듣고 보니 명계에도 없지 않았느냐 서플리스팀이 새삼 머리를 맞대고 소근대거나 말거나 아테나는 경쾌하게 덧붙였다.
「더구나 시신도 찾지 못했으니까요. 처음부터 하나하나 구축해야만 하는데 슈라와는 달리 십년도 더 옛날이다 보니 인마궁에 남은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하더군요. 어떻게든 통밥과 근성으로 보충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겠지요. 아 하지만 나 아테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마음 탁 놓고 느긋이 기다리세요!」
사가의 식은땀이 줄줄이 매달린 등짝에 따가운 시선이 여럿 퍽퍽퍽퍽 꽂히는 가운데, 아테나는 거대하고 육중한 문을 굳게 닫고 신전에 틀어박혔다.

하루가 지났다.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십이궁의 긴장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사가(주모자)와 슈라(실행범)는 피눈물 어린 절절한 사과문을 쓰고 지우고 쓰고 고치며 이것도아냐저것도아냐 갖은 설레발을 치더니 나흘도 지나기 전에 초주검이 되었다.
함정에 빠진 놈은 위에서 쳐밟으며 필살기 14연타가 황금의 예의이고 상식인 바 므우는 그 얇아빠진 신경으로 잘도 13년 버텼다며 솔선수범하여 코끝으로 비웃었으나, 울병 환자 1호(사가)와 2호(슈라)를 명색 부하와 동기로서 줄창 어르고 달래고 지지고 볶고 별 짓을 다하다 보람은커녕 눈밑에 다크서클만 세 겹으로 얻은 데스마스크는 우울히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천과 폴리시와 머릿수건으로 무장하고 거해궁의 벽을 뽀득뽀득 닦기 시작했다.
역시 부하이며 동기인 아프로디테는 쿨하게 씹었다.
이레째에 들어 쌍어궁과 교황궁 사이의 층계가 로열 데몬 로즈도 아닌 피라니안 로즈로 시커멓게 뒤덮인 꼬락서니를 볼작신대 실상 피스케스의 세인트도 그닥 말짱한 정신 상태는 아닌 모양이었지만.

나흘째부터 빈 시간 좀 생길라 치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죽는 수밖에 사죄할 길이 없답시고 무조건 목을 매달던가 심장을 찌르던가 온갖 다양한 수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가와 24시간 밀착 감시를 명받았을 뿐더러 그래도 형이라 결국 버리진 못하고 뒤통수에 킥 날려 제지하는 카논의 지붕 들썩이고 지축이 울리는 아웅다웅으로 쌍아궁은 날이면 날마다 최소 열 군데씩 박살이 나는 형편이었다. 쌍아궁의 파손도에 정비례하여 카논의 눈가에도 다크서클은 켜켜이 쌓여만 갔고, 나날이 윤기를 잃어가는 풍성한 모발과 닥치고 케어부터 받아야 할 거칠어진 피부가 누구의 눈에도 어찌나 안쓰러웠던지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황금은 그간 카논에게 품었던 응어리니 뭐니 죄다 망각하고 말았다.
따라서, 며칠째인가에 아테나의 사진을 경건하게 두 손으로 받잡고 치유를 얻는 카논을 우연히 목격한 카뮤가 말없이 시선을 23.4도 비스듬히 위로 틀어 외면하기를 선택한 것은 인간으로서 배려심과 아량이 넘치는 행위였다 해야 하리라. 심지어 얼핏 보인 사진 속의 아테나가 어째 소위 여신들의 유니폼인 순결하게 희디 흰 이오닉 키톤이 아닌 깜찍한 블레이저 교복 차림이었던 듯도 싶었지만, 카뮤는 사려 깊게도 그 의혹 또한 십이궁에서 제일 비밀 못 지키는 친우에게 발설하는 대신 제 마음속에만 고이고이 묻어두었다.
백양궁이나 처녀궁 혹은 쌍어궁의 주인에게 들키지 않기만을 기원해주자.

이즈음 데스마스크가 면벽하고 줄창 닦아댄 탓에 십이궁 중 가장 화사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궁으로 화하고 만 거해궁은, 까놓고 말해 죽은 자들이 얼굴을 들이밀고 다양한 높낮이로 신세타령하던 시절보다 당사비 열두 배로 기분 나빴다.

아흐레째.
므우도 마침내 자제력을 잃었다.
하늘을 나는 황금의 양과도 같은 우미(優美)한 미소만은 고대로 붙박은 채 사가의 머리끄댕이를 무자비하게 잡아당기는 그는 진심으로 무서웠다. 오로지 사가와 한 판에 박았다는 이유만으로 덩달아 머리끄댕이 잡힌 카논의 인권에 대해선 코멘트를 생략한다.

열흘을 넘겼을 무렵 그예 아이올리아마저 지독히도 높은 임계점을 돌파했다.
「야 임마 이 바보 사자야 이게 뭔 짓이야─────────!!!!!」
연못에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고 물고기가 다 배를 뒤집고 떠오르도록 독기를 뿜어대는 아이올리아를 미로와 알데바란이 달려들어 억지로 끌어내야만 했다.
득달같이 달려와 초점 풀린 눈으로 형을 뵐 낯이 없다느니 못난 동생이라 죄송하다느니 뭔가 핀트 안 맞는 사죄를 웅얼거리고 있는 황금의 사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불문곡직 40회 반복 싸닥션부터 날려댄 부처님의 용자(勇姿)는 후광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노라 알데바란은 전한다.
참고로 반격의 강펀치를 얻어맞은 것은 어째선지 미로였다.

쥐를 비롯하여 십이궁 언저리에 기생하던 각종 동물들은 - 심지어 바퀴벌레도 - 이미 첫날에 필사의 엑소더스를 감행하였고, 그나마 오기와 자존심 하나로 무턱대고 눌러앉아 버티던 신관들 역시 므우가 자제심을 잃었을 당시에는 13년간 쌓일 대로 쌓인 유급휴가를 긁고 걸음아 나 살려라 꽁지빠지게 달아난 후였다.
눈먼 새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 마치 세월의 흐름에 버림받은 고대의 폐허를 방불케 하는 황량한 몰골로 불길한 기운을 풀풀 피워올리는 십이궁을 올려다보며 잡병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외포에 단지 몸을 떨 뿐이었다.

열이틀째.
13년간의 흉행에 어떤 식으로든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반수가 스트레스로 제정신을 거의 상실하고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니 그저 지조때로 사는 샤카의 명상마저도 흐트러졌으며 울증의 나락에 추락한 카뮤가 뿜어대는 영하 273도의 냉기가 온 십이궁을 휩쓰는 대형참사 일보 직전, 마침내 즉각적인 크뤼소스 쉬나게인(황금집결)을 짜증스레 종용하는 시온의 거대한 코스모가 성역을 뒤덮음으로써 숨막히는 상황은 가까스로 종결되었다.

*****

바이오해저드 레벨 4급의 흉흉한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역의 생존자들마냥 반쪽이 된 얼굴로 그러나 광속으로 집합한 황금들이 숨소리 하나 없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이틀 만에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조금 창백해졌지만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신전을 나온 아테나의 손에 이끌려 하얀 빛 속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모인 면면들을 주욱 둘러보고 환하게 얼굴을 밝혔다.
「진짜 오랜만이다 얘들아. 그간 잘들 있었어?」
대역죄인의 누명을 쓰고 모살당한 피해자는커녕 대략 열흘 어디 마실갔다 막 돌아온 큰형마냥 태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도, 온화한 미소를 띤, 빛의 각도에 따라서 조금씩 색채가 달라지는 녹색 눈동자도 13년 전과 조금도 변함없는 깊이와 높이로 모두를 마주했다.
오 아테나여.
누선이 약한 몇몇은 벌써부터 쿠루마다 폭루를 콸콸 흘리고 있었다.

……잠깐, <13년 전과 조금도 변함없는>???

스트레스에 치여 정신이 오락가락할 땐 언제고 형을 보자마자 황금의 사자가 다 무어냐 길잃은 아기고양이마냥 울망울망하며 달려들려던 아이올리아는 단박에 콰직 얼어붙었고 여타 황금들의 얼굴에선 단숨에 핏기가 쏴아아아악 빠져나갔다.
위화감의 정체는 아테나에게 살짝 목례하고 손을 놓은 아이올로스가 종종걸음으로 흡사 그리스 조각상 비슷한 꼴로 멋지게 굳어버린 동생에게 다가왔을 때 완전히 분명해졌다.
애매하게 곱슬이 되다 만 흑갈색 머리는, 황금 평균 신장에 가장 근접한(185cm) 7살 연하의 동생보다 정확히 10cm 밑에 있었다.

『히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야 이것들아 귀 떨어지겠다」
사지타리우스의 아이올로스(14)는 광속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가볍게 나무랐다.
그렇다. 14다. 열넷이다. 十四다. Fourteen이다.


돌이켜 보면 세상에 나기 전에 이미 없었던 아버지와 그를 낳고 즉시 절명했다는 어머니는 아이올리아에겐 타인에 다름없었다.
아이는 형의 손에 자랐고 형의 손길에 이끌려 세인트가 되었으며 애정도 훈육도 모든 것을 전적으로 형에게 받았다. 누군가가 형이 널 낳았다 짓궂게 농을 했어도 아마 곧이들었으리라. 그만큼 그에게는 형이 세상의 전부였다.
비단 아이올리아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어리다 한들 도대체 언제 어느 방향으로 힘을 제어 못하고 터뜨릴지 모르는 황금성투사 후보를 평범한 일반인 보모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가는 육아의 재능이 가히 폭렬적으로 괴멸한 나머지 나름 요령 있는 대처가 필요한 유아들과 나란히 두는 날엔 실수로 죽이고 말 것 같았으므로 아이올로스가 연중조 연하조를 죄 업어 키우다시피 했었더랬다.
즉 그들 모두에게 사수자리의 세인트는 형이자 반 부모 같은 존재였고 사가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올려다보아야 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좀 더 까놓고 말해 키워주고 먹여주고 재워준, 이퀄 유년시절과 과거의 오점을 죄다 꿰고 있는 사람에게 고개 빳빳이 쳐들고 반항 때릴 수 있는 간 큰 넘이 그리 많이 있던가 말이다.

그런데 10cm 아래.
최소로도 여섯 살 연하.
까놓고 말해 나이가 청동.

비명이 안 나오게 생겼는가.


「이야──다시 봐도 잘 자랐네 내 동생. 형은 기쁘다」
소금기둥이 되어 풀풀 날리고 있는 아이올리아의 짧은 연갈색 머리를 10cm 밑에서 뻗어온 손이 익숙하게 슥슥 헤집어놓았다.
머리를 토닥이는 손의 크기가 몸이 기억하는 7살 때와 한 치 오차도 없이 똑같음을 본능적으로 확인한 직후 걍 뒷목 잡고 넘어가려는 사자를 미로와 알데바란이 황급히 양쪽에서 부축했고, 십이궁 유일의 정상적 쯧코미 담당인 데스마스크가 목소리를 높여 가열차게 항의했다.
「어이 얌마 거기 사수! 당신 프로필에선 분명히 187이었잖냐. 향년 14세에 187! 근데 뭐야 그 조낸 기분나쁘게 아담한 사이즈는! 12cm는 대체 어따 까먹고 왔대!? 이젠 흘릴 게 없어서 키까지 저승에 놔두고 오는 거요!?」
「얘가 갑자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아이올로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슬쩍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 187은 내가 정상적으로 스물일곱 먹었을 때의 예상치지 당연히. 보통은 열네 살에 거기까지 안 큽니다. 이 나이엔 175도 충분히 큰 거라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상식적으로
평범한 인간의 상식은 비빌 자리도 없는 세이야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비상식의 권화 같은 놈에게 핀잔을 받고 만 사실은 조낸 섬세한 유리심장의 A형 데스마스크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구석에 낑겨박혀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토……통곡의 벽 앞에서는요!? 분명히 저보다 위였잖아요!?」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반응 좀 보였다고 대뜸 나가죽어라 구박하던 형에게 그나마도 OVA 각본가의 후의로 겨우겨우 들은 '너는 내 자랑스런 동생이다' 한 마디를 여즉 감지덕지하는 참으로 겸허한 동생이 어거지로 제정신 긁어모아 반 울먹울먹하면서 물어오는 것을, 아이올로스는 상쾌하게 한 마디로 일도양단했다.
「아 그거, 이미지 영상이거든

쿵.
사수와 미친 듯한 악연으로 겹겹이 얽히고 설킨 세 명 중 제일 섬세하고도 정상적인 슈라가 (물론, 어디까지나 낯짝에 세라믹과 티타늄과 건다니움 합금을 동시에 처바른 제미니와 상시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며 에에이 성가시다 따위 대사나 치고 있는 레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듯 그예 외부로 통하는 모든 채널을 강제 차단하고 통나무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딴에는 위로한답시고 "마음을 굳게 먹어라 슈라, 아무도 네가 그날 엑스칼리버를 휘두른 결과가 이것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어쩌고 말을 걸었다 기름에 불을 부은 격이 된 카뮤는 침울하게 입에 지퍼를 채웠다.

「아니 그런데 왜 열네 살!?」
「정말로 어째서 열네 살!!?」
「돌아올 바엔 스물일곱이 동인계의 상식 아니었어!?!!」
「14세 175cm로는 성역 부동의 총공 지위에 지장이 아니아니아니이게아니라」
「그 의문에는 내가 직접 답하겠어요!」
뒤에서 한 떨기 꽃처럼 웃고 있던 아테나가 불쑥 끼여들었다.

*****

백양궁(白羊宮), 금우궁(金牛宮), 쌍아궁(雙兒宮), 거해궁(巨蟹宮), 처녀궁(處女宮), 사자궁(獅子宮), 천칭궁(天秤宮), 천갈궁(天蝎宮), 인마궁(人馬宮), 마갈궁(磨羯宮), 보병궁(寶甁宮), 쌍어궁(雙魚宮).
한국어로도 까다롭고 일본어로는 발음하다 중간에 혀 꼬이기 십상이며 심지어 영어로는 아예 폼나는 표기가 불가능한 십이궁의 각 궁은, 지상에 강림한 아테나에게 바쳐졌던 그 아득한 신화의 시대부터 당대의 수호자와 연동하여 주인의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올림푸스 12신의 반열에 드는 아테나의 신력이라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육체 하나 재구성하기란 누워서 떡먹기였고 그런 연유로 황금들은 말짱한 새 몸을 입고 줄줄이 지상에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다만 주인을 '영영 잃고' '함께 죽어버린' 인마궁은 파티션 불량을 일으킨 하드마냥 대부분의 정보가 지워져 버린지 오래였고, 그나마 얼마간 남은 정보도 세월에 풍화하고 <손괴>된 나머지 13년 버릇 고대로 가만히 붙어 있질 못하고 자꾸 튀어나가려는 혼이 무사히 정착할 만한 안정적인 육체를 재구성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때문에 계속 일정에 차질을 빚던 아테나는 결국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전문가에게 떠넘기기가 최선책이라 상큼하게 결론짓고 이 방면의 엑스퍼트인 하데스를 끄질고 왔던 것이다. 세이야 최종화에서 명실공히 최강인 아테나의 필살 창질에 꼬챙이가 되었을 하데스가 왜 멀쩡하게 명줄 붙이고 있느냐 하면, 신이라 해도 같은 신, 더구나 세계의 일부를 이루는 신을 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이대로 하데스를 조지면 제우스에게 위임받은 지상은 물론 명계 관리도 떠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마지막 순간에 아찔한 타이밍으로 깨달은 아테나가 손을 좀 늦추었다고도 하지만 일단은 스루하자. 따지기 귀찮다.
여하튼 명색 맏이임에도 동생들에게 존경 한 번 받아본 역사가 없는 터에 슌에게 빙의했을 때 잠시 경험해본 잇키와 슌의 마그마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형제애가 내심 몹시도 부러웠던 고독한(주: 오피셜) 명계의 왕은, 세이야를 대표하는 형제 3인조 중 - 사가/카논, 아이올로스/아이올리아, 잇키/슌 - 하나가 형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을 직접 전수해준다는 꼬드김에 여지없이 낚여 아테나에게 기꺼이 협력하였다.
『사지타리우스는 올해로 스물일곱이라 하였던가. 내 그에 맞추어 몸을 만들어주겠』
『이의 있습니다! Objection! 異議あり!!!!!』
하데스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죽은 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타야 할 저승 루트를 가뿐히 쳐씹고 13년이나 지상에 진드기처럼 붙박고 있었던 영혼치곤 지나치게 건강하고 지나치게 활기 넘치는 사지타리우스의 세인트는 테이블을 집어던지며 격렬히도 이의를 제기했다.
참고로 교황 될 자에게 밥상뒤집기는 기본 스킬이다.
『꽃다운 10대를 4년도 못 살아본 가련한 청소년이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영겁을 사는 신들에겐 그깟 13년 우습지도 않겠지만 인간에겐 아니란 말입니다! 스물만 넘겨도 얄짤없이 퇴물 취급 받는 게 세이야 바닥인데! 열네 살 파릇파릇한 청춘에서 눈 감았다 다시 떠보니 갑자기 서른 줄 아저씨는 너무하잖아요!!! 어흑흑흑흑흑흑흑!!!!』
비극의 히로인도 아닌 것이 괜히 옆으로 풀썩 주저앉아 악어의 눈물부터 뽑고 보는 사수좌에게 아테나가 달려들어 C컵 가슴을 다 하여 얼싸안았다.
『아아, 나의 가엾은 아이올로스! 내 품안에서 서러움을 떨쳐버려요! 숙부님, 부디 자비를 베푸세요. 연민을 보여주세요. 아무리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기로서니 인간의 짧은 70년 생애에서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 봄을, 그 좋디 좋은 청소년기를 생으로 건너뛰고 대뜸 생물학적으로 내리막길을 타는 스물일곱으로 만들어주겠다니요, 그 무슨 횡포이신가요! 믿을 수 없어! 나쁜 분! 악마! 사람도 아냐! 성질이 그 모양이니 숙부님은 제게 아테네 시가 봉헌될 때 그리스 전역을 다 뒤엎어도 모시는 신전이 딸랑 하나였던 거예요!!』(주: 사실임)
꿀쩍한 저승에 짱박혀 날이면 날마다 죽은 놈들과 부대끼기나 하고 일가친척들이 이쁘기만 하면 남녀노소 가림없이 계집질 서방질로 날밤을 지새울 제 유일한 마눌과도 변변한 연애질 한 번 못해보고 보쌈으로 때운 음침한 신이 '나의 아테나땅은 섹스 따위 하지 않는다능 하악하악'하며 애꿎은 신화를 매장시키는 (주: 맹세컨대 사실임) 원조 씹덕을 줄로 양산한 성처녀 팔라스 아테나와 대중적 인기로 경쟁하기란 마치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와 포고스틱의 경주와도 같지만 뭐 그 점은 대충 넘어가자. 귀찮다고.
하여간 숭악한 돌덩이를 움켜쥐고 기때기 한 방 시전에 <그> 아레스를 쳐잡았던 아테나가 창을 꼬나잡고 기세등등하게 최전선에서 휘젓고 다니는 동안 (특히 마음이) 상처입는 게 두려워 엘리시온 최심부에 틀어박혀선 <당대에서 가장 깨끗한 영혼>이네 어쩌네 참 같지도 않은 핑계로 어리고 이쁜 것들만 골라 옮겨타고 다녔던 실은 대박 소심쟁이 하데스는, 전쟁의 여신과 열둘 다 모이면 행성 몇 개쯤 가뿐히도 뽀개는, 인간의 사전적 정의를 한계까지 잡아당겨 늘려야 겨우 발 좀 디뎌볼까 말까하는 인외생물의 정점에 선 놈의 애원을 빙자한 흉흉한 기세에 눌려 어찌저찌 결국 열네 살 버전으로 새 육체를 성형하는 데 동의하고 말았다.

나름으로는 호의의 표시였는데 말이죠.

*****

「─────이런 감동적이고도 심금을 울리는 사연이 있었지요」
회상 종료.
감히 여신의 말씀에 대놓고 딴죽을 날릴 만큼 탱탱하게 부은 간뎅이는 누구도 갖고 있지 못했으므로, 모두는 그저 여신과 사지타리우스의 세인트가 가볍게 양손을 맞부딪혀 이예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광경(이라 쓰고 '의심할 여지없는 성역 최흉 콤비 탄생의 현장'이라 읽는다)을 굵직한 땀방울을 다발로 매달고 목도할 따름이었다.
한편, 넉넉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따스한 원조 진짜배기 성모(聖母)였으나 일단 한 번 나사 빠져 뻘짓을 시작하면 대대로 찌질테크트리의 저주를 받은 제미니건 대를 이어 독전파인 비르고건 누구 하나 감당하지 못했던 선대 사지타리우스를 회상하고 잠시 하염없이 먼눈이 된 시온의 어깨를, 도코는 그저 침묵 속에 같은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품을 수 있는 동지애를 담아 진중하게 두드렸다.

그리고 황금들은 또다시 뒤늦게서야 중차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여러모로, 정말 여러모로 아이올로스에게 할 말이 숱할 사가가 여지껏 입 한 번 여는 일 없이 뒤로 물러나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일동의 시선이 일제히 사가에게 쏠렸고, 그 시선의 끝에서, 굳게 다물린 모양 좋은 입술이 한참을 달싹이다 마침내 메마르고 갈라진 소리를 토해내듯이 발음하였다.

「……아이올로스」
「사가」

아이올로스는 황금들을 헤치고 한 발짝 걸어나왔다.
그들의 확집이 없었던들 사가의 난도 없었을 두 사람은 실로 13년만에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보았고, 평온한 녹색 눈동자와 경련하는 푸른 눈동자가 맞부딪혔다.
서서히 방안에 감도는 기류는 험악해지고,
제 3자는 마른 침을 삼키며 일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올로스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웃었다.
「여전히 미인이구나」
「……오, 오랜만이군」
살벌한 BGM이 여지없이 쪼그라졌다.

뭐어야 할 말 그것뿐이냐 야이 인간들아 분위기는 뭐하러 잡았대 후배들이야 쌩난리를 치거나 말거나, 뭔가 나름대로는 곤란한 한 선을 어렵게 넘은 사가는 아무리 미인이라 한들 188짜리 스물여덟 장정에게는 세상이 열 번 뒤집혀도 결코 허락되지 않을 은근히 소녀스러운 자태로 풍성한 모발을 손가락에 얽어 비비 꼬면서 '잇고 싶은 말이 있지만 부끄러워 차마 못하겠어요 꺄아'를 어필하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그 시각적 테러에 진짜로 속이 울렁거렸고 카논은 고개를 외로 꼰 채 단지 남만다부남만다부만을 되뇌었다.
「사가」
정신 구조가 너무나 막강해 그쯤의 시각 공해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는 아이올로스는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듯 곤란하게 웃고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아, 아이올로스……!!!」
불러주기가 무섭게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감격의 눈물을 철철 흘리며 13cm 밑을 불문하고 기꺼이 몸을 던지는 사가를 보건대 모양은 좀 그렇지만 나름 해피엔딩인가 하여 긴장이 풀린 미로는, 때문에 여태껏 OTL을 찍지 않도록 든든히 부축해 주고 있던 아이올리아가 지옥 밑바닥에 쳐깔린 목소리로 중얼거린 말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다.
「……………………테」
「응? 리아, 지금 뭐라고 했어?」

내 형한테 손대지 마 이 범죄자가───────────!!!!

교황궁 전체가 뒤흔들리는 어마어마한 포효와 함께 하데스 십이궁편 10화보다 당사비 열두 배의 사심이 꼭꼭 눌려담긴 황금 제일의 인파이터의 주먹이 광속으로 사가를 무자비하게 쳐날린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

「이 변태! 로리콤! 쇼타콤! 페도파일! 소아성애자! 스물여덟이나 주워먹고 열넷한테 좋아하며 달려들지 말란 말이다! 이 (삐──)해서 (삐──)하고 (삐────)하고 (삐─────) 한 (삐──────────)가아아아아아!!!!!」
「야, 리아, 야 임마! 아이올리아! 진정해, 진정하라구, 제발 이러지 말자 진짜 무섭다고───!!!」
그야말로 The Night Leo Went Crazy.
양팔과 양다리에 결사적으로 매달린 동료들을 아랑곳도 하지 않고 사가를 때려죽일 기세로 길길이 날뛰는 아이올리아는 무섭기 짝이 없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소박하고 곧바르고 꽉 막힌 모범생인 레오의 어휘 사전에 저 적나라한 욕설이 다 인풋되어 있었다는 게 실은 더 공포의 도가니였다.
본인에게 향하지도 않았건만 한 마디 한 마디에 티나게 움찔거리는 카논을 므우는 경멸 어린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형은 쇼타콤, 동생은 로리콤이란 말이죠. 하여간 이래서 제미니는……」
「무무무무무무무무슨, 누, 누누누누누가 로리콤이란 거야! 나는 그저! 상냥하고 자애가 넘쳐흐르고 때로는 용감하고 때로는 조신하며 늠연하고 투명한 푸른 눈동자와 길고 아름다운 머리칼 끝까지 기품이 감돌고 진심으로 지상의 평화를 기원하며 사명을 끝까지 다하고자 하는, 목숨을 걸고 지킬 수 있는 것이 영광인 분이 이상형일 뿐이고! 아테나야말로 그 이상형이실 뿐이고!」
「아무도 묻지 않았어, 카논」
한편 불의의 기습에도 불구하고 과연 황금 최강의 명성이 무색하지 않게 별다른 데미지도 없이 벌떡 일어난 사가가 발을 쿵쿵 구르며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청금빛 머리칼이 끄트머리부터 살살 시커매지고 있는 사가와 파란 눈이 슬슬 시뻘건 색으로 명멸하고 있는 아이올리아가 이를 부드드득 갈면서 서로를 노려보는 꼴이란 그야말로 코브라와 몽구스, 용과 호랑이, 후처와 딸내미의 천일전쟁에 맞먹는 장절한 광경이었다.
저 뒤편에서는 아프로디테가 여전히 통나무처럼 뻐드러져 있는 슈라의 멱살을 움켜쥐고 덜걱덜걱 흔들어가며 "어서 발딱 일어나 저 바보 같은 삼각관계에 합류해 사각관계를 만들지 못해! 안 그래도 영판 눈에 안 뜨이는 수수한 체질인데 여기서 뒤쳐지면 작가한테도 잊혀진단 말이다! 빨리 일어낫!!!" 어쩌고 외치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스루한다.


아이올리아에게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사가를 결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형에게 접근시켜서는 안된다고.
그러니까, 저 자는,
저 자는.

「……어……?」

머릿속이 희뿌옇게 바래면서 무릎이 휘청했다.
건너편에서 급작스럽게 당황하는 사가에게 의문을 품을 겨를도 없이, 형님의 불호령이 귓전에 도달하기도 전에,
아이올리아의 사고는 거기서 끊겨 버렸다.

「둘 다 거기까지!! 인피니티 브레이크!!!!

*****

「나도 그때는 어렸지」
속성과 강도와 숫자를 자유자재로 조절하기는 기본이고 심지어 생체추적기능까지 딸린 무수한 화살로 상대를 쌔려패는 사기성 기술로 친구와 동생을 사정없이 때려눕힌 성역의 영웅은 참으로 자애롭게도 뻗어버린 양자(兩者)를 양쪽 무릎에 하나씩 얹고 진중히 뇌까렸다.
뭔가 아이올리아는 쳐맞기 전에 이미 기절했던 것도 같지만 신경쓰지 말자.
「물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게 제일이라 의심치 않고 방임을 했더니 세상에 이 꼴 좀 보라지. 사가야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 데스는 불량이 됐고, 디테는 완전히 지조때로, 슈라는 중증 울증환자, 게다가 맙소사, 므우까지 비딱해졌잖아! 무엇보다 난 리아를 이렇게 음침한 애로 키운 기억은 없다고! 방임주의? 철회다 철회!」
아이올로스는 쫄아붙은 좌중을 주욱 둘러본 후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사정 안 봐주고 주먹으로 논할 생각입니다. 잘 부탁해」

언제는 봐준 적이 있었는지, 주먹으로 논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어폐뿐임에도 누구 하나 감히 반박하지 못하는 채로, 뜨겁고, 화끈하고, 격렬한 성역의 뉴라이프가 막을 올렸다.
경사났네 경사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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