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미술의 계절 : 오필리아.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10/09/27 22:29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오필리아(Ophelia), 1852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약속하셨죠,
부부가 되겠다고 약속하셨죠?'
이 같은 소녀의 말에 대해서,
'낮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껴안고 자고 나니 마음 변했네.'
남자는 이같이 대답했다네.

착란을 일으키고 광기에 사로잡힌 무수한 여인들의 원조이자 정점이자 상징. 모친의 '배신'으로 인해 여성 전반에 대한 신뢰를 잃고 만 햄릿은 사랑하는 여자마저도 창녀로 몰았고 그 와중에 왕자의 광기는 그녀에게 옮겨붙었다. 한때 5월의 장미같이 화사하게 빛났던 소녀는 억압과 좌절과 비탄과 어쩌면 죄책감 속에 미쳐버렸으며 종국에는 그녀의 제정신과 함께 인어처럼 검은 물 속으로 하염없이 가라앉았다. 마치 자살이라도 하듯. 문학사를 통틀어 최고로 손꼽히는 시적인 죽음의 현장.
셰익스피어는 오필리아에게 운향꽃을 주었다. 운향꽃(rue)은 이름 그대로 후회의 의미를 담은 풀인 한편 그 어마어마한 유독성으로 인해 유산(流産)하는 데 흔히 쓰이던 허브라고 한다. 오필리아를 담은 무수한 작품 중 단연 최고봉으로 간주되는 밀레이의 그림에서, 그녀는 양팔을 벌리고 시선은 위를 향하고 있다. 성인과 순교자들이 흔히 취하는 자세인 동시에──에로틱한 함의를 품은 자세.

왠지 그림에서 꽃 같은 아가씨 대신 엉뚱한 놈이 보이더라도 신경 쓰지 마시라. 가을이 미술의 계절일 뿐이다.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오필리아(Ophelia), 18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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