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타레도키(かはたれ時)와 타소가레도키(たそがれ時).

듣거나 혹은 죽거나 | 2012/03/31 07:31

그놈의 게으름이 발목을 잡아 차일피일 미루기를 꼬박 2년인가 3년(.....), 바로 어제 어디에 처박아뒀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소논문을 재발견한 참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퀄리티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미친듯이 휘갈겨내려갔다. 좀 한가하냐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건 뭐 블랙 유머죠.
다음은 flying 이후 내가 10년 가까이 열렬히 충성을 바치고 있는 GARNET CROW의 5번째 앨범 THE TWILIGHT VALLEY의 7번 트랙 술래잡기(かくれんぼ)다. 도에스의 노래(ドSソング)라는 둥 나나 님 미쳤다(七様ご乱心)(나나 님=작사가 아즈키 나나)는 둥 팬들의 아우성이 유독 심한 곡인데, 왜 그런지는 가사를 보시면 압니다.



いち、に、さん 目を閉じて数えていた気配が消えるまで
하나, 둘, 셋, 눈을 감고 숫자를 셌죠, 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もういいよ」って声で振り返れば誰もいなくて
「다 됐어」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군요

あぁ さがす振りをして
아아, 찾는 시늉을 하면서
このまま一人で ぶらり歩くのがいい
이대로 혼자서 느긋하게 걸어볼까요
出るに出られない事情は約束のせいでしょう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겠죠, 규칙이 있으니
祈りささげてる
기도하고 있나요?

最後まで見つからずにいれば
마지막까지 들키지 않으면
願い事はきっと叶うはずと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ふざけただけなのに信じている
농담했을 뿐인데 그걸 믿었나요?
日が暮れるまで誰もいなくなればいい
날이 저물 때까지 다들 없어져버리면 좋겠어요
消えてしまえ
사라져 버리라죠

ひとりふたり……不安げな動きがしても知らぬふりをして
하나, 둘……불안한 낌새가 느껴져도 모른 척 무시하고
境内の鍵など閉じてみたりして帰ろう
경내의 문을 잠그고 돌아가 볼까요

あぁ 真夜中近くに鳴いたフクロウの声に怯えるがいい
아아, 한밤중에 우짖는 올빼미 소리에 겁먹으라죠
そして一晩中 眠れずにいれば夜明けの頃カラスもなくでしょう
하룻밤 뜬눈으로 지새면 새벽녘에는 까마귀도 울 거예요

最後まで見つからずにいれば
마지막까지 들키지 않으면
願い事はきっと叶うはずと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ふざけただけなのに 息をころし
농담했을 뿐인데 숨을 죽이고
まだ祈るつもりですか? 私は帰るよ
아직도 기도하고 있나요? 난 돌아갑니다
鬼ですから
술래니까요

鳥居くぐる夕暮れ時は 爽快な気分で
땅거미 깔린 토리이를 지나오며 상쾌한 기분에
微笑みもこぼれてしまう
웃음마저 비어져나와요

最後まで見つからずにいれば
마지막까지 들키지 않으면
願い事はきっと叶うはずと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ふざけただけなのに信じている
농담했을 뿐인데 그걸 믿었나요?
そのまま祈るがいい
그대로 기도나 하시던가요
私は鬼です
나는 술래예요
鬼ですから
술래랍니다

대체 뭘까요 이 원인도 없고 이유도 없이 풀풀 넘쳐흐르는 냉혹한 악의는.
원문의 오싹한 느낌을 하나도 못 살린 감이 척추를 쿡쿡 찔러오지만 단연코 무시합니다. 내가 능력이 모자란 탓이 아니야! 번역은 어려운 거라고! (우겨댄다)

일본의 술래잡기는 따지고 보면 굉장히 으스스한 놀이다. 편의상 '술래'라고 옮기기는 했지만 보시다시피 원래는 오니(鬼)라고요. 오니. 요괴. 어둠 속에 녹아들어 인간을 해치는 자. 살갗에 달라붙는 섬뜩한 공포를 주는 존재.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그 무엇. 원한이 있건 없건 무차별적인 악의를 흩뿌리며 걸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불행을 주는 두려움의 대상.

얘기가 잠시 빗나가는데 보통 오니를 귀신으로 번역하고 까놓고 말해 그거 아니면 뭘로 번역할래 싶긴 하지만 실상 어폐가 심각한 게, 한국의 귀신은 사람이 호통치면 겁도 먹고 비명도 지르고 속아서 달아나기도 하는 허술하고 친근하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한 존재잖은가. 대부분은 해할 의도 없이 단지 산 자에게 간절한 부탁이 있어서 나타난 걸 제풀에 놀라서 꼴깍 죽은 놈이 병딱일 뿐이다(...). 끈적끈적함과 으시시함을 디폴트로 매단 일본의 오니와는 애초에 급수가 달라요. 마찬가지 이유로 오니를 도깨비로 번역해서도 매우 곤란하지 말입니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그냥 뚝 떼어가도 될 일을 혹을 받고 성실하게스리 대가로 도깨비방망이를 주는 신사라고요.

하여간 이런 무시무시한 놈에게서 '달아나' 발견하지 못할 곳에 '숨고' 오니는 숨은 인간을 찾아 돌아다니는 놀이가 가쿠렌보(隠れん坊)인 것이다. 아무리 대체적인 룰이 같아봤자 결국 평화롭기 짝이 없는 술래잡기니 Hide-and-Seek하고는 기본적인 뽀오쓰가 비교도 안된다. 도대체 애 하나 가운데다 쑤셔박아놓고 주위에서 이지메처럼 빙빙 도는 카고메 카고메도 그렇고 일본 놀이는 왜 이리 섬찟한지 파고들면 한도 끝도 없겠고 내가 민속학자도 아니니 일단은 넘어간다. 하여간 일본 괴담집을 아무거나 집어들어 펴보면 술래잡기 중에 지나치게 잘 숨어 있다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통에 그대로 카미카쿠시(神隠し=마치 귀신이 숨긴 양 사람이 흔적도 없이 실종되는 것)를 당해 영영 사라지거나 술래가 문자 그대로 오니가 되어 머리부터 씹으려 달려드는 얘기가 살짝 과장을 보태 세 개 걸러 하나씩 튀어나오는 판이다.
아울러 안 그래도 뭔가 무서운 놀이이거늘 해질녘에 술래잡기를 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암묵의 터부가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내 불분명한 지식을 뒷받침해줄 근거를 찾아 광대한 네트워크를 늘 그렇듯이 정처없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꽤나 흥미로운 글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빠질에 관한 한 나의 검색 기능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일(퍽)
다음은 건축잡지(建築雑誌) 1991년 4월호에 게재된 오사카대학 문학부 조교수 코마츠 카즈히코(小松和彦)의 사설 <카와타레도키, 타소가레도키~카미카쿠시와 술래잡기의 터부(かはたれ時、たそがれ時~神隠しと隠れんぼのタブー)>다. 즐감들 하시길.

일본어는 저물녘을 <타소가레도키(たそがれ時)>라 하고, 한자로는 황혼(黃昏)이라 쓴다. 이는 저물녘의 색채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어원적으로는 어둠침침해져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무렵, 즉 <누구지 저건(誰そ、彼)>하며 의심스레 여길 무렵이라는 의미에서 온 말이다. <타소가레도키>는 <카와타레도키(かはたれ時)>라고도 한다. 마찬가지로 <저 자는 누구인가(彼は、誰)>에서 유래하였다.
저물녘은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시간이며, 바깥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완전히 날이 저물어 암흑이 내려앉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고, 아울러 사람과 교대하듯 낮에는 숨을 죽이고 이계에 머무르던 요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다시 말해 저물녘은 인간과 요괴가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땅거미가 깔리는 무렵 집 앞에 서 있으면, 어스름 속에서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온다. <저건 누구인가> 의심스레 바라보는 사이, 점점 거리를 좁혀온다. 불안해진 나머지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마침내는 코앞까지 성큼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아는 이라면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면식이 없는 자라면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럴 때, 사람은 누구나가 저물녘의 짙어지는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저물녘이란, 과거의 일본에서는 불안감을 안겨주는 위험한 시간대였다. 그 시절의 잔재가 <타소가레도키>와 <카와타레도키>라는 언어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해질녘은 카미카쿠시(神隠し)나 유괴를 당하기 쉬운 시각으로 여겨져왔다. 이 전통은 상당히 오래 묵은 것으로, 13세기 중반에 간행된 설화집인 <고금저문집(古今著聞集)>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켄포(建保, 1213~1219) 무렵, 다카쿠라(高倉)라는 여관(女官)이 있어, 7살 먹은 아들 아코호시(あこ法師)를 두었다. 아코호시는 이웃집 아이들과 어울려 코로쿠죠(小六條)까지 나들이를 나갔다. 해가 저물 무렵이 되었다. 아이들이 스모를 즐기고 있을 때, 뒤쪽에 선 토담 위에서 천과 흡사한 것이 내려와, 아코호시를 휘감았다. 그것도 잠시뿐, 아코호시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그 자리에서 달아났고, 공포에 질려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비탄에 잠긴 모친은 사방을 헤매며 아들을 찾았으나 헛수고로 돌아갔다. 사흘째 되는 날, 한밤중에 여관의 집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겁먹은 여관이 문을 닫아 잠근 채 누구냐 묻자, <행방불명된 너의 아이를 돌려주마. 문을 열어라>고 대답하였다. 차마 열지 못하고 있노라니, 처마 즈음에서 여럿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무언가를 낭하에 집어던졌다. 쭈뼛거리며 불을 당겨보자, 틀림없는 여관의 아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이는 마치 죽은 자와도 같이,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그저 눈만을 끔벅일 따름이었다.

아코호시를 데려간 것이 정말로 덴구(天狗) 혹은 귀신과 같은 카쿠시가미(隠し神)였는지, 아니면 인간(인신매매)였는지는 알 수 없다. 사라진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사자가 이야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건, 해질녘은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시각이었다.
땅거미가 깔리면 카미카쿠시를 당하기 전에 얼른 집에 돌아가도록 아이들을 재촉하는 풍습은 극히 최근까지 다수 남아 있었다. 특히, 해질녘의 술래잡기는 엄격히 금지되었다. 예를 들어, 마츠야마 요시오(松山義男)가 저술한 <산국의 신과 사람(山国の神と人)>에 따르면, 나가노현(長野県) 시모이나군(下伊那郡)의 토오야마 계곡(遠山谷)이 그러하였다.

어린아이가 유괴당하는 것은 주로 저물녘이었습니다. 우에무라(上村) 나카네(中根)에 사는 마흔 다섯(쇼와 33년[1958년] 당시) 먹은 사내는, 어린 시절 이웃집 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아기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어요. 구링 님(グリン様=덴구)께서 데려가셨다고 모두가 입을 모았죠. 온 마을사람들이 찾아 나섰더니, 사흘 후에 자기 집에서 자고 있더랍니다. 사흘 동안 산 속을 정처없이 헤맸다고 했어요. 나카네와 우에무라의 시모구리(下栗) 근방에서 저녁에 술래잡기를 엄격히 금한 건, 이러한 재난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13세기 초엽에 교토의 거리에서 일어난 아코호시 실종사건과, 상술한 다이쇼(大正) 무렵 나가노의 산골짝에서 벌어진 소년의 실종사건을 비교해 보면, 대체적인 흐름은 같음을 알 수 있다. 저물녘은 특히 아이들에게 위험한 시간이자 터부로 점철된 순간이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연히 이어져내려온 전통이라 해도 좋으리라.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国男) 또한, <산의 인생(山の人生)>에서 다음과 같이 저술하고 있다.

도쿄와 같은 번화가에서조차 한밤중의 술래잡기는 터부시되어 있다. 밤에 술래잡기를 하면 귀신에게 끌려가던가 카쿠시바바(隠し婆)가 잡아간다고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부모가 아직도 많다. 시골마을을 걷고 있노라면 여름 나절의 해질녘에 아이를 찾는 어머니의 날카로운 외침을 종종 듣게 되는데, 저녁을 먹도록 독촉하는 한편으로 이러한 두려움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시범삼아 초등학교를 찾아 물어보아도 알 수 있듯이, 땅거미가 깔렸을 때 바깥에 있거나 하물며 술래잡기를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아이들은 숙지하고 있다. 후쿠치야마(福知山) 부근에서는 어두워진 후에 술래잡기를 하면 카쿠시바바에게 잡혀간다고 하며, 여타 지방에서는 호리(狐狸)니 카쿠시가미라고도 한다.

사실, 저물녘에 어린아이의 실종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저물녘에는 주변경치의 윤곽이 불분명해지므로, 길을 잃고 헤매기 쉽다. 나아가, 설령 실제로 유괴된 시각은 한낮이라 해도, 아이가 평소 집에 돌아오는 것은 저물녘이므로, 그때가 되어서야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데 가족들이 의심을 품고 소동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해질녘이야말로 어둠을 틈타 나타난 <카쿠시가미>니 <유괴범>이 귀가를 서두르는 아이를 잡아가기에 가장 좋은 시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면, 어째서 해질녘에 술래잡기를 해서는 안되었던 것일까.
술래잡기란, 모여든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로 술래(鬼=귀신)을 정한 후, 술래가 눈을 감고 <다 됐어?>하고 물으면 나머지 아이들이 <아직이야>라 대답하면서 술래가 찾아다녀도 바로 발견하지 못할 장소를 찾아 숨는 놀이이다. <다 됐어?>라고 묻는 술래에게 <다 됐어>라고 대답하면, 술래는 눈을 뜨고 숨은 아이들을 하나하나씩 찾아낸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은 한낮에 술래잡기를 하노라면, 다소 먼 곳에 숨어 있어도 술래가 느긋하게 찾아다녀줄 것이다. 때문에, 좀처럼 발견해주지 않는다 해도 불안한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해질녘에는 사정이 다르다. 아직 날이 밝으니 괜찮으리라 믿고 찾기 힘든 곳에 숨어 있자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술래가 찾으러 와주지 않는다. 으슥한 자리에 숨은 아이는 점점 불안해진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술래잡기가 끝나 모두 집에 가 버린 게 아닐까. 어쩌면 놀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는 사이 날은 완전히 저물고, 아이는 밤의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아이를 발견한 <카쿠시가미>니 <유괴범>이 다가와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를 어딘가로 채갈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저물녘의 술래잡기는, 교묘하게 숨은 아이를 어둠 속에 남겨두어 누군가가 잡아갈 기회를 주고야 마는 위험성을 내포한 놀이인 까닭에, 터부시되었던 것이다.

<카와타레도키>와 <타소가레도키>. 낮과 밤의 경계선이 찾아들었을 때, 그 경계에서 길을 잃고 만 자들, 특히 아이들은, 밤의 세계, 요괴의 세계, 이계로 사라졌다.
누군가는 귀신에게 먹히고, 누군가는 덴구에게 거머잡혀 밤하늘을 날며, 누군가는 호리에게 속아 말똥을 삼키거나 거름으로 목욕한다. 누군가는 인신매매범에게 머나먼 고장으로 팔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상, 실종자가 돌아와 체험담을 들려주는 경우를 제외하면, 땅거미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남겨진 사람들이 가진 지식을 긁어모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현대에 들어서도 저물녘은 위험한 시간대이다.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터부시되는 시간이라 해도 좋다. 그러나 <카쿠시가미>의 모습은 거기서 찾아볼 수 없다. 현대의 저물녘은, 사람과 사물을 구분하기 힘들어 교통사고를 당하기 쉽고, 몸값을 요구하는 유괴가 수이 발생하는 시간대로 변질되었다.
그뿐인가, 밤의 어둠은 전등의 발달로 상당 부분 힘을 잃었다.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태연히 길거리를 활보하는 광경도 종종 볼 수 있다.
땅거미 저편에서 신비로운 세계를 보는 시대는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카와타레도키>와 <타소가레도키> 또한, 예전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註 1) 카쿠시가미(隠し神) : 저녁 무렵에 나타나 늦게까지 놀고 있거나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를 잡아간다고 전해지는 요괴. 카쿠시바바(隠し婆さん)도 카쿠시가미의 일종이다. 이런 전승은 일본 전역에서 발견되며, 대체적으로 아이를 유괴해 몸에서 기름을 짜낸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놈의 섬나라는 뭔놈의 요괴가 이리 많고 구체적이고 기분 나쁜지 착한 어린이 여러분은 부모님께 물어봐서는 안됩니다.
(註 2) 카와타레도키는 본래 어스름이 깔린 시각, 즉 해질녘과 새벽녘을 모두 의미했지만 현재는 카와타레도키는 여명, 타소가레도키는 황혼으로 구별해서 쓰고 있다.


맺음말이 좀 심각하게 로망(....)이 없긴 한데 학술문서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못 쓰고, 길지도 않은 글에 필요한 내용이 쏙쏙 다 들어가 있는 점에서 그저 닥치고 경배나 올려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노래 '술래잡기(かくれんぼ)'는 소름끼친다.
누구도 찾아주지 않은 아이들은 과연 다음날 아침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요. 시간은 해질녘. 더구나 장소는 토리이(鳥居)와 경내(境内)를 볼 때 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신사(神社). 교활하게도 '마지막까지 들키지 않은' 아이의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조건을 내걸은 만큼 툭툭 털고 나올 수도 없다. 나오려고 해도 술래가 경내에 걸쇠를 걸어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땅거미가 짙게 깔리는 어스름 속으로 소리도 기척도 없이 녹아들듯이 사라져버리지는 않았을까. 鬼ですから는 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닐까. 나는 오니랍니다. 달콤한 함정에 걸려든 부주의한 아이들을 파멸로 이끄는 악의에 가득한 존재.

그래서 마지막으로 결론 : 나나 님 더해라(........)
이 노래를 처음 알았을 때 취향 고약한 내가 얼마나 정줄놓고 열광했는지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구제불능한 막귀를 자랑하는 자에게 노래는 가사가 생명이고 전부죠 암은요.


덤. 어원의 기묘한 섬뜩함과는 별개로 카와타레도키와 타소가레도키라는 말의 울림 자체는 고울 뿐더러 어쩐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유래를 생각하면 블랙한 개그지만;
실상 영어의 Twilight도 엄청 좋아하는 단어인데 요즘은 때가 때라서 트와일라잇이라는 말은 이제 세상의 공공연한 공적이 되어버렸죠(.....) 시발 이게 다 그놈의 뱀파이어물을 빙자한 뽕빨한 10대 연애물 때문이다 내 트와일라잇 물어내......!! (쳐운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kisara71.cafe24.com/blog/trackback/2315456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