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어느 브라우니 영령의 우울.

Gate of Ecstasy | 2012/06/01 17:54

그를 소환한 소녀의 낯익고도 그리운 얼굴을 마주했을 때 아처의 클래스로 현계한 영령 에미야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감정은 필설로 다 못할 짙은 안도감이었다.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넘어 장구한 세월 끝에 그는 마침내 최초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당장이라도 토오사카 저택을 박차고 뛰쳐나가 에미야 가로 달려가고픈 충동을 그는 한없는 인내심으로 지그시 억눌렀다. 가까스로 찾아온 기회를 서두르다 그르쳐서는 안될 말이었다. 이 끔찍한 굴레에서 해방되는 순간은 멀지 않았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고 또 되뇌었다. 불과 며칠. 그간 견뎌온 영겁에 비하면 한낱 먼지 한 톨에도 못 미칠 찰나의 순간일 따름이다. 기다려라. 스나이퍼는 최상의 타이밍이 찾아올 때까지 몇날이고 며칠이고 진득하게 대기하는 법이지.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아련해진 양아버지의 말이었다.
그래서, 궁병은 숨을 죽이고 차분히 '그 순간'을 기다렸다. ──기다렸는데, 말이지.

분한 나머지 씨근덕대며 여고생에 대한 모든 환상을 싹싹 쓸어 쓰레기통에 처박는 갖은 욕설을 중얼대고 제네바 협정도 금지한 오만가지 짓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소녀에게, 귀여운 동안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나이보다 성숙한 분위기의 소년은 마치 아기를 달래듯 참을성있게 되풀이했다. 토오사카, 꼼짝하지 마. 네가 움직이면 난 널 죽여야 해. 그러고 싶진 않아. 제발, 움직이지 마. 소녀의 가느다란 목 양옆의 벽에 깊숙이 박힌 두 자루의 흑건이 희끄무레한 달빛을 받아 예리한 반사광을 그렸다. 그쪽의 서번트도, 마스터의 안위를 바란다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무엇보다──. 반쯤은 조롱조의 부드러운 테너가 아처를 당돌하게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뗀 소년의 말허리를 대뜸 분질렀다. 시로, 무얼 꾸물대느냐.
가로등도 변변히 없는 어둑어둑하게 골목에서조차 폭력적인 존재감을 흩뿌리는 황금빛의 서번트는 벽에 등을 기대고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짐을 기다리게 할 셈이지. 짐이 손수 그 하잘것없는 잡종들을 처리해야 쓰겠느냐? 무수한 황금빛의 파문이 불온하게 주변에서 일렁거렸다.
길! <코토미네 시로>, 올해 16세, 후유키 교회 전임신부 코토미네 키레이의 양아들은 그의 서번트──영웅왕 길가메쉬를 향해 대뜸 일갈했다. 토오사카는 동급생인걸. 내 입장도 생각해달라고! 내일 당장 조별 발표가 있단 말야!

오 세계여. 아처의 클래스로 현계한 영령, 생전의 이름은 에미야 시로였던 한 청년은 속절없이 뒷목을 잡았다.

그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마침내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은 제대로 건넜다. 공간좌표가 글러먹었을 뿐이다.
내 행운도 어차피 E였어. 난 안될 거야. 성배전쟁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그저 도망가고 싶은 묵직한 절망감이 세계가 절찬한 등짝을 덮쳤다. 그 순간의 어깨를 늘어뜨린 붉은 궁병만큼 애처로운 오브제는 어느 차원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아울러 '내일 조별 발표가 있어서 동급생을 죽이지 않는', 뒤집어 말하자면 '조별 발표가 없으면 쓱싹할 작정이었던' 코토미네 시로의 뭐라 말할 수 없이 거슥한 논리에는 그냥 눈을 감았다. 신부가 아주 지대로 가르쳤지 뭔가.

하여간 키리츠구 그 회를 떠도 시원찮을 샛기가 꼬꼬마 호구 김시로에서 양애비 잘못 만나 이상에 갈린 에미야 시로로 업글해준 걸 빼면 뭐 이거 하나부터 열까지 양아들놈 인생에 도움이라곤 한푼어치도 안되다 보니 - 솔까 키리츠구가 시로를 키웠나요 시로가 키리츠구를 봉양했지 - 저쪽 바닥에서 종종 보이는 대로 키리츠구보다 유열부부가 바닥에 널브러진 애를 먼저 주워갔을 경우를 상정하고 그 이점을 헤아려 보았다.

<코토미네 시로의 이점>
1. 에미야 성보다 코토미네가 더 간지난다.
2. 남자의 색기가 줄줄 흐르는 신부님과 걸어다니는 색기덩어리 영웅왕 밑이다. 애들은 보고 배운 대로 자라므로 시롱이에게도 수이 색기가 붙는다.
3. 정의덕후가 되지 않는다.
4. 정의덕후에 매진하다 인생 말아먹지 않는다.
5. 신부님은 통찰력이 뛰어날 뿐더러 어딘가의 되다만 빙구마술사와는 달리 정식으로 마술에 발 담근 사람이니 시로의 특이체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살려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잘못하면 폐인만 되고 얻는 건 한 개도 없는 마술수련 안 해도 된다.
6. 시로의 기원이 검이므로 쩌는 흑건 마이스터가 된다. 아울러 기원탄+무지막지한 총화기+만능치유 아발론+고유시제어의 '도대체-어떻게-하면-순-신체능력에-의존한-신부님께-밀리는-거냐'의 키리츠구를 발라버린 매지컬★팔극권도 사사한다. 린에게 가르쳤는데 시로에게 안 가르치겠나.
7. 고학생이 다 뭐냐 영웅왕이 돈지랄하며 키워줄 거다.
8. 5차 성배전쟁에 참가할 경우 서번트는 아빠가 빌려준(....) 길가메쉬. 영웅왕은 신지놈이 마스터일 때도 펄펄 날아다니던 연비 쩔어주는 서번트임요. 연비 나쁜 밥순이를 먹여살릴 필요가
9. 동정은 왕님이 몸소 떼주십

..........뭥미 좋은 점밖에 없....다.............?
사실 문제가 하나 있긴 하다. 시로 서번트가 길가메쉬면 소는 대체 누가 키워 세이버는 누가 소환하나효. 에이 뭐 어떻게든 되겠죠.

그리하여 어젯밤 삘이 온답시고 되는 대로 트위터에 날려쓴 결과물이 ↑저것.
코토미네 시로인데 왜 브라우니가 불행한지는 따지지 마라. 브라우니 팔자가 그렇다. 삶에 지쳤으면 원흉제공자인 지 양애비를 절단내야 할 판에 피해자인 저를 썰러오는 시점에서, 더구나 기세등등하게 돌진한 주제에 멘토질하고 고유결계 주고 팔도 떼어주는 시점에서 넌 호구야 po호구wer란 말이야. 모님들 말씀마따나 공양미 삼백석을 세상에 헌납하고 인당수에 인신공양하여 뭐빠지게 구르고 구르고 또 구르다 겨우겨우 타임리프해서 와 보니 과거의 지가 공양미를 꾸러 갔으면 공양미 꿔오라 보낸 애비를 패야지 왜 너를 패니 이놈아 orz 그러므로 안되는 일과 에픽★페일은 그의 아이덴티티. 어쩌겠수 쿠횽의 행운 수치는 E지만 브라우니도 만만치 않다오.
이후 브라우니는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영령의 좌로 돌아가매 우리의 '마술로 상대가 안되면 강화 걸고 개패듯 패는' 패왕색의 패기 토오사카 린은 일념발기하여 졸 까칠하게 자발적으로 드러누운 신하를 맷돌에 넣고 돌려버리는 얼굴만 블링블링하고 속은 열라 곯아터진 청년왕 아서 펜드래건@엑스칼리버 발검 40년차를 세이버의 클래스로 재차 소환하게 되는 거시었다..... 야 의도가 빤하다 그만해라.

페이트 시리즈 첫 SS가 페제도 아닌 페스나에 심지어 if only라니 삶에 회의를 느끼지만 에라이 아무렴 어떤가. 이 바닥에선 꼴림과 일단 질러라가 제일 중요한 요소인 것을.

top
Trackback Address :: http://kisara71.cafe24.com/blog/trackback/2315465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