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 - The Black Knight.

보거나 혹은 죽거나/Loonies in England | 2012/09/05 18:01

정작 하기로 마음먹은 번역의 진행 속도가 가히 굼벵이인지라 워밍업 앤드 릴랙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아무래도 몬티 파이슨과 성배가 맞는 모양이라는 하찮기 짝이 없으며 아울러 너무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이제 와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이놈의 영화를 전파하고 말겠다는 국가적 중흥의 사명을 띠고(....) 오늘은 킬러래빗과 안티오크의 성스러운 수류탄만큼은 아닐지언정 역시 굳세게 우려먹히는 유명한 시퀀스 중의 하나인 '아서왕과 다리 위의 흑기사(Arthur and The Black Knight of the Bridge)'를 소개하겠슴요. 아서왕-그레이엄 채프먼, 흑기사-존 클리즈, 팻시/녹기사-테리 길리엄. 치명적이고 심각한 오역에 대한 지적만 받습니다. 난 우울하다고.


(퍽쿵콱깡퍽퍽푹푹퍽쿵콱콱꺄악으악끄아아아아악[……]. 결투 종료)
아서왕 : 그대는 일당백의 무용(武勇)을 지녔구려, 기사여.
(침묵)
아서왕 : 나는 브리튼의 왕 아서요.
(침묵)
아서왕 : 나의 궁전 카멜롯에 영접할 훌륭하고 용감한 나라 최고의 기사들을 찾고 있소.
(침묵)
아서왕 : 그대는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였소. 나와 함께 하지 않겠소?
(침묵)
아서왕 : (뻘쭘) 그대는 나를 몹시 슬프게 했소이다. 어쩔 수 없군. (팻시에게) 가자꾸나, 팻시.
흑기사 : 누구도 지나가지 못한다.
아서왕 : 뭣이?
흑기사 : 누구도 지나가지 못한다.
아서왕 : 나는 그대와 다툴 이유가 없소, 존경스러운 기사여. 허나 이 다리를 건너야만 하오.
흑기사 : 그렇다면 죽음으로 갚으라.
아서왕 : 브리튼의 왕으로서, 그대에게 명하노니, 옆으로 비켜서라!
흑기사 : 나는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아.
아서왕 : (칼을 뽑는다) 하면, 어쩔 수 없지!
(신나게 싸우다가 흑기사의 팔이 썩둑 잘린다)
아서왕 : 자, 이제 비켜서시게, 뛰어난 적수여!
흑기사 : 이건 걍 긁힌 상처라구.
아서왕 : 긁혀!!? 댁의 팔이 떨어졌소!
흑기사 : 아닌데?
아서왕 : (가리킨다) 그럼 저 물체는 뭐요?
흑기사 : (잠시 팔을 골똘히 보다가) 더 심한 꼴도 당해봤어.
아서왕 : 거짓말도 작작하시게!
흑기사 : 와라, 비겁자야! 히야!
(흑기사의 나머지 팔도 썩둑 잘린다)
아서왕 : 승리는 나의 것이오! (무릎을 꿇고) 오 자비로우신 주님, 주님의 은총에───
흑기사 : (기도하는 아서왕의 머리를 냅다 찬다) 하! 덤비라고!
아서왕 : 뭐라!?
흑기사 : 먹어라!
아서왕 : 그대는 실로 용감하오만, 싸움은 이미 끝났소!
흑기사 : 호오, 누구 맘대로?
아서왕 : 봐라 이 상찌질한 멍청이 샛갸, 네놈한텐 남은 팔도 없어!
흑기사 : 아냐 있어.
아서왕 : 눈이 있으면 보라고!
흑기사 : 좀 베인 상천데 뭐! (아서왕을 다시 걷어찬다)
아서왕 : 아, 그만!
흑기사 : 겁쟁이! 겁쟁이!
아서왕 : 다리도 베어버린다! (계속 걷어차자) 오냐!!
(흑기사의 오른쪽 다리가 썩둑 잘린다)
흑기사 : 오, 두 배로 갚아주마!!
아서왕 : 뭐시기!?
흑기사 : 덤벼! 덤비라고!
아서왕 : (지긋지긋) 뭘 어쩌려고, 나한테 피라도 칠할 텐가?
흑기사 : 나는 무적이야!
아서왕 : 넌 미친놈이야.
흑기사 : 흑기사는 언제나 승리한다! 받아라! 맞아라!
(아서왕이 흑기사의 왼쪽 다리까지 썰어버린다)
흑기사 : (잠시 두릿거리다) 좋아. 무승부로 쳐주지.
아서왕 : 오너라, 팻시.
(아서왕과 팻시가 코코넛을 두드리며 다리를 건넌다)
흑기사 : 오, 오, 이제야 알겠군. 꼬리를 말고 내뺄 셈이냐!! 이 노랭이 찌질이들아! 돌아와서 용감하게 맞서! 니 다릴 물어뜯어버릴 거야!!

언제나 그렇지만 여러모로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주석.

(註 1) 자세히 보면 흑기사와 녹기사의 결투 배경에 지펴진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한다(........)
(註 2) 이 근성 쩔어주는 흑기사는 클리즈가 학창 시절 영어수업 때 교사에게 들은 얘기에서 유래한다고. 로마인 레슬러 두 명이 서로를 붙잡고 장시간 용을 썼지만 승부가 나지 않은 채 상대에게 기대서야 가까스로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지쳐빠져 버렸다. 결국 녹초가 된 한쪽이 기권패를 선언했는데, 정작 판을 떠나 보니 다른 쪽은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선생은 이 이야기의 교훈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코 지지 않는다'라 설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 클리즈는 뒤통수를 누가 후려갈기는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철학적으로 병맛 쩐다'고(....). 아울러 가웨인 경과 대결한 녹색의 기사(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에서도 일정 부분 모티브를 빌려왔다. 원탁의 전투력측정기(.....) 가웨인이 녹색 기사의 목을 쳤으나 정작 기사는 잘린 목을 집어들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유명한 이야기.
(註 3) 아서왕이 흑기사의 한쪽 다리를 꺽둑 썰어버린 다음의 몇몇 장면은 클리즈가 도저히 한 다리로 균형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근처에 사는 외다리 대장장이 리처드 버튼(당연히 그 명망 높은 리처드 버튼 경이 아니다!) 씨를 대역으로 기용했다. DVD 코멘터리에서 길리엄은 덕분에 흑기사가 몸통만 남은 후의 씬을 찍을 때 바닥에 구멍을 하나만 파도 되어서 수고를 덜었다고 너스레를 떠는데, 클리즈 말로는 구멍에 들어가서 서 있었던 건 자기라고. 이 자들은 왤케 말이 안 맞는가; 덤으로 클리즈는 리처드 버튼을 스턴트대역으로 썼다고 자랑하고 다녔단다. 틀린 말은 아니죠 네(.....)
(註 4) 걍 긁힌 상처예염 : 'Tis but a scratch.


불후의 명대사다.


물론 아서왕을 불곰님으로 치환하고픈 견딜 수 없는 유혹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예이(....) 곰님이라면 대화고 나발이고 너 못 지나가염 처음 개기는 순간에 약속된 승리의 곰앞발 스매쉬로 흑기사를 바닥에 묻어버리시겠지만요! 불곰! 불곰! 훌레이! 근데 왜 그 경우엔 저늠의 흑기사가 랜병장일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거지염(...) 페제 내내 시커맸던 랜병장이 나쁩니다 암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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