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맥베스 살인사건의 수수께끼 by 제임스 서버

Still not a translation | 2012/10/06 19:06

맥베스 살인사건의 수수께끼(Macbeth Murder Mystery)는 미국의 유머작가이자 만화가인 제임스 서버(James Thurber)가 1943년에 쓴 즐거운 단편이다. 독자가 미스터리광이라면 더더욱. 듀나의 낙서판 시리즈 <퍼즐 미스터리는 논리적인가?>와 <추리 독자의 눈으로>에서 몇 년 전에 알게 된 후로 읽어보고 싶어 좀이 팍팍 쑤셨는데 하도 오래 묵고 짧은 물건이라 고맙게도 웹에 전문이 공개되어 있더라지요.
문장도 쉽고 간단하겠다 웬만한 퍼즐 미스터리는 한 번씩 다 돌아본 열성 독자로서 번역해 볼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마침 습님이 관심을 보이신 김에 손도 풀 겸사겸사 걍 질렀다. 네놈의 번역질 따위 도저히 못 믿을 분은 자 여기 원문요. 그리고 그 편이 좋습니다 심각한 오역 외엔 지적을 불허합니다 나는 유리 심장이야 (도주)

"정말이지 멍청한 실수였어요." 영국 북서부 시골의 한 호텔에서 만난 미국인 여성이 말했다. "하지만 다른 펭귄북하고 같이 카운터에 있었다고요. 펭귄북 아시죠, 6펜스짜리 종이커버 책 말이에요. 난 꼭 추리소설인 줄 알았어요. 딴 책은 전부 추리소설이었거든요. 나머진 다 읽었겠다, 그래서 잘 보지도 않고 사 버렸지 뭐예요. 셰익스피어라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머리끝까지 화가 났을지 생각 좀 해보세요."
나는 동정조로 몇 마디를 웅얼거렸다.
"왜 펭귄출판사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추리소설하고 꼭 같은 판형에다 모양으로 내놓는지 모르겠어요." 내 친구가 말을 이었다.
"표지 색은 다르지 않나요?"
"눈치채지 못했으니 무슨 소용이에요. 하여간 푹신한 침대에 편하게 드러누워 이제부터 멋진 추리소설을 즐길 요량으로 딱 폈더니 <맥베스>잖겠어요. 고등학생들이나 읽을 법한 책인데!"
"<아이반호>나 <로나 둔>처럼요."
"바로 그거예요." 미국인 부인이 말했다. "난 애거서 크리스티라면 사족을 못 써요. 에르큘 푸아로의 열렬한 팬이고요."
"토끼 같은 사람 말인가요?"
"오, 아니에요." 범죄물 전문가가 말했다. "푸아로는 벨기에인이에요. 지금 말씀하신 사람은 핑커튼 씨죠. 불 경감의 친구예요. 그 사람도 훌륭하죠."
두 번째 찻잔을 비우면서 내 친구는 완전히 속아넘어갔던 추리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시종일관 집안의 오랜 주치의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부인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맥베스>를 읽으셨나요?"
"어떡하나요. 달리 읽을거리라곤 종이쪼가리 하나도 없었거든요."
"마음에 드시던가요?"
"전혀요." 부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애시당초, 맥베스가 했을 턱이 없잖아요."
나는 부인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뭘요?" 나는 물었다.
"맥베스가 왕을 죽였을 리가 없다고요." 부인이 말했다. "맥베스 부인도 마찬가지예요. 누구나 당연히 그 둘을 제일 의심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범인일 리도 없고 범인이어서도 안돼요."
"저기," 나는 운을 뗐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시겠어요?" 미국인 부인이 말했다. "처음부터 범인이 누군지 명백하면 이야기가 엉망이 되어버린다고요. 셰익스피어 같이 머리 좋은 사람이 그런 실수를 할 리 없어요. 어디선가 들었는데 <햄릿>을 결국 해명하지 못했다면서요. 그럼 <맥베스>도 보이는 만큼 간단한 얘기가 아닐 거예요."
나는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넣는 동안 그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했다.
"누구를 의심하십니까?" 나는 갑작스럽게 물었다.
"맥더프예요." 부인은 즉시 대답했다.
"하느님 맙소사!" 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맥더프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살인전문가가 말했다. "에르큘 푸아로라면 필경 쉽게 잡아냈을 거예요."
"어떻게 알아내셨습니까?" 나는 설명을 부탁했다.
"사실 처음에는 몰랐어요. 애초에 전 뱅코를 의심했어요. 당연스럽게도 뱅코가 두 번째로 살해당했죠. 그 부분은 아주 훌륭해요. 맨 처음 의심이 쏠리는 사람은 언제나 두 번째 희생자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가요?" 나는 중얼거렸다.
"어머, 그럼요." 내 정보원이 말했다. "추리소설은 독자에게 계속해서 놀라움을 안겨줘야 해요. 두 번째 살인 다음엔 한동안 범인이 누군지 종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왕자들은요? 맬컴과 도날베인 말입니다." 나는 물었다.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첫 번째 살인 직후에 달아났던 것 같은데요. 수상쩍지 않습니까."
"너무 수상하죠." 미국인 부인이 말했다. "지나치게 수상한 게 바로 문제예요. 누군가가 도망간다면, 그 사람은 죄가 없어요. 이건 믿으셔도 돼요."
"그렇군요. 브랜디를 좀 마셔야겠어요." 나는 웨이터를 불렀다. 내 친구는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눈은 반짝거리고, 손에 쥔 찻잔은 떨리고 있었다. "누가 덩컨의 시체를 발견했는지 아세요?" 부인이 물었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맥더프가 발견하지요." 부인은 현재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래층으로 달려내려와서 소리질러요. <혼란이 주님께서 기름 부은 신전을 부숴 열었다>는 둥, <신성모독적인 살인마가 이제서야 걸작을 완성했다>는 둥 말이예요." 선량한 부인은 내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사전에 연습을 한 게 분명해요. 보통은 바로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요. 댁이라면 시체를 발견했을 때 그리 말하시겠어요?"
부인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저는──." 나는 운을 뗐다. "맞아요!" 부인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미리 계획하지 않고서야 말이죠. 결백한 사람은 이렇게 외칠 거예요. <하느님 맙소사, 사람이 죽었어요!>" 부인은 확신에 찬 눈길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제 3의 살인자는 어쩌시겠어요?" 나는 물었다. "아시다시피 제 3의 살인자는 지난 300여 년간 맥베스 연구자들의 골머리를 썩였죠."
"그 사람들이 맥더프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미국인 부인이 말했다. "맥더프가 범인이에요. 전 확신해요. 피해자가 지나가던 좀도둑 둘에게 죽어서야 안될 말이지요. 살인자는 항상 중요한 인물이어야 해요."
"하지만 연회장은요?"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물었다. "뱅코의 유령이 등장해 맥베스의 자리에 앉았을 때 맥베스가 보인 죄의식은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부인은 다시금 몸을 내게로 기울이고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유령은 없었어요. 맥베스처럼 크고 강한 사내는 유령이나 보고 다니지 않아요. 더구나 환하게 불이 밝혀지고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연회장에서요? 말도 안돼죠. 맥베스는 누군가를 감싸려 했던 거랍니다!"
"누구를요?"
"물론 맥베스 부인이죠. 맥베스는 아내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믿고 스스로 죄를 뒤집어쓰려 했어요. 아내가 의심받을 때 남편은 항상 아내를 지키려 하기 마련이에요."
"그렇다면," 나는 제안했다. "몽유병 장면은 어떻게 되나요?"
"마찬가지예요. 방향이 반대였을 뿐이죠." 내 친구가 말했다. "맥베스 부인도 남편을 감싸려 한 거예요. 그 여잔 잠들어 있지 않았어요. 기억하세요? <맥베스 부인이 촛대를 들고 등장한다>고 하잖아요."
"그랬죠."
"몽유병에 걸린 사람은 촛불을 들고 다니지 않아요!" 나의 친애하는 여행객이 말했다. "진짜 몽유병자들은 일종의 예지력이 있죠. 촛불을 들고 어슬렁대는 몽유병자가 있다는 얘길 들어보셨나요?"
"아뇨, 전혀요."
"그러니까 그 여잔 멀쩡하게 깨어 있었어요. 맥베스를 지키려고 연기를 한 거죠."
"아무래도 브랜디를 좀 더 마셔야겠습니다." 나는 웨이터를 불렀다. 웨이터가 브랜디를 갖다주자, 나는 한숨에 털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인이 뭔가를 발견하신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나는 말했다. "<맥베스>를 빌려주시겠어요? 오늘 밤에 읽어봐야겠습니다. 정말로 읽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부인이 말했다. "제가 옳았음을 아시게 될 거예요."
나는 문제의 희곡을 밤새도록 주의깊게 통독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미국인 부인을 찾아나섰다. 부인은 퍼팅 그린에 있었다. 나는 부인의 뒤로 살며시 접근해 팔을 잡았다. 부인은 비명을 질렀다.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부인은 주의깊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따라 으슥한 곳으로 왔다.
"뭔가 알아내셨나요?" 부인은 속삭였다.
"살인자의 이름을 찾아냈어요!" 나는 승리감에 차서 말했다.
"맥더프가 아니란 말씀이에요?"
"맥더프는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 못지 않게 결백합니다."
나는 옆구리에 끼고 온 희곡을 펼쳐 2막 2장을 찾았다.
"여기요, 맥베스 부인의 대사를 보세요. <그들 칼을 놔뒀는데 못 볼 리 없겠지. 그의 자는 모습이 아버지만 안 닮았어도 내가 했어.> 아시겠어요?"
"아뇨." 미국인 부인은 불퉁하게 대꾸했다. "모르겠어요."
"간단하지 않습니까!"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왜 이걸 진작에 못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덩컨의 자는 모습이 맥베스 부인의 아버지를 닮은 이유는, 정말로 그녀의 아버지였기 때문이에요!"
"하느님!" 내 친구가 숨을 훅 들이켰다.
"맥베스 부인의 아버지가 왕을 죽였어요. 그러다 누군가가 오는 소리를 듣고, 시체를 침대 밑에 쑤셔넣고 직접 침대에 누운 거지요."
"하지만, 이야기에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은 사람이 살인자여서는 안돼요. 그럴 순 없어요."
"저도 압니다." 나는 2막 4장을 폈다. "여길 보시죠. <로스와 노인이 등장한다.> 이 노인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지요. 전 그가 늙은 맥베스 공(公)이라고 생각합니다. 딸을 왕비로 만들고픈 욕망에 불탔던 거예요. 동기로선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해도, 여전히 단역이잖아요!" 미국인 부인이 외쳤다.
"아닙니다." 나는 기분좋게 반박했다. "맥베스 공은 이미 괴상한 자매들로 변장하고 등장했으니까요!"
"세 마녀 중 하나란 말인가요?"
"정확하세요. 노인의 대사를 들어보세요. <지난 화요일에는 사냥매 한 마리가 한껏 높이 솟았다가 쥐나 잡는 올빼미에 습격당해 죽었다오.> 누가 이런 식으로 말하던가요?"
"꼭 세 마녀가 하는 말처럼 들려요." 내 친구는 주저하며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글쎄요," 미국인 부인이 말했다. "댁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전 제 이론을 확신합니다. 제가 이제부터 뭘 할지 아시겠어요?"
"아뇨. 뭘 하시려고요?"
"햄릿을 사서 수수께끼를 해명해 보렵니다!"
내 친구의 눈이 빛났다. "댁은 햄릿의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예. 그 친구가 아닌 게 분명해요."
"그래, 누구를 의심하시죠?" 부인이 물었다.
나는 의미심장하게 부인을 바라보았다. "전부 다요." 나는 왔을 때처럼 소리없이 줄지은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맥베스에 등장하는 대사들은 민음사판 맥베스(최종철 교수 번역)를 참조했다. 덩컨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맥더프가 뱉어댄 길고 장황;한 말은 본래는 "혼란이 이제서야 걸작을 완성했소! 신성모독 살인마가 주님께서 기름 부은 신전을 부숴 열고 그 건물의 생명을 빼앗아 갔소이다!" 지만 그냥 원문대로 번역했음. 어제 막 맥베스를 읽은 사람이 은유를 덕지덕지 처바른 말을 제대로 기억하는 편이 이상하고;

아 그리고 역시 20년 미스터리 열성 팬으로서 의견을 말하자면 부인의 추론이 더 그럴싸하지 말입니다. 아울러 햄릿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햄릿 이 자를 의심하리라 생각합니다! 솔까 멀쩡한 사람이 미친 놈 연기를 하는 편이 쉽냐 미친 놈이 나는 미친 척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 주장하는 편이 쉽....... 읍읍읍읍.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정말로 조세핀 테이의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을 질러야겠다. 아마존 카트에 넣어두고 몇 년을 더 묵힐 생각이냐 이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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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 2012/10/10 14:04
왠지 냅다 도서관으로 가서 맥베스를 다시 읽어봐야 할 거 같은 기분이...설득력이나 완성도는 당연히 맥더프 범인설 쪽이 높겠지만 장인어른 범인설이 확실히 신선하긴 하네요;;;

(역시 떡밥 발굴+확대 해석+원작 적용은 덕후들의 필수교양;;)
수정/삭제
KISARA 2012/10/14 09:57
덕분에 책장에 꽂아놓고 묵히던 맥베스를 다시 읽었... 어험어험. 장인어른 범인설은 너무 신선한 나머지 미스터리의 불문율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지만 뭐 이건 본래 유머 단편이니 반박을 위한 반박의 허술함 정도는 이해해야죠; 작은 떡밥 하나만 가지고 200%로 부풀려서 행간을 읽어대지 못하는 자 덕후라 할 수 없습니다 암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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