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aurant Sketch.

보거나 혹은 죽거나/Loonies in England | 2013/06/30 15:25

6월달이 가기 전에 포스팅 다섯 개는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 오늘의 일일일몬은 1시즌 3화 '꽤나 먼 거리에서 여러 종류의 나무를 구분하는 방법(How to Recognize Different Types of Tree From a Quite Long Way Away)'의 '레스토랑 스케치(Restaurant Sketch)'. 내 최애 스케치 중 하나이거늘 일일일몬 코너를 시작한지 어언 4년(......)임에도 여태껏 아무도 찍어주지 않아 이날 이때까지 후보 목록에만 올라 있었다는 깊고도 슬픈 뒷사연이 있습죠. 반의 반의 반도 못 살린 감이 풀풀 밀려오지만 나는 뻔뻔하므로 꺾이지 않는다. 휠냥 원고 힘내라 -////-


(푯말 : '당나귀 승마 체험')

사회자(마이클 페일린) :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런던에서 온 두 청년이 장장 3년을 투자하여 준비한 소품을 보내드리죠. '레스토랑 스케치'를 보시겠습니다.

(고급 레스토랑)

숙녀(캐롤 클리브랜드) : 정말 근사해!
신사(그레이엄 채프먼) : 아주 훌륭한 레스토랑이야. 별 세 개짜리거든.
숙녀 : 어머, 진짜?
웨이터(테리 존스)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마담. 선생님을 다시 모시게 되어서 매우 영광입니다!
신사 : 고마워요. 여보, 메뉴 보고 있지? 뭐가 마음에 들어? 여긴 뵈프 앙 크루트(boeuf en croute)가 일품이야.
웨이터 : 피전트 알 라 레인(pheasant à la reine)은 혹여 어떠십니까, 선생님……특히 소스는 우리 요리장 최고의 자신작이지요.
신사 : 음……그거 괜찮겠군요. 여보, 일단 좀 더 메뉴를 보자고……천천히 들춰 봐. 아 참, 그러고 보니 포크에 뭐가 묻었던데요, 새로 하나 부탁해도 될까요?
웨이터 : 무어라 하셨지요?
신사 : 오, 별 일 아닙니다……포크에 뭐가 좀 묻었길래요. 새로 가져다 주시겠습니까? 고마워요.
웨이터 : 오……손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신사 :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뭐 대단한 문제라고요.
웨이터 : 아뇨, 아뇨, 아닙니다, 심각한 일이에요. 즉시 웨이터장을 불러오지요.
신사 : 아니, 뭘 그렇게까지…….
웨이터 : 오, 아뇨, 아니에요……웨이터장이 알면 틀림없이 직접 뵙고 사과드리고 싶어할 겁니다……바로 데려오겠습니다.
숙녀 :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네. 안 그래 여보?
신사 : 음, 참 친절하게 잘해 줘.
웨이터장(마이클 페일린) : 실례합니다 무슈, 실례하겠습니다, 마담. (포크를 들여다본다) 더러워……! 가스통! 누가 이 포크를 씻었는지 당장 찾아내게……찾아내서 전원의 사원증을 즉시 가져와!
신사 : 저기, 저기요!
웨이터장 : 아니야, 운에 맡길 수는 없어. 설거지 담당을 전부 해고해!
신사 : 이봐요, 이러지 맙시다!
웨이터장 : 오 아닙니다 손님, 신경 쓰지 마십시오. 손님은 올바르고 정당하게 사실을 지적하셨을 뿐입니다. 가스통! 지금 당장 지배인에게 보고해!!
신사 : 아니, 정말로 이러지 마세요. 나 때문에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웨이터장 : 천만에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께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무탈하게 식사를 즐기실 수 있도록 살펴드리는 것이 제 일이니까요.
신사 : 큰 문제도 아닙니다. 기껏해야 포크에 얼룩이 좀 묻었을 뿐인걸요.
웨이터장 : 예, 그렇지만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무슨 사과를 해보았자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요……저희 레스토랑이 손님께 지저분하고, 추잡하고, 지독한 냄새마저 풍기는 식기를 드렸다는 사실만은……!
신사 : 냄새 안 나는데요.
웨이터장 : 냄새납니다! 불쾌하고 구역질나는 물건이에요! ……네놈을 증오해, 저주받을 것, 증오한다고! 더럽고, 끔찍하고, 추저분하고, 징그럽고, 불결하고, 사악한 포크……!! 오……오……오……!!
지배인(에릭 아이들) : 질베르토, 질베르토……이제 됐네. (웨이터장이 자리를 뜬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안녕하신가요 마담. 저는 지배인입니다. 소식은 막 들었습니다……앉아도 될까요?
신사 : 물론이죠.
지배인 : 포크에 대해 손님 여러분께 무릎을 꿇고 마음으로부터 깊이 사죄를 드리고자 감히 찾아뵈었습니다.
신사 : 이러지 마십시오……얼룩이래봤자 잘 보이지도 않는걸요.
지배인 : 아, 오히려 위로해 주시다니요, 진정으로 친절하고 선량하십니다. 하지만 제게는 보입니다……더러운 오물의 산, 고약스런 쓰레기 구덩이가!
신사 : 그렇게 끔찍하진 않은데요.
지배인 : 오, 제 심장이 고통으로 요동치는군요. 입이 열 개라도 죄인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한심한 변명이 될 뿐이지요. 전 요즘 레스토랑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어요……솔직히 말씀드려, 되는 일이 없습니다. 요리사의 아들은 불쌍하게도 또다시 수감됐고, 늙은 달림플 부인은 설거지를 너무 한 나머지 이젠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힘들어 하고요, 질베르토는 상이군인입니다……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지요. 하지만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친절한 이들이에요……우리는 하나로 뭉쳐서 이 어두운 시기를 함께 견뎌냈습니다……길고 긴 터널 끝에는 희망의 빛이 보였어요……보였었는데! 이 포크! 이 포크가!!!
신사 : 어, 물 좀 드시겠습니까?
지배인 : 다 끝장났어요!!!

(요리사가 식칼;을 들고 등장한다)

요리사(존 클리즈) : 더러운 자식들! 비열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놈들! 네놈들이 이 분께 무슨 짓을 했는지 봐! 지배인님은 이 레스토랑을 일으키려고 뼈와 살을 깎아가며 일을 하셨어! 너희 같은 작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진흙 묻은 발로 밀고 들어와서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진 끝에 결국엔 이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분을 치욕의 구렁텅이에 던져넣지! 너희 연놈들은 이 분의 발바닥에 입 맞출 자격조차 없어!! ……오, 화가 치밀어. 화가 나……! (식칼을 테이블에 내려찍는다) 화가 나.
웨이터장 : 진정해, 멍고, 마음을 가라앉혀……멍고! 웃! (머리를 붙잡고 구른다) 상처! 전쟁에서 입은 상처가……!
지배인 : 모든 게 끝났어!
요리사 : 이 자들이 지배인님을 망쳤어!
지배인 : 끝장이야!! 으아아아아악!!! (포크로 자살한다[……])
요리사 : 죽고 말았어! 이놈들이 지배인님을 죽였어! 복수! 복수다!!
웨이터장 : 안돼 멍고! 멍고! 손님만은 죽여선 안돼. (또 구른다) 상처! 상처가!!
요리사 : 상처가 도졌어! 우아아아아악!! (웨이터가 돌격;하여 요리사를 테이블 너머로 쓰러뜨린다)

(자막 : '뒤이어 펀치라인이 있겠습니다')

신사 : 나이프도 더럽다고 말 안 하길 천만다행이구먼. (엄청난 야유) 이봐, 이봐, 이봐요!!!

(다시 해변)

사회자 : 레스토랑 스케치를 보셨습니다. 즐거우셨는지요? 작고 근사한 소품이었죠……다소 폭력적이긴 하지만 괜찮은 물건이었어요……헌데 펀치라인은, 아주, 그 뭐랄까……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오, 정말이지 그건 좀…….

언제나 그렇지만 여러모로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주석.

(註 1) Donkey Ride는 '당나귀를 타고 달리기'도 되지만 '당나귀를 태우고 달리기'도 되지 말입니다 이런 애매트릿해서 헛소리 하기 매우 좋은 언어 같으니라고-_- 한국어로는 영 방법이 없어서 뭉갰슴다 '_`
(註 2) 이 날벼락 맞은 남녀가 커플인지 부부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부부인 셈 쳤음(.....)
(註 3) 뵈프 앙 크루트(boeuf en croute)는 저녁식사로 흔히 먹는 프랑스 쇠고기 요리. 그냥 그 정도로 넘어갑시다; 피전트 알 라 레인(pheasant à la reine)은 직역하면 '여왕의 꿩고기'. 치킨 알 라 레인(chicken à la reine)이라는, 닭고기 속에 시금치를 채우고 특수한 소스에 재워서 만드는 닭고기 요리가 있음. 피전트 알 라 레인은 비슷한 요리를 닭 대신 꿩으로 만든 거겠죠 프랑스 요리 몰라요 복잡해요 그냥 넘어가자니까 '_`
(註 4) 수감 : 원문은 put away. 정확히는 '정신병원에 수감되다'는 의미다(....) 어 확실히 요리사도 정신 상태가 별로 좋아보이진 않았.......... 어험어험.
(註 5) 펀치라인(punchline)은 개그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대사 내지는 상황. 보통 멀쩡한 이야기처럼 전개하다가 종반에 반전을 터뜨리며 개그로 끝나는 물건에서 반전하는 줄이 펀치라인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함. 다만 몬티 파이슨은 코미디란 끝에서 끝까지 다 웃겨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펀치라인에만 의존하는 개그를 무진장 싫어해서 딱히 펀치라인이 없거나 펀치라인 자체를 가지고 끝도 없이 개그를 쳐대기 일쑤다. 레스토랑 스케치가 좋은 예. 이 허무한 펀치라인을 보라 예아.
(註 5) 닭을 강탈당했다가 돌려 받은 기사는 테리 길리엄이 분한 '통닭으로 사람을 때리는 기사(The-Knight-Who-Hits-People-With-A-Chicken)'. 같은 에피소드의 자전거 수리맨에서도 얼굴을 내밀었죠. 시즌 1에 등장해 멍청한 소릴 하거나 웃기는 데 실패한 놈들의 머리를 생닭으로 마구 후려갈기고 다니는데 레스토랑 스케치에서는 역할을 뺏겼음(.....) 살짝 처진 어깨가 애수를 자아낸다..........


이렇게 염원 하나는 클리어했지 말입니다. 퀄릿은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따지지 않는다. 자 다음 타겟은 뭘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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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lls 2013/06/30 21:25
오 스윗허니 이렇게 빠른 조달이라니 기쁘기 한량없다 ;ㅁ; 엉엉 피폐해진 내 마음에 지저분한 포크가... 아니 따사로운 단물이 내려왔어! 감사감사 사랑함 /;ㅁ;/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별 3개짜리 레스토랑에서 뭐 묻은 포크를 내오는 거 자체가 문제인 거 같아. 그래서 이 스케치는 굉장히 상식적...은 개뿔 저 커플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말 한마디로 레스토랑을 전멸시켜야했는가. 흑흑. 그런데 나이프도 더러웠다고. 역시 전멸할만한 레스토랑... 아 뭔가 이 시리즈는 보고 있으면 너도 이상하고 나도 이상하고 세상이 다 이상하고 저 동네만 안 이상한 거 같은 착각이 들어. 그것도 재밌겠는데?
마지막에 저 기사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그런 역할이구나... 알고 보니까 정말 짠해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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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13/09/02 15:56
흐흐흐흐 이게 벌써 두 달 전이라니 면목이 없닷 ;ㅂ; 일도 하나 클리어했으니 또 정신 차리고 플라잉 서커스를 세상에 마구마구 퍼뜨리도록 하겠음 >_< 몬티 파이슨은 세상을 거꾸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훌륭한 사회물이야 아마도 그렇...겠......지?
수정/삭제 댓글
무경 2013/08/20 11:14
우연히 이 곳을 발견하게 되어서 답글 답니다. 몬티 파이선이라니! 라는 감동의 물결 때문에... 순식간에 올리신 몬티 파이선 관련 포스팅 다 읽어버렸습니다.
다음 타겟 혹 신청...받으십니까? 초면에 대뜸 Beethoven 스케치 신청을 해도 될런지요? 2기 8화의 스케치로 기억합니다.
두서없이 답글 달았네요.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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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13/09/02 15:58
안녕하세요 무경 님.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그 동안 일에 치여서 블로그고 뭐고 돌아볼 겨를이 없다가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면목이 없습니다 ;ㅂ; 번역이라고 할 수도 없는 엉터리 해석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시면... 기뻐합니다...
안 그래도 다음 타겟을 뭘로 할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2기 8화 베토벤. 접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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