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밍업으로 가볍게, 또 다른 망상 잡담.

Road to Infinity/끝없는 주절주절 | 2006/03/10 12:28

내일 이글루스가 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개의 포스팅을 하리라. (하여간 마이너 블로그는 이런 점이 편하다. 랄까 한 개만 하는 게 아니겠지;) 태터 오자마자 또 CF 타령이냐는 심층심리로부터의 거한 태클은 단호하게 씹는다. 나는 욕망에 살고 욕망에 죽는 리비도의 여인이거늘.

하여간 S의 또다른 뮤즈인 모에의 동지 H양의 종용에 힘입어 기껏 바보커플사절패러렐당분간금지도망간남자따위용서할까보냐의 앵스트 모드에 머리를 맞춘 건 좋았는데 좀 참고할 게 있어 동인지를 뒤적거리다 미즈모리 렌을 눈에 넣은 순간에 모든 것이 왕자 못 찌른 인어공주마냥 산뜻한 물거품이 되어 하늘 저편으로 너불너불 날아가버렸다;; 결국 Silent word, CUBIC BLACK, Eternal, SELF PORTRAIT, UNDER THE ROSE를 한숨에 읽어치우는 자뻑을 저지르고 꽥 죽어버렸음.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당최 그만둘 수가 없다!! ;;;) 위대할진저, 미즈모리의 핑크빛 허그허그에로에로논실난실 오라 OTL 그녀는 나의 걸림돌일찌어니 내가 눈물만이 솟구치나이다. 그녀의 오라는 나를 러브 앤드 피-스♥로 인도하나니 내가 해피해피의 수렁에 허우적거리는도다... 아 젠장 뭔 소리래 이게.
(더불어 지벨 님의 '수면 부족'의 파장도 장난이 아님. 흑흑흑 뮤즈 님 나쁘십니다)

카가/하야토는 워낙에 원작부터가 절라; 닭살이고 또 미즈모리는 해피해피만년신혼을 묘사하는 재능이 열라게 출중하고 심지어 어지간한 커플 전용의 초닭살 시추에이션은 대충 다 소화 가능한 두렵고도 두려운 옵션까지 첨부하고 계셔서 웬만한 자제심 갖고는 논실난실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어림 반푼어치도 없으셈. 설령 울울꿀쩍한 시리어스를 들고 팔지언정 저 둘이 깨지는, 아니 최소한 금이라도 쩌적 가는 꼴은 어느 동인지에서도 구경 한 번 못했음. 아이구 이 바보 커플을 어쩌면 좋나;
헌데 이쯤 되고 보면 으흐흐 네놈들을 왕창 깨뜨려주마! 의 오기가 생기는 게 단단히 비뚤어진 여인네의 방정식인 법이라. 자, 자, 머리의 태엽을 어서 앵스트 쪽으로.

얘기가 좀 빗나가는데, 나는 거의 병적인 텍스트 중독증이다. 내가 그 화제에 관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 유려하고 유쾌하고 쌈빡하고 유익하고 심지어 양까지 풍~성한 텍스트를 줄창 읽어대지 못하면 발작이 일어나는(...) 무서운 병으로, 내가 이 억누를 수 없는 갈증(...)에 들고 날뛸 때 그 양과 질로 인해 가장 손쉽게 희생양이 되는 게 O모 님과 듀나 님임. 어쨌건 하루는 듀나 님의 사이트에서 ㅎ항목을 꾹 찍어 노닥거리고 있던 중, 에밀리 왓슨과 레이첼 그리피스가 주연한 자클린느 뒤 프레의 영화 <힐러리와 재키>에 대한 듀나 님과 파프리카 님의 대담을 주우우욱 읽어내려가다 아닌 밤중에 눈알이가 튀어나오고 뇌천에 벼락이 정통으로 꽂혔으니 그 문제의 대목인즉슨.
(사실 함부로 인용하면 안 되겠지만; 지금 난 제정신이 아니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 ....죄송합니다;;;)

네, 정말 극단적인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의 재키는 첼로 빼면 남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사적인 애정 생활부터 공적인 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악을 통해야만 하는 사람이죠. 재키와 그녀의 다비도프 첼로 사이의 관계는 거의 사도매저스틱하기까지 합니다. 영화 초반에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음악의 기쁨도 중반부에 이르면 거의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나마 남아있던 음악마저도 병으로 잃어버리는 거죠. 이런 비극이 있을까요. (...중략...) [힐러리와 재키]는 어딘지 모르게 흡혈귀 영화 같아요. 우리의 천재 소녀는 예술을 위해 멋대로 가족들의 삶을 찢어발기고, 그러는 동안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 천재 소녀가 만들어내는 예술을 위해 그 아이를 극단으로 몰고 갑니다. 서로가 서로의 피를 빨고 있는 거예요.

......어, 어라? ;;;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 라고 생각한 당신은 저의 동지. 저기서 재키를 카자미 하야토로, 음악 혹은 예술을 레이스로, 다비도프 첼로를 아스라다로 바꿔놓고 다시 읽어보라. あ~ら不思議! とてもぴったりだわ!
(모짜르트를 위시해서 세상의 인간 틀 벗어나고 정신도 나간 천재들은 전부 비슷비슷한 꼴이라는 H양의 날카로운 지적은 이 경우 감히 모른 척 하겠음. 너무 현실적으로 따지고 들면 팬질 못한다니까;)

이미 숨도 안 쉬고 수천 번은 떠들어댔지만 SIN부터의 하야토에게 레이스는 전혀 좋고 즐거운 것이 못 된다. 되나 마나 힘들거나 말거나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고 그쯤 되면 이미 좋다거나 재미 운운은 사치스런 얘기이며 그러다 설령 목숨이 오락가락해도 전혀 알 바가 아님. 애가 초월자 모드가 되어버려서 그 상태에 대해 아무런 자각도 없을 뿐이지 이거 진짜 데프콘급의 위험 상황 맞음. 그나마 순수한 즐거움, 기쁨, 카타르시스, 투쟁심, 초조함, 불안감, 성취감──그게 어떤 형태건 간에 레이스라는 행위에 인간적인 감정을 부여해 주던 최후의 방벽이 카가 씨였는데 이 사람이 시리즈 막판에 와서 대체 뭔 진성 테러를 저질렀는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안다-_-;;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지금의 하야토는 레이스 빼면 정말로 시체나 마찬가지란 얘기인데, 그나마 이 녀석의 레이스를 구성하는 3대 요소, 즉 아버지(또는 아버지의 이상)-아스라다(파트너 혹은 자기 자신)-블리드 카가(숙적 혹은 데스티니) 중 첫 번째는 아무런 구체적 청사진 없이 애매모호한 명제만을 딱 열 넷 먹은 아들내미에게 떠넘기고 홀랑 죽어버렸고 세 번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열나게 튀어버렸다; (망할...) 지금 하야토의 의식에서 단단한 실체로서 남아 있는 건 오로지 아스라다뿐인 셈인데, 더욱 두렵게도 완전히 무기물인 첼로와는 달리 이 왕수다 포뮬러 머신에게는 독자적이고 지극히 인간에 가까운 사고방식과 감정이 존재한다. 끈적끈적질척질척아마아마달달달~한 거야 옛날부터 그랬지만 이제 뒤로 가면 갈수록 정신적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은근한 변태끼와 위험성이 따라서 기하급수로 치솟을 거라는 데 분연히 5천 원을 걸겠음. (WOW!) 사실 하야토와 아스라다의 관계는 사도매저키스'틱'한 정도가 아니라 벌써 SM 맞다. 보기에 아무리 달달하고 스위티러블리하고 합의성이라도 저건 상대를 구속하고 압박하고 정신적으로 근 강간;하는 것임.
(예전 필-알자드의 육체적 융합에 대해 하야토-아스라다의 정신적 융합이라 했으렷다. 전자가 육체적으로 범;해지는 거라면 후자는 정신적으로 레이프;당하는 건데 자아 어느 쪽이 더 질이 고약할라나? -_-;;;)
(하여간 카자미 히로유키 이 사람.... -_-)

.....그리고 S는 불탔다. -_-;;;;;

실은 지금 능력만 되면 제일 시도해 보고 싶어 미치겠는 게 A/H의 변태끼가 철철 흘러넘치고 캡 위험한 '씬이 없는 18금'임; (이 여자야 이젠 갈 데까지 가는구나....) 여기에 씬 따윈 당연히 필요없다. H양 말마따나 이건 억압 에로티카라서 좋고 활활 불타는 것임. 내가 추구하는 건 포르노가 아니라 에.로.라고 에.로! 기계하고의 삐리릭 씬은 까닥하면 - 까닥하지 않아도 - 절라 개그심;
근데 문제는 육체적 SM보다 정신적 SM이 한 삼십만 배쯤 더 어렵다는 것이다 = 아무나 못 건드린다 OTL 인간과 무기물의 무지 변태스런 관계는 모파상이 진짜 잘 쓰는데 참고하면 좀 도움이 될라나 안 될라나.... (실은 역시 참고 되기를 기대하며 <힐러리와 재키>도 냅다 주문 때렸음. 아아아악 난 유혹에 약해서 안 돼!!!)

옆으로 쏜살같이 튀어나간 이야기를 추슬러서 본류로 되돌려 보내자.
하여간 말 그대로 존재 의의를 걸고 초월자의 영역에서 달린 결과로 카자미 하야토의 레이스는 통상적인 레이스의 경지를 까마득하게 초월했다. 칼날처럼 정확하고 바늘 한 끝 못 찔러박게 완벽하고 때문에 차가운 기계적인 아름다움마저 얻은 것이 '서킷의 젊은 제왕'으로 불리는 녀석의 현재 레이스인데, 그런 레이스를 끌어내기 위해서 녀석은 비단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전부 멋대로 쥐락 펴락 흔들어대고 농락하고 찢어발기고 짓밟고 있고, 또 반대로 주변 사람들은 '그런 레이스를 보기 위해서' 하야토가 그 지경이 되다 되다 결국엔 처절히 망가질 때까지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아싸 진짜로 딱이로세. -_-;;
뭐 본인이 계속 무념무상~이면 그나마 제 마음 하난 더럽게 편할 텐데 그러기엔 카가 씨가 냅다 토끼면서 일으켜놓은 파장이 너무나 크다. 귀찮으니 중간 과정 다 생략하고 결론으로 들어가면 카가 씨가 데스티니;를 위반하고 날라버림으로써 이제까지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던 자신의 레이스 자체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는 건데, 레이스라는 거 하나에 제 전부를 다 갖다 올려놓고 있는 사람이, 그 기반이 통째로 깨져나가기 시작하면 대체 어찌 될 것 같나. 하여간 블리드 카가가 카자미 하야토에게 그만큼 어마무지한 존재였고, 따라서 결국 카가 씨가 모든 것의 원흉이란 얘기다. 용서? 우후후후 내가 잠시 돌았나 봐요♡
뒤 프레는 창창하게 젊은 나이에 다중경화증이라는 천형으로 음악을 놓아야만 했으나, 하야토는 병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제가 먼저 그 상태에 지칠대로 지쳐빠지고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까지 완전히 상실하는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리면 에라이 모르겠다로 레이스로 뭐고 다 집어던지고 미련없이 은퇴해서 금세 시들듯이 그 별로 길지도 않았던 인생의 막을 내려버리게 될 것이다. 스스로 숨 쉬기를 포기한 사람은 화타 편작은 물론 아스클레피오스까지 갖다 놔도 못 고친다.

저 대담 덕에 나는 내가 이상으로 삼아 마땅한 SIN 이후 카자미 하야토의 붕괴 과정에 대한 끔찍히도 정확한 가이드를 얻은 셈이다. 이게 바로 棚から牡丹餅에 넝쿨째 호박. 아싸 좋구나. (저걸 10분의 1만이라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물어선 안 된다. 내가 울거든;)
그러니까 기실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기묘하고 괴상한 의사부모삼각관계고 마야짱이고 호노보노고 전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됨. 즐거웠지만 말야. 그간 패러렐에서 신나게 외도했으니 이젠 Angst Sucker의 본업으로 돌아가야겠지. 자, BGM부터 우울한 놈으로.

....근데 했던 얘기 또 하면서 뭐가 이렇게 기냐... 나도 정말;;;

덤. 투병하는 아내를 내버려두고 바깥으로 신나게 돌다가 나중엔 무덤에도 한 번 안 가봤다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얘기를 듣고 자동적으로 K모 씨가 생각나 가재눈이 된 S. 인간적으로 그러면 못 쓴다 아저씨 -_- (하여간 천재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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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벨. 2006/03/10 21:38
KISARA님의 앵스트를 볼 수 있다면 이 한몸 버려져도 좋아요! 시덥잖은 망상에서 시작된 얼토당토 않은 미래패러렐 따위 버리고 지옥으로 고!! 두 바보놈도 주위인물들도 KISARA님도 저 같은 독자들도 다 같이 나락 밑바닥에서 사이좋게 허우적거리는 겁니다!!!!
아니 이게 아니라; 하야토는 분명 그럴 것 같습니다. 상처받지도 않고 아픈 것도 없는 듯이 태연하게 웃고 떠들며 살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툭, 하고 모든 걸 놔버릴 것 같아요. 전조라곤 조금도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본인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어, 이제 됐나'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목숨 쫑나는 순간이 되는 거죠. 그게 서킷 위에서였다면 다른 선수들 끌어들여서 아주 화려하게 대형사고 치는 거고, 아니면 장기출장 다녀온 마누라가 현관문 열고 들어가니까 집안에서 시체 썩은내가 풀풀 나는 거고.
여기서 소심하게 이견을 내밀어 보자면, 저는 사실 카가상이 남아있었든 그런 치사한 방법으로 맞짱 뜨지 않고 그때까지의 관계를 유지했든, 최후의 최후까지 브레이크가 되어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뭐랄까, 제로의 영역에서 서로를 완전히 공유했다는 점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잘 설명하질 못하겠는데; 게다가 어째 말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 얘기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은데;; 어쨌든 그렇습니다. 분명히 무의식적이었겠지만 하야토는 아주 결정적인 부분에서 카가상을 밀어내는 부분이 없지 않아서.. 하야토가 자기자신을 포기하는 순간,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카가상마저도 완전히 타인으로서 규정해버릴 것 같습니다. 물론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건 카가상이지만, 그마저도 끝까지 같이 있는 건 아닐 것 같아요. 게다가 떨어져 나가는 건 카가상쪽이 아니라 하야토예요. 제가 보기에는.
음울칙칙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태터 개설 축하드립니다>ㅅ< 저도 열심히 백업하고 있는 중이긴 한데 이게 은근히 귀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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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06/03/11 11:26
지벨 님 / 나락 좋~지요... 버려지다뇨, 지벨 님은 지옥 밑바닥까지 함께 오셔서 모두가 사이좋게 허우적거리는 광경을 여유 있게 감상하시는 겁니다!
백업할 생각만 하면 슬로스는 벌써부터 눈앞에 까마득해집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너무 길어져서 아예 포스팅으로 빼 버렸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시간 나실 때 봐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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