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 of Curse.

잡귀는 물러가라 | 2005/07/10 22:47

인간의 생각은 무슨 일이든 이루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195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 한 척이 화물을 양륙하기 위하여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 닻을 내렸다. 포르투갈 산(産) 마데이라 포도주를 운반하는 배였다. 한 선원이 모든 짐이 다 부려졌는지를 확인하려고 어떤 냉동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가 안에 있는 것을 모르는 다른 선원이 밖에서 냉동실 문을 닫아 버렸다. 안에 갇힌 선원은 있는 힘을 다해서 벽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배는 포르투갈을 향해 다시 떠났다.
냉동실 안에 식량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선원은 자기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힘을 내어 쇳조각 하나를 들고 냉동실 벽 위에 자기가 겪은 고난의 이야기를 시간별로, 날짜별로 새겨 나갔다. 그는 죽음의 고통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냉기가 코와 손가락과 발가락을 꽁꽁 얼리고 몸을 마비시키는 과정을 적었고, 찬 공기에 언 부위가 견딜 수 없이 따끔거리는 상처로 변해 가는 과정을 묘사했으며, 자기의 온몸이 조금씩 굳어지면서 하나의 얼음 덩어리로 변해 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배가 리스본에 닻을 내렸을 때, 냉동 컨테이너의 문을 연 선장은 죽어 있는 선원을 발견했다. 선장은 벽에 꼼꼼하게 새겨 놓은 고통의 일기를 읽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을 그게 아니었다. 선장은 컨테이너 안의 온도를 재보았다. 온도계는 섭씨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화물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오는 항해 동안 냉동 장치가 내내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그 선원은 단지 자기가 춥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상상 때문에 죽은 것이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인간 육체의 중추인 뇌의 힘은 몸에 관한 한 절대적이어서, '이래야 한다'고 굳게 결심한 뇌가 구성해낸 가상 현실에 몸은 때때로 어이없을 정도로 쉽사리 속아넘어갑니다. 간절하게 원하면, 절실하게 믿으면 몸이 그 믿음에 맞추어 변화합니다. 가장 쉬운 예가 상상 임신이고, 성흔(聖痕)도 흔히 이 맥락에서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부메의 여름은 그 '생각의 힘'을 극한까지 추구한 작품이었죠.

많은 문화권에서는 저주 또한 이러한 '생각의 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 간에 성행하는 '뼈침의 저주'입니다. 사형 판결이 내려지면 부족의 사형 집행자는 살해용 뼈침을 만들어 '마법을 겁니다'. 만약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마을에서 도망을 치면, 심령 에너지를 주입받은 뼈침은 쿠르다이차라 불리는 부족의 살인집행자들에게 넘겨집니다. 추적자들은 먼저 사람의 피를 전신에 바르고 캥거루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으며 이뮤의 깃털로 만든 가면을 쓰는데, 보통 두세 명 정도가 조를 만들어 활동합니다. 이들은 희생자를 가차없이 추적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몇 년이고 뒤쫓습니다. 희생자가 살아 있는 한 말 그대로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간다고 합니다.
추적자들이 마침내 목표로 삼은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으면 약 4.5m 정도까지 접근합니다. 그리고 사형집행자 역을 맡은 쿠르다이차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권총을 쏘는 자세처럼 뼈침을 손으로 겨누는데, 이 순간 저주를 받은 사람은 공포로 얼어붙어 버린다고 합니다. 쿠르다이차는 목표를 향해 뼈침을 찌르듯 내뻗으며 짤막하고 날카로운 주문을 외웁니다. 의식을 끝내고 나면 쿠르다이차는 저주받은 사람만을 남겨두고 동료들과 함께 떠납니다. 마을에 돌아오면 쿤델라, 즉 뼈침을 불태우는 의식을 행하죠. 저주받은 사람은 며칠 또는 몇 주일을 더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쿤델라의 치명적인 위력을 확고하게 믿는 희생자의 친척이나 다른 부족 사람들은, 희생자가 뼈침의 저주를 받았다는 걸 알고 있는 경우 설령 마주친다고 해도 죽은 사람 취급을 한다고 합니다.
1925년에 출판된 허버트 베이스도 박사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라는 저서에서는 뼈침의 저주를 받은 사람의 반응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적대관계에 있는 자로부터 뼈침의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처럼 처참한 것도 없다. 저주의 뼈침을 겨눈 자를 응시하는 피해자의 입은 크게 벌어지고 자신의 몸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치명적인 마력을 지닌 무기를 피하려는 듯 손을 ?친다.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지고 두 눈은 눈물이 번들거리며 표정은 무섭게 일그러진다…… 비명을 지르려고 하지만 소리는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으며, 입가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온다. 몸은 떨리기 시작하며 근육은 제멋대로 뒤틀린다. 뒤쪽으로 몸을 흔들다가 땅에 쓰러져 잠시 동안 혼수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얼마 후 단말마의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몸을 뒤틀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신음하기 시작한다. 좀더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희생자는 자기 오두막으로 기어간다. 이때부터 희생자는 몸져 누워 초조감에 휩싸인 채 식사를 거부하고 부족의 일상생활에서 소외된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저주는 희생자가 저주로부터 풀려났다고 믿게만 되면 즉각적으로 소멸합니다. 1919년에는 뼈침의 저주를 받았다고 믿고 시름시름 죽어가는 희생자에게 문제의 주술사가 단순한 장난이었다고 딱 한 마디만 해 주었더니 그날 저녁자로 회복되었다는 사례도 보고되어 있습니다.
S는 소위 말하는 '앉으면 일주일 이내에 죽는' 저주의 의자라거나 '소유자를 비참한 죽음으로 몰아넣는' 보석(그 유명한 호프 다이아몬드가 있죠)이라던가, 대충 그런 종류의 저주받은 물건들도 '생각의 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연이든 첫 소유주의 원념이든 생령이든 뭐든 좋습니다. 처음의 한두 명만 죽어버리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다음 타자의 가슴에 불안의 씨앗을 뿌리게 됩니다. 물론 십에 팔구는 '저주라니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기려고 하겠지요. 그러나 그런 걸 정말로, 진심으로, 뼛속들이 비웃고 신경 안 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인간이란 스스로에게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생물인데 하물며 외부 세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바늘도 하나 안 들어갈 단단한 껍질의 합리주의자라고 해서 미리 안심하면 곤란합니다. 단단한 껍질 속에 틀어박힌 사람일수록 한 번만 균열이 가 버리면 더 대책이 없으니까요. 자,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면 게임은 끝났습니다. 사람이 불안하고 초조하면 자연히 실수도 잦아지고 사고도 당하기 쉽습니다. 주변에 시끄러운 일이 많아지니 정신 상태는 더욱 불안정해지고, 그에 따라 당신의 마음은 조금씩 저주의 힘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시간이 갈수록 당신은 자신의 생각에 함몰되어 스스로가 저주받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생각은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당신의 뇌가 확신하는 순간 그 저주는 완전히 성취됩니다.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소위 '머피의 성공 법칙'의 역 버전인 셈이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저주는 점점 커지면서 사방으로 확산해 하나둘씩 집어삼키다가 종국에는 일반 대중, 즉 전사회적으로까지 세력을 뻗치게 됩니다. 호프 다이아몬드처럼.
예-엣날에 저주의 의자를 소재로 한 어린이 대상 괴담 소설이 있었습니다. S가 아직 순진한;; 초등학생일 무렵에 나왔던 책이었는데요, 명색이 애들용 공포물치고는 유혈 하나 없고 추하고 끔찍한 걸로 괜히 원색적인 공포나 자아내려 하지 않는 상당히 차분한 이야기여서 지금도 기억합니다. 혹시 아는 분도 있으실지 모르겠는데, 앉으면 1주일 안에 죽는다는 저주의 의자로 손님을 끄는 식당에 관한 이야기였죠. 학생들 몇이 호기롭게 찾아와서 젊은 혈기에 크게 웃으면서 돌아가며 의자에 앉았고,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저주의 힘을 비웃으며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서는 '저주의 의자에 앉아 버렸으니 1주일 내로 죽게 될 거'란 믿음에 사로잡혀 고뇌에 몸부림치다 목 매달고 사고당하고 약 먹고 하나둘씩 죽어갑니다. 의자의 저주가 아니라 비웃음 속에 묻혀 있던 희미한 두려움이 그들을 죽였습니다. 허구헌날 물에 빠져 죽고 목 졸려 죽고 떨어져서 죽고 끼여 죽고 처박혀서 죽는 꼬락서니만 보고 살던 S에게 '스스로의 공포에 짓눌려서 죽었다'는 설정은 상당히 신선한 컬쳐 쇼크였습니다. 악령에게 맞아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덜덜 떨고 혼자 발작하다 죽어버리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작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발상 하나는 진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랄까 그 시절에 어찌 그런 이단아가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희한하군요)
거짓말 같으십니까? 그러나 믿는 자에게 마법은 현실입니다. 암시의 힘은 엄청납니다. 당신이 정말 '내가 까짓 저주로 죽을까 보냐'고 철저하게 속속들이 확신하고 털끝만큼도 그 확신에 의혹을 품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저주에 함부로 도전해서는 안 됩니다.

....근데 죽어도 저런 류의 암시가 안 통할 것 같은 사람 하나 있군요. 에노키즈 레이지로;;;;;
(본인이 절대신이라 확신하고 있는데다 근본이 엄청 단순 바보라서 불안이 침입할 틈이 없지요, 이 사람은;;;)


흠흠, 아무튼.

쿄고쿠도, 즉 추젠지 아키히코의 저주도 이와 같습니다. 그는 '언어'가 바로 자신의 유일무이한 무기라 하면서(from 망량의 상자), '언어'야말로 '뇌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저주'(from 텟소의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부메의 여름에서 나이토에게 내리는 저주를 보면 명백합니다. 추젠지는 그 특유의 사람 정신을 혼란케 하는 화술로 과학제일의 합리주의를 가장하고는 있으나 결국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에서 아주 자유로워질 수 없는 인간 정신의 틈바구니로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혀놀림 한 번으로 저주를 '믿게 만들어 버립니다'. 뼈침의 저주가 '오랜 전통과 역사가 쌓아올린 믿음' 위에 성립된다면 쿄고쿠도는 세계를 해체하고 다시 배열하고 재조립해서 그 자리에서 성립할 수 있는 배경을 '직접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쯔키모노오토시의 정체이고 이 사람의 대단한 점이죠. (M모 님은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뛰어난 거'라고 표현하시더군요 [웃음]) 실제로 재수없게 걸려든 나이토는 누리보토케 편까지 그놈의 저주를 등짝에 매달아 질질질질질 끌고다닙니다;;
가끔 보면 추젠지가 순 궤변만 늘어놓는다고 뭐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소심한 팬 엄청 상처받습니다;;; 그거,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애초에 이 사람의 역할은 털끝 하나 안 들어갈 완벽한 논리로 상대방을 논파하고 설복하는 게 아닙니다. 말로써 상대의 정신을 뒤흔들고 AT 필드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설령 하는 말이 백 마디 모두 오류의 덩어리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찾아내지만 못하면, 반박하지 못하고 어어어어 하는 사이에 말려들어가기만 하면 궤변이건 논리가 파탄하건 하등 상관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논리가 좀 이상하건 뭉뚱그려 밀어붙이건 대충 된장 발라 쌈싸먹건, 정신만 쑥 빼놓으면 그 사람 입장으로선 요만큼도 문제될 게 없단 말입니다! 너무 비난하시지 말아주세요 T.T

뭔가 주절주절 늘어놨는데, 죠로구모의 도리에서 거의 숨도 쉬지 않고 악마학 강의를 달달 늘어놓는 것으로 (삐──)(네타 방지)의 마력을 철저하게 해체해 버린 쿄고쿠도가, 자신에게 주살(呪殺)의 힘이 있다고 굳게 믿고 주위가 모두 똑같이 확신하는 사람을 마주한다면 어디를 어떻게 찔러 파고들어갈지 왠지 두근두근 궁금해 죽겠는 요즘입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가상현실의 힘'이라는 면에서는 같은 상대와 충돌하면.

예, 위에서 늘어놓은 저주 얘기, 네타 맞습니다. (와하하하하하하) ....이러다 정말 팬픽 하나 나올지도. (중얼)

"헉, 뭡니까 당신. 제발 참아주세요. 원작스러운 쿄고쿠도 시리즈 팬픽이라니 무모함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안 돼요 안 돼 안 돼!! 괜히 헛짓하지 말고 잠자코 몸이나 사리고 있어요!! 에비에비!! ;;;"
"....니가 그렇게 당황하는 건 널 창조하고 대략 10년만에 처음 보는 듯 하구나 K군... 감개가 무량하다...." (먼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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