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언 1권 읽다 집어던졌음. 뭐가 어째? 『푸코의 진자』에 비견될 만한 자악푸움? 어허허.. 시뇨르 에코, 세상에 유명세를 어쩌다 이런 식으로 치르고 계십니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름값 차암 떨어졌구나. 다빈치 코드 때도 뻑하면 푸코의 진자 운운해서 빡돌기 직전이었는데 이제는 팩션 이름 단 놈이면 무조건 푸코의 진자를 들먹이는구나. 에라이 다 죽어라 이 자식들아.
지적 스릴러 좋아하신다. 블라드 체페슈에 대한 저 정도 지식은 우리 집 구석에 박혀 있는 책 두 권만 들춰봐도 다 나온다. 지금은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입하기 바로 전 단계라서 내 이 방대한 지식 다 피로 못해 보였다고? 진입만 하는데 한 권을 다 까먹냐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내 쿄고쿠 나쯔히코에 익어 장광설로 60페이지 까먹고 본편 들어가는데 웬만한 추리소설 중편 분량이 걸리는 책에는 익숙해진 슬픈(....) 몸이다. 오냐 그건 봐 주마. 그런데 왜 이렇게 이야기 전개에 뜬금이 없냐?
푸코의 진자 읽을 땐 골은 깨졌을지 몰라도 최소한 거의 막판까지 등장 인물과 함께 작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췄다. 사사사사사사실일지도....? ;;; 하고 진땀 삐질삐질 흘리며 진짜로 믿을 뻔했었단 말이다. 실컷 사람 농락해 놓고 종장에 가서 더욱 단순하고 진실미 팍팍 넘치는 해설로 상황을 순식간에 뒤엎어버리며 갑자기 만사가 바보스러워져 넋을 쫙 뺀 독자에게 혀를 메롱 내미는 작가의 교묘함과 심술궂음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드라큘라가 아직도 살아 있대~요' 라고 느닷없이 폴짝폴짝 뛰어봤자 아무리 애써도 반응은 ....그게 뭐? ;;; 다. 이건 소재 선택에도 확실히 문제가 있다. 지난 근 1세기 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이 열과 성을 다해서 드라큘라에 생명력을 부여해 왔더랬다. 인외마경의 괴물 중에 드라큘라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도 달리 있던가. 헌데 이제 와서 블라드 체페슈가 살아 있다고 난리 블루스를 추어봤자 걔 언제는 죽었던가? 하는 덜덜미적지근한 반응밖에 안 나온다. 명색이 팩션이라면 여기서 갖고 있는 온갖 테크닉은 다 동원해 어떻게든 이야기에 진정성을 부여해도 모자랄 판에 전개는 절라리 강인하고 납득도 안 가고 이야기의 강약강약약 조절은 눈물나게 형편없으니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냐. 게다가 일단 1권의 최대 주요 인물이어야 할 주인공의 아버지부터 진실한 고뇌의 그림자는 엇다 팔아먹고 아무리 봐도 폼만 댑다 잡고 있는 꼴이니 캐릭터는 볼 거 없이 짜증나게 얄팍해서 도대체 어디에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도 막막하고 막판의 되도 않는 액션에는 비웃음만 삐직삐직 새더라. 작가도 좀 겸연쩍었는지 마치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고 내레이터 입을 빌어서 한 마디 하고 있는데 기분이 아니라 헐리우드 영화 맞다. 그것도 아마게돈 계열 블록버스터.
요즘은 이런 책이 200억 달러에 판권이 나가는 거냐. 내 결국 시데를 보게 만든(...) 고양이도 죽이는 그 비러머글 호기심에 져서 2권 3권도 대충 들춰볼지는 모르되 이걸 내 돈 주고 사면 사람이 아니다. 안 그래도 요즘 씨잘데기 없이 시데 땜에 골이 아파 죽겠는데 웬 별 거지 같은 게 머릴 다 어지럽힐세 그려.
어제 죽이게 상태 좋은 양장본 개미(베르나르 베르베르) 세 권을 헌책방에서 딱 8,000원 주고 집어오는 횡재를 했는데 그거나 읽어야겠다. 아니면 머리 깨지는 거 감수하고 푸코의 진자나 다시 볼란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시뇨르 에코.
덤. 내가 집어온 책만 그런지 몰라도 대략 207페이지부터 225페이지까지 제본 순서가 엉망진창이다. 세상에 용서할 수 없는 게 세 가지 있는데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틀린 맞춤법과 사전 한 번만 들춰봤어도 피할 수 있었을 오역과 제본이 개발새발인 책이다. 이렇게 만들고도 8,900원이나 받아처먹었냐. 지옥에서 반성해라 이 인간들아.
히스토리언.
읽거나 혹은 죽거나 | 2005/08/2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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