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never give up on catching you, as long as I live.

내 마음의 Honey | 2006/02/22 16:07

어린 시절의 루니툰즈 애청자 중에는 로드 러너와 코요테 시리즈를 가장 즐겨봤다는 사람들이 많다. 대사라고는 한 마디도 없고 화면만 보고 있어도 척하면 척척 통하는 슬랩스틱 코미디고 딱 애들 피가 끓을 만한 온갖 기기묘묘한 장치가 등장하니 그럴 법도 하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가장 총애하는 토깽이이자 루니툰즈의 간판 스타인 벅스 버니는 일단 카툰의 주 타겟으로 잡혀 있는 애들에게는 사실 좀 어필하기 힘든 캐릭터라 생각한다. 흔히 세상을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양분하기 쉬운 저연령층에게 벅스의 가히 카오스적인 사악함은 어리둥절하기 쉬운 요소가 될 수 있다. 벅스는 절대로 어딘가의 바지만 입은 쥐마냥 손 놓고 무력하게 당하다 막판에 Deus ex Machina에 구원받는 선량한 소시민 캐릭터가 아니거든. 그야 주인공 포지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 태공망이 그랬듯 - 일단은 '좋은 편'에 기울어져 있긴 하지만 이건 항상 걸어오는 싸움을 정면으로 받아주고 꼭 열 배로 갚으며 심지어 때로는 가만히 있는 선량한 이웃까지 사정없이 등쳐먹고 즈려밟기 일쑤인 놈이다. 오죽하면 루니툰즈 비주얼 가이드 초반에서 (원래 좀 그쪽 애들이 도덕적으로 깨끗한 쉐이가 한 개도 없지만;) 성경의 일곱 가지 죄악에 각 캐릭터를 대입하며 벅스야말로 이 모든 악덕을 골고루 갖춘 악의 제왕이라고 했으랴?

(참고로 탐욕은 대피 덕, 폭식은 태즈메이니아 데블, 호색은 페페 르 퓨, 분노는 요세미티 샘, 질투는 화성인 마빈, 허영은 실베스터, 나태는 포그혼 레그혼이다. 이런 악덕의 덩어리들 [데굴데굴])

걸핏하면 여장하고 적들에게 키스 세례를 퍼부어대는 것도 애들한테는 상당히 난감하리라. 게다가 이 녀석의 매력 반분은 몇 번 머리를 조아려도 모자랄 멜 블랑크 대인의 독특한 목소리와 브롱크스 토박이 액센트와 참으로 우아하기 그지 없는 온갖 말장난과 비비 꼬인 문장과 풍부한 어휘에서 유래되는데, 이는 어린애들은, 특히 더빙판을 주로 보는 우리나라 애들은 곧 죽어도 알아먹을 수 없는 요소들뿐이다. 따라서 본토에서는 가히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는 데 비해 이 땅에서 옛날에 벅스 버니가 참 좋았다! 하는 사람이 비교적 드문 것은 놀랄 일이 아님. 벅스 버니를 100퍼센트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녀석의 매력적인 사악함에 마음껏 열광하고 세상 누구에게도 서슴없이 엿과 더블 뻑큐;를 먹이는 반골 정신에 속 시원해 하고 노골적인 게이-드랙퀸 성향에 낄낄대고 웃으며 말장난과 끝도 없이 남발되는 괴상망측한 표현을 어렵잖게 좇아갈 수 있고 배경에 빈틈없이 깔려 있는 미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즉 영어가 어느 정도 되고 사전 지식을 갖춘 성인인 셈이므로.
나이 먹고 나서 어릴 때 좋아했던 디즈니를 다시 보면 그 뻔뻔스러울 정도의 가족중심사고와 신의 구원과 당의정과 감상주의에 닭살이 푸득푸득 돋아 기절할 지경이 되는 것과는 반대로 루니툰즈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풍부하고 즐거워지는 건 그런 까닭이리라.

내가 벅스를 너무 총애하는 탓에 얘기가 한참 빗나갔는데;;;; 오늘의 화제는 로드 러너와 코요테 시리즈였다. 얼렁 제위치 제위치.
(뭔 놈의 서론이 이따구로 기냐;)

이번에 루니툰즈 골든 컬렉션에서 로드 러너와 코요테의 진절머리나게 되풀이되는 추격전을 연속으로 줄줄이 보면서 생각한 거지만, 하여간 이 시리즈에서 로드 러너는 달리고 코요테는 온갖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깨먹고 자폭하고 얻어맞고 두들겨맞고 차에 치이고 깔리고 수도 없이 추락한다. 자멸 패턴은 뻔할 뻔자고 언제나 오십보백보인 스토리며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소위 루브 골드버그풍 장치도 조금은 비슷비슷해진다. 그럼에도 이 일견 단순무식한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영 질리지 않는다. 물론 코요테의 사정없는 자뻑에서 오는 새디스틱하고 잔인한 즐거움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유사한 에피소드 열한 편을 앉은 자리에서 내리 한 큐로 보게 만들지는 못하리라 본다. 그럼 대체 뭐냐 할 것 같으면, 루니툰즈에 정신 팔린 딸내미 옆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말씀에 그 해답이 녹아 있다. "저 코요테가 대단한 놈이지. 저렇게 당하고도 포기할 줄을 모르니 말야."

로드 러너-코요테 시리즈의 진정한 매력은 결코 잡히지 않는 새와 한사코 그 뒤를 쫓아 달리는 한 짐승이 내포한 기묘한 아름다움이다.
로드 러너는 근처까지 갈 수는 있지만 절대 붙잡을 수 없는 꿈이고 코요테는 그걸 어떻게든 쟁취해 보려고 기를 쓰고 내달리는 모든 이의 초상이다. 그리고 코요테는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열정에 완전히 함몰된다. 감정이 극한까지 치솟으면 그 감정의 대상이 오히려 가치를 잃듯, 코요테도 역시 애초에는 로드 러너 고기를 먹어 달라붙은 뱃가죽을 달래려 이 짓을 시작했지만 이야기가 중반을 넘으면 그놈이 로드 러너이건 로드 워커이건 이놈의 말라깽이 짐승에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다. 주린 배도 뒷전임. 솔직히 로드 러너를 때려잡으려 동원하는 애크미의 갖은 잡동사니들을 조달할 능력이 있으면 로드 러너만 포기했어도 벌써 하옛날에 배터지게 성찬을 즐겼을걸.
이들의 창조자인 척 존스도 말했다시피 - '코요테는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습니다. 본인만 미치광이처럼 고집하지만 않으면' - 코요테는 가히 편집증적으로 로드 러너를 잡겠다는 목표에 매달리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 얄밉게 삑삑대며 살살 빠져 달아나는 저 새를 정말로 사로잡는 날엔 아이러니컬하게도 코요테는 정작 뭘 해야 할지 막막해질 것이다. 실제로도 에피소드 Supper Or Sonic - 보다시피 붙여 읽으면 수퍼소닉Supersonic. 말장난 좀 엔간히 하자 이 사람들아; - 에서 코요테는 용케 로드 러너 포획에 성공하는데(!), 그때 녀석의 대사가 실로 기가 막히다. "그래 잘나신 관객 여러분, 다들 원하던 대로 이놈을 잡았어. 난 이제 뭘 어째야 해? (Ok wise guys, I catch him as you always want. Now what'd I do with him?)"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이제까지 앞만 보고 정신없이 질주해 온 코요테에게 로드 러너의 확보는 달리는 원동력이기도 했던 목표가 느닷없이 허공으로 증발해 버렸음을 의미한다. 열정의 대상이 사라진 지금, 코요테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도 못 잡고 멍하니 서 있는 게 고작일 뿐이다. 코요테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로드 러너는 곧 몸을 빼서 쏜살같이 달아나지만.

그런 의미에서 코요테는 일종의 투사이다. 넘어설 수 없는 벽에 맞서 싸우고 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잡으려고 발버둥치는, 능력과 상황이 안 되고 멍청해서 번번히 실패할지언정 사랑을 사랑하고 정열에 정열을 쏟아붓는 순수한, 그 순수함이 지나쳐 이미 극한의 편집광이 되어버린 투사. 그 소망이 설령 제 3자에게 아무리 가치없고 바보스러워 보인다 해도 꿈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자신의 전부를 불사를 수 있는 미치광이는 언제나 근사하다. 한 발 더 나아가 평생을 걸고 모든 걸 쏟아부었어도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 투쟁은 오히려 엄청난 정서적 힘을 부여받으며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거듭나게 된다. 평범한 사람이 노력 끝에 마침내 성공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보기에 즐겁지만 어리석고 하찮은 존재의 처음부터 실패가 운명지어진, 그럼에도 필사적이고 처절하고 고집 센 발버둥은 언제고 어느 때고 신데렐라 스토리 이상의 시대를 초월한 호소력을 갖는 법이다. 문제 하나에 평생을 말아먹은 미치광이 수학자의 이야기 <골드바흐의 추측>이 아름다운 것과 같은 까닭.

로드 러너와 코요테의 댑다 잔인하고 대박 새디스틱하게만 보이는 장난감 놀이의 이면에 숨은 것은 진득한 진짜배기 열정과 도전과 좌절이다. 멍청하고 무가치하게 보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우리를 달리고 또 달리게 만드는 그것.


덤. 척 존스는 인터뷰에서 코요테야말로 꿈을 쫓아 달리는 자기 자신의 형상화라 털어놓았다 한다. 보고 있자니 정말 웃을 일이 못되는 One Froggy Evening도 그렇고, 하여간 그 분이 거장이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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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simo 2006/02/23 02:20
코요테가 항상 자폭하는 모습을 보면서 옆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 새디스틱한 유머에 거부감을 느꼈었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게 계속하는 코요테도 대단하군요. 역시 무엇이든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차분히 바라보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가지를 볼 수 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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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06/02/27 15:46
verisimo님 / 슬랩스틱 코미디의 결정판인 로드러너와 코요테 시리즈가 어째서 봐도 봐도 이렇게 재미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적어도 제게는 저런 이유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뭐든지 차분히 생각히 보면 의외의 방향에서 새로운 게 보이기 마련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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