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여기엔 마술사가 너무 많아!

읽거나 혹은 죽거나 | 2006/03/08 08:23

일단 사태의 추이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여차직하면 도망갈 준비는 해야 할 성 싶음. 백업 백업.
도토리니 일촌맺기니 뭐 그 흡사한 게 시작될 조짐이 보이면 냅다 내뺄 작정임. 난 평생 암흑의 인간으로 살리라.
(아아 하지만 적절히 매니악하고 적당히 뒷골목인 얼음집 참 좋았는데!)

하여간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문제는 일단 젖혀두고.
현재 '있지~이 소설에 말야, 울프랑 아치 복사판이 나온다~? 읽고 싶지? 읽어야겠지? 읽지 않으면 큰일나겠지? 랄까 읽어라! 읽고 기뻐해라 오~호호호호호호호호!!!! (Diabolical Laugh)' 라는 모에의 동지 H양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예 다아시 경 시리즈 제 2편 <마술사가 너무 많다(Too Many Magicians)>를 홀랑 구입하고 만 참으로 단순한 S. 별 수 없잖아 난 울프-굿윈 그루피란 말이다 버럭!!

한 줄 감상 : 랜달 개릿, 당신 참 좋은 사람이다....!

생긴 것부터 똑 울프인 후작과 이름부터 Goodwin을 프랑스식으로 개조한 본트리옴프 경은 물론 포복절도감이나 그밖에도 '붉은 가죽 의자'나 '식물실' 따위 울프 시리즈의 팬이라면 기절초풍하고 넘어갈 아이템들이 곳곳에 살짝 숨어 있어 웃다 죽는 줄 알았음. 물론 렉스 스타우트 본인이 아니다 보니 시니컬하게 악담과 독설을 머신건으로 난사해대는 원작의 울프와 굿윈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나쁜 팬이다.

"자네 돌았군." 울프는 차분하고 또렷하게 말했다. "앉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나는 직립부동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동의했다. "이건 분명히 일종의 광기예요. 그렇지만 좀 미친들 어떻단 말인가요? 어느 날 밤엔가 마고가 제게 읽어준 시처럼 말이죠, 아마 무슨 그리스 시인이 쓴 거였는데, '오 사랑이여, 항거할 수 없는 그대의 힘이여, 그대는 승리를――'"
"닥치고 앉아!"

─이런 죽여주는 대사가 판을 치는 원작의 내공은 저얼대로 따라갈 수 없지만 뭐 나름대로 귀엽긴 하니까 합격 (와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영국 귀족에 터무니없는 환상을 품고 있는 한 마리 소녀(...)로서, 런던 후작 네로 울프와 본트리옴프 경 아치 굿윈에 모에모에심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는 KISARA가 아님. <-
(같은 귀족인데도 프랑스 귀족에게는 환상이 없다. 왜일까나;)

그나저나 과학으로서의 마술이라던가 세계관은 나름대로 흥미롭지만 영불 제국이란 진짜로 골수영국지상제일주의 브리티쉬에게나 가능할 성 싶은 터무니-_-없는 설정에 힉겁해서 저자 약력을 훑었더니 미국인이었음. 그래 가끔 있지. 유럽 귀족 사회에 순진한 동경 품은 미국인; 뭐 울프-굿윈 팬으로서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지만. (이런 캡 단순빵;)

다만 난점 한 가지가 있다면 정작 주인공인 다아시 경이 진.짜.로. 재미없는 남자라는 것이다;;; (팬이신 분 죄송합니다-) 잘생겼고 능력 있고 머리 좋고 배경 빵빵하고 심지어 성격까지 좋은 겁나게 잘난 남자는 3차원 어딘가에 존재해주는 걸로 충분하다. 2차원 한정으로 나는 인성에 문제 있는 인간밖에 사랑하지 못한다고오오오오오오오!!!! 명색이 미스터리의 주인공이라면 '가까이 있고 싶지는 않지만 멀리서 보면 엄청 유쾌한 사람'이어야 할 거 아닌가(편견), 이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결백한 남자는 시시하단 말이다아아아아아악!!! 읽으면서 계속 후작 안 나와주나 본트리옴프 경 안 나와주나 그 생각만 하고 있다면 내가 아무리 울프-굿윈의 광팬일지언정 문제가 엄청 심각한 거 아닌가;

하여간 소설 자체는 꽤나 재미있고 나의 사랑하는 배불뚝이 사이코 탐정님과 말많은 까불이 조수의 오마쥬를 보는 기분도 쏠쏠하므로 앞으로 한동안은 즐거울 듯함. 읽는 게 끝나면 즉시 네로 울프 시리즈로 쏜살같이 달려갈 예정임. 기다려라, 개싸가지만담독설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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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리 2006/03/08 08:52
적극동감입니다. 다아시 경이 아주 조금만이라도 삐끗한 남자였더라면 저는 정말 열렬하게 반했을 자신이 있어요! ㅜㅜ 마술사가 너무 많다...미치겠군요ㅜㅜ 꼭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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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mic71 2006/03/08 09:30
제목부터 확실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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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부장 2006/03/08 12:47
가까이 있고 싶지는 않지만 멀리서 보면 '쬐끔' 유쾌한 사람이라면 [비잔티움의 첩자].
...반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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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06/03/09 08:05
타파리 님 / 진짜 너무 슬플 정도로 담백하고 결벽해서 재미없어요... T.T 자고로 탐정이란 이름 단 자는 어딘가 좀 나사가 빠져 있던가 정신이 이상해야 하는 법입니다! (틀려!) 울프와 굿윈, 아니아니 런던 후작과 본트리옴프 경 콤비는 여전히 따끈따끈한 콤비플레이를 과시합니다. 한 번 읽어보실 가치는 충분하답니다 ^^

rumic71님 / 제목부터 빼도 박도 못하죠.

개발부장 님 / 제가 뭐라고 반대하겠습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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