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의 로망.

무한번뇌의 소용돌이 | 2006/06/17 14:18

삼국지가 워낙 여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점이 있다 보니 (잘난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과 신뢰와 충성과 격렬히 맞부딪히는 그뉵.. 아니 이게 아닌데?) 801 문화가 초절 발달한 저 울울꿀쩍한 섬나라에선 완전 여성향 삼국지 소설도 시중에 상당수 돌고 있다.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게 <천상의 꽃 지상의 바람(天の華・地の風)>이란 제목의, 천상 남자 홀리는 팔자(....홀림당할 팔자겠지;) 타고나서 이놈 저놈 사이를 마구 굴러댕기는(...) 초꽃미남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한 탐미 계열 JUNE 소설임 (대폭소)
93년도 물건이라 구하기는 좀 어렵고 여태 리뷰만 몇 개 읽었는데, 작가도 리뷰어도 절라 심각하건만 나는 설정부터 전개까지 몽땅 웃겨서 미치겠는 거라. 이 죽여주는 바보 소설의 향취를 대체 어이할꼬? 배 잡고 쳐웃으면서 잘 읽다 리뷰어 아가씨가 이걸 읽고 유비를 뼛속 깊이 미워하게 됐다, 공명 말고 방통이나 법정만 이뻐하다니 그럴 수가 있느냐고 콧김을 씩씩 뿜고 있는 대목에서 하아? 웬 헛소리? 의 가재눈이 되었음.

이런 이런 아가씨, 뭘 몰라도 진짜 한참 모르는구먼. 군주는 원래 그런 거다!

어제 지벨 님과도 얘기했고 늘상 입에 달고 사는 소리지만 남의 위에 서는 자는 인심을 먹고 살건대 하물며 카리스마 군주란 한 사람에게 매여 있어선 결코 아니 되는 법이라. 오히려 오로지 한 사람밖에 총애치 않는 군주는 일편단심을 바라는 여심으로서는 훌륭할지 모르되 군주로선 저얼대 실격임. 양귀비에게 홀랑 빠져 남자들을 소홀히 한(...) 당 현종이 어찌됐는지 볼 것이며 오로지 조고 말만 듣던 호해의 말로를 상기해 보란 말이다. (사례가 이상하다는 쯧코미는 안 받는다)

돌격은 화끈하게, 빠질 때는 썰물처럼, 남녀노소를 아니 가리고 먹을 만하다 싶으면 홀랑 잡숴드실 것이고 뉘게도 속박되지 않으며(이거 젤 중요. 밑줄 쳐라. 시험에 나온다-_-) 그 박애는 제국보다 광대하고 계단의 수는 무한대. 그것이 바로 카리스마 주군. 첨언하지만 주<-종보다 주->종의 벡터가 커서야 그건 이미 주종물도 나발도 아니고 그냥 단순한 연애질 되시겠음. 끝내 채워지지 못할 갈망과 질투심과 집착에 몸부림치면서 그래도 결코 그 옆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주종물의 좋은 점인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는 타 동인녀 100명과 난투해도 이길 자신 있으니 앞으로 나오셈.

하여간 조조 님이 평생에 꿀떡하신 남자가 대체 몇 명이고 손가 3대가 홀린 남자들 목록을 작성하자면 하세월이 걸릴 판인데 하물며 평생 사람 끄는 힘 하나로만 전 스테이터스 올 만땅의 조조 님과 맞짱을 뜨신 (전형적인 한국 남자 냄새 팔팔 풍기는 이문열조차도 '가히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난 유비의 사람 끄는 힘이다' 라고 평가하고 있다) 유비에겐 남자 킬러 투 썸즈 업의 칭호가 주어져 마땅한 법인 게라. 공명 하나만 이뻐해주지 않았다고? 장난하냐 지금? 그 남자 자석이 신경 써야 할 사내가 대관절 몇인데 - 지금 막 세려다 포기해 부렸음; 너무 많아!! - 종일 물만 바라보고 있으랴? 말이 되는 소릴 하슈 -_-;;;
공명이 관우를 상당히 견제했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물론 우위다툼이라던가 권력투쟁이라던가 그런 문제이기도 했겠지만, 심정적으로 유비에게 제일 가까웠던 게 관우이고 보면 '수염남 비키셈 주군의 옆자리는 내 것이셈'의 라이벌 의식이 항간 보이는구나 겔겔겔하고 웃어버리는 것은 역시 눈과 뇌세포와 필터가 다 썩어버린 여자의 숙명. 하지만 별로 틀린 말도 아니지?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는데 (늘 그렇지 뭘?) 하고 싶은 소리가 뭐냐 하면 결국 군주라는 놈들을 바람둥이라고 악악대봤자 하등 소용 없고 먹히지도 않고 그걸 물고 늘어지는 놈이 바보란 얘기다. 갖고 놀고 내팽개치고 이놈 저놈 기웃거려 당연하셈. 군주로 타고난 자에겐 그게 나쁜 것도 뭣도 아니고 그냥 천성이고 필요한 자질이걸랑. 그리고 그게 주종의 진성 로망이걸랑. (이해 못할 거면 기냥 관두시고-_-) 군주에게 일편단심을 바라지 마소. 바랄 구멍이 틀렸소이다 처녀.

또 하나 올 여성향 삼국지로 유명하고 역시 바보 소설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적벽의 연회(평생 손책에게 실컷 농락만 당하고 - 아니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 순정 다 바쳐버려 짝짝 말라버린 주유의 이야기라나. 아이고 나 죽겠다 [데굴데굴])에 대해서도 그런 측면에서 좀 긁어대고 싶은데 지금 현해탄을 건너오고 있는 중이니 도착하면 그때 마구 비웃도록 하겠다. 실은 천상의 꽃 지상의 바람도 지금 꽤 땡기고 있음. 제대로 읽고 비웃고 싶어...! (부들부들)

하지만 덕분에 골수 동인녀를 자인하는 내가 왜 본격 야오이에 전혀 식지가 안 동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얘기는 또 나중에. (아~아, 만연체 발동 걸렸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kisara71.cafe24.com/blog/trackback/2314585
수정/삭제 댓글
Ash 2007/07/31 14:01
으음- 삼국지가 은근히 그런 느낌이긴 하지요. 손책-주유라인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 양반들은 정사에서도 무언가 삘이 물씬 풍기는 것이 굉장히...(어이, 침 흐른다;)
수정/삭제
KISARA 2007/08/01 12:48
은근히 아닙니다. 그리고 삘만 풍기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정사가 제일 뜨겁습니다.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