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의 연회 완독!

삼국남자킬러연의 | 2006/06/27 12:18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한 마디로 뼛속까지 절라리 나쁜 남자인 손책에게 뒷덜미 단단히 잡힌 주유가 평생을 물말아먹는 이야기인데 난 남자 때문에 인생 조지는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 아싸 조쿠나 >_<
(이년 취향 봐라;)

만나서 손책이 비명에 가기까지 꼬박 12년을 주유는 오로지 의형의 등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삽질하며 살았음. 쾌청한 하늘은 안 보고 손책 얼굴만 쳐다보고 있거나 은은하게 풍기는 체취에 팽글팽글하거나 옷자락이 흘러내려서 드러난 어깨에 어찔어찔해 하거나(...) 스킨십 좋아하는 형님의 공격에 안절부절 못하거나 하여간 도독님 정신 좀 챙기자니까? ;; 그저 옆에 있고만 싶다는 일념 하나로 본심을 꽁꽁 숨기고 어차피 달라붙는 여자는 산과 바다를 이루겠다 몇 번 여자 쪽으로 시선 돌려보려고 꽤 애도 썼지만 이게 안 되는 거라. 소교는 훌륭한 마누라지만 - 실은 손책이 반강제로 혼인시켰다. 정말로 나 결혼하니 너도 해라 와하하하, 였음;;; - 여성 혐오증 운운하기 이전에 있는 순정을 바닥까지 득득 긁어 손책에게 전부 들어바쳐 버렸으니 뭐 남는 게 있어야지. 그리하여 죽고 나서는 또 꼬박 10년을 독수공방 청승과부(오타 아님)로 긴긴 밤을 지새우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 열녀비라도 세워주랴 당신?

사실 손책은 다 알고 있었음. 원래 위대한 유혹자는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벡터에 민감하지 않으면 못해먹는다. 하지만 저얼대 받아줄 생각 없고 이쪽에서 몸 내줄(...) 생각은 더더욱 없음. 물론 이 사람이 제 나름대로 주유를 많이 아끼는 건 사실이지만 원래 근본이 절라 악동이다 보니 갖고 노는 게 더 재미있어 죽으려 함. 주유가 자기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줄 빤히 꿰고 있으면서 "네가 여자였다면 좋았을걸" 이라는 둥 "너와 소교의 딸이라면 틀림없이 천하절색일 테고, 내 후궁으로 기대하고 있으니까 얼른 낳아라" 는 둥, "어때, 나랑 해 볼래?" (너무 요약했다 마;) 라는 둥 격동시켰다 열받게 했다 다독였다 풀어줬다 기쁘게 했다 쥐락 펴락 주물럭주물럭, 진짜 손가락 하나로 노련하게 농락하며 상대가 필사적인 눈으로 열심히 열심히 쫓아오는 걸 안 보는 척 못 보는 척 사실은 곁눈질하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 계심. (와우! -_-;;) 심지어는 그 상념이 좋은 방향으로 승화되기 전에 대뜸 죽어서 아주 평생 지워지지도 않을 상처가 되어버렸으니 오, 정말이지 간만에 보는 초일류의 코케트가 아닌가. 이런 죽일 쉐이 같으니 >_<

그렇게 좋으면 BL의 미덕에 걸맞게 한 번 확 덮쳐보기라도 할 것이지(...) 괜히 지분지분 혼자서 토목공사질 하다 결국 영영 놓쳐버리고선 그저 손책이라면 안 이랬을 거라 툴툴대며 만사를 손책을 척도로 재고 있는(..) 주유가 절라 짜증 안 나더라면 거짓말이지만 천하이분의 계책에서부터 아, 이 사람은 진짜로 최후의 최후까지 손책의 그림자를 극복하지 못했구나, 그렇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건 뭐 대충 참아줄 만했다. 그 얘기는 또 나중에 하고 (포스팅거리가 늘어만 간다아~;;) 딱 하나 불만.

왜 남자한텐 질투 안 해?

손책이 25년 평생 건드린 여자보다 집적거린(...) 남자가 더 많을 거라는 데 내 TGIF에서의 한 끼도 걸 수 있다. 이 인간 천성이 남자 킬러인데. 내 또 여기서 소패왕의 남자들 목록을 다 불어야겠냐? 투항 못하겠다 내 목 치라고 뻐팅기는 태사자를 '나는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 (농담도 팬픽도 아니라 중국중앙전시대中国中央電視台[한국의 KBS, 일본의 NHK에 해당하는 중국의 국영방송국. 요즘의 국영방송국은 동인질이 부업이냣;;]가 제작한 삼국지 완전판 드라마가 출전. 주유와 재회하자마자 아싸 좋다고 벌건 대낮에 껴안고 빙빙 돌았던; 것도 이 드라마. 줸장 대륙놈들이란 orz) 면서 몸 바쳐; 꼬드겼다는 얘길 꼭 해야겠수? 이 쉐이 저 쉐이 안 가리고 저놈은 내 거라고 눈 반짝이며 날뛰는 꼴 볼 때마다 뭐 속에서 이글지글 끓는 거 없디?
攻은 남자한테 질투하고 受는 여자한테 질투한다는 정치적으로 심히 올바르지 못한 BL의 법칙을 보는 것 같아 조금 밸이 상했음. (부연하건대 S는 골수 유책임) 손책을 독점하려거든 마눌님이 문제가 아니라(...) 손권;을 필두로 한 사내놈들부터 치워버려야 한다는 건 당신이 알고 내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알지만 뭐, 호모물(차별용어)에서 PC는 애초부터 패스다 패스 패스. 이런 씬만 없다 뿐이지 완연히 호모물(여전히 차별용어)인 책을 태연히 출판한 고단샤의 배짱이 참으로 위대하심 예~이.

하여간 뭐 짜증나는 부분도 많고 생뚱맞은 부분도 많았고, 내 취향과 상충하는 부분도 부지기수였지만 (일본 아녀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사내새끼 여자 얼굴일수록 콤플렉스와 평소의 울분과 기타 등등이 쌓여서 오히려 더 마초 - 서량의 프린스 아님 - 될 확률이 백만 배쯤 높음. 그러니까 저얼대 주유가 탑[...]이고, 난 기왕 삽질하다 하다 콘크리트 바닥에 헤딩할 거면 덮치고 나서 헤딩하길 바란단 말이다. 남자 킬러는 오는 놈 안 막는다!!! [야;]) 무시 못하게 괜찮은 대목도 있고 죽자고 나쁜 놈인 손책 형님이 절라 취향이라서 그냥 다 용서하기로 했다. 아슬아슬하나마 주유가 히메우케(...)의 데드라인 바로 위에 멈춰 있는 것도 뭐, 미소년과 동침하는 데 비교적 관대한 문화 탓인지 기집애처럼 이쁜 꽃수가 판을 치는 섬나라 풍습치고는 그럭저럭 훌륭했고, 바보 소설이라는 데는 여전히 한 치의 이견도 없으나 나름대로 즐거운 바보 소설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덤 1.
'노인들은 과거에만 사로잡히는 법인가...'
니가 할 말이냐 니가. 10년 내내 침이 마르고 닳도록 죽은 손백부 타령만 하고 있는 니가 할 말이냐! 정보도 딴 사람은 모를까 주유에게만은 망령난 노인네 운운 까대이고 싶지 않을 것임. (실은 선군이 맡긴 소~중한 도련님 옆에 짝 달라붙어 있는 게 눈꼴시어서 주유 걸고 넘어지는 거 아녀 고참들? ;;;)
한편 유비에 대한 평가가 열라 가혹해서 촉한 팬이기도 한 S는 순간 매우 울컥했지만 형님이 그리 팔불출처럼 예뻐했던 권이에게도 사랑 나눠줄 생각을 안 하는데 눈엣가시인 유비는 오죽하랴 싶었음. 평생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요절했으니 좀 와가마마가 된들 이쪽이 이해해 줘야지 별 수 있나. 하지만 손권은 느린 게 장점이고 미덕이라니까. 형님과 동생들이 뭐 그리 급해서 줄줄이 20대에 죽어나갈 때 혼자 일흔 하나까지 산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 거냐.

덤 2.
실은 오히려 적벽의 연회보다 꼽사리 껴서 같이 온 역사소설가 카노 아쯔시(加野厚志)의 제목도 심플한 <손책(孫策)>이 더 문제였다 (먼 산)
적벽의 연회는 음심에 이글지글 끓는 동인녀가 산성 침을 줄줄 흘리며 쓴 태생부터 여성향이니까 무슨 말이 나와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멀쩡한 스트레이트 남성이 멀쩡한 얼굴 하고 무의식 중에 난감한 동인짓하기 시작하면 이거 진짜로 대책이 없닷;;;
딱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劉備は天性の人たらし(해석 : 유비는 천상 남자 홀리는 팔자;)라는 문장에 뒤집어지고 '사람 낯을 가리는 주유'에 자지러지고, 주유의 외모 묘사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어찔하였으나 쿄고쿠 선생이 말 끝마다 에노 상을 비스크 돌이라는 둥 희대의 미인이라는 둥 묘사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것과 비슷한 심리일 거라 (억지로) 납득하고 넘어갔지만 주유의 아련~~한 보글보글 회상에서 이야기가 순식간에 손책 13세 무렵으로 휘떡 꺾이는 데는 더 뭐라 할 말도 없더이다. (사람 옆에 세워두고 먼 눈으로 회상에 잠기지 마랏;) 그 다음부터는 뭐 낯팔림의 일대 퍼레이드. 누가 지네들 아니랄까 봐서 만나서 눈 마주치자마자 스파크가 튀는 단금은 적벽의 연회보다 백만 배는 더 쪽팔렸다. 도저히 처음부터 제정신으로 읽지를 못하겠쟝;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이리저리 훑어보다 후기 첫머리 읽고 막바로 기절했음. 완전히 소패왕 빠순이 다 된 나도 낯이 화끈화끈거릴 찬사로 쭈아악 도배질을 해 놨네 이 아저씨. 이 사람 지이이이인짜 손책에게 홀랑 반했구나, 남자가 남자한테 반하면 이렇게 무섭고도 두렵구나아;;;
시대 고증이라던가 설정이 좀 으응? ;;; 싶은 게 많지만 화봉요원의 감각 - 손책이 강동평정전에 나섰을 때 조운이 강동에서 날뛰어도 조금도 놀랍지 않~아! - 으로 읽으면 결코 신경 쓰이지 않음. 현재 덜덜 떨면서 조금씩 아껴 아껴 읽고 있는 중이다;

아-아, 말 나온 김에 화봉요원 리뷰하고프다... (국내에서 아마도 유일한 화봉요원 독자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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