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탕이여 후쿠탕이여.

Road to Infinity/끝없는 주절주절 | 2006/07/22 00:50

지벨 님이 올려주신 사포 대전의 후쿠탕 인터뷰를 후딱 읽어치우고 거품 물고 죽어버렸다.

'노력과 근성만으로는 하야토에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야토가 1년만에 챔프가 된 것은 아무래도 하야토가 천재이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죠. 천성의 재능이나 운명적인 무언가가 아니고서는 하야토와 호각으로 싸울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중략...) 딱 잘라 말해 사이버 포뮬러에 나오는 드라이버들은 보통 레벨로 보면 모두 천재입니다. 그저 신적인 존재가 하나 있었을 뿐이죠.'

'SIN에서의 하야토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달리는 존재예요. 하야토를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죠.'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OTL
내 그 동안 입에 거품을 물고 사포에는 천재놈들이 드글거리지만 카자미 하야토는 이미 신재라거나 천재로 표현할 수준을 하안참 초월하고 있으며 SIN의 그놈은 인간조차 아니라고 수백 수천 번은 족히 나불나불 떠들어댔거늘 원작자가 그걸 앗싸리 아 맞아요 걔 인간 아닌데요 라고 인정해 버리면 대체 팬은 어쩌란 말이냐아아아아!!! T.T

이걸로 SIN이야말로 시드 데스티니의 진정한 전신이자 시퀄임을 재확신했음. 시데의 키라 야마토가 인간이 아닌 하나의 '주의'였듯 SIN의 카자미 하야토는 드라이버가 아니라 레이스 바로 그 자체임. 추상적인 이미지가 인간의 탈을 쓰고 졸랑졸랑 돌아다니니 괴이하다 못해 꼭 해탈한 것처럼 보이지 별 수가 없는 거라. 아 정말 내가 미쳐요.... orz

흑흑 지벨 님 대체 어디 계세요. 저놈의 감독 죽어버려 성토하지 않고선 저 오늘 밤 절대로 잠 못 이룹니다 아으으으으으으윽 -_- 그래 사포 신 TV 시리즈 만들 거냐! 만들어라! 그리고 사고쳐 버려라!! T.T

하지만 현재의 사포 시리즈 같은 초대형 괴작은 두 번 못 나올 거라고 생각함. 후쿠탕도 인정했지만 이건 말 그대로 감독의 통제를 벗어나 한도 끝도 없이 내달리다 벽을 뚫고 기세좋게 튀어나가 버린 작품이거든.
(그 대신 다른 종류의 괴작이 되겠지. 아아 이 감독 대체... OTL)


덤. '카가는 SIN 때 좋아했었다' 는 후쿠탕의 말을 듣고 무릎을 쳤음. 저 말을 뒤집으면 SIN 이전에는 딱히 블리드 카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없었다는 뜻이 된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상업감각이 발달한 후쿠탕이 진짜 인기 있을 만한 캐릭터로 다듬어 놓긴 했지만 더블원까지만 해도 카가 씬 말 그대로 편리한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 어이어이 돌 던지지 마라. 나 카가 씨 팬 맞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인걸.
이 사람이 더블원까지 한 짓을 돌이켜보면 곤란할 때 짠 듯이 나타나고 위험할 때 구해주고 머리 싸매고 고민할 때 조언해주고, 하여간 ZERO 7편 이후의 란돌 왕자님만큼이나 하야토에게 득 될 일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코앞에 닥친 난제를 해결하고 이야기를 스무스하게 풀기 위한 도구적 캐릭터였다는 얘기. 그러니 뭐 당연히 도구에 대한 정 이상은 없었을 테고 그만큼 띄워주기도 쉬웠을 거다. 완벽한 남자로 그리면 만사가 장땡이니까. 그래서 TV판과 더블원의 그는 비교적 평면적이고 전형적임. 물론 그게 나쁘단 얘기는 아니고. 다만 캐릭터로서의 블리드 카가에 진정한 깊이와 풍부함이 부여되기 시작한 것은 이 사람이 슬슬 바보 될 조짐을 드러내는 ZERO에서부터다.
내가 종종 후쿠탕은 묘한 데서 더럽게 리얼리스틱하다고 투덜대는데 특히 인물 묘사에서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딴 건 다- 몰라도 후쿠탕이 시데에서 뭐가 대단했느냐 하면, 시드 시절부터 지니고는 있었지만 크게 눈에 뜨이지는 않았던 놈들의 성격적 결함을 아예 드러내놓고 전면에 노출시킴으로써 왕자도 아이돌도 화장실은 간다는 아아주 지극당연지사지만 소녀마음에선 별로 생각하고프지 않은 현실을 팬들에게 배째고 정면으로 들이대는 진성 테러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특히 노출될 기회가 많았던 아스란의 경우 그 반작용의 정도가 실로 장난이 아니어서, 시데에서 줄줄이 떨어져나간 아스란의 팬들은 대개 이걸 감당 못한 결과이리라. 배짱이 좋은 건지 성격이 나쁜 건지 그냥 암 생각도 없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 감독님아는 참을 수 없는 찌질함과 버벅거림과 우유부단성, 가능하면 좀 모른 척했으면 좋겠는데 실은 우리들 인간이 매일매일 범하고 있는 본성적인 병신삽질짓을 그려내는 데 천부적 재능이 있음. 덧붙이자면 여기에는 양쪽에서 각본 맡은 모로사와의 공도 적잖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미숙하고 죽어라 한심스럴 때도 있고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나 그 여자에겐 뭔가 특별한 요소가 있음. 아니 메리가 아니라.
SIN에서의 후쿠탕은 작심하고 '블리드 카가'란 우상 파괴에 나선 감이 없지 않다. 7년간 팬들 사이에 확립된 그 남자의 신화를 아주 작정하고 망치로 때려부쉈음. 솔직히 이런 거 감당해낼 수 있는 사람 그다지 많지 않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시데에서 아스란이 병신 됐다고 팔팔 날뛴 소녀(...)들이 수두룩한 걸로 아는데 그놈이 실은 원래부터 절라 황망한 놈이었다는 걸 생각하고 이미지가 쌓인 세월을 놓고 보면 아스란이야 충격 면에서 카가 씨한텐 쨉도 못 되심. 팬들이 거의 발작을 일으키며 SIN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동인계는 기냥 나 그딴 거 못 보았소로 사뿐히 즈려밟고 있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나도 그랬으니 자신 갖고 말할 수 있다.

허나 이제껏 교묘히 가려져 있던 성격적 결함을 만인에게 홀딱 드러내며 갖은 삽질을 하다하다 아예 맨땅에 헤딩까지 해 버린 SIN에 이르러 마침내 블리드 카가는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으로서 생생히 살아 숨쉬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제야 비로소 '인간이 된 것이다'. 종합적인 스펙은 열라게 높은 주제에 자세히 보면 미숙하고 아직 덜 자랐고 여전히 과거에 발목 잡혀 있고 사고방식은 쓸데없이 마초에다 자존심만 세고 삽질근성에 한 번 터지면 황당한 방향으로 일거에 폭발시키는 바보를 넘어서 이쯤 되면 거의 빙신 -_-;;; 다시 말하지만 나 진짜로 팬 맞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후쿠탕은 SIN에서 새삼 카가 씨에게 제대로 애착을 갖게 되었으리라 확언할 수 있다. 이 사람에 대한 S의 애정이 사포 팬질 9년만에 실로 대형 폭발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런 까닭. 내 단언하는데 빙신 같은 놈에게 한 번 모에케 되면 그 모에 하늘을 찌르고 바다를 가르며 대지를 뒤엎는지라 -_-;;; 누군가의 결함까지 다 포용할 때 그건 진짜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하야토는 별격임. 그 애에 대해선 하 옛날에 사랑이니 모에니 할 경지를 훌떡 넘어선지 오래라 뭐라 말하기도 그렇다;

....근데 어째서냐, 덤이 본문보다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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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 2006/07/23 10:34
원작에서 앗싸리 인정해버렸으니 이제 진정 구원이란 없는 것이로군요....(왠지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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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06/07/23 11:30
천재 축에 속하는 크리에이터의 첫째 조건은 속사정을 안 팬에게 아아아아아악 이 자식아 죽어버려를 절규하며 머리를 쥐어뜯게 하는 것입니다. 전 이 이상 후쿠탕에 대해 뭐라 욕질할 근성도 잃어가고 있어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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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iel 2006/07/23 16:15
안녕하세요.^^ 줄곧 스토킹만 해오다가 결국 튀어나와 인사드립니다. 줄곧 kisara 님의 센스넘치고 시원한 독설과 글빨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최근 사포 재버닝에 다시 들어갈 조짐을 느끼고 떨고 있는 중입니다.
과연 하야토는 천재도 아니고 그냥 신이었군요... 키라 야마토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곰씹고 있습니다.
앞으로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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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06/07/27 22:09
어서 오세요 meliel님, 처음 뵙겠습니다 ^^ 사포 재버닝, 하심이 어떠신지? 후후후후후. 이 길은 즐겁답니다. 어서 오셔요 (<- 물귀신 근성)
후쿠탕은 여러 의미로 미친 인간입니다. 뭐랄까, 이 사람 천재는 분명 천재인데 미치광이 천재예요 -_-; 정말로 정신이 후달리는 작품이지만 시데 끝까지 힘내서 보시길 바랍니다. 다 보고 나시면 세상에 이런 초대형 괴작이 있어도 되는 건지 회의하시게 될 겁니다. (먼 눈)
스스로의 정념에만 미친듯이 불타는 바보 블로그지만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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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라 2006/07/25 11:39
요즘들어 곰곰히 생각해보면, 저는 SIN이후 오히려 카가씨 호감도가 업 한 캐이스더군요.
뭐랄까, 이전까지의 퍼팩트한 남자도 좋았지만, 정말 SIN에서의 카가는 무진장 인간냄새가 나서 푹 빠지게 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요. 물론 무진장 한심하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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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06/07/27 22:11
역시 그렇죠 그렇죠? (반짝반짝) 저도 SIN에서 진짜 빙신(;)이었다는 걸 깨닫고 미친듯이 애정도가 솟아오르고 있답니다. 불행히도 현재진행형. 한심한 남자한테 모에하기 시작하면 그게 더 심각해요;; 솔직히 앞날이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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