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무모와 무식과 무대포의 3중주를 가는 삼국지 SS의 제 3탄.
역사 왜곡 같은 거 신경 쓰시면 관리인은 매우 슬프므로 자중해 주십시오. (お前何様)
SIDE B-41. 부재중(留守)
그간 미루고 또 미뤘던 손책@남자 버전을 드디어 완수. 오, 오라버니, 감격의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아요...! (오라버니가 누구야)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미친듯이 휘갈겼음. 이상할 정도로 술술술술 잘 나옵디다. 하지만 퀄리티는 따지지 맙시다. 나는 퀀티티로 승부하는 여자. 양이나 제대로 많은지도 묻지 마라. 덧붙이자면 이래봬도 유책 맞음. 손책은 어디까지나 '초초초강공에 한없이 가까운 여왕 수'이므로. 그게 뭐냐고? 나도 모르심.
196년에 손책이 회계군을 놓고 태수 왕랑과 격돌한 것도 사실이고 - 시기가 좀 애매모호하다; - 손책답지 않게 초기에 약간 지지부진했던 것도 사실이고 당시 주유는 원술과의 줄다리기 문제로 숙부 주상에게 가 있었던 것도 사실임. (실은 회계군 평정 이후에 갔다는 얘기도 있는데 헛갈리니까 무시한다;) 옆에서 마구 화내고 잔소리하고 바가지 긁어줄; 주유가 없어서 할 마음이 나질 않아 지지부진했다고 멋대로 해석하는 S. 하지만 진영에 장소, 여범, 손하가 있었는진 나도 모른다. 전장에 장소나 장굉 중의 하나를 동반하고 다녔다는 기록은 있음. 근처에 오서가 없단 말야...! 이러다 나중에 장소전이나 여범전에서 오군평정전에 참가했다는 기술이 있으면 이걸 어떻게 수습하냐;;;
(장소는 몰라도 여범은 있으면 안 되는데! 일단 원문을 봤을 때는 없는 것 같지만 내 중국어 실력을 믿지 말라!)
실은 주유와 노숙이 친구 사이가 된 건 다음 해인 197년임. 후일담은 그때인 걸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 자뻑하고 있는 주유에 대해선 노코멘트로 대응하겠다.
하여간 쓰고 싶은 걸 쓰고 만족했다. 최근 亀自慢을 너무 봤더니 어쩐지나루미 시게자네스러워진 손하는 뭐 그렇다 치고 여범이 무의식적으로 코쥬로의 영향을 받아버린 탓에 (이 damn being influenced too much한 여자 같으니-_-) 우번의 캐릭터와 겹칠 것 같아 낑낑대고 있음. 뭐 어떻게든 해 봐야지.
하여간 손책은 손오의 카리스마 아이돌. 원래 주군은 그런 법이다.
(근데 어쩐지 허구헌날 게으름 모드인 이 사람. 내가 귀차니스트 시기라서 그런가? ;;;)
덤. 나 벅스 버니 특집 쓰고 있어! 캡쳐가 안 될 뿐이라고 H양!! (왜 그걸 여기서 절규하냐!?)
올해로 스물 두 살,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동오의 젊은 승룡(昇龍)・손책은 침상에 귀차니스트의 모범이 능히 될 폼으로 게으르게 퍼지르고 누워 허리께까지 쑥쑥 자란 자신의 은발 - 곧 죽어도 결코 백발은 아니다 - 을 비비 꼬며 단호히 선언했다.
"할 마음이 안 나."
"주─공───────!!!!!!!!!!!!"
장소(張昭)의 고함이 진영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때는 건안(建安) 원년(서기 196년).
손책군, 현재 회계군(会稽郡)에서 왕랑(王朗)군과 일대 격전 중.
"어쩐지 속전속결을 애호하시는 주공답지도 않게 꾸물거리고 계신다 싶더니, 그런 이유셨습니까."
주유와 더불어 손책의 최고 심복으로 손꼽히는 일명 쌍벽 형님조의 하나이자 정사가 인정한 손책의 카리스마 빔 희생자 제 2호인 여범(呂範)은, 용케도 손오군 제일의 잔소리꾼 장소를 교묘히 혼란시켜 제 막사로 돌려보내고 또다시 축축 늘어져 버린 주군에게 안쓰러움 반 한심함 반이 절묘히 섞인 시선을 던졌다.
손책은 22년 평생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족히 꼽힐 성대한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었다.
"자의(子義=태사자)라도 되면 몰라, 이런 할 맛도 안 나는 상대를 후딱후딱 해치우고 나면 나는 뭔 재미로 살라는 거냐."
"만사의 척도를 재미로 재지 마, 재미로."
역시 쌍벽 형님조의 하나이자 손책의 족형(族兄)인 손하(孫河)의 딴죽은 깨끗하게 묵살당했다. 여범도 씹었다.
"주군리(周君理=주치)는 오군(呉郡)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있다지 않습니까. 남이 앞서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주군이 그에 뒤지셔서 쓰겠습니까?"
"어이 여봐요, 무시하기냐! 그리고 자형(子衡), 지금 아주 무례한 말을 하지 않았어!?"
"사실은 사실이죠."
"구구절절이 옳긴 하지만, 세상에는 안 해서 더 좋을 말도 있다고!"
".......네놈들 둘 다 두름쳐서 강물에 빠뜨려 버린다. 아 그래, 하면 될 거 아냐, 하면..."
궁시렁거리면서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던 손책이 갑작스리 뚝 멎었다. 백부? 고개를 갸웃하며 손하가 얼굴을 반쯤 숙이고 뭐라뭐라 웅얼대고 있는 족제(族弟)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크아아아아악!!!"
"우왓!"
손하는 재빨리 힘차게 날아가는 서탁의 궤적에서 몸을 피했고, 여범은 즉석에서 주군의 밥상뒤집기 개량판을 맞고 박살난 서탁을 새로 가져다놓는 데 드는 예산을 암산하였다.
손책이 예고도 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므로 일일이 경악했다간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하여간 문제의 불량 주군은 발을 쿵쿵 구르면서 성질을 있는 대로 터뜨리고 있었다.
"이게 아냐 이게! 젠장, 네놈들 딴죽엔 기합이 모자라! 기합이 딸리면 하다못해 몸을 던져 뭔가 의외성이라도 가미하란 말이다! 이런 범죄급으로 시시한 놈들이 내 심복이라니 말이나 돼! 치유계 속성이나 정감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뜨뜻미지근한 물기라도 강제로 쥐어짜내 봐라! 가신 좋다는 게 뭐냐!!"
"아니,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가신이 존재하는 건 절대로 아니라고 봐."
"주군이 까라면 까!!"
"횡포다─독재다!"
"군주의 특권."
"백부는 도를 넘었어!"
족형과 한참 팔 걷어붙이고 요즘은 유치원생도 안 할 입씨름을 벌이던 손책은 돌연 한숨을 푸-욱 쉬더니 책상다리를 하고 침상에 도로 펄썩 앉아버렸다. 방향 전환이 극도로 빠른 것도 이 불량 주군의 특징이다.
"됐다 됐어. 너희들에게 뭔가를 기대한 내가 바보지."
"너무 빨리 포기해도 좀 서글픈데 말야..."
"지금의 내 일상엔 명백하게 공근분이 부족해."
"공근분은 또 뭐야."
"마음을 치유하는 영양분."
"미안하다 백부. 난 중모(仲謀=손권)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놀았던 사이지만 가끔 널 진짜로 모르겠어."
"아아!?"
"백해(伯海)가 제대로 아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말 잘했다 자형."
"자형, 넌 누구 편이냐!"
"백부 님."
"단언했어─!"
자타가 공인하는 손책의 오른팔이자 친우이자 의형제이자 밥인 주유는 현재 숙부 주상(周尚)과 단양(丹陽)에 있다.
".....공근."
파르르 떨리는 주군의 입술 사이로 문득 새어나온 비통한 목소리에, 여범과 손하의 심장이 한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공근, 넌 어째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나버린 거냐...!"
막사의 두꺼운 천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햇살에 반짝이는 은발을 흐트러뜨리고 길게 뻗은 속눈썹엔 방울방울 눈물을 맺은 채 연극조로 손을 뻗고 탄식하는 손백부란 꽤나 장관이긴 했다.
얌전히만 있으면 형제자매 8명 중 절강제일미를 자랑하던 모친 오부인을 제일 빼닮아 나름대로 청순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얼굴이므로, 장굉(張紘)을 은거지에서 끌어내고 손견군을 돌려주기 싫어 우물쭈물하던 원술(袁術)마저 단방에 함락시킨 눈물 작전까지 더하면 금상첨화, 웬만큼 감성이 있는 자라면 모두 발치에 기꺼이 몸을 던지고 신하 삼아주길 청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암흑 같았던 3년간 함께 강동을 떠돌며 함께 온갖 신산을 다 맛본 결과 - 손하에 이르러선 당시에는 좀 귀여운 구석이 남아 있었던 여섯 살짜리 손책을 무등도 태워줬던 사이다 - 이 젊은 주군이 얼마나 제대로 맛이 갔는지 숙지하고 있는 쌍벽 형님조의 눈길은 북극의 빙하보다도 썰렁할 따름이었다.
"온 몸으로 나 가기 싫다 외쳐대는 공근을 강인하게 배 안에 처박은 사람이 대체 누굽니까. 자신에게 도취하지 말아 주십시오."
"건 그렇고 백부 너, 분위기 낸답시고 은근슬쩍 공근을 과거의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지 않아? 그 녀석이 아는 날엔 틀림없이 울면서 화낸다? 친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던가."
"................................."
"................................."
"................................."
침묵도 썰렁했다.
손책은 화사히도 웃으면서 손가락을 우두둑 꺾었다.
"좋았어. 자형, 백해, 네놈들 막사 뒤로 나와라. 조직의 쓴맛을 보여주마."
".......주군. 부디 그 노염은 이 손백해 님을 상대로 마음껏 풀어주십시오. 소신은 손책군의 도라에몽. 전쟁이면 전쟁 재정이면 재정 정치면 정치, 시키면 무엇이든 해치우는 일류의 해결사. 현재 얼결에 떠맡은 급여의 계산이 여즉 완료되지 않아 소신이 싸매고 누우면 군의 재정이 파탄나는 바, 백해 님을 두 사람 분만큼 하룻밤 두들겨 울분을 해소하심이 가장 현명하리라 사료됩니다."
"웃... 비겁하다 자형! 내 뒤에 숨지 마 동지를 팔아먹지 마! 이럴 수가 있냐! 근데 도라에몽이 뭐야?"
"간단한 얘기죠. 1800년 후에,"
"시끄러워! 네놈들 만담 금지! 거기 여자형, 시공 좀 작작 넘어! 침울한 주군을 몸 바쳐 위로는 못할 망정 감히 갖고 놀려 한 시점에서 너희 두 놈 다 동죄다. 어딜 토껴?"
"치잇. 역시 안 되는군요. 백해를 팔아먹고 홀로 유유히 돌아가려 했더니."
"위기를 맞으면 본성이 나온다더니 정말일세... 자형, 너란 놈은..."
"백부 님의 눈 밖에 나지 않는 한 만사가 장땡입니다."
"또 단정했다─!! 정말이지, 너란 인간은!"
"그보다 지금은 주공의 전신에서 물씬물씬 피어오르는 살기가 더 걱정이군요."
"우와아.. 천 년의 사랑도 식을 흉악한 낯 좀 보라지... 백부! 생각을 고쳐먹어! 친족 살인은 좋지 않아!"
"닥쳐. 누가 죽인다더냐. 그야 평소 같으면 이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자 배에 주먹을 꽂고 발등을 짓밟고 몸을 숙였을 때 무릎으로 턱을 올려치고 팔꿈치로 목 뒤를 찍고 업어치기로 바닥에 동댕이쳐 그 위에 걸터앉아 양다리를 역방향으로 꺾은 후 다리 사이에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 가벼~~운 벌칙도 내릴 일이지만,"
".....그게 가벼운 거야....!? 그걸, 가볍다고 해도 되는 거야...? 가볍다는 말에 미안하지도 않냐...!?"
물론 족형의 절규 따위야 깔끔히 즈려밟은 손책은 상큼천진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는 얼굴로 싱글 웃어보였다.
"내게도 자비심이 영 없지는 않으니까 말야. 뇌천 찍기 한 방씩으로 용서해 주마. 아~젠장, 나 참 성질 많이 죽었다.."
"......................................"
"......................................"
"......................................"
다시 한 번 불길한 침묵이 흘렀다.
여범이 찬찬히 입을 열어 또박또박 말했다.
"주군께선 13세 때 마을로 내려온 식인 호랑이를 뇌천 찍기로 순살하셨다고 황 장군이 아련한 눈으로 회상하셨습니다만."
"훗, 그땐 나도 어렸어..."
"눈-이-진-심-이-다-악-사람 살려────!!!"
결국, 이마에 한 방씩 손가락 퉁기기를 먹이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참고로 손책의 퉁기기 한 방은 남만 코끼리도 쓰러뜨린다고 전해진다.
"하아, 속 시원~하군. 자, 그간 오래 기다렸다 왕랑! 자근자근 씹어서 먹어주마!!"
말이 좋아 손가락 퉁기기고 실제로는 인정사정없이 심복 부하 둘을 일격에 날려버린 몹쓸 주군은 기지개를 켜며 귀축도 그런 귀축이 없는 대사를 기세등등하게 뱉어냈다. 일단 할 마음은 생긴 모양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손하는 김이 폴폴 오르는 얼얼한 이마를 문질렀다. 정신을 수습하는 데만 3분이 걸렸다는 사실은 비밀이다.
역시 벌겋게 부어오른 이마를 문지르던 - 기껏 잘 타고난 얼굴에 웬 폭거냐 싶다 - 여범이 두연히 입을 열었다.
"이왕이면 방금 전과 같은 말씀은 공근이 있을 때 해주시지 그러십니까? 허구헌날 득득 긁어대지만 마시고."
"내 마음이다."
"아, 나도 자형 말에 찬성─이러고 살다가 공근이 너 뒷감당하는 데 질려서 다 집어치고 영영 도망가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잠꼬대는 자면서 하시지, 백해."
막사의 입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속에서, 손책이 씨익 웃었다.
타고난 섬세한 조형마저 단숨에 압도해 버리는 악동 같은 웃음이, 어쩐지 등골이 서늘했다.
"그건, 태어날 때부터 내게 모든 걸 바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놈이다. 공연한 걱정은 집어치워."
'우와아─.'
윽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손하는 그날 진심으로 주유를 동정했다. 내 친척이지만 진짜로 엄청난 괴수한테 걸렸구나 공근. 열심히 살아라.
여범이 반문했다.
"그럼 하는 짓 벌이는 짓이 전부 제멋대로고 엉망진창인 주공에게 짤짤이 휘둘리는 우리는 뭡니까?"
손하가 옳소 옳소 찬성의 깃발을 휘두르건 말건, 손책은 묘하도록 우아한 포즈로 새삼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대들, 나 없이는 못 사는 몸이잖나?"
정상에 군림하는 자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당당함.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줄 진작부터 알고 있는 확신범의 오연함. 굳이 직선적인 말로 표현해 버리는 소년과도 같은 천진난만한 잔혹함.
전부 합쳐서 그들의 주군, 손백부다.
".........부정, 못 하겠다."
"사실은 사실이지요....."
가신 둘이 소태와 바퀴벌레를 한꺼번에 씹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인정하자, 주군은 허리를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여기는 동성현(東城県)의 대부호 노숙(魯粛), 자는 자경(子敬)의 호화로운 사저.
"공근, 여보게 공~근~? 이 화창한 날에 이 좋은 차를 앞에 두고 탁자에 엎어져 웬 궁상인가? 잠깐, 머리 위에 뭉게구름까지 폈는데!? 여봐요, 주-공-근─정신 좀 챙겨!?"
집주인이 얼굴도 머리도 성격도 집안도 나무랄 데가 없지만 딱 하나 근성과 팔자가 괴상한 방향으로 비비 틀려 있어 앞날이 보나마나 험난할, 최근 새로이 얻은 친우를 음습한 토목공사질에서 부활시키고자 진력을 다할 제, 주유는 단아한 얼굴에 그득그득 수심을 띠우고 꼭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백부가 부족해......"
"하아?!"
노자경, 남자가 남자에게 반하면 약도 없더라는 세상의 진리를 지금 막 피부로 체험하다.
"할 마음이 안 나."
"주─공───────!!!!!!!!!!!!"
장소(張昭)의 고함이 진영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때는 건안(建安) 원년(서기 196년).
손책군, 현재 회계군(会稽郡)에서 왕랑(王朗)군과 일대 격전 중.
"어쩐지 속전속결을 애호하시는 주공답지도 않게 꾸물거리고 계신다 싶더니, 그런 이유셨습니까."
주유와 더불어 손책의 최고 심복으로 손꼽히는 일명 쌍벽 형님조의 하나이자 정사가 인정한 손책의 카리스마 빔 희생자 제 2호인 여범(呂範)은, 용케도 손오군 제일의 잔소리꾼 장소를 교묘히 혼란시켜 제 막사로 돌려보내고 또다시 축축 늘어져 버린 주군에게 안쓰러움 반 한심함 반이 절묘히 섞인 시선을 던졌다.
손책은 22년 평생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족히 꼽힐 성대한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었다.
"자의(子義=태사자)라도 되면 몰라, 이런 할 맛도 안 나는 상대를 후딱후딱 해치우고 나면 나는 뭔 재미로 살라는 거냐."
"만사의 척도를 재미로 재지 마, 재미로."
역시 쌍벽 형님조의 하나이자 손책의 족형(族兄)인 손하(孫河)의 딴죽은 깨끗하게 묵살당했다. 여범도 씹었다.
"주군리(周君理=주치)는 오군(呉郡)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있다지 않습니까. 남이 앞서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주군이 그에 뒤지셔서 쓰겠습니까?"
"어이 여봐요, 무시하기냐! 그리고 자형(子衡), 지금 아주 무례한 말을 하지 않았어!?"
"사실은 사실이죠."
"구구절절이 옳긴 하지만, 세상에는 안 해서 더 좋을 말도 있다고!"
".......네놈들 둘 다 두름쳐서 강물에 빠뜨려 버린다. 아 그래, 하면 될 거 아냐, 하면..."
궁시렁거리면서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던 손책이 갑작스리 뚝 멎었다. 백부? 고개를 갸웃하며 손하가 얼굴을 반쯤 숙이고 뭐라뭐라 웅얼대고 있는 족제(族弟)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크아아아아악!!!"
"우왓!"
손하는 재빨리 힘차게 날아가는 서탁의 궤적에서 몸을 피했고, 여범은 즉석에서 주군의 밥상뒤집기 개량판을 맞고 박살난 서탁을 새로 가져다놓는 데 드는 예산을 암산하였다.
손책이 예고도 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므로 일일이 경악했다간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하여간 문제의 불량 주군은 발을 쿵쿵 구르면서 성질을 있는 대로 터뜨리고 있었다.
"이게 아냐 이게! 젠장, 네놈들 딴죽엔 기합이 모자라! 기합이 딸리면 하다못해 몸을 던져 뭔가 의외성이라도 가미하란 말이다! 이런 범죄급으로 시시한 놈들이 내 심복이라니 말이나 돼! 치유계 속성이나 정감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뜨뜻미지근한 물기라도 강제로 쥐어짜내 봐라! 가신 좋다는 게 뭐냐!!"
"아니,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가신이 존재하는 건 절대로 아니라고 봐."
"주군이 까라면 까!!"
"횡포다─독재다!"
"군주의 특권."
"백부는 도를 넘었어!"
족형과 한참 팔 걷어붙이고 요즘은 유치원생도 안 할 입씨름을 벌이던 손책은 돌연 한숨을 푸-욱 쉬더니 책상다리를 하고 침상에 도로 펄썩 앉아버렸다. 방향 전환이 극도로 빠른 것도 이 불량 주군의 특징이다.
"됐다 됐어. 너희들에게 뭔가를 기대한 내가 바보지."
"너무 빨리 포기해도 좀 서글픈데 말야..."
"지금의 내 일상엔 명백하게 공근분이 부족해."
"공근분은 또 뭐야."
"마음을 치유하는 영양분."
"미안하다 백부. 난 중모(仲謀=손권)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놀았던 사이지만 가끔 널 진짜로 모르겠어."
"아아!?"
"백해(伯海)가 제대로 아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말 잘했다 자형."
"자형, 넌 누구 편이냐!"
"백부 님."
"단언했어─!"
자타가 공인하는 손책의 오른팔이자 친우이자 의형제이자 밥인 주유는 현재 숙부 주상(周尚)과 단양(丹陽)에 있다.
".....공근."
파르르 떨리는 주군의 입술 사이로 문득 새어나온 비통한 목소리에, 여범과 손하의 심장이 한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공근, 넌 어째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나버린 거냐...!"
막사의 두꺼운 천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햇살에 반짝이는 은발을 흐트러뜨리고 길게 뻗은 속눈썹엔 방울방울 눈물을 맺은 채 연극조로 손을 뻗고 탄식하는 손백부란 꽤나 장관이긴 했다.
얌전히만 있으면 형제자매 8명 중 절강제일미를 자랑하던 모친 오부인을 제일 빼닮아 나름대로 청순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얼굴이므로, 장굉(張紘)을 은거지에서 끌어내고 손견군을 돌려주기 싫어 우물쭈물하던 원술(袁術)마저 단방에 함락시킨 눈물 작전까지 더하면 금상첨화, 웬만큼 감성이 있는 자라면 모두 발치에 기꺼이 몸을 던지고 신하 삼아주길 청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암흑 같았던 3년간 함께 강동을 떠돌며 함께 온갖 신산을 다 맛본 결과 - 손하에 이르러선 당시에는 좀 귀여운 구석이 남아 있었던 여섯 살짜리 손책을 무등도 태워줬던 사이다 - 이 젊은 주군이 얼마나 제대로 맛이 갔는지 숙지하고 있는 쌍벽 형님조의 눈길은 북극의 빙하보다도 썰렁할 따름이었다.
"온 몸으로 나 가기 싫다 외쳐대는 공근을 강인하게 배 안에 처박은 사람이 대체 누굽니까. 자신에게 도취하지 말아 주십시오."
"건 그렇고 백부 너, 분위기 낸답시고 은근슬쩍 공근을 과거의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지 않아? 그 녀석이 아는 날엔 틀림없이 울면서 화낸다? 친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던가."
"................................."
"................................."
"................................."
침묵도 썰렁했다.
손책은 화사히도 웃으면서 손가락을 우두둑 꺾었다.
"좋았어. 자형, 백해, 네놈들 막사 뒤로 나와라. 조직의 쓴맛을 보여주마."
".......주군. 부디 그 노염은 이 손백해 님을 상대로 마음껏 풀어주십시오. 소신은 손책군의 도라에몽. 전쟁이면 전쟁 재정이면 재정 정치면 정치, 시키면 무엇이든 해치우는 일류의 해결사. 현재 얼결에 떠맡은 급여의 계산이 여즉 완료되지 않아 소신이 싸매고 누우면 군의 재정이 파탄나는 바, 백해 님을 두 사람 분만큼 하룻밤 두들겨 울분을 해소하심이 가장 현명하리라 사료됩니다."
"웃... 비겁하다 자형! 내 뒤에 숨지 마 동지를 팔아먹지 마! 이럴 수가 있냐! 근데 도라에몽이 뭐야?"
"간단한 얘기죠. 1800년 후에,"
"시끄러워! 네놈들 만담 금지! 거기 여자형, 시공 좀 작작 넘어! 침울한 주군을 몸 바쳐 위로는 못할 망정 감히 갖고 놀려 한 시점에서 너희 두 놈 다 동죄다. 어딜 토껴?"
"치잇. 역시 안 되는군요. 백해를 팔아먹고 홀로 유유히 돌아가려 했더니."
"위기를 맞으면 본성이 나온다더니 정말일세... 자형, 너란 놈은..."
"백부 님의 눈 밖에 나지 않는 한 만사가 장땡입니다."
"또 단정했다─!! 정말이지, 너란 인간은!"
"그보다 지금은 주공의 전신에서 물씬물씬 피어오르는 살기가 더 걱정이군요."
"우와아.. 천 년의 사랑도 식을 흉악한 낯 좀 보라지... 백부! 생각을 고쳐먹어! 친족 살인은 좋지 않아!"
"닥쳐. 누가 죽인다더냐. 그야 평소 같으면 이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자 배에 주먹을 꽂고 발등을 짓밟고 몸을 숙였을 때 무릎으로 턱을 올려치고 팔꿈치로 목 뒤를 찍고 업어치기로 바닥에 동댕이쳐 그 위에 걸터앉아 양다리를 역방향으로 꺾은 후 다리 사이에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 가벼~~운 벌칙도 내릴 일이지만,"
".....그게 가벼운 거야....!? 그걸, 가볍다고 해도 되는 거야...? 가볍다는 말에 미안하지도 않냐...!?"
물론 족형의 절규 따위야 깔끔히 즈려밟은 손책은 상큼천진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는 얼굴로 싱글 웃어보였다.
"내게도 자비심이 영 없지는 않으니까 말야. 뇌천 찍기 한 방씩으로 용서해 주마. 아~젠장, 나 참 성질 많이 죽었다.."
"......................................"
"......................................"
"......................................"
다시 한 번 불길한 침묵이 흘렀다.
여범이 찬찬히 입을 열어 또박또박 말했다.
"주군께선 13세 때 마을로 내려온 식인 호랑이를 뇌천 찍기로 순살하셨다고 황 장군이 아련한 눈으로 회상하셨습니다만."
"훗, 그땐 나도 어렸어..."
"눈-이-진-심-이-다-악-사람 살려────!!!"
결국, 이마에 한 방씩 손가락 퉁기기를 먹이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참고로 손책의 퉁기기 한 방은 남만 코끼리도 쓰러뜨린다고 전해진다.
"하아, 속 시원~하군. 자, 그간 오래 기다렸다 왕랑! 자근자근 씹어서 먹어주마!!"
말이 좋아 손가락 퉁기기고 실제로는 인정사정없이 심복 부하 둘을 일격에 날려버린 몹쓸 주군은 기지개를 켜며 귀축도 그런 귀축이 없는 대사를 기세등등하게 뱉어냈다. 일단 할 마음은 생긴 모양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손하는 김이 폴폴 오르는 얼얼한 이마를 문질렀다. 정신을 수습하는 데만 3분이 걸렸다는 사실은 비밀이다.
역시 벌겋게 부어오른 이마를 문지르던 - 기껏 잘 타고난 얼굴에 웬 폭거냐 싶다 - 여범이 두연히 입을 열었다.
"이왕이면 방금 전과 같은 말씀은 공근이 있을 때 해주시지 그러십니까? 허구헌날 득득 긁어대지만 마시고."
"내 마음이다."
"아, 나도 자형 말에 찬성─이러고 살다가 공근이 너 뒷감당하는 데 질려서 다 집어치고 영영 도망가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잠꼬대는 자면서 하시지, 백해."
막사의 입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속에서, 손책이 씨익 웃었다.
타고난 섬세한 조형마저 단숨에 압도해 버리는 악동 같은 웃음이, 어쩐지 등골이 서늘했다.
"그건, 태어날 때부터 내게 모든 걸 바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놈이다. 공연한 걱정은 집어치워."
'우와아─.'
윽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손하는 그날 진심으로 주유를 동정했다. 내 친척이지만 진짜로 엄청난 괴수한테 걸렸구나 공근. 열심히 살아라.
여범이 반문했다.
"그럼 하는 짓 벌이는 짓이 전부 제멋대로고 엉망진창인 주공에게 짤짤이 휘둘리는 우리는 뭡니까?"
손하가 옳소 옳소 찬성의 깃발을 휘두르건 말건, 손책은 묘하도록 우아한 포즈로 새삼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대들, 나 없이는 못 사는 몸이잖나?"
정상에 군림하는 자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당당함.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줄 진작부터 알고 있는 확신범의 오연함. 굳이 직선적인 말로 표현해 버리는 소년과도 같은 천진난만한 잔혹함.
전부 합쳐서 그들의 주군, 손백부다.
".........부정, 못 하겠다."
"사실은 사실이지요....."
가신 둘이 소태와 바퀴벌레를 한꺼번에 씹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인정하자, 주군은 허리를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여기는 동성현(東城県)의 대부호 노숙(魯粛), 자는 자경(子敬)의 호화로운 사저.
"공근, 여보게 공~근~? 이 화창한 날에 이 좋은 차를 앞에 두고 탁자에 엎어져 웬 궁상인가? 잠깐, 머리 위에 뭉게구름까지 폈는데!? 여봐요, 주-공-근─정신 좀 챙겨!?"
집주인이 얼굴도 머리도 성격도 집안도 나무랄 데가 없지만 딱 하나 근성과 팔자가 괴상한 방향으로 비비 틀려 있어 앞날이 보나마나 험난할, 최근 새로이 얻은 친우를 음습한 토목공사질에서 부활시키고자 진력을 다할 제, 주유는 단아한 얼굴에 그득그득 수심을 띠우고 꼭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백부가 부족해......"
"하아?!"
노자경, 남자가 남자에게 반하면 약도 없더라는 세상의 진리를 지금 막 피부로 체험하다.
그간 미루고 또 미뤘던 손책@남자 버전을 드디어 완수. 오, 오라버니, 감격의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아요...! (오라버니가 누구야)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미친듯이 휘갈겼음. 이상할 정도로 술술술술 잘 나옵디다. 하지만 퀄리티는 따지지 맙시다. 나는 퀀티티로 승부하는 여자. 양이나 제대로 많은지도 묻지 마라. 덧붙이자면 이래봬도 유책 맞음. 손책은 어디까지나 '초초초강공에 한없이 가까운 여왕 수'이므로. 그게 뭐냐고? 나도 모르심.
196년에 손책이 회계군을 놓고 태수 왕랑과 격돌한 것도 사실이고 - 시기가 좀 애매모호하다; - 손책답지 않게 초기에 약간 지지부진했던 것도 사실이고 당시 주유는 원술과의 줄다리기 문제로 숙부 주상에게 가 있었던 것도 사실임. (실은 회계군 평정 이후에 갔다는 얘기도 있는데 헛갈리니까 무시한다;) 옆에서 마구 화내고 잔소리하고 바가지 긁어줄; 주유가 없어서 할 마음이 나질 않아 지지부진했다고 멋대로 해석하는 S. 하지만 진영에 장소, 여범, 손하가 있었는진 나도 모른다. 전장에 장소나 장굉 중의 하나를 동반하고 다녔다는 기록은 있음. 근처에 오서가 없단 말야...! 이러다 나중에 장소전이나 여범전에서 오군평정전에 참가했다는 기술이 있으면 이걸 어떻게 수습하냐;;;
(장소는 몰라도 여범은 있으면 안 되는데! 일단 원문을 봤을 때는 없는 것 같지만 내 중국어 실력을 믿지 말라!)
실은 주유와 노숙이 친구 사이가 된 건 다음 해인 197년임. 후일담은 그때인 걸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 자뻑하고 있는 주유에 대해선 노코멘트로 대응하겠다.
하여간 쓰고 싶은 걸 쓰고 만족했다. 최근 亀自慢을 너무 봤더니 어쩐지
하여간 손책은 손오의 카리스마 아이돌. 원래 주군은 그런 법이다.
(근데 어쩐지 허구헌날 게으름 모드인 이 사람. 내가 귀차니스트 시기라서 그런가? ;;;)
덤. 나 벅스 버니 특집 쓰고 있어! 캡쳐가 안 될 뿐이라고 H양!! (왜 그걸 여기서 절규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