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3장이라니 어느 세월에 다 번역할 생각이냐고 혹여 따져도 나는 모릅니다. 으하하하하. (어이)
여전히 배째라 정신으로(만) 충만한 손책전 해설 Part 2 나감. 쿄고쿠도의 저주 7대 분은 언제나 준비 완료이므로 경고의 말은 생략. 변명 같지만 강조색은 내가 넣은 거 아니다.
제 3장. 불우한 시절(不遇の時代)
두 번째의 면회에선 필살의 눈물 작전으로 꾸물대는 원술을 넉아웃시켰다는 것이 통설 잘못했어요, 농담입니다... 하지만 웬만한 삼국지 베이스 창작물이란 창작물에서 하나같이 손책이 원술을 상대로 나키오토시를 구사하고 있는 건 어째서냐? (연의부터가 나키오토시임;) 특히 무지하게 강했던 것이 기타카타 삼국지의 '빗속에서 죽치고 기다리기'였음. 하기사 나라도 그 정도 미청년이 비에 흠뻑 젖어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무릎을 꿇고 명사군(明使君)이라 부른다면야 돌려주고도 남겠...쿨럭쿨럭케훅쿨럭!!!
(세상 사람이 모두 너같이 리비도로 사는 줄 아냐 이년아)
하여간 배송지의 주석에 의하면 강표전에서는 곡아에 유요(劉繇)가, 회계에 왕랑(王朗)이 있으므로 - 오경과 손분은 몇 년이나 뚜렷한 성과를 못 올리고 빌빌대고 있었다 - 어차피 평정하기란 불가능할 거라 여겨 돌려주었다고 기술되어 있다는데, 거기다 조랑에게 참패하고 왔다면 제 아비만한 자식 없다더니 얘도 그렇구먼, 아직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애구먼 내비둬도 위협은 안 되겠네 뭐, 라고 생각하고 원술 성격에 곧 황제가 되실 몸 에이 인심이나 쓰자고 생색내기로 했다 하면 별로 이상할 일도 없지 않을까? 진상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결과적으로 승천하려 꿈틀대는 용에게 날개도 아니라 로켓을 달아준 셈이 되고 말았다. 묵념.
얘기 방향을 돌려서- '이때 처음으로 대면했을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강조색까지!) 라니 아니 이 무슨 꿈도 로망도 희망도 없는 말을!? 손견군단 사천왕이라면 응당 허구헌날 대장님 본가를 들락거리면서 밥도 얻어먹고 대장님과 장래도 논하고 유난히 기운이 넘치는 대장님의 장남과 대련도 해주고 (하지만 12세 이후로는 연전연패라던가) 같이 놀고 묘한 것만 실컷 가르치다가 사모님께 혼쭐도 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연의에서 죽어라고 쫓아와 "작은주인, 우리를 버리고 가시다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아~~" 라고 울며 불며 매달리는 고참들이 얼마나 귀여웠는데! (현실과 팬픽을 혼동하지 마랏;)
덤. 여기에선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에 해당하는 토역전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어서 발췌해 봤음.
(전략) 원술의 대장 교유(喬蕤), 장훈(張勳)은 모두 마음을 기울여 손책을 존경하였다. 원술은 언제나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게 손랑(孫郞) 같은 아들이 있으면 죽어도 여한은 없으련만!" 손책의 부하가 죄를 짓고, 원술의 진영으로 도망가 마굿간에 숨었다. 손책은 사람을 시켜 그 자를 베게 하고, 후에 원술에게 출두하여 사죄하였다. 원술이 말했다. "병사는 역심을 품기 쉬우므로 마땅히 경계하여 엄히 다스려야 하거늘, 어찌하여 사죄를 하는가?" 이후, 원술군은 모두 예전보다 더욱 손책을 두려워하고 우러러 보았다. (후략)
남의 진영에서도 남자 후리기에 열라 바쁘신 소패왕. 역시라고 해야 할지 과연이라고 해야 할지 (먼 눈)
"이대로 저 원숭이의 군을 접수해 버릴까?"
"아스십시오."
마지막으로, 3년 동안 함께 위기를 헤쳐온 손책과 쌍벽 형님즈(여범&손하) 트리오 모에!!! (불끈)
강도(江都)에 머무르던 2년 동안, 손책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곰곰이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손견 사후, 그 군단은 손분(孫賁)의 지휘 하에 원술의 휘하로 들어갔습니다. 최강의 정예병을 자랑하던 손견군단은 해체되어 원술군에 병합되었습니다. 이후에 원술이 손책에게 되돌려 준 병사는 천여 명 남짓. 손견군이 불과 천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원술이 노랭이 짓을 했다기보다는, 손견군이라 할 만한 것이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겠지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옛 손견군단은 손분, 오경(呉景), 주치(朱治) 등의 부대로 분산되어, 각자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난세에서 2년간의 공백은 결정적인 마이너스 포인트가 되기 십상입니다.
어찌됐건 손책에게는 스스로 이끌 군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손책을 따른 사람은 여범(呂範)과 손하(孫河)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여범은 손책이 강도(江都)에 머무를 무렵에 그를 만나 복속한 인물입니다. (여범전에서는, 도겸이 여범을 원술의 첩자로 의심하여 고문을 가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손책이 도겸에게 미움을 산 것과 같은 이유겠지요) 손하는 손견군단에서 근위병을 지휘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일족 중에서 손책을 따른 사람은 손하뿐이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당시 손견군단의 대들보는 손견의 뒤를 이은 손분이었고, 손분이 원술 밑으로 들어간다면 그에 따르는 게 이치에 맞았겠지요. 이 시절은 그야말로 손책의 26년 평생 가장 힘겨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여범전에 따르면 손책, 손하, 여범 세 사람의 주위에서는 위기가 끊일 날이 없었다고 하고, 손책이 단양군(丹陽郡)에서 모집한 수백 명의 병사 역시, 그 무렵 양주(揚州)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반란군의 괴수 조랑(祖郎)의 습격을 받아 괴멸했습니다. 손책은 말 그대로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한 셈입니다.
194년, 손책은 원술을 방문하여, 정식으로 부친 손견을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합니다. 당시 원술의 상황을 보자면, 손견과 동맹을 맺고 있었을 당시보다 조조의 압력이 훨씬 강해지고, 예주(豫州)를 둘러싼 원소 및 조조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세력권이 양주 방면으로 이동해 있었습니다. 손견의 장남이 나타난 것은 뜻하지 않은 낭보였겠지요. 누가 보아도 손책은 손분을 능가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원술로서는 손책을 스스로의 세력 확장에 유용히 써먹을 속셈이었을 겁니다. 손분에게 맡긴 양주 토벌은 그럴싸한 진척을 못 보고 있겠다, 그 자보다 이 영민해 보이는 청년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잘만 하면 부친 손견만은 못해도 나름대로 써먹을 수 있으리라, 대충 그런 생각이었겠죠? 원술은 손책에게 손견의 옛 부하들과 병사를 돌려주지만, 그 숫자는 천 명에 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로써 손책의 휘하로 정보(程普), 황개(黄蓋), 한당(韓当)을 비롯한 고참 무장들이 마침내 귀환하게 되었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돌아왔다는 표현은 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손견 휘하의 무장들과는 이때 처음으로 대면했을 가능성마저 없지 않으니까요. 어찌 되었건, 마침내 손책의 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원술이 손견의 병사를 손책에게 반환한 경위에 대한 이설(異說)은 주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손책은 강도에서 가깝게 지내던 장굉(張紘)에게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맡깁니다. 그리고 원술을 찾아 손견의 뒤를 잇고자 하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당초 원술은 병사를 돌려주는 대신, 단양태수 오경은 그대의 숙부이고 종형제 손분도 단양에 있으니, 그곳에서 병사를 모으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손책은 단양에서 수백 명을 모병했으나, 이들은 조랑의 습격을 받아 괴멸하지요. 그 직후 다시 한 번 원술을 면회하여, 겨우 손견의 병사 약 천여 명을 돌려주겠다는 약조를 받아냈다고 합니다. 이쪽의 에피소드가 훨씬 원술답게 들리긴 하지만, 자신을 바라고 온 사람에게 스스로 군을 모으라니 아무리 원술이 짠돌이기로서니 그렇게까지 할까? 싶어 의문스럽기도 하고, 만약 톡톡히 짜게 굴 작정이었지만 두 번째 면회에서 모병에 실패한 손책에게 병사를 돌려줬다는 것도 왠지 이상합니다. 여기에서는 본문의 기술을 채택하기로 하겠습니다.
어찌됐건 손책에게는 스스로 이끌 군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손책을 따른 사람은 여범(呂範)과 손하(孫河)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여범은 손책이 강도(江都)에 머무를 무렵에 그를 만나 복속한 인물입니다. (여범전에서는, 도겸이 여범을 원술의 첩자로 의심하여 고문을 가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손책이 도겸에게 미움을 산 것과 같은 이유겠지요) 손하는 손견군단에서 근위병을 지휘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일족 중에서 손책을 따른 사람은 손하뿐이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당시 손견군단의 대들보는 손견의 뒤를 이은 손분이었고, 손분이 원술 밑으로 들어간다면 그에 따르는 게 이치에 맞았겠지요. 이 시절은 그야말로 손책의 26년 평생 가장 힘겨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여범전에 따르면 손책, 손하, 여범 세 사람의 주위에서는 위기가 끊일 날이 없었다고 하고, 손책이 단양군(丹陽郡)에서 모집한 수백 명의 병사 역시, 그 무렵 양주(揚州)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반란군의 괴수 조랑(祖郎)의 습격을 받아 괴멸했습니다. 손책은 말 그대로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한 셈입니다.
194년, 손책은 원술을 방문하여, 정식으로 부친 손견을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합니다. 당시 원술의 상황을 보자면, 손견과 동맹을 맺고 있었을 당시보다 조조의 압력이 훨씬 강해지고, 예주(豫州)를 둘러싼 원소 및 조조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세력권이 양주 방면으로 이동해 있었습니다. 손견의 장남이 나타난 것은 뜻하지 않은 낭보였겠지요. 누가 보아도 손책은 손분을 능가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원술로서는 손책을 스스로의 세력 확장에 유용히 써먹을 속셈이었을 겁니다. 손분에게 맡긴 양주 토벌은 그럴싸한 진척을 못 보고 있겠다, 그 자보다 이 영민해 보이는 청년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잘만 하면 부친 손견만은 못해도 나름대로 써먹을 수 있으리라, 대충 그런 생각이었겠죠? 원술은 손책에게 손견의 옛 부하들과 병사를 돌려주지만, 그 숫자는 천 명에 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로써 손책의 휘하로 정보(程普), 황개(黄蓋), 한당(韓当)을 비롯한 고참 무장들이 마침내 귀환하게 되었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돌아왔다는 표현은 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손견 휘하의 무장들과는 이때 처음으로 대면했을 가능성마저 없지 않으니까요. 어찌 되었건, 마침내 손책의 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원술이 손견의 병사를 손책에게 반환한 경위에 대한 이설(異說)은 주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손책은 강도에서 가깝게 지내던 장굉(張紘)에게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맡깁니다. 그리고 원술을 찾아 손견의 뒤를 잇고자 하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당초 원술은 병사를 돌려주는 대신, 단양태수 오경은 그대의 숙부이고 종형제 손분도 단양에 있으니, 그곳에서 병사를 모으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손책은 단양에서 수백 명을 모병했으나, 이들은 조랑의 습격을 받아 괴멸하지요. 그 직후 다시 한 번 원술을 면회하여, 겨우 손견의 병사 약 천여 명을 돌려주겠다는 약조를 받아냈다고 합니다. 이쪽의 에피소드가 훨씬 원술답게 들리긴 하지만, 자신을 바라고 온 사람에게 스스로 군을 모으라니 아무리 원술이 짠돌이기로서니 그렇게까지 할까? 싶어 의문스럽기도 하고, 만약 톡톡히 짜게 굴 작정이었지만 두 번째 면회에서 모병에 실패한 손책에게 병사를 돌려줬다는 것도 왠지 이상합니다. 여기에서는 본문의 기술을 채택하기로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이 모두 너같이 리비도로 사는 줄 아냐 이년아)
하여간 배송지의 주석에 의하면 강표전에서는 곡아에 유요(劉繇)가, 회계에 왕랑(王朗)이 있으므로 - 오경과 손분은 몇 년이나 뚜렷한 성과를 못 올리고 빌빌대고 있었다 - 어차피 평정하기란 불가능할 거라 여겨 돌려주었다고 기술되어 있다는데, 거기다 조랑에게 참패하고 왔다면 제 아비만한 자식 없다더니 얘도 그렇구먼, 아직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애구먼 내비둬도 위협은 안 되겠네 뭐, 라고 생각하고 원술 성격에 곧 황제가 되실 몸 에이 인심이나 쓰자고 생색내기로 했다 하면 별로 이상할 일도 없지 않을까? 진상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결과적으로 승천하려 꿈틀대는 용에게 날개도 아니라 로켓을 달아준 셈이 되고 말았다. 묵념.
얘기 방향을 돌려서- '이때 처음으로 대면했을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강조색까지!) 라니 아니 이 무슨 꿈도 로망도 희망도 없는 말을!? 손견군단 사천왕이라면 응당 허구헌날 대장님 본가를 들락거리면서 밥도 얻어먹고 대장님과 장래도 논하고 유난히 기운이 넘치는 대장님의 장남과 대련도 해주고 (하지만 12세 이후로는 연전연패라던가) 같이 놀고 묘한 것만 실컷 가르치다가 사모님께 혼쭐도 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연의에서 죽어라고 쫓아와 "작은주인, 우리를 버리고 가시다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아~~" 라고 울며 불며 매달리는 고참들이 얼마나 귀여웠는데! (현실과 팬픽을 혼동하지 마랏;)
덤. 여기에선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에 해당하는 토역전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어서 발췌해 봤음.
(전략) 원술의 대장 교유(喬蕤), 장훈(張勳)은 모두 마음을 기울여 손책을 존경하였다. 원술은 언제나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게 손랑(孫郞) 같은 아들이 있으면 죽어도 여한은 없으련만!" 손책의 부하가 죄를 짓고, 원술의 진영으로 도망가 마굿간에 숨었다. 손책은 사람을 시켜 그 자를 베게 하고, 후에 원술에게 출두하여 사죄하였다. 원술이 말했다. "병사는 역심을 품기 쉬우므로 마땅히 경계하여 엄히 다스려야 하거늘, 어찌하여 사죄를 하는가?" 이후, 원술군은 모두 예전보다 더욱 손책을 두려워하고 우러러 보았다. (후략)
남의 진영에서도 남자 후리기에 열라 바쁘신 소패왕. 역시라고 해야 할지 과연이라고 해야 할지 (먼 눈)
"이대로 저 원숭이의 군을 접수해 버릴까?"
"아스십시오."
마지막으로, 3년 동안 함께 위기를 헤쳐온 손책과 쌍벽 형님즈(여범&손하) 트리오 모에!!!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