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와 자와 소자.

삼국남자킬러연의 | 2006/08/21 01:43

E.I.H.N.에서 빌려온 해설.

■ 휘(諱)에 대하여
휘는 이를테면 본명에 해당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자 근본이 되는 것. 태어났을 때 얻는 이름이죠.
다만 고대 중국에서 타인의 휘를 부르는 행위는 아주 무례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때문에 양친이나 상사, 친족 중 연장자,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의 사람이 아니면 부르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인지상인 황제의 휘쯤 되고 보면 부르는 건 고사하고 이름자가 겹치는 지명조차 일반인이 황제의 휘를 입에 담는 것을 막고자 개명당하는 일도 흔했습니다. (※주 : 당 태종 이세민의 치하 당시엔 이름자의 세世가 겹친다고 해서 관세음보살이 난데없이 관음이 되는 웃지 못할 사태도 있었다던가 어쨌다던가)
이름에는 일종의 주력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에서 연유하는 관습이지요. '이름을 앗기는' 것을 그 인간의 존재 전부를 장악하는 것과 동등하게 보는 관점은 옛날 이야기와 신화 전설에서 솔찮게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소일(小佚)의 본명은 '주유(周瑜)'로, 즉 성은 '주(周)'이고 이름은 '유(瑜)'가 됩니다만, 작중에서는 백부에게 이 이름은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 부를 때도 거의 쓰지 않고, 아명(兒名)인 '소일' 혹은 별개의 호칭으로 통용되지요. 백부는 소일에게 '책(策)'이라는 휘(諱)를 이미 밝혔지만, 역시 소일은 '책'이라고 하는 대신 '백부'라고 부르죠. 그런 겁니다. (※주 : 니시이 상의 장편 「망남(望南)」에서의 설정)
덧붙이자면 여성의 이름은 거의 대부분이 남지 않습니다. 여성이 휘를 밝히는 건 양친과 친족, 그리고 남편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일본의 고전문학에서는 '이름을 앗기다' 가 '모모 씨의 처가 되었다 혹은 관계하였다' 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요) 역사서에 남은 여성 역시 호칭 대신 '~부인(夫人)' 혹은 '~희(姫)'처럼 '어느어느 가문 출신의 여성'으로 표기되곤 합니다. 유비의 정실이 된 손권의 동생은 '손부인(孫夫人)'으로 기록됩니다. '상향(尚香)'이나 '인(仁) 공주'라는 것은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창작한 이름일 뿐이지 결코 본명은 아닙니다.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예를 들어 그 유명한 마성의 미녀 '하희(夏姫)'도, 한 번 하씨 가문과 인연을 맺은 여성이라는 이유에서 이렇게 불리고 있죠.
이 본명에 '아(阿)'를 붙이면 모친이 어린아이를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이 됩니다. '아몽(阿蒙)'이라는 호칭은 즉 '몽이'에 가까운 어감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주유도 실제론 모친에게는 '아유(阿瑜)'라고 불렸겠지요. 그런 장면은 아직 작중에는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주 : 진삼에서 단금이 자 대신 손책, 혹은 주유로 서로 휘만 죽자사자 불러댄 건 우린 이미 한 가족임의 과시였던가!?!! 얕볼 수 없도다 돈에이....! [그럴 리가 있냐;])

■ 자(字)에 대하여
본명을 부를 수 없으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이유로, 여기서 상대를 실제로 부를 때 사용되는 '자(字)'라는 게 등장합니다. 조조의 '맹덕(孟徳)'이나, 하후돈의 '원양(元譲)'이 바로 자입니다. 물론 주유에게도 '공근(公瑾)'이라는 자가 있고, 손책의 '백부(伯符)'도 마찬가지.
일반적으로 자를 지을 때는 그 사람의 휘에 맞추어 의미 또는 음색과 밀접하게 관련되도록 짓는 것이 보통입니다. 다시 한 번 시대를 거슬러올라가 공자의 제자 중 가장 총애를 받았던 안연(顔淵)을 살펴봅시다. 이 사람은 세간에는 안회(顔回)로 더 잘 알려져 있었던가요. 아무튼 회(回)가 휘고 연(淵)이 자입니다. (때때로 '안자연(顔子淵)'이라 불리기도 합니다만, 이건 자인 '연'에 존칭인 '자[子]'를 붙인 것이죠) '연(淵)'은 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리는 곳. '회(回)'는 '돌고 도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므로 의미에서 연관을 갖습니다.
주유 역시, 유(瑜)는 아름다운 옥돌이라는 의미이고, 자인 '공근(公瑾)'의 '근'도 같은 뜻을 지닙니다. 아름다운 보옥을 뜻하는 '근유(瑾瑜)'라는 숙어도 있습니다. (※주 : 때문에 근瑾이 가는 곳에는 유瑜가 세트로 함께 따라다닌다. 자가 자유[子瑜]인 제갈근[諸葛瑾] - 공명의 형 - 이 좋은 케이스)
또한 자를 지을 때는 형제순에 따라 특정한 문자가 쓰이기도 합니다. '백(伯 : 장남)', '중(仲 : 차남)', '숙(叔 : 삼남)', '계(季 : 사남, 혹은 막내)' 이렇게 네 문자입니다. 때문에 백부(伯符)라는 자를 보면 장남임을 금세 알 수 있지요. '맹(孟)'이라는 문자도 장남을 의미합니다. 조조의 '맹덕(孟徳)'도 그에 상당하지요. (※주 : 같은 장남이라도 백伯은 정실 소생일 경우에, 맹孟은 측실 소생일 경우 쓴다고 함. 에, 그럼 조조 님이나 마초 - 자 맹기孟起 - 도 측실 소생? 젠장 조사하기 귀찮으니 넘어가자. 하여간 저 유명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의 이름도 형제순에서 유래하는 셈이다)
마속(馬稷)의 경우는 위에서 다섯 번째이므로 자도 '유상(幼常)'입니다. 사마의(司馬懿)의 자 '중달(仲達)'을 보면 차남이란 걸 쉽사리 알 수 있죠. 이해를 돕기 위해 매우 모범적인 케이스인 손견의 아들들을 쫙 늘어놓아 볼까요. 백부(伯符)=손책(孫策), 중모(仲謀)=손권(孫権), 숙필(叔弼)=손익(孫翊), 계사(季佐)=손광(孫匡). 오오 알기 쉽다. (또 한 명 손랑[孫朗]이라는 서자도 있지만, 자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자에 종종 쓰이는 문자로 '자(子)'를 들 수 있는데, 문자 하나를 보완하고 마감하기 위한 존칭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子)'는 남성에 대한 존칭이기 때문이죠. ('안영[晏嬰]'이 후대에서 보통 '안자[晏子]'로 통칭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고대에는 왕후의 자제의 이름에 붙기도 했었지요.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만.
다만 자는 어느 정도의 지위가 있는 가문이 아니면 짓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훗날 출세하고 나서 스스로 짓는 일도 흔했습니다.
실은 이 자라는 호칭도 꽤나 친근한 사이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게 보통이고, 가령 휘하 병사나 영지의 주민이 그 대장 혹은 태수를 자로 불렀다간 보통 어마어마한 실례가 아니므로, '성(姓) + 관직명'으로 부르는 것이 좀 더 일반적입니다. 북해태수(北海太守) 공융(孔融)이 '공북해(孔北海)', 건창도위(建昌都尉)의 관직을 얻은 태사자(太史慈)가 '태사건창(太史建昌)'으로 불리는 건 그래서.
(※주 : 실제로도 촉에 귀순한지 얼마 안 된 마초가 유비를 '현덕'이라고 불렀다가 격노한 피치보이즈 큰형님사랑의 의제들에게 썰릴 뻔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러니 실은 '백부 님'이라 불러서는 저어어어어얼대 안 되는 거지만 뭐, 근본이 야쿠자 깡패 집단;인 손오고 손책은 격식 차리기 엄청 싫어할 성 싶으니까, 최고 심복들만의 특권 - 그 최고 심복이라는 놈이 너무 많다는 건 지적하면 못 쓴다; - 이란 걸로 대충 얼버무리자;;; 골치 아파 죽겠다;)

■ 소자(小字)에 대하여
아명(兒名)에 상당하는 호칭으로, 거의 전해지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고대 중국인은 휘를 함부로 입에 올리길 꺼렸으나, 실은 자 역시 성인이 되거나 또는 그 집안(사회의 최소 단위. 또는 일족)의 일원으로 사회적으로 인격을 인정받을 때까지는 짓지 않습니다. 오랜 풍습으로는 스물 한 살에 성인식을 치를 때 비로소 얻게 된다고 합니다만(이에 관한 자료는 지극히 드물어 추측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여간 자가 붙을 때까지 쓰는 게 아명. (※주 : 따라서 강동의 새벽[江東の暁]을 비롯한 많은 삼국지 베이스 손오 관련 창작물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암만 그래도 그놈들이 처음 만난 열 한두 살 때 이미 자가 붙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심지어는 대여섯 살밖에 안 된 손권에게까지 자가 있다;;;; 하지만 자가 좋으므로 그냥 웬만큼 유망한 집안에선 진작부터 자를 지어주는 게 당시의 관습이라고 생각해 버릴란다!! 아까부터 계속 넘어가자는 말뿐;;;;)
조조의 소자는 정사 조조전에 남아 있습니다. '길리(吉利)'라고 한다는군요. 나머지는 대부분이 불명인 모양이지만.
소자의 경우에는 본인을 모욕하는 문자를 쓰면 장수한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덧붙이자면 주유의 소일(小佚)이란 아명은 관리인의 창작이지만, '일(佚)'이라는 문자는 그다지 좋은 의미가 못 됩니다. (※주 : 관리인에 따르면 '일[佚]'이라는 문자에는 '강제력에서 벗어나다', '제정신을 잃다', 심지어 '무녀가 트랜스 상태에 빠져 광란하다' 라는 의미가 있다고 함; 하여간 한국에서 옛날에 오래 살라고 개똥이라 불렀던 것과 똑같은 이유)

■ 호칭에 대하여
휘라는 둥 자라는 둥 이미 충분히 골때리게 복잡하지만, 그 외에도 이름과는 따로 발생하는 호칭이 있습니다. 가령 주유와 손책은 '주랑(周郎), '손랑(孫郎)'이라 불렸다고 전해지는데, '랑(郎)'은 도련님 혹은 서방님이라는 의미로, 각각 '주일문의 도련님', '손일문의 도련님'으로써 그 지역의 아이돌처럼 떠받들렸다는 사실이 항간 엿보이는 호칭이지요.
또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사후에도 휘와 자를 부르는 것은 가급적 피합니다. 조조는 훗날 위가 한 황제 유협(劉協)에게 선양을 받아 아들 조비(曹丕)가 제위에 올랐을 때 '무제(武帝)'로 칭해집니다. 바로 흔히 말하는 시호(諡号)라는 것이죠. 따라서 후세에 조조가 위무(魏武)라고 불리는 것은 위의 무제라는 의미가 됩니다. 위에 선양한 유협도, 휘보다는 한 헌제(献帝)라는 명칭이 더욱 잘 통하죠.
시호에는 고인의 생전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가령 국가의 기초를 다지고자 무력을 발휘하였다, 혹은 내정에 뛰어났다, 혹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 풍파도 일지 않았다(웃음), 혹은 천둥벌거숭이로 날뛰어 나라를 멸망시켰다, 등등. 시호 중에서 최고위에 속하는 문자는 '문(文)'입니다. 국가가 번영하였을 때, 내부적 외부적으로 명군임을 입증하였을 때, 또는 그 발자취를 기리고 찬양해야 할 때에 내려지는 시호죠. 반대로, 고대의 주(周) 유왕(幽王)은 시호로서는 최악의 레벨에 속합니다.
조조도 그렇지만, 본인이 제위에 오르지 않아도 그 아들이 황제가 되면 부모에게도 자연히 제호(帝号)가 돌아갑니다. 손권 역시 부친 손견에게 '무열황제(武烈皇帝)'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사마의도 진(晋) 건국 후에 '선제(宣帝)'가 되었고요. 덧붙이자면 삼국지에 사마의의 전기가 없는 건 위의 신하로 취급하기보다 진서(晋書) 선제기(宣帝記)에 황제로서 기술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저자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황제가 아니지만, 장군의 자리에 관칭(冠称)을 붙여 시호로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견은 생전 파로장군(破虜将軍), 손책은 토역장군(討逆将軍)이라는 작위를 조정에서 받았는데, 때문에 각자 '손파로(孫破虜)', '손토역(孫討逆)'이라고 불리며, 전기의 제목도 이를 따르고 있어요. 손오가 국가로서 성립하기 전까지, 손일문 세력에서 '장군'이라면 손일문의 두령밖에 없었다는 모양입니다. 때문에 손견이나 손책 시대에 '장군'이라고 하면 두 사람 중 한쪽이었다는군요.
생전의 공적이 인정되어 하사받은 봉지가 그대로 시호가 되는 케이스도 존재합니다. 삼국시대는 아니지만, 후한의 주경(周景 : 주유의 부친의 종형제)는 사후 하사받은 봉지에 맞추어 '안양향후(安陽郷侯)'로 추서되었습니다.


젠장, 뭐가 이렇게 어렵냐..;;; (중.국.놈.들!!! 버럭!!!)
호칭 문제는 가능한 한 실제에 맞추려고 애쓰고 있다. 그 결과물이 잘 되었느냐는, 뭐, 별개 문제고... 먼 산.
이럴 때는 한국에도 일본처럼 도노殿 같은 전천후 호칭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담배 뻑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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