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째라 정신만 투철한 손책전 해설판 번역 그 네 번째가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소패왕이 강동으로 진격을 개시.
쿄고쿠도의 저주 7대 분이 달가우신 분만 무단으로 도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나도 알아 임마 -_-
제 7장. 강동으로!(江東へ)
조 강 지 처...!! T.T
오라버니,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그야말로 손책에게 몸도 마음도 영혼도 신명도 다 바쳐버린 남자 주유 공근. 주유의 가문이나 위치나 재능 기타 등등을 고려했을 때 사실은 직접 천하를 넘볼 효웅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었는데, 끝끝내 손책의 보좌로 만족하고 평생 평지풍파 한 번 일으키는 일 없이 손일문에 충의를 다한 걸 보면 참... 거... 뭐라 해야할지.... (한숨)
이래서 남자가 한 번 순정 모드 발동하면 약도 없다고 하나 보다.
그나저나 저 위의 결론이 좀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 기실 타당하기도 하지만, 창천항로의 광팬인 나의 피가 그 결론을 받아들이길 맹렬히 거부하고 있다! 뒤의 태사자 에피소드도 그렇고 손포코 님은 가끔 저렇게 꿈도 로망도 없는 말을 할 때가 있음. 남자는 현실보단 로망으로 사는 생물이 아니었어!?
뭐 좀 도중에 극적으로 늘면 어때. 카리스마 빔이란 원래 사람 하나 제정신을 잃게 만드는 법이잖수. 로마의 젊은이들이 만류하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카이사르 님의 발 밑에 기꺼이 몸을 던졌던 것처럼 말이지. (깔깔깔)
양주자사(揚州刺史)로 부임한 유요(劉繇)는 멋지게 원술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곡아(曲阿)에 거점을 굳히기가 무섭게 원술 휘하로 단양(丹陽)에 파견나와 있던 오경(呉景)과 손분(孫賁)을 쫓아냈을 뿐더러, 그에 그치지 않고 부하인 번능(樊能), 우미(于糜)를 횡강진(横江津 : 장강 이북)에, 장영(張英)을 당리구(当利口 : 아마도 역양歴陽의 옆)에 주둔시켜 원술의 침공에도 대비합니다.
이에 대해 원술은 독자적으로 부하 혜구(恵衢)를 양주자사로 임명하고, 오경과 손분을 역양에 두어 장영과 대치시켰습니다. 그러나 수 차례의 공격으로도 장영을 격파하지 못하여 양군은 장강을 낀 채로 교착 상태에 빠집니다. 당시 원술 본인은 북의 조조, 서주(徐州)의 유비 및 여포를 경계해야만 하는 처지로, 전군이 장강을 도하하여 유요에게 총공세를 가하는 것은 전략상 무리가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손책이 강동으로 출병할 절호의 구실이 성립된 셈이죠.
손책은 숙부 오경에게 가세하여 유요를 치겠노라 자원하고 나섰습니다. 북쪽의 방비도 강화해야 했던 원술로서는 주력을 강동으로 돌릴 수 없는 이상, 손책이 유요와 대치하겠다고 한다면야 그 이상 좋을 수가 없었겠죠. 배송지(裴松之)의 주석에 따르면 원술은 강동에 유요가 있는 이상, 손책의 강동 제패는 불가능하리라 판단하여 요구를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기껏 천여 명의 군대를 파견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요. 오경과 손분에게 원군이나 좀 보내주자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불과 천여 명, 말은 수십 필에 불과했던 손책군은 바로 여기서부터 일대 도약을 달성하게 됩니다.
수춘(寿春)에서 출발한 손책은 역양에서 오경・손분군과 합류하였습니다. 합류한 시점에서 병사의 수는 약 5~6천 명. 손책전에서는 역양으로 가는 도중에 의용군이 가세하여 5~6천 명이 된 것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필자는 독단적으로 오경・손분군과 합류하여 5~6천 명이 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직 변변한 기반이 없는 손책군에 의용군으로 합류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그렇게 많을 수가 있을까요? 보통 의용군은 저기 가담하면 밥 세 끼는 굶지 않겠다는 확신 혹은 어지간히 사람의 정의심에 호소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고서야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의 손책군에 참가해서 굶지 않을 보장 같은 건 없었고, 황건 토벌 같은 확고한 대의명분도 없었죠. 상식적으로 봤을 때 사실 이길 가능성조차 희박했습니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모병했다고 하더라도 거기까지 극적으로 불어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경・손분과 합류에서 5~6천 명이 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겠지요. 즉 그 중에서도 손책 직속군은 약 천 명 정도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손책은 이곳 역양에서 친우와 재회하게 됩니다. 그보다 조금 전에, 주유는 숙부 주상(周尚)이 단양태수(丹陽太守)로 부임한 것을 축하한다는 구실로 집을 나와 단양군(丹陽郡)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손책군이 행동을 개시하자, 주유는 역양에서 손책을 맞아 군에 합류합니다. 더구나 단독 참가도 아닌, 병사를 이끌고 참전했던 것이죠. 주유는 어디에서 병사를 조달했을까요? 아마도 단양태수인 숙부가 출처는 아닐까 여겨집니다. 주유의 참전으로 손책은 정신적인 지주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주유는 병사뿐만 아니라 단양에서 군선과 군량까지 모아왔기 때문입니다. 기반이 없어 물자면으로 불안 요소가 많았던 손책군에게 이는 말 그대로 굴러들어온 호박이었습니다. 더구나, 이후 유요군의 주요 기밀이 누설되었음을 암시하는 듯한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주유는 손책군에게 물자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단양에서의 첩보 활동을 통해 유요군의 동향과 약점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주유와 손책은 사전에 연락을 취하고 있어, 주유가 사전조사와 물자 조달을 자원하지는 않았을까요? 진상이야 어찌 되었건, 주유의 숙부가 마침 단양태수로 임명된 것은 손책과 주유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기를 보나 인선을 보나 좀 지나친 행운이라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주유가 뒤에서 손을 썼을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싸움은 대치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손책군은 병력면에서는 유요군에게 한참 모자랐지만, 인재와 사전준비 단계의 전략에서는 이미 상대를 능가하고 있었죠. 이후 개시되는 손책군의 노도의 진군을 위한 확고한 기초가 잡혀 있었던 셈입니다.
이에 대해 원술은 독자적으로 부하 혜구(恵衢)를 양주자사로 임명하고, 오경과 손분을 역양에 두어 장영과 대치시켰습니다. 그러나 수 차례의 공격으로도 장영을 격파하지 못하여 양군은 장강을 낀 채로 교착 상태에 빠집니다. 당시 원술 본인은 북의 조조, 서주(徐州)의 유비 및 여포를 경계해야만 하는 처지로, 전군이 장강을 도하하여 유요에게 총공세를 가하는 것은 전략상 무리가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손책이 강동으로 출병할 절호의 구실이 성립된 셈이죠.
손책은 숙부 오경에게 가세하여 유요를 치겠노라 자원하고 나섰습니다. 북쪽의 방비도 강화해야 했던 원술로서는 주력을 강동으로 돌릴 수 없는 이상, 손책이 유요와 대치하겠다고 한다면야 그 이상 좋을 수가 없었겠죠. 배송지(裴松之)의 주석에 따르면 원술은 강동에 유요가 있는 이상, 손책의 강동 제패는 불가능하리라 판단하여 요구를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기껏 천여 명의 군대를 파견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요. 오경과 손분에게 원군이나 좀 보내주자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불과 천여 명, 말은 수십 필에 불과했던 손책군은 바로 여기서부터 일대 도약을 달성하게 됩니다.
수춘(寿春)에서 출발한 손책은 역양에서 오경・손분군과 합류하였습니다. 합류한 시점에서 병사의 수는 약 5~6천 명. 손책전에서는 역양으로 가는 도중에 의용군이 가세하여 5~6천 명이 된 것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필자는 독단적으로 오경・손분군과 합류하여 5~6천 명이 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직 변변한 기반이 없는 손책군에 의용군으로 합류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그렇게 많을 수가 있을까요? 보통 의용군은 저기 가담하면 밥 세 끼는 굶지 않겠다는 확신 혹은 어지간히 사람의 정의심에 호소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고서야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의 손책군에 참가해서 굶지 않을 보장 같은 건 없었고, 황건 토벌 같은 확고한 대의명분도 없었죠. 상식적으로 봤을 때 사실 이길 가능성조차 희박했습니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모병했다고 하더라도 거기까지 극적으로 불어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경・손분과 합류에서 5~6천 명이 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겠지요. 즉 그 중에서도 손책 직속군은 약 천 명 정도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손책은 이곳 역양에서 친우와 재회하게 됩니다. 그보다 조금 전에, 주유는 숙부 주상(周尚)이 단양태수(丹陽太守)로 부임한 것을 축하한다는 구실로 집을 나와 단양군(丹陽郡)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손책군이 행동을 개시하자, 주유는 역양에서 손책을 맞아 군에 합류합니다. 더구나 단독 참가도 아닌, 병사를 이끌고 참전했던 것이죠. 주유는 어디에서 병사를 조달했을까요? 아마도 단양태수인 숙부가 출처는 아닐까 여겨집니다. 주유의 참전으로 손책은 정신적인 지주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주유는 병사뿐만 아니라 단양에서 군선과 군량까지 모아왔기 때문입니다. 기반이 없어 물자면으로 불안 요소가 많았던 손책군에게 이는 말 그대로 굴러들어온 호박이었습니다. 더구나, 이후 유요군의 주요 기밀이 누설되었음을 암시하는 듯한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주유는 손책군에게 물자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단양에서의 첩보 활동을 통해 유요군의 동향과 약점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주유와 손책은 사전에 연락을 취하고 있어, 주유가 사전조사와 물자 조달을 자원하지는 않았을까요? 진상이야 어찌 되었건, 주유의 숙부가 마침 단양태수로 임명된 것은 손책과 주유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기를 보나 인선을 보나 좀 지나친 행운이라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주유가 뒤에서 손을 썼을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싸움은 대치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손책군은 병력면에서는 유요군에게 한참 모자랐지만, 인재와 사전준비 단계의 전략에서는 이미 상대를 능가하고 있었죠. 이후 개시되는 손책군의 노도의 진군을 위한 확고한 기초가 잡혀 있었던 셈입니다.
조 강 지 처...!! T.T
오라버니,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그야말로 손책에게 몸도 마음도 영혼도 신명도 다 바쳐버린 남자 주유 공근. 주유의 가문이나 위치나 재능 기타 등등을 고려했을 때 사실은 직접 천하를 넘볼 효웅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었는데, 끝끝내 손책의 보좌로 만족하고 평생 평지풍파 한 번 일으키는 일 없이 손일문에 충의를 다한 걸 보면 참... 거... 뭐라 해야할지.... (한숨)
이래서 남자가 한 번 순정 모드 발동하면 약도 없다고 하나 보다.
그나저나 저 위의 결론이 좀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 기실 타당하기도 하지만, 창천항로의 광팬인 나의 피가 그 결론을 받아들이길 맹렬히 거부하고 있다! 뒤의 태사자 에피소드도 그렇고 손포코 님은 가끔 저렇게 꿈도 로망도 없는 말을 할 때가 있음. 남자는 현실보단 로망으로 사는 생물이 아니었어!?
뭐 좀 도중에 극적으로 늘면 어때. 카리스마 빔이란 원래 사람 하나 제정신을 잃게 만드는 법이잖수. 로마의 젊은이들이 만류하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카이사르 님의 발 밑에 기꺼이 몸을 던졌던 것처럼 말이지. (깔깔깔)
제 8장. 부들과 갈대로 만든 배(蒲と葦の船)
8장만에 드디어 일명 '손오가 가장 뜨겁게 불타올랐던 시절'의 막이 올랐다. 앞으로 펼쳐질 소패왕의 쾌진격에 S의 마음도 두근두근.
역양(歴陽)에서 주유와 합류한 손책은 "네가 온 이상 내 꿈은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강동제압은 누워서 떡먹기다)" 라는 말로 주유를 열렬히 환대합니다. 주유의 참전은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크게 지원했으니까요. 그러나 전황은 여전히 어떠한 예단도 허용하지 않는 판국이었습니다. 주유가 물자를 제공하긴 했으되 여전히 손책군은 물자 부족에 시달렸고, 무엇보다 충분한 병력을 실어나를 배가 터무니없이 모자랐습니다. 배가 없고서야 장강(長江)에서의 싸움이란 꿈도 꿀 수 없지요. 그렇다고 군선이 보충되길 기다렸다가는 곡아(曲阿)에서 수군이 대거 증원되어 오히려 더 불리해집니다. 오경(呉景)과 손분(孫賁)이 장영(張英)・우미(于糜)를 꺾지 못했던 것도 수군의 부족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손책은 과감하게 도박에 나섭니다. 부하 서곤(除琨 : 손견 시절부터 종군한 고참 무장. 후에 딸이 손권의 부인이 됩니다)의 계책을 채택해, 장강 기슭에 무성하게 자란 부들과 갈대로 임시변통의 배를 만들어 전군이 장영의 군영에 일제 급습을 가한 것입니다. 상대도 설마 부들이나 갈대로 만든 뗏목에 타고 공격해 올 줄은 추호도 몰랐겠지요. 필사의 공방전이 불을 뿜는 가운데, 정보(程普)와 여범(呂範) 등의 분전도 도와 마침내 장영군과 우미・번능(樊能)군을 격파합니다. 적의 의표를 찌른 손책군이 격전 끝에 승리를 거둔 셈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단지 적의 선봉을 꺾었을 뿐으로, 여전히 유요군의 주력은 온존되어 있었습니다. 장영 등은 곡아로 돌아가, 군을 재편하여 다시 한 번 공격에 나설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손책은 이미 다음 작전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유요군의 군량과 무기가 우저(牛渚)의 군영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손책군은 단번에 장강을 도하하여 우저를 급습, 물자를 깡그리 탈취합니다.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손책군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선물이었겠지요. 아마도 장강을 건너면 바로 물자가 있는 우저 진영을 급습하기로 사전에 계획이 잡혀 있었던 듯. 충분한 사전조사가 없고서야 불가능한 작전입니다. 십중팔구 단양에 머무르던 주유가 유요군의 동향을 완전히 파악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 점에서 손책군의 첩보력은 유요군을 한참 웃돌고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손책군은 우저를 손에 넣었지만, 그 북동쪽의 말릉(秣陵)성에는 설례(薛礼)와 작융(笮融)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유요와의 싸움은 이제 막 막을 올렸을 뿐이었지요.
(주) 지도를 새로 만들기 위해, 손책의 강동제압전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오경・손분군과 장영군이 대치하던 무렵보다 수천 명 가량 증원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역시 무섭게 강하군요. 어째서 손책이 지휘를 맡자마자 강해진 걸까요? 재능이라고 하면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버리므로, 다른 요인도 고려해 봅시다. 손책의 용병술의 특징은 병력의 집중과 전격적인 이동입니다. 유요군은 여기에 실컷 휘둘린 감이 없지 않지요. 갈대 뗏목의 건에서도 알 수 있듯 손책은 일절의 잉여 병력 없이 전군을 바로 전선에 투입시켰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보충 병력이 없는 만큼 손책군은 지면 거기서 끝장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장수와 병졸 모두가 마음을 다해 필사적으로 싸웠다고도 할 수 있겠죠.
여기에서 손책은 과감하게 도박에 나섭니다. 부하 서곤(除琨 : 손견 시절부터 종군한 고참 무장. 후에 딸이 손권의 부인이 됩니다)의 계책을 채택해, 장강 기슭에 무성하게 자란 부들과 갈대로 임시변통의 배를 만들어 전군이 장영의 군영에 일제 급습을 가한 것입니다. 상대도 설마 부들이나 갈대로 만든 뗏목에 타고 공격해 올 줄은 추호도 몰랐겠지요. 필사의 공방전이 불을 뿜는 가운데, 정보(程普)와 여범(呂範) 등의 분전도 도와 마침내 장영군과 우미・번능(樊能)군을 격파합니다. 적의 의표를 찌른 손책군이 격전 끝에 승리를 거둔 셈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단지 적의 선봉을 꺾었을 뿐으로, 여전히 유요군의 주력은 온존되어 있었습니다. 장영 등은 곡아로 돌아가, 군을 재편하여 다시 한 번 공격에 나설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손책은 이미 다음 작전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유요군의 군량과 무기가 우저(牛渚)의 군영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손책군은 단번에 장강을 도하하여 우저를 급습, 물자를 깡그리 탈취합니다.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손책군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선물이었겠지요. 아마도 장강을 건너면 바로 물자가 있는 우저 진영을 급습하기로 사전에 계획이 잡혀 있었던 듯. 충분한 사전조사가 없고서야 불가능한 작전입니다. 십중팔구 단양에 머무르던 주유가 유요군의 동향을 완전히 파악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 점에서 손책군의 첩보력은 유요군을 한참 웃돌고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손책군은 우저를 손에 넣었지만, 그 북동쪽의 말릉(秣陵)성에는 설례(薛礼)와 작융(笮融)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유요와의 싸움은 이제 막 막을 올렸을 뿐이었지요.
(주) 지도를 새로 만들기 위해, 손책의 강동제압전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오경・손분군과 장영군이 대치하던 무렵보다 수천 명 가량 증원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역시 무섭게 강하군요. 어째서 손책이 지휘를 맡자마자 강해진 걸까요? 재능이라고 하면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버리므로, 다른 요인도 고려해 봅시다. 손책의 용병술의 특징은 병력의 집중과 전격적인 이동입니다. 유요군은 여기에 실컷 휘둘린 감이 없지 않지요. 갈대 뗏목의 건에서도 알 수 있듯 손책은 일절의 잉여 병력 없이 전군을 바로 전선에 투입시켰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보충 병력이 없는 만큼 손책군은 지면 거기서 끝장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장수와 병졸 모두가 마음을 다해 필사적으로 싸웠다고도 할 수 있겠죠.
8장만에 드디어 일명 '손오가 가장 뜨겁게 불타올랐던 시절'의 막이 올랐다. 앞으로 펼쳐질 소패왕의 쾌진격에 S의 마음도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