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간이 또 포스팅에 맛 들였나;; 순전히 자기 만족을 위한 삼국지 SS 제 4탄. (질리지도 않냐 넌)
스토리가 파탄나면 어떻고 문장이 꼬이면 어떻고 말이 안 되면 어떻단 말이냐! 동인녀는 모에로 사는 생물!! 우─하하하하하하하.... 쿨럭쿨럭커헉푸헉;;;;
SIDE A-36. 어쨌건 해치워야 할 일(やっつけ仕事)
(註 1) 불효삼천(不孝三千)에 무후위대(無後爲大) : 맹자(孟子)의 이루장구 상편(離婁章句上篇)이 출처. 3000가지 불효 중에 자손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으뜸이더라는 의미.
(註 2) 오국태(吳國太) : 태태(太太)는 대부인에 대한 존칭이므로, 국태는 즉 국모라는 의미. 연의에는 손견 파파가 미인 자매를 언니 먹고 동생 먹어, 언니는 조금 일찍 갔지만 동생은 훗날의 손부인을 낳고 국모로 대접받다가 딸이 유비에게 시집가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걸로 되어 있지만, 셧업! 언니 동생은 뭔 놈의. 순전히 나관중의 창작이다. 손견 파파는 그 시대엔 드물게도 대체적으로(...) 한 여성에게만 헌신한 남편이었음. 오부인이 워낙 여러 가지로 굉장한 여성이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하여간 오국태라는 호칭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은 진짜 오부인 한 명밖에 없으므로 이 김에 한 번 사용해 봤음. 덧붙이자면 그녀는 남편에 이어 장남까지 비명에 가고 2년 후인 202년에 사망했다.
항상 그렇지만(...) 쓸데없이 긴 후기.
1. 이 이야기에는 실은 심각한 오류가 있음. 손책의 유일한 아들인 손소(孫紹)는 대교 소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왜냐!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이 미묘하게 안 맞는다구! ;;;;
손책이 타계한 것은 서기 200년 4월 4일이다(숫자가 하도 구체적인데다 중국인들이 기겁을 하고 꺼려하는 4가 두 개나 겹쳐 창작이 아닌가 의심했건만 정사의 손토역전 주석에서 인용되는 「지림志林」이라는 문헌에 喜推考桓王之薨、建安五年四月四日이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음력이지만 변환기는 1900년까지밖에 지원하지 않으니 어차피 나오는 날짜는 전부 음력이므로 그냥 이대로 계산하겠음. 그렇다면 유복자가 아닌 이상 손소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그 해 3월에는 태어나 있어야 한다. 임신 기간을 고려하면 잉태한 것은 최대한 짧게 잡아도 전해의 7월에서 8월 사이. 헌데 손책이 대교를 맞아들인 것은 원술이 죽고 그 잔존 세력을 거둔 유훈과 맞짱을 뜨는 와중에 환성(皖城)을 함락시켰을 때이다. 원술은 199년 6월 경(찌는 한여름)에 원소에게 가는 도중 죽었다고 한다. 아아니 그럼 겨우 한두 달 사이에 유훈이 잔존 세력을 흡수하고 손책이 예장군으로 급행해서 도중에 환성도 함락시키고 마침 굴러나온 미소녀를 아내로 맞아서 뚝딱 임신까지 시켰단 말이냐 너무 급박하잖아!!! ;;; 아니 뭐 몰아치는 게 특기인 소패왕이라면 못할 일도 없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암만 그래도 이건 무리가 지나치다.
즉 대교와 혼인했을 때는 이미 누군가가 손소를 임신했거나 혹은 벌써 태어나 있었으리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리란 얘기. 실은 대교가 손책의 정처라는 기술은 정사 어느 구석에도 없으며 심지어 손책전에 대교는 이름 한 번 언급되지 않는다; 아 이런 세상에;;;
그런고로 팬픽의 미덕으로 원술의 몰락 시기와 환성 함락을 좀 앞으로 당기는 역사 왜곡을 감행하였음. 그렇다 해도 손책과 교정연이 혼인하고 꼬박 6개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설정은 포기해야 할 판. 진작 좀 제대로 조사할걸; 3개월 정도로 줄여야겠다.
(덤으로 주유의 타계일은 210년 12월 3일. 메모 메모)
2. 현대를 사는 우리 눈에는 이제 겨우 돌을 갓 지난 아들보다도 장래성이 똑똑히 보이는 동생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게 당연하고도 매우 현명한 행위로 보이지만, 실은 이거 당시로서는 무지막지하게 파격적이다 못해 상궤를 벗어난 유언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후일의 평론 어딘가에선 심히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비난까지 받고 있다. 한 마디로 그때 상식으로는 암만 어려도 멀쩡히 아들이 있는데 그걸 제쳐놓고 동생을 찍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란 얘기. 정말이지 세간의 규율이니 이목 따위는 개코로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을 거라 S가 확신하는 이유.
이때 손권을 지명한 것이 후일 손책의 거취를 상당히 미묘하게 만들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파고 싶기 때문에 일단은 미룬다. (까닥하면 후기가 더 길어질 판이고;)
3. 얼결에 오리지널 캐릭터가 행간에서 하나 등장해 버렸다;; 벽성선(碧城仙)이란 이름은 옥루몽에서 적당히 훔쳐온 것이다. 나이는 손책과 같거나 ±1살. 얼굴밝힘증인 손책답게 - 랄까 본인이 정사에 남을 정도의 미인인데다 어머니는 절강제일미고 친우가 미주랑이고 역시 정사에서 인정받은 미남인 여범이 심복이라면 눈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 - 미인이지만 고전적인 의미의 미녀는 아니고, 부분부분을 떼어놓고 보면 조금씩 다 이상한데 하나로 뭉쳐놓으면 깜짝 놀랄만큼 아름다운 타입. 그리고 거의 손책이 쯧코미가 될 정도의 독전파계.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정이 붙어버렸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또 등장시킬까 생각 중이다.
4. 상당히 문제 있는 발언이 얼핏 나와버렸지만 기실 별 일은 없음. 아마도.
마누라라는 말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주유. 그러니까 당신이 조강지처란 말을 듣는 거닷!
5. 틈만 나면 말하듯이 S가 보는 한 손책이 평생에 제대로 사랑한 건 아버지와 바로 아랫동생뿐이다. 아버지에 대한 경애가 고작 스물 난 청년을 밑바닥에서 악착같이 기어올라와 아버지 연배의 라이벌들과 맞짱을 뜨게 만들었고 동생에 대한 애착이 한 번 망설임도 없이 후계자로 지명하는 길을 선택케 했다. 가끔 손책의 질풍노도 같은 무서운 기세의 진격을, 손견이 비명에 가고 2~3년 뒤쳐진 걸 만회하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이었다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조조 님마저도 두각을 드러내신 것이 30대 후반이었고 당시 웬만한 영걸이 전부 사오십대였음을 감안하면 손책은 늦기는커녕 너무 일렀다. 늦은 건 그가 아니라 손견이다. 그 청년은, 아버지의 이름을 만회하고자 그렇게 미친듯이 날뛰었던 것이다.
하여간 스스로를 비하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지만 궁극적으로 소중한 건 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수단인 손오)와 (그 뒤를 이어줄) 동생뿐이므로 자신에 대한 애착도 별로 없음. 그래서 피를 남길 의무감도 못 느낀다. 손소가 별다른 두각을 못 보인 채로 역사에 묻힌 것도, 그야 지나치게 천재였던 아버지의 후광이 버거운 탓도 있었겠지만, 손책의 무관심도 상당 부분 작용하지 않았을까 문득 망상하는 S. 어디 가니 너.
성격에 안 맞아서 서탁 앞에는 못 앉아 있겠다느니 나보다 중모(=손권)가 훠얼씬 내정에 능하다느니 나는 전투 전문이라느니 얼굴에 철판 깔고 떠들어대며 걸핏하면 이중 삼중의 포위망을 교묘히 돌파해 관저 밖으로 내빼버리는 손책이지만, 괜히 천재가 아니어서 실상 한 번 마음만 먹으면 서류 업무는 누워서 떡먹기이다. 차라리 야성의 감이라 칭하는 게 옳을 재기와 엄청난 집중력을 앞세워 산더미처럼 쌓인 두루마리를 노도의 기세로 처리하는 모습을 마주하면 개중 누선이 약한 자는 흐르는 감동의 눈물을 정신없이 옷자락으로 훔쳐내는 일도 빈번하다. 단지, 마음 먹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할 뿐.
그래도 군주로서의 자각은 있어 - 혹은 장소와 장굉을 필두로 하는 문관들에게 몇 년을 줄창 달달달 볶인 결과라고도 한다 -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마음을 잡아줌은 뭐 나름대로 기특한 노릇이나, 손책의 진짜 고약한 버릇은, 누구도 감히 불평할 수 없는 완벽한 근면 군주의 자세를 때때로 흥미 없는 화제를 흘려넘기는 수단 겸 구실로 써먹는다는 것이었다.
오늘이 바로 딱 그런 경우였다.
".....그러니까....... 실례이오나 듣고 계십니까, 주공?"
"아아 듣고 있어 듣고 있어. 귀가 뚫렸는데 그럼 듣지 안 듣겠냐."
2분 전과 토씨 한 개 안 틀린 기계적인 즉답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를 웅변적으로 자백하고 있었다. 단정히 정좌를 하고 앉아 끈기 있게 주군의 등을 향해 논하고 있던 주유의 관자놀이에는 새로운 사거리가 불룩 솟아올랐다. 조금만 더 있으면 낙양의 시가지가 될 판이다.
주유는 상온 이하를 달리는 발화점을 높여보려는 가상한 노력을 전부 집어치우고 마침내 양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손백부!! 진지하게 들어!!!!"
"들어 들어, 듣는다니까. 얼른 그럴싸한 여자 하나 골라서 정처로 맞으라는 얘기 아냐. 다 들었다고. 난 진지해."
보통은 서간에 고개를 처박고 붓만 줄창 휘둘러대는 꼴을 성실한 청자(聽者)의 자세라곤 하지 않는다.
"그게 알아들은 인간의 태도냐! 그만 손을 멈추고 들어. 농담이 아니야,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란 말이다!"
"그래 그래, 안다고. 근데 있지."
"아?"
손책은 주유에게 시선을 주기는커녕 여전히 머리를 들지도 않고 대꾸했다.
"내 마누라는 너잖냐."
"..................................."
"..................................."
"..................................."
"..................................."
부지런히 붓을 놀리는 소리만이 집무실 내에 충만하였다.
주유는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고 하나로 묶은 은발 - 지금은 대략 등 중간까지 오는 - 을 움켜쥐고 뒤로 힘차게 잡아당겼다.
"꼭 이럴 때만 성실 군주인 척 열심이지!! 평소에도 좀 그래봐라!"
"우왓, 야, 공근, 내 목!! 부러져─!!"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단 말이다!"
"거야 네가 위니까 임신은 애초에 무리... 아야야야야야얏!!!"
딴지를 걸어줄 사람이 없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방사는 입맛만 맞으면 장땡, 미인밝힘증으로 악명 높고 10대 시절부터 여성 편력 화려하기로 유명했던 손책이라면 지금쯤 부인이 여덟 첩이 스물은 되어야 계산이 좀 맞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무수한 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손일문의 문턱을 넘는 데 성공한 여자는 그 시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터무니없이 적은 한 명에 불과하였다. 훗날 육손의 정처가 되는 운요(雲瑤)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딸 셋을 낳아준 유일한 처 벽성선(碧城仙)은, 손책의 심히 간결하고도 뻔뻔한 설명을 믿자면 회계군 평정전 도중에 어쩌다 강가에서 주워온 여자로, 미추(美醜)를 따질 경우 분명 미(美)에 속하지만 좀 많이 개성적인 외모도 그러려니와, 언동이며 행동이 뭔가 평범한 사람과는 일선을 긋고 있어 본디는 무축(巫祝=무녀)이었다는 소문마저 파다하였다. 하여간 정처로 보기에는 문제가 너무나 많아 일찌감치 후보에서 제외된 범상치 않은 여성이다.
손책이 여러 가지 의미로 상궤에서 벗어난 줄 숙지하고 있는 모친 오(呉)부인과 가신들은 먼 산 한 번 보고 기벽(奇癖)을 대강 용인하고 있었으나, 스물 다섯이 된 지금까지 근처에 정처라 할 만한 여성의 그림자조차 없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자손, 즉 아들을 두지 못하는 것을 대역죄에 맞먹는 불효로 보고 위로는 천자로부터 아래로는 민초에 이르기까지 XY 염색체의 생물을 생산하려 죽을 힘을 다하던 그 시절, 조금이라도 이름 있는 집안의 장남이라면 어울리는 가문의 여자를 정실로 맞아 그 몸에서 후손을 보는 게 으뜸가는 의무이던 시절에, 더욱이 손책은 반드시 뒤를 이을 적자가 있어야 할 일국의 군주이다. 그에 걸맞는 지위의 정처와 후계자를 요구하는 주변의 압력은 나날이 더해만 가는 와중에 정작 본인은 표표한 태도를 유지한 채 요리조리 교묘하게 회피하고만 있었다.
상대가 없다는 말은 변명으로도 입에 담을 수 없다. 기껏 수중에 넣은 원술의 딸 - 애비와는 달리 상당한 미희(美姬)로 이름이 높았던 - 은 딱 한 번 대면하고 냉큼 동생 손권에게 시집보내 버렸고, 조조의 조카딸은 넷째 손광(孫匡)에게 돌아갔다. 굳이 먼 데서 찾지 않아도 명실공히 강동의 패자가 된 소패왕이 아내감을 찾는다 하면 구르다시피 장중보옥으로 키운 딸을 옥쟁반에 담아 바칠 유력자는 쌓이고 널렸다. 한 마디로 그저 본인이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저것도 정신 차리겠지 믿었지만 들어오는 혼담이란 혼담은 전부 억지 부려 퇴짜놓고 늑진하게 꾸물대며 올해도 그냥 넘길 속셈이 눈에 빤히 보이는 손책을 어떻게 좀 구워삶아 볼 최종적인 희망으로 차출된 사람은 결국 늘 그렇듯이 주유였다.
상대가 주군임을 잠시 고의로 망각하고 머리카락을 함부로 잡아당기는 엉큼한 수법으로 평소 쌓인 울분을 어지간히 해소한 주유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눈물까지 글썽해서 주공에게 이래도 되느냐는 둥 내가 나중에 벗겨지면 네 책임이라는 둥 툴툴대는 친우에게 말을 걸었다.
"백부."
"뭐어야."
"정히 혼인이 싫다면, 아들만이라도 볼 수는 없겠나?"
불효삼천(不孝三千)에 무후위대(無後爲大)란 말을 모른다고야 하지 않겠지. 항상 널 걱정하시는 국태(國太=오부인)의 심려를 단 하나라도 덜어드리고 싶지 않다는 거냐. 그만큼 마음 고생을 끼쳤으면 이제 그만 평범하게 효도 한 번 해 보란 말이다.
차분히 조곤조곤 말하는 주유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손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일 없어. 아들 있어봤자 골치만 아프지."
"백부!"
거세게 항의하려다 주유는 손책의 눈빛에 숨을 삼켰다.
그 누구도 손백부의 의지를 감히 꺾지 못할, 간섭도 참견도 타협도 결코 허용하지 않는 확고하고 단단한 눈빛이었다.
"말했을 텐데. 내 후계자는 권이다."
"백...."
"그 녀석 말고 누구에게도 물려줄 생각 없어."
"그러니까 아들 같은 거, 생기면 곤란하다고."
"뭐, 어쩌다 딸은 셋이나 만들어버렸지만 그 녀석들이야 시집만 잘 보내면 출가외인이니까?"
결국엔 어깨를 으쓱하며 냐하핫 웃고 대충 얼버무렸지만 주유는, 친우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알 것 같았다.
──내 피는 나 하나로 충분해.
지금 생각하면,
아닌 밤중에 무슨 잠꼬대냐고 그 자리에서 한 대 호되게 날려줬어야 했었다.
"근데 지금 공근이 남말할 때일까나."
"하아?"
난데없이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와 주유는 일순 가닥을 놓치고 어리둥절했다가, 손책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아싸 땡잡았다♡의 빛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꼬락서니에 등골이 파직 얼어붙었다.
"여봐요,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명가인 주일문 당주님. 후손이 없는 건 죽을 죄라며, 죽~을~죄~. 맹자까지 인용하시더니 나는 그나마 딸이라도 셋 있고 측실도 있지만 공근 넌 대체 뭐냐?"
"......윽."
주유의 단정한 얼굴이 새하얗게 바랬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게, 장가는 물론이고 주군 겸 의형을 어떻게 좀 세상의 상식에 맞춰보려고 피터지게 노력하는 사이 - 혹은 세상의 상식을 주군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이 - 정작 주유 자신은 그 미모와 그 집안과 그 능력을 갖고도 노총각 취급당해도 할 말 없는 스물 다섯 다 되도록 자식은 고사하고 측실 하나 없었다. 피 끓는 나이의 신체 건강한 청년이므로 때때로 청루에 드나드는 일은 있으나 연애와는 거리가 멀다. 실질적으로는 명문임을 입이 마르고 닳도록 주장하는 원씨(袁氏)를 한참 능가하는 주일문의 당주가 여지껏 홀몸임에도 대단한 압력이나 압박이 없는 것은 원흉은 순전히 손책이고 인력(人力)으로 당장 어떻게 될 일이 아닌 줄 모두가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이거 안 되겠는데. 이러다 네가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청춘 썩히면 사방을 메아리치는 원망에 내가 지레 죽겠다. 동오의 여자들은 밤이면 밤마다 주공근을 그리며 울고 있다! 자, 친우 좋다는 게 뭐냐. 숨기는 거 없이 말해봐라? 마음에 뒀다거나, 이거다 싶은 여자 하나 정돈 있지?"
"............................"
"숨기지 말라니까. 네가 설령 이 방을 몽땅 얼려붙일 대답을 해도 우리 사이에 새삼 놀랄 일도 없으니까 안심하고 불어라. 동생만 다섯 명 장가 시집 다 보낸 이 형님이 어떻게든 해줄게? 정 뭐하면 약탈혼도 거들 수 있다?"
"................................"
목을 그르릉그르렁 울리는 고양이과 맹수와 흡사한 웃음소리, 손책이 재밌어서 죽으려 한다는 걸 웅변으로 대신하는 그 웃음소리가 미치도록 얄미워, 주유는 입을 꽉 다물고 점점점만 찍고 있었다.
한동안 이어진 무언의 시위 끝에, 어느 새 낄낄대는 웃음이 쑥 들어간 손책이 입을 열었다.
".....저 있지, 공근."
".....왜."
"...............진짜 없냐?"
"......................................"
침묵이 싸늘했다.
"..........저 말야, 공근."
".....왜!"
"설마, 이런 말까진 안 물으려 했다만, 너, 연애는 고사하고 첫사랑도 아직.... 이라거나?"
"......................................"
손책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중상(仲翔)! 밖에 있는 거 다 안다! 들어와!"
잠시 문 밖에서 꺅, 인지 우겍, 인지 애매한 의미불명의 비명과 우당탕쿠당탕 흩어지고 줄행랑치고 넘어지는 소리가 뒤섞인 대소동이 일고 주유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데롱데롱 매달렸으나, 드디어 세상의 90퍼센트를 깔아보고 있는 성질 고약한 남자 우번(虞翻)이 대(對) 소패왕용의 사람 좋은 준수한 미소를 짓고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주공."
"음. 내 그대에게 중차대한 임무를 한 가지 맡기고자 하는데."
"주공께서 원하시는 대로."
"좋았어. 지금 당장 양주 전체 유력자들의 딸을 조사해서 사흘 내로 그럴싸한 처녀를 도합 열 명만 추려내라. 이거 얼른 장가 보내야지 진짜 못 쓰겠다. 보쌈도 허용할 테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도록. 알았나."
"존....."
"하─지─마───!!!!!!!!"
경애하는 주군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면 정말로 뭣도 불사할 우번이 명, 까지 전부 발음하기 전에 주유의 비명이 터졌다. 그 비명이 좀 심하게 절박했던 듯 드물게도 움찔해 버린 손책의 멱살을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당장에 물고 늘어진다.
"장난이 아니라고 했지! 잘 들어! 백부가 할 때까지 난 절대로 안 해!!!"
".......그거, 협박?"
참아줘.
사랑이니, 연애니, 하물며 결혼마저, 내게 그럴 시간이 있을 것 같나.
유일하게 그와 비슷하다 할 감정의 전부를, 나는 너에게 헌정했다.
후일담.
"내 언젠가 저 여자가 내 발목을 잡을 줄 알았다니까!"
손책의 정처, 대교 교정연(喬靖姸) 득남.
주군을 반 강제로 어찌저찌 혼인까지 몰고 가는 데는 성공했으나 정작 부부 사이가 너무나도 고약하여 체념의 정서가 만연해 있던 손오의 가신들이 놀라운 기적 앞에 얼굴을 환히 펴고 모두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쳐 부를 시 정작 의무를 달성한 군주 본인은 숲속에서 이를 벅벅 갈며 포효하고 있었다.
주유는 가능한 한 귀를 꼭꼭 틀어막으며 (별반 소용은 없었지만) 탄식했다.
"이제 그만 좀 해 백부..."
"이게 진정할 일이냐 공근! 엿먹으라고 대놓고 씩 쪼개는 얼굴 봤지! 젠장, 저 여편네 몸만 풀어봐라! 정말 가만 안 둬─!!!"
"좋은 게 좋은 거잖나. 귀여운 아들을 품에 안아 봤으니 잘 됐다고 생각해."
"귀엽긴 뭐가!? 앞으로 후계자다 뭐다 해서 얼마나 골 때릴지 뻔한데, 귀엽긴 뭐가 귀엽냐!!!"
─아니, 귀엽지 않을 리가 없잖아.
너와 대교 소저의 아들이라면.
나는 네 피를 이어받은 아이가 한 명 더 세상빛을 보게 해주신 걸 오히려 형수님께 감사하고 싶은걸.
손책이 발작을 일으킬 확률이 약 9할 9리 9푼이었으므로 주유는 그 말을 조용히 삼켰다.
그래도 군주로서의 자각은 있어 - 혹은 장소와 장굉을 필두로 하는 문관들에게 몇 년을 줄창 달달달 볶인 결과라고도 한다 -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마음을 잡아줌은 뭐 나름대로 기특한 노릇이나, 손책의 진짜 고약한 버릇은, 누구도 감히 불평할 수 없는 완벽한 근면 군주의 자세를 때때로 흥미 없는 화제를 흘려넘기는 수단 겸 구실로 써먹는다는 것이었다.
오늘이 바로 딱 그런 경우였다.
".....그러니까....... 실례이오나 듣고 계십니까, 주공?"
"아아 듣고 있어 듣고 있어. 귀가 뚫렸는데 그럼 듣지 안 듣겠냐."
2분 전과 토씨 한 개 안 틀린 기계적인 즉답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를 웅변적으로 자백하고 있었다. 단정히 정좌를 하고 앉아 끈기 있게 주군의 등을 향해 논하고 있던 주유의 관자놀이에는 새로운 사거리가 불룩 솟아올랐다. 조금만 더 있으면 낙양의 시가지가 될 판이다.
주유는 상온 이하를 달리는 발화점을 높여보려는 가상한 노력을 전부 집어치우고 마침내 양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손백부!! 진지하게 들어!!!!"
"들어 들어, 듣는다니까. 얼른 그럴싸한 여자 하나 골라서 정처로 맞으라는 얘기 아냐. 다 들었다고. 난 진지해."
보통은 서간에 고개를 처박고 붓만 줄창 휘둘러대는 꼴을 성실한 청자(聽者)의 자세라곤 하지 않는다.
"그게 알아들은 인간의 태도냐! 그만 손을 멈추고 들어. 농담이 아니야,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란 말이다!"
"그래 그래, 안다고. 근데 있지."
"아?"
손책은 주유에게 시선을 주기는커녕 여전히 머리를 들지도 않고 대꾸했다.
"내 마누라는 너잖냐."
"..................................."
"..................................."
"..................................."
"..................................."
부지런히 붓을 놀리는 소리만이 집무실 내에 충만하였다.
주유는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고 하나로 묶은 은발 - 지금은 대략 등 중간까지 오는 - 을 움켜쥐고 뒤로 힘차게 잡아당겼다.
"꼭 이럴 때만 성실 군주인 척 열심이지!! 평소에도 좀 그래봐라!"
"우왓, 야, 공근, 내 목!! 부러져─!!"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단 말이다!"
"거야 네가 위니까 임신은 애초에 무리... 아야야야야야얏!!!"
딴지를 걸어줄 사람이 없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방사는 입맛만 맞으면 장땡, 미인밝힘증으로 악명 높고 10대 시절부터 여성 편력 화려하기로 유명했던 손책이라면 지금쯤 부인이 여덟 첩이 스물은 되어야 계산이 좀 맞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무수한 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손일문의 문턱을 넘는 데 성공한 여자는 그 시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터무니없이 적은 한 명에 불과하였다. 훗날 육손의 정처가 되는 운요(雲瑤)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딸 셋을 낳아준 유일한 처 벽성선(碧城仙)은, 손책의 심히 간결하고도 뻔뻔한 설명을 믿자면 회계군 평정전 도중에 어쩌다 강가에서 주워온 여자로, 미추(美醜)를 따질 경우 분명 미(美)에 속하지만 좀 많이 개성적인 외모도 그러려니와, 언동이며 행동이 뭔가 평범한 사람과는 일선을 긋고 있어 본디는 무축(巫祝=무녀)이었다는 소문마저 파다하였다. 하여간 정처로 보기에는 문제가 너무나 많아 일찌감치 후보에서 제외된 범상치 않은 여성이다.
손책이 여러 가지 의미로 상궤에서 벗어난 줄 숙지하고 있는 모친 오(呉)부인과 가신들은 먼 산 한 번 보고 기벽(奇癖)을 대강 용인하고 있었으나, 스물 다섯이 된 지금까지 근처에 정처라 할 만한 여성의 그림자조차 없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자손, 즉 아들을 두지 못하는 것을 대역죄에 맞먹는 불효로 보고 위로는 천자로부터 아래로는 민초에 이르기까지 XY 염색체의 생물을 생산하려 죽을 힘을 다하던 그 시절, 조금이라도 이름 있는 집안의 장남이라면 어울리는 가문의 여자를 정실로 맞아 그 몸에서 후손을 보는 게 으뜸가는 의무이던 시절에, 더욱이 손책은 반드시 뒤를 이을 적자가 있어야 할 일국의 군주이다. 그에 걸맞는 지위의 정처와 후계자를 요구하는 주변의 압력은 나날이 더해만 가는 와중에 정작 본인은 표표한 태도를 유지한 채 요리조리 교묘하게 회피하고만 있었다.
상대가 없다는 말은 변명으로도 입에 담을 수 없다. 기껏 수중에 넣은 원술의 딸 - 애비와는 달리 상당한 미희(美姬)로 이름이 높았던 - 은 딱 한 번 대면하고 냉큼 동생 손권에게 시집보내 버렸고, 조조의 조카딸은 넷째 손광(孫匡)에게 돌아갔다. 굳이 먼 데서 찾지 않아도 명실공히 강동의 패자가 된 소패왕이 아내감을 찾는다 하면 구르다시피 장중보옥으로 키운 딸을 옥쟁반에 담아 바칠 유력자는 쌓이고 널렸다. 한 마디로 그저 본인이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저것도 정신 차리겠지 믿었지만 들어오는 혼담이란 혼담은 전부 억지 부려 퇴짜놓고 늑진하게 꾸물대며 올해도 그냥 넘길 속셈이 눈에 빤히 보이는 손책을 어떻게 좀 구워삶아 볼 최종적인 희망으로 차출된 사람은 결국 늘 그렇듯이 주유였다.
상대가 주군임을 잠시 고의로 망각하고 머리카락을 함부로 잡아당기는 엉큼한 수법으로 평소 쌓인 울분을 어지간히 해소한 주유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눈물까지 글썽해서 주공에게 이래도 되느냐는 둥 내가 나중에 벗겨지면 네 책임이라는 둥 툴툴대는 친우에게 말을 걸었다.
"백부."
"뭐어야."
"정히 혼인이 싫다면, 아들만이라도 볼 수는 없겠나?"
불효삼천(不孝三千)에 무후위대(無後爲大)란 말을 모른다고야 하지 않겠지. 항상 널 걱정하시는 국태(國太=오부인)의 심려를 단 하나라도 덜어드리고 싶지 않다는 거냐. 그만큼 마음 고생을 끼쳤으면 이제 그만 평범하게 효도 한 번 해 보란 말이다.
차분히 조곤조곤 말하는 주유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손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일 없어. 아들 있어봤자 골치만 아프지."
"백부!"
거세게 항의하려다 주유는 손책의 눈빛에 숨을 삼켰다.
그 누구도 손백부의 의지를 감히 꺾지 못할, 간섭도 참견도 타협도 결코 허용하지 않는 확고하고 단단한 눈빛이었다.
"말했을 텐데. 내 후계자는 권이다."
"백...."
"그 녀석 말고 누구에게도 물려줄 생각 없어."
"그러니까 아들 같은 거, 생기면 곤란하다고."
"뭐, 어쩌다 딸은 셋이나 만들어버렸지만 그 녀석들이야 시집만 잘 보내면 출가외인이니까?"
결국엔 어깨를 으쓱하며 냐하핫 웃고 대충 얼버무렸지만 주유는, 친우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알 것 같았다.
──내 피는 나 하나로 충분해.
지금 생각하면,
아닌 밤중에 무슨 잠꼬대냐고 그 자리에서 한 대 호되게 날려줬어야 했었다.
"근데 지금 공근이 남말할 때일까나."
"하아?"
난데없이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와 주유는 일순 가닥을 놓치고 어리둥절했다가, 손책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아싸 땡잡았다♡의 빛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꼬락서니에 등골이 파직 얼어붙었다.
"여봐요,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명가인 주일문 당주님. 후손이 없는 건 죽을 죄라며, 죽~을~죄~. 맹자까지 인용하시더니 나는 그나마 딸이라도 셋 있고 측실도 있지만 공근 넌 대체 뭐냐?"
"......윽."
주유의 단정한 얼굴이 새하얗게 바랬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게, 장가는 물론이고 주군 겸 의형을 어떻게 좀 세상의 상식에 맞춰보려고 피터지게 노력하는 사이 - 혹은 세상의 상식을 주군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이 - 정작 주유 자신은 그 미모와 그 집안과 그 능력을 갖고도 노총각 취급당해도 할 말 없는 스물 다섯 다 되도록 자식은 고사하고 측실 하나 없었다. 피 끓는 나이의 신체 건강한 청년이므로 때때로 청루에 드나드는 일은 있으나 연애와는 거리가 멀다. 실질적으로는 명문임을 입이 마르고 닳도록 주장하는 원씨(袁氏)를 한참 능가하는 주일문의 당주가 여지껏 홀몸임에도 대단한 압력이나 압박이 없는 것은 원흉은 순전히 손책이고 인력(人力)으로 당장 어떻게 될 일이 아닌 줄 모두가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이거 안 되겠는데. 이러다 네가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청춘 썩히면 사방을 메아리치는 원망에 내가 지레 죽겠다. 동오의 여자들은 밤이면 밤마다 주공근을 그리며 울고 있다! 자, 친우 좋다는 게 뭐냐. 숨기는 거 없이 말해봐라? 마음에 뒀다거나, 이거다 싶은 여자 하나 정돈 있지?"
"............................"
"숨기지 말라니까. 네가 설령 이 방을 몽땅 얼려붙일 대답을 해도 우리 사이에 새삼 놀랄 일도 없으니까 안심하고 불어라. 동생만 다섯 명 장가 시집 다 보낸 이 형님이 어떻게든 해줄게? 정 뭐하면 약탈혼도 거들 수 있다?"
"................................"
목을 그르릉그르렁 울리는 고양이과 맹수와 흡사한 웃음소리, 손책이 재밌어서 죽으려 한다는 걸 웅변으로 대신하는 그 웃음소리가 미치도록 얄미워, 주유는 입을 꽉 다물고 점점점만 찍고 있었다.
한동안 이어진 무언의 시위 끝에, 어느 새 낄낄대는 웃음이 쑥 들어간 손책이 입을 열었다.
".....저 있지, 공근."
".....왜."
"...............진짜 없냐?"
"......................................"
침묵이 싸늘했다.
"..........저 말야, 공근."
".....왜!"
"설마, 이런 말까진 안 물으려 했다만, 너, 연애는 고사하고 첫사랑도 아직.... 이라거나?"
"......................................"
손책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중상(仲翔)! 밖에 있는 거 다 안다! 들어와!"
잠시 문 밖에서 꺅, 인지 우겍, 인지 애매한 의미불명의 비명과 우당탕쿠당탕 흩어지고 줄행랑치고 넘어지는 소리가 뒤섞인 대소동이 일고 주유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데롱데롱 매달렸으나, 드디어 세상의 90퍼센트를 깔아보고 있는 성질 고약한 남자 우번(虞翻)이 대(對) 소패왕용의 사람 좋은 준수한 미소를 짓고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주공."
"음. 내 그대에게 중차대한 임무를 한 가지 맡기고자 하는데."
"주공께서 원하시는 대로."
"좋았어. 지금 당장 양주 전체 유력자들의 딸을 조사해서 사흘 내로 그럴싸한 처녀를 도합 열 명만 추려내라. 이거 얼른 장가 보내야지 진짜 못 쓰겠다. 보쌈도 허용할 테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도록. 알았나."
"존....."
"하─지─마───!!!!!!!!"
경애하는 주군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면 정말로 뭣도 불사할 우번이 명, 까지 전부 발음하기 전에 주유의 비명이 터졌다. 그 비명이 좀 심하게 절박했던 듯 드물게도 움찔해 버린 손책의 멱살을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당장에 물고 늘어진다.
"장난이 아니라고 했지! 잘 들어! 백부가 할 때까지 난 절대로 안 해!!!"
".......그거, 협박?"
참아줘.
사랑이니, 연애니, 하물며 결혼마저, 내게 그럴 시간이 있을 것 같나.
유일하게 그와 비슷하다 할 감정의 전부를, 나는 너에게 헌정했다.
후일담.
"내 언젠가 저 여자가 내 발목을 잡을 줄 알았다니까!"
손책의 정처, 대교 교정연(喬靖姸) 득남.
주군을 반 강제로 어찌저찌 혼인까지 몰고 가는 데는 성공했으나 정작 부부 사이가 너무나도 고약하여 체념의 정서가 만연해 있던 손오의 가신들이 놀라운 기적 앞에 얼굴을 환히 펴고 모두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쳐 부를 시 정작 의무를 달성한 군주 본인은 숲속에서 이를 벅벅 갈며 포효하고 있었다.
주유는 가능한 한 귀를 꼭꼭 틀어막으며 (별반 소용은 없었지만) 탄식했다.
"이제 그만 좀 해 백부..."
"이게 진정할 일이냐 공근! 엿먹으라고 대놓고 씩 쪼개는 얼굴 봤지! 젠장, 저 여편네 몸만 풀어봐라! 정말 가만 안 둬─!!!"
"좋은 게 좋은 거잖나. 귀여운 아들을 품에 안아 봤으니 잘 됐다고 생각해."
"귀엽긴 뭐가!? 앞으로 후계자다 뭐다 해서 얼마나 골 때릴지 뻔한데, 귀엽긴 뭐가 귀엽냐!!!"
─아니, 귀엽지 않을 리가 없잖아.
너와 대교 소저의 아들이라면.
나는 네 피를 이어받은 아이가 한 명 더 세상빛을 보게 해주신 걸 오히려 형수님께 감사하고 싶은걸.
손책이 발작을 일으킬 확률이 약 9할 9리 9푼이었으므로 주유는 그 말을 조용히 삼켰다.
(註 1) 불효삼천(不孝三千)에 무후위대(無後爲大) : 맹자(孟子)의 이루장구 상편(離婁章句上篇)이 출처. 3000가지 불효 중에 자손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으뜸이더라는 의미.
(註 2) 오국태(吳國太) : 태태(太太)는 대부인에 대한 존칭이므로, 국태는 즉 국모라는 의미. 연의에는 손견 파파가 미인 자매를 언니 먹고 동생 먹어, 언니는 조금 일찍 갔지만 동생은 훗날의 손부인을 낳고 국모로 대접받다가 딸이 유비에게 시집가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걸로 되어 있지만, 셧업! 언니 동생은 뭔 놈의. 순전히 나관중의 창작이다. 손견 파파는 그 시대엔 드물게도 대체적으로(...) 한 여성에게만 헌신한 남편이었음. 오부인이 워낙 여러 가지로 굉장한 여성이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하여간 오국태라는 호칭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은 진짜 오부인 한 명밖에 없으므로 이 김에 한 번 사용해 봤음. 덧붙이자면 그녀는 남편에 이어 장남까지 비명에 가고 2년 후인 202년에 사망했다.
항상 그렇지만(...) 쓸데없이 긴 후기.
1. 이 이야기에는 실은 심각한 오류가 있음. 손책의 유일한 아들인 손소(孫紹)는 대교 소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왜냐!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이 미묘하게 안 맞는다구! ;;;;
손책이 타계한 것은 서기 200년 4월 4일이다(숫자가 하도 구체적인데다 중국인들이 기겁을 하고 꺼려하는 4가 두 개나 겹쳐 창작이 아닌가 의심했건만 정사의 손토역전 주석에서 인용되는 「지림志林」이라는 문헌에 喜推考桓王之薨、建安五年四月四日이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음력이지만 변환기는 1900년까지밖에 지원하지 않으니 어차피 나오는 날짜는 전부 음력이므로 그냥 이대로 계산하겠음. 그렇다면 유복자가 아닌 이상 손소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그 해 3월에는 태어나 있어야 한다. 임신 기간을 고려하면 잉태한 것은 최대한 짧게 잡아도 전해의 7월에서 8월 사이. 헌데 손책이 대교를 맞아들인 것은 원술이 죽고 그 잔존 세력을 거둔 유훈과 맞짱을 뜨는 와중에 환성(皖城)을 함락시켰을 때이다. 원술은 199년 6월 경(찌는 한여름)에 원소에게 가는 도중 죽었다고 한다. 아아니 그럼 겨우 한두 달 사이에 유훈이 잔존 세력을 흡수하고 손책이 예장군으로 급행해서 도중에 환성도 함락시키고 마침 굴러나온 미소녀를 아내로 맞아서 뚝딱 임신까지 시켰단 말이냐 너무 급박하잖아!!! ;;; 아니 뭐 몰아치는 게 특기인 소패왕이라면 못할 일도 없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암만 그래도 이건 무리가 지나치다.
즉 대교와 혼인했을 때는 이미 누군가가 손소를 임신했거나 혹은 벌써 태어나 있었으리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리란 얘기. 실은 대교가 손책의 정처라는 기술은 정사 어느 구석에도 없으며 심지어 손책전에 대교는 이름 한 번 언급되지 않는다; 아 이런 세상에;;;
그런고로 팬픽의 미덕으로 원술의 몰락 시기와 환성 함락을 좀 앞으로 당기는 역사 왜곡을 감행하였음. 그렇다 해도 손책과 교정연이 혼인하고 꼬박 6개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설정은 포기해야 할 판. 진작 좀 제대로 조사할걸; 3개월 정도로 줄여야겠다.
(덤으로 주유의 타계일은 210년 12월 3일. 메모 메모)
2. 현대를 사는 우리 눈에는 이제 겨우 돌을 갓 지난 아들보다도 장래성이 똑똑히 보이는 동생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게 당연하고도 매우 현명한 행위로 보이지만, 실은 이거 당시로서는 무지막지하게 파격적이다 못해 상궤를 벗어난 유언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후일의 평론 어딘가에선 심히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비난까지 받고 있다. 한 마디로 그때 상식으로는 암만 어려도 멀쩡히 아들이 있는데 그걸 제쳐놓고 동생을 찍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란 얘기. 정말이지 세간의 규율이니 이목 따위는 개코로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을 거라 S가 확신하는 이유.
이때 손권을 지명한 것이 후일 손책의 거취를 상당히 미묘하게 만들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파고 싶기 때문에 일단은 미룬다. (까닥하면 후기가 더 길어질 판이고;)
3. 얼결에 오리지널 캐릭터가 행간에서 하나 등장해 버렸다;; 벽성선(碧城仙)이란 이름은 옥루몽에서 적당히 훔쳐온 것이다. 나이는 손책과 같거나 ±1살. 얼굴밝힘증인 손책답게 - 랄까 본인이 정사에 남을 정도의 미인인데다 어머니는 절강제일미고 친우가 미주랑이고 역시 정사에서 인정받은 미남인 여범이 심복이라면 눈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 - 미인이지만 고전적인 의미의 미녀는 아니고, 부분부분을 떼어놓고 보면 조금씩 다 이상한데 하나로 뭉쳐놓으면 깜짝 놀랄만큼 아름다운 타입. 그리고 거의 손책이 쯧코미가 될 정도의 독전파계.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정이 붙어버렸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또 등장시킬까 생각 중이다.
4. 상당히 문제 있는 발언이 얼핏 나와버렸지만 기실 별 일은 없음. 아마도.
마누라라는 말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주유. 그러니까 당신이 조강지처란 말을 듣는 거닷!
5. 틈만 나면 말하듯이 S가 보는 한 손책이 평생에 제대로 사랑한 건 아버지와 바로 아랫동생뿐이다. 아버지에 대한 경애가 고작 스물 난 청년을 밑바닥에서 악착같이 기어올라와 아버지 연배의 라이벌들과 맞짱을 뜨게 만들었고 동생에 대한 애착이 한 번 망설임도 없이 후계자로 지명하는 길을 선택케 했다. 가끔 손책의 질풍노도 같은 무서운 기세의 진격을, 손견이 비명에 가고 2~3년 뒤쳐진 걸 만회하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이었다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조조 님마저도 두각을 드러내신 것이 30대 후반이었고 당시 웬만한 영걸이 전부 사오십대였음을 감안하면 손책은 늦기는커녕 너무 일렀다. 늦은 건 그가 아니라 손견이다. 그 청년은, 아버지의 이름을 만회하고자 그렇게 미친듯이 날뛰었던 것이다.
하여간 스스로를 비하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지만 궁극적으로 소중한 건 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수단인 손오)와 (그 뒤를 이어줄) 동생뿐이므로 자신에 대한 애착도 별로 없음. 그래서 피를 남길 의무감도 못 느낀다. 손소가 별다른 두각을 못 보인 채로 역사에 묻힌 것도, 그야 지나치게 천재였던 아버지의 후광이 버거운 탓도 있었겠지만, 손책의 무관심도 상당 부분 작용하지 않았을까 문득 망상하는 S. 어디 가니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