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쥬로가 병사했을 때 사흘 밤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는 마사무네 님. 이것이 정사. 사람 살려어. 역시 세기의 그레이 로맨스(...)는 조강지처 죽고 옆구리가 허전해서 저지른 짓이었지! 악악악악악악!!!!
돈에이 결전 시리즈의 도노는 오키아유 상. BASARA에선 킹콩 히데요시, 천하인에선 켄신 공, 결전에선 마사무네 님입니까아!! 기왕이면 무쌍에도 나와줘요!! 그런데 결전의 도노는 무려 188. 이건 쭉~쭉~빵~빵! 한 캡콤 이상의 사기다아아아앗! 돈에이메!!
하지만 더 이상 남자의 번뇌에 시달리지 않기로 하였음. (가능하냐? ;;;) 자 번역 번역.
어느 새 16장까지 진행된 손포코 님의 손책전 해설. 배째고 등따고 장 꺼내서 줄넘기 해욧!!
무단으로 가져가실 분은 없을 줄로 믿습니다.
제 15장. 강동의 기린아(江東の麒麟児)
승룡, 비상.
주치(朱治)가 오군(呉郡)을 평정한 사이, 절강(浙江)의 이점을 교묘하게 살려가며 싸우는 회계군(会稽郡) 태수 왕랑(王朗) 때문에 손책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죠. 왕랑은 본디 도겸(陶謙)의 수하였지만, 도겸이 안동장군(安東将軍)을 제수받았을 때 조정에게 회계군 태수로 임명받았습니다. 왕랑의 막하인 우번(虞翻)은 손책군과 싸워도 승산이 없다고 진언하였으나, 왕랑은 한의 녹을 먹는 자로써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여겨 손책과 맞붙는 쪽을 택합니다. 그렇다면 왕랑의 방어전략은 유요(劉繇)가 패배했을 때 이미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겠지요. 왕랑의 기본적인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천연의 요새인 절강을 이용해 손책군의 발을 묶어놓는다.
● 그 틈에 오군 태수 허공(許貢)과 예장(豫章)태수 화흠(華歆)에게 출병을 요청하여 배후에서 손책군을 기습한다.
대충 이 정도였지요. 다만 두 번째는 주치가 너무나도 빨리 허공을 쓰러뜨렸고, 화흠은 엉덩이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던 까닭에 사실상 불가능해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여타 군의 세력 규합에 실패한 이 시점에서 왕랑은 저항을 포기했어야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절강에 의지한 방어는 무난히 제 구실을 하고 있었지만, 손책군이 언제까지고 무식하게 정면 돌파를 고집할 리가 없었으니까요.
손책은 회계군 공략 전에, 손일문의 장로격 존재인 손정(孫静)을 호출했습니다. 손정은 손견의 동생으로, 손견과 손책 부자와는 달리 그다지 출세욕도 명예욕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고향에서 일족을 보호하며 조용히 살고 있었지요. 손정은 회계군 공략에 난항을 겪고 있는 손책에게 계책을 올립니다. "절강은 천연의 요새이므로, 정면에서 공격해서는 결코 결판이 나지 않을 것이외다. 배후에서 찔러야 할 필요가 있소." 토박이의 경험에 근거한 손정의 계책은 손책에게 벼락에라도 맞은 듯한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그 즉시 전군에 지시가 하달됩니다. '최근, 연일 내린 비로 식수가 탁해져 많은 병사가 복통을 일으키고 있다. 서둘러 단지를 대량으로 준비해 식수를 끓여먹도록.' 물론 이것은 왕랑 측의 첩자를 의식하고 내린 거짓 명령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손책은 강변에 단지를 늘어세우고 불을 지펴 왕랑군의 시선을 끕니다. 그 틈을 타 손정이 이끄는 별동대가 왕랑군 보급선의 요지인 사독(査涜)을 급습하였습니다. 왕랑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별동대의 공격으로 보급선이 완전히 끊기자 왕랑군은 공황 상태에 빠집니다. 왕랑은 황급히 부하 주흔(周昕)을 사독으로 파견하지만, 손책군은 이미 그것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주흔군은 손책군의 급습을 받고 전멸, 주흔은 목이 베이고 맙니다. 이로써 왕랑군의 본진은 전의를 잃고 패주하지요. 연의에서는 불을 피워 눈길을 끌고 그 사이 별동대를 파견하는 이 작전은, 손견이 유표(劉表)와 맞서 양양(襄陽)을 공략할 때 쓰인 계책이 되어 있습니다. 뭐, 아버지가 한 걸로 되어 있으니 용서할 만한 범위일까요 (웃음)
싸움에서 패배한 왕랑은 배를 타고 회계군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동치(東治)까지 도주합니다. 왕랑은 교주(交州)까지 달아날 생각이었지만, 우번이 "그런 곳까지 도망쳐서 뭘 어쩌시겠다는 겁니까?" 라며 힐난했기 때문에 동치에 머무르기로 합니다. 손책은 추격의 손길을 늦추지 않고 원정을 감행해 동치성을 공격했습니다. 왕랑도 결국엔 체념하고 손책에게 출두하여, 마침내 회계군도 손책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지도를 보면, 동치가 그야말로 땅끝에 위치한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손책은 광대한 회계군마저 집어삼키는 데 성공했지요.
(주) 광대한 회계군을 접수했다... 는 말에는 사실 엄청난 어폐가 있습니다;;; 왕랑은 육로로 후퇴하는 대신 배를 타고 동치로 피신했습니다. 즉 그 말은, 뒤집어 보면 육로로 후퇴해도 왕랑에게는 거점이 없었다는 의미겠지요. 이후, 회계에서 활약하는 하제(賀斉)의 전기를 보아도, 회계군 산악 지대는 반란 세력이 활보하는 지역임을 알 수 있어요. 회계태수라고는 하지만 왕랑의 세력은 해로에 면한 해안 도시에 한정되어 있었던 게 아닐지? 이처럼 오→회계→교주를 잇는 라인은 해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유념하면, 이후 손권의 남하정책이 해로에 의존한 것과, 해로에 면한 교주의 군을 지배한 사섭(士燮)이 크나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쉽사리 이해됩니다.
손책 역시 한 발 건너뛰어 해로로 동치에 향하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만약 육로를 택해 반란 세력을 일소하면서 전진했다면 1년 미만의 기간 내에 왕랑을 포획하기란 불가능했겠지요. 즉, 회계를 수중에 넣은 게 아니라 회계태수 왕랑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실제로도 회계 남쪽의 통치권을 손일문이 장악하는 데는 하제를 비롯한 반란 진압의 전문가들의 활약이 필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선 반란세력은 방치해 두자는 사고 방식은, 단양군, 오군, 회계군 공략 당시 손책의 기본 자세였습니다. 기반을 굳히는 대신 기반을 넓히는 쪽을 택한 거죠. 기반의 확보에 손책이 얼마나 몸이 달아 있었는지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집니다. 하여간 손책은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 토지를 넓혔습니다. 그리고 손책 사후, 손권이 기반을 굳혔습니다. 손책과 손권의 패업은 적재적소에 의한 2인 3각의 합작 플레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강동 전체가 완전히 손책 일색으로 물들지는 않았습니다. 회계의 엄백호(厳白虎), 단양(丹陽) 서쪽의 조랑(祖郎)을 비롯하여 반란 세력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요. 그러나 반란 세력은 어디까지나 반란 세력이고, 정식으로 임명된 태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손책의 강동 평정은 여기서 일단 매듭을 짓게 됩니다. 강동의 기린아는 불과 천 명의 군세로 연승을 거듭하여 드디어 천하로 비상하였던 것입니다.
● 천연의 요새인 절강을 이용해 손책군의 발을 묶어놓는다.
● 그 틈에 오군 태수 허공(許貢)과 예장(豫章)태수 화흠(華歆)에게 출병을 요청하여 배후에서 손책군을 기습한다.
대충 이 정도였지요. 다만 두 번째는 주치가 너무나도 빨리 허공을 쓰러뜨렸고, 화흠은 엉덩이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던 까닭에 사실상 불가능해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여타 군의 세력 규합에 실패한 이 시점에서 왕랑은 저항을 포기했어야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절강에 의지한 방어는 무난히 제 구실을 하고 있었지만, 손책군이 언제까지고 무식하게 정면 돌파를 고집할 리가 없었으니까요.
손책은 회계군 공략 전에, 손일문의 장로격 존재인 손정(孫静)을 호출했습니다. 손정은 손견의 동생으로, 손견과 손책 부자와는 달리 그다지 출세욕도 명예욕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고향에서 일족을 보호하며 조용히 살고 있었지요. 손정은 회계군 공략에 난항을 겪고 있는 손책에게 계책을 올립니다. "절강은 천연의 요새이므로, 정면에서 공격해서는 결코 결판이 나지 않을 것이외다. 배후에서 찔러야 할 필요가 있소." 토박이의 경험에 근거한 손정의 계책은 손책에게 벼락에라도 맞은 듯한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그 즉시 전군에 지시가 하달됩니다. '최근, 연일 내린 비로 식수가 탁해져 많은 병사가 복통을 일으키고 있다. 서둘러 단지를 대량으로 준비해 식수를 끓여먹도록.' 물론 이것은 왕랑 측의 첩자를 의식하고 내린 거짓 명령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손책은 강변에 단지를 늘어세우고 불을 지펴 왕랑군의 시선을 끕니다. 그 틈을 타 손정이 이끄는 별동대가 왕랑군 보급선의 요지인 사독(査涜)을 급습하였습니다. 왕랑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별동대의 공격으로 보급선이 완전히 끊기자 왕랑군은 공황 상태에 빠집니다. 왕랑은 황급히 부하 주흔(周昕)을 사독으로 파견하지만, 손책군은 이미 그것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주흔군은 손책군의 급습을 받고 전멸, 주흔은 목이 베이고 맙니다. 이로써 왕랑군의 본진은 전의를 잃고 패주하지요. 연의에서는 불을 피워 눈길을 끌고 그 사이 별동대를 파견하는 이 작전은, 손견이 유표(劉表)와 맞서 양양(襄陽)을 공략할 때 쓰인 계책이 되어 있습니다. 뭐, 아버지가 한 걸로 되어 있으니 용서할 만한 범위일까요 (웃음)
싸움에서 패배한 왕랑은 배를 타고 회계군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동치(東治)까지 도주합니다. 왕랑은 교주(交州)까지 달아날 생각이었지만, 우번이 "그런 곳까지 도망쳐서 뭘 어쩌시겠다는 겁니까?" 라며 힐난했기 때문에 동치에 머무르기로 합니다. 손책은 추격의 손길을 늦추지 않고 원정을 감행해 동치성을 공격했습니다. 왕랑도 결국엔 체념하고 손책에게 출두하여, 마침내 회계군도 손책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지도를 보면, 동치가 그야말로 땅끝에 위치한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손책은 광대한 회계군마저 집어삼키는 데 성공했지요.
(주) 광대한 회계군을 접수했다... 는 말에는 사실 엄청난 어폐가 있습니다;;; 왕랑은 육로로 후퇴하는 대신 배를 타고 동치로 피신했습니다. 즉 그 말은, 뒤집어 보면 육로로 후퇴해도 왕랑에게는 거점이 없었다는 의미겠지요. 이후, 회계에서 활약하는 하제(賀斉)의 전기를 보아도, 회계군 산악 지대는 반란 세력이 활보하는 지역임을 알 수 있어요. 회계태수라고는 하지만 왕랑의 세력은 해로에 면한 해안 도시에 한정되어 있었던 게 아닐지? 이처럼 오→회계→교주를 잇는 라인은 해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유념하면, 이후 손권의 남하정책이 해로에 의존한 것과, 해로에 면한 교주의 군을 지배한 사섭(士燮)이 크나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쉽사리 이해됩니다.
손책 역시 한 발 건너뛰어 해로로 동치에 향하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만약 육로를 택해 반란 세력을 일소하면서 전진했다면 1년 미만의 기간 내에 왕랑을 포획하기란 불가능했겠지요. 즉, 회계를 수중에 넣은 게 아니라 회계태수 왕랑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실제로도 회계 남쪽의 통치권을 손일문이 장악하는 데는 하제를 비롯한 반란 진압의 전문가들의 활약이 필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선 반란세력은 방치해 두자는 사고 방식은, 단양군, 오군, 회계군 공략 당시 손책의 기본 자세였습니다. 기반을 굳히는 대신 기반을 넓히는 쪽을 택한 거죠. 기반의 확보에 손책이 얼마나 몸이 달아 있었는지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집니다. 하여간 손책은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 토지를 넓혔습니다. 그리고 손책 사후, 손권이 기반을 굳혔습니다. 손책과 손권의 패업은 적재적소에 의한 2인 3각의 합작 플레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강동 전체가 완전히 손책 일색으로 물들지는 않았습니다. 회계의 엄백호(厳白虎), 단양(丹陽) 서쪽의 조랑(祖郎)을 비롯하여 반란 세력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요. 그러나 반란 세력은 어디까지나 반란 세력이고, 정식으로 임명된 태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손책의 강동 평정은 여기서 일단 매듭을 짓게 됩니다. 강동의 기린아는 불과 천 명의 군세로 연승을 거듭하여 드디어 천하로 비상하였던 것입니다.
승룡, 비상.
제 16장. 봉기(蜂起)
역시 모종의 이유로 인해 손보라는 이름만 봐도 얼굴이 실실 웃고 있다. 왜인지는 여기선 절대로 안 밝힐 테다!
원술과 손책의 '주종' 관계라는 표현만으로 음심이 살살 동하는 나는 이미 구제불능.
늘 그렇지만 주유가 너무 조강지처라서 눈물이 핑 돌려 함. 백부를 못살게 군 원숭이 따위에게 볼일은 없다는 오라가 살살 풍기더니 야반도주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손책에게 유용할 인물까지 하나 달고 토끼고 있어요...! 당신은 그래서 안 돼!!
그나저나 손분/오경에 대한 이야가라세와 이지메가 화끈하다 못해 상쾌할 지경입니다 주군! 왜 이렇게 성질 더럽고 성격 고약한 거냐 이 남자! 愛してるよ!
강동 제압을 일단 매듭짓긴 했으나, 손책은 아직 완전히 원술에게서 독립하지는 못했습니다. 여기까지의 손책은 이를테면 반독립 상태로, 작전은 완전히 독단으로 실행하되 어디까지나 원술의 방침에 따라서 행동해 온 셈이었지요.
그러나 여기서 원술과 손책의 동맹(주종) 관계에 하나의 국면이 찾아듭니다. 원술이 그때까지 단양(丹陽)태수였던 주상(周尚)을 해임하고, 대신 자신의 친척뻘인 원윤(袁胤)을 파견한 것이죠. 단양만은 손책과 원술 양쪽의 군대가 함께 점령한 토지였기 때문에, 단양이 누구의 지배 하에 들지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태수가 원술의 부하이자 손책의 둘도 없는 친우인 주유의 숙부인 주상이었다는 사실은, 실로 미묘하기 짝이 없는 단양의 위치 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어요. 원술의 입장에서 보자면 단양태수 교대극은 '오군(呉郡), 회계군(会稽郡), 예장군(豫章郡)은 손책에게 맡겨도 좋지만, 단양만은 내 것'이라는 실력행사였지요. 그에 대해 손책이 어떻게 나올지도 역시 미묘한 문제였습니다. 단양을 포기하고 나머지 세 군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단양을 둘러싸고 원술과 다툴 것인가?
손책이 단양태수 교대극에 어떻게 대처할지 골치를 썩였음은 주유의 행동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손책이 단양태수 교대에 불복하고 반격 태세를 취하려 했다면, 주유 역시 원윤을 단양에 들이지 않고 원술에게 반기를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주유는 손책의 결정을 기다리기로 한 듯, 원윤을 맞아들이고, 주상과 함께 수춘(寿春)에 있는 원술에게로 향합니다. 이 점에서 주유의 거취 또한 미묘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야, 손책의 결정도 없이 주유가 마음대로 원술과 손책의 관계를 깨뜨릴 수는 없었겠지요. 하여간 모든 것은 손책의 결론 나름이었습니다.
여기서 손책에게로 눈을 돌려봅시다. 원술의 실력행사에 대한 손책의 결론이란, "실력행사에는 실력행사다! 다 덤벼!!" 라는, 실로 너무나도 손책다운 것이었어요 (웃음) 손책은 서곤(徐琨)을 앞세워, 태수 원윤을 강제로 몰아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손보(孫輔 : 손분의 동생)을 파견해 역양(歴陽)에 주둔케 하여 (유요[劉繇] 역시 원술을 견제하기 위해 역양에 군을 두었습니다. 아무래도 역양은 장강[長江]을 사이에 끼고 대치할 경우의 거점이 되는 모양입니다) 손책 측에 붙도록 단양의 민중을 설득하는 한편, 원술의 침공에 대비했지요. (실은 정사의 본문에 따르면, 손보가 역양에 주둔한 것은 손책이 단양의 6현을 제압한 직후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만, 그런 시기에 역양에 포진했다면 손책과 원술의 반목은 훨씬 빨랐겠지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독단적으로 강동 제압 이후로 바꾸었습니다) 손책에게 실력행사로 반격당해 옴쭉달싹도 못하게 된 건 오히려 원술 쪽이었습니다. 당시 원술은 서주(徐州)에서 터진 유비와 여포의 내란을 이용해 서주에서 세력을 넓히고자 획책하던 무렵으로, 전황은 그다지 유리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판국에 손책하고까지 싸울 수야 없었던 거죠. 하지만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단양에 촉수를 뻗으려 하지 말고 손책에게 인심이나 썼으면 좋았습니다. 원일문의 방자함이 빚어낸 실수인 셈입니다. 이 덕분에 원술은 단양을 잃는 데 그치지 않고, 충분히 동맹을 유지할 수 있었던 손책하고마저 틀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손책 쪽에서 보자면 삼년 묵은 체증도 내려갈 일이었습니다. 부친 대부터 줄곧 이를 갈아온 원술에게 드디어 한 방 먹였으니까요.
그러나 손책의 실력행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원술 휘하에 있는 손일문 관계자들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했던 겁니다. 당연하게도 손책의 실력행사가 전면으로 부상하자 주유는 탈출을 꾀합니다. 실은 원술은 주유를 몹시 마음에 들어해 장군으로까지 삼으려고 했지만, 주유는 이러쿵저러쿵 핑계를 대고 현령(県令)에 머물렀습니다. 마침내는 부임지에서 노숙(魯粛)과 함께 손책을 바라고 도주합니다.
남은 사람은 손분(孫賁)과 오경(呉景)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손책의 대응은 꽤나 신랄했어요. 상술했다시피 역양에 주둔한 손보는 손분의 동생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손분 형님~만약 이대로 원술이랑 놀고 있으면 친동생이랑 싸우게 되는데요? 그래도 좋습니까? 오경 외삼촌도 일족이랑 맞붙고 싶어서 안달이라도 나셨대요~?' 이런 의사 표시였습니다. 덤으로 손책은 손분과 오경에게 '이제부터 강동에 진을 친 반란세력을 일소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 두 사람은 유요를 몰아낸 후, 먼저 엄백호[厳白虎] 등 반란세력부터 진압해야 한다고 진언했었습니다) 한 마디로 원술 버리고 여기로 와 주시죠, 라는 독촉장인 셈입니다. 오경은 황제를 참칭하는 원술에게 더 이상 볼 일은 없다고 생각한 듯, 원술이 제수한 광릉(広陵)태수의 지위를 내던지고 강동으로 달아납니다. 손분은 구강(九江)태수라는 요직에 있었는데다, 언제 배신하고 손책에게 넘어갈지 모른다고 원술이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았는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처자를 버리고 강동으로 도망하지요. 원술과 손책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손분이 가엾기까지 할 지경입니다. 이리하여 손책은 원술 측의 손일문 관계자에 대한 작업을 대성공으로 끝냈습니다. (다만 전원이 손책에게 복속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손책의 강동제압에 참전하지 않았던 손향[孫香]은 그대로 원술 밑에 머물러, 마지막까지 원술의 휘하로써 싸우게 되지요)
여기까지의 손책의 일련의 행동은, 그야말로 원술에게 고하는 완전독립선언이자, 원술에 맞선 손일문의 일제봉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손책은 회계태수를 자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원술과 손책의 동맹(주종) 관계에 하나의 국면이 찾아듭니다. 원술이 그때까지 단양(丹陽)태수였던 주상(周尚)을 해임하고, 대신 자신의 친척뻘인 원윤(袁胤)을 파견한 것이죠. 단양만은 손책과 원술 양쪽의 군대가 함께 점령한 토지였기 때문에, 단양이 누구의 지배 하에 들지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태수가 원술의 부하이자 손책의 둘도 없는 친우인 주유의 숙부인 주상이었다는 사실은, 실로 미묘하기 짝이 없는 단양의 위치 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어요. 원술의 입장에서 보자면 단양태수 교대극은 '오군(呉郡), 회계군(会稽郡), 예장군(豫章郡)은 손책에게 맡겨도 좋지만, 단양만은 내 것'이라는 실력행사였지요. 그에 대해 손책이 어떻게 나올지도 역시 미묘한 문제였습니다. 단양을 포기하고 나머지 세 군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단양을 둘러싸고 원술과 다툴 것인가?
손책이 단양태수 교대극에 어떻게 대처할지 골치를 썩였음은 주유의 행동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손책이 단양태수 교대에 불복하고 반격 태세를 취하려 했다면, 주유 역시 원윤을 단양에 들이지 않고 원술에게 반기를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주유는 손책의 결정을 기다리기로 한 듯, 원윤을 맞아들이고, 주상과 함께 수춘(寿春)에 있는 원술에게로 향합니다. 이 점에서 주유의 거취 또한 미묘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야, 손책의 결정도 없이 주유가 마음대로 원술과 손책의 관계를 깨뜨릴 수는 없었겠지요. 하여간 모든 것은 손책의 결론 나름이었습니다.
여기서 손책에게로 눈을 돌려봅시다. 원술의 실력행사에 대한 손책의 결론이란, "실력행사에는 실력행사다! 다 덤벼!!" 라는, 실로 너무나도 손책다운 것이었어요 (웃음) 손책은 서곤(徐琨)을 앞세워, 태수 원윤을 강제로 몰아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손보(孫輔 : 손분의 동생)을 파견해 역양(歴陽)에 주둔케 하여 (유요[劉繇] 역시 원술을 견제하기 위해 역양에 군을 두었습니다. 아무래도 역양은 장강[長江]을 사이에 끼고 대치할 경우의 거점이 되는 모양입니다) 손책 측에 붙도록 단양의 민중을 설득하는 한편, 원술의 침공에 대비했지요. (실은 정사의 본문에 따르면, 손보가 역양에 주둔한 것은 손책이 단양의 6현을 제압한 직후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만, 그런 시기에 역양에 포진했다면 손책과 원술의 반목은 훨씬 빨랐겠지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독단적으로 강동 제압 이후로 바꾸었습니다) 손책에게 실력행사로 반격당해 옴쭉달싹도 못하게 된 건 오히려 원술 쪽이었습니다. 당시 원술은 서주(徐州)에서 터진 유비와 여포의 내란을 이용해 서주에서 세력을 넓히고자 획책하던 무렵으로, 전황은 그다지 유리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판국에 손책하고까지 싸울 수야 없었던 거죠. 하지만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단양에 촉수를 뻗으려 하지 말고 손책에게 인심이나 썼으면 좋았습니다. 원일문의 방자함이 빚어낸 실수인 셈입니다. 이 덕분에 원술은 단양을 잃는 데 그치지 않고, 충분히 동맹을 유지할 수 있었던 손책하고마저 틀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손책 쪽에서 보자면 삼년 묵은 체증도 내려갈 일이었습니다. 부친 대부터 줄곧 이를 갈아온 원술에게 드디어 한 방 먹였으니까요.
그러나 손책의 실력행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원술 휘하에 있는 손일문 관계자들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했던 겁니다. 당연하게도 손책의 실력행사가 전면으로 부상하자 주유는 탈출을 꾀합니다. 실은 원술은 주유를 몹시 마음에 들어해 장군으로까지 삼으려고 했지만, 주유는 이러쿵저러쿵 핑계를 대고 현령(県令)에 머물렀습니다. 마침내는 부임지에서 노숙(魯粛)과 함께 손책을 바라고 도주합니다.
남은 사람은 손분(孫賁)과 오경(呉景)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손책의 대응은 꽤나 신랄했어요. 상술했다시피 역양에 주둔한 손보는 손분의 동생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손분 형님~만약 이대로 원술이랑 놀고 있으면 친동생이랑 싸우게 되는데요? 그래도 좋습니까? 오경 외삼촌도 일족이랑 맞붙고 싶어서 안달이라도 나셨대요~?' 이런 의사 표시였습니다. 덤으로 손책은 손분과 오경에게 '이제부터 강동에 진을 친 반란세력을 일소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 두 사람은 유요를 몰아낸 후, 먼저 엄백호[厳白虎] 등 반란세력부터 진압해야 한다고 진언했었습니다) 한 마디로 원술 버리고 여기로 와 주시죠, 라는 독촉장인 셈입니다. 오경은 황제를 참칭하는 원술에게 더 이상 볼 일은 없다고 생각한 듯, 원술이 제수한 광릉(広陵)태수의 지위를 내던지고 강동으로 달아납니다. 손분은 구강(九江)태수라는 요직에 있었는데다, 언제 배신하고 손책에게 넘어갈지 모른다고 원술이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았는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처자를 버리고 강동으로 도망하지요. 원술과 손책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손분이 가엾기까지 할 지경입니다. 이리하여 손책은 원술 측의 손일문 관계자에 대한 작업을 대성공으로 끝냈습니다. (다만 전원이 손책에게 복속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손책의 강동제압에 참전하지 않았던 손향[孫香]은 그대로 원술 밑에 머물러, 마지막까지 원술의 휘하로써 싸우게 되지요)
여기까지의 손책의 일련의 행동은, 그야말로 원술에게 고하는 완전독립선언이자, 원술에 맞선 손일문의 일제봉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손책은 회계태수를 자인합니다.
역시 모종의 이유로 인해 손보라는 이름만 봐도 얼굴이 실실 웃고 있다. 왜인지는 여기선 절대로 안 밝힐 테다!
원술과 손책의 '주종' 관계라는 표현만으로 음심이 살살 동하는 나는 이미 구제불능.
늘 그렇지만 주유가 너무 조강지처라서 눈물이 핑 돌려 함. 백부를 못살게 군 원숭이 따위에게 볼일은 없다는 오라가 살살 풍기더니 야반도주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손책에게 유용할 인물까지 하나 달고 토끼고 있어요...! 당신은 그래서 안 돼!!
그나저나 손분/오경에 대한 이야가라세와 이지메가 화끈하다 못해 상쾌할 지경입니다 주군! 왜 이렇게 성질 더럽고 성격 고약한 거냐 이 남자! 愛してる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