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벨 님의 리퀘스트에 의한 더더욱 막 나가는 삼국지 SS 제 7탄. 이번에는 아주 배째고 장 꺼내서 패러렐이므로, 역사는 있는 그대로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 거나 패러렐이 뭐냐 AU가 뭐냐 그거 맛있는 거? 라거나 패러렐 따위는 邪道임을 모르느냐──!!! 를 주의로 삼으시는 분은, 기냥 뒤로 빙글 돌아 Double March를 해주시길 바람. 경고했습니다? 다 읽고 나서 눈 버렸다고 뭐라 들고 뛰셔도 무시하겠음.
그리고 지벨 님, 말씀드리지만 1편도 다 받았습니다... 후후후후.
SIDE A-12. 정열(情熱)
(註 1) 마(馬) 군 : 중국에서는 마키아벨리를 馬基雅弗利로 표기한다. 에, 시공이 틀려? AU에서 뭘 기대하나 당신?
(註 2) 덕분에 유능한 인재를 듬뿍 챙겼으니 나야 뭐 오히려 감사해야지 : 손책 휘하의 문관들은 서주를 비롯한 중원의 대란을 피해 강동으로 피난 온 사인(士人)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손오 정치의 2대 브레인 장소와 장굉 역시 그런 케이스.
(註 3) 덕행을 잣대로 가신들 재능에 등급을 매기려 든 멍청이 : 실제로 기염(曁艶)이 손오 정권의 고관들이 품행방정은커녕 심히 문란한 것을 개탄하고 등급을 매겨 덕행이 모자라는 자를 파면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225년 경의 일이지만 슬그머니 갖다 썼음. 패러렐이니까. (그 말로 모든 게 용서되리라 생각하는 거냐 너;) 하지만 세상에 톱이 손책과 손권이면서 그 밑이 품행이 방정하길 바란다니 무슨 배짱이냐?
(註 4) 난 배 짼 적도 있는걸 : 또 <강동의 새벽> 네타. (아마도) 급성맹장염으로 오락가락하는 손책을 화타 선생이 치료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註 5) 수(酥) : 치즈의 일종. 창천항로에서도 둥글게 뭉친 걸 우물우물 씹으시는 조조 님이 등장하심.
다 썼다─!!! (털푸덕<-죽었음) 중간 대화가 영 어색해도 파탄나도 대충 넘어갑시다. 다듬을 기력 따위 남아 있지 않아! orz
역사를 가지고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긴 하지만, 불탈 때가 아니면 못 쓴다는 진리에 의해 그냥 배째기로 했음. 지하에 계신 삼국시대 무장 여러분 정말로 죄송합니다. 당신들이 모에의 덩어리인 게 나쁜 거예요 (뒤집어씌우기)
언젠가 조조 님과 손책 형님이 실제로 대면했으면 순식간에 마음이 맞아 손 맞잡고 알콩달콩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던가 동족혐오의 피바람이 불어치던가 둘 중 하나, 중간은 결코 없을 거라고 단언한 적이 있는데, 본편은 지벨 님의 요청에 의한 - 사나다테에 눈이 멀었다고도 한다; - 사이좋은 버전임. 언젠가는 피바람 버전도 꼭 쓰고야 말리...!!
(무덤을 파라 무덤을 파)
208년은 실제 역사에서는 적벽대전이 터진 해. 손책이 살아 있었으면 적벽대전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기에, 적벽대전 이후 214년 경에 발발한 합비를 중심으로 한 위오격돌전을 조금 앞으로 당겨봤음. 아니 잠깐 적벽대전이 없으면 촉한도 없는 거 아냐!? ;;;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뭐 와룡과 봉추가 알아서 어떻게든 했겠지라... 미안 유비 큰형님;; 하지만 여기선 당신이 최강이니까...;;;
208년이라면 조조 님은 만으로 쉰 셋(155년 생), 손책은 역시 만으로 서른 셋(175년 생)이다. ....좋을 나이로세. (슈릅)
여왕 受 속성끼리 어느 쪽이 위였는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음.
돈형과 주유가 어느 틈엔가 동지가 되어 있는 건 그냥 내 취미다. 한쪽은 엄마, 한쪽은 마누라. (爆) 마찬가지로 조조 님이 관우로 열변을 토하시는 것도 순 내 취향.
때는 서기 208년 경의 중국. 연도는 깊이 생각지 말라.
조조의 위와 손책의 오는 치열한 격전 1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208년인데 왜 손책이 살아 있냐고 따지면 못쓴다. 이야말로 소위 일본 동인계의 패러렐이요 서양 슬래쉬의 ALTERNATIVE UNIVERSE요 역사의 IF라 불리는 물건인즉슨, 대륙의 강인한 감성이 흘러넘치는 화봉요원을 읽고 난 필자에게 이미 두려움은 없다. 여포가 우아한 미중년이건 조운이 뜬금없이 사마의와 놀고 있건 삼국시대 군사들이 모두 동문이건 손책의 강동평정전 무렵에 조운이 강동에서 설치고 다니건 아무렴 어떠냐 배째라 배째인 것이다.
하여간.
연륜과 유연함의 조조 VS 패기와 격렬함의 손책. 오지게 성질 더러운 천재끼리의 격돌은 장강 북쪽을 중심으로 대지와 강물을 피 터지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전쟁이라면 이골이 나다 못해 지긋지긋하도록 치러봤지만, 양측 모두 이토록 맘 먹은 대로 안 되는 상대는 난생 처음이었다. 이쪽을 찌를까 하면 저쪽을 찔러오고 여기 있을까 하면 저기서 나타난다. 총대장들의 사고 패턴이 너무나 닮은 나머지 흡사 은혼 제 75훈의 얼레 이거 작문? 공방과 같은 꼴로 빙글빙글 물리고 물기를 반복한 끝에, 싸울 보람 나는 라이벌이고 나발이고 저 쉐이 반드시 죽인다의 동족 혐오의 경지로 승화해 있었다.
걸핏하면 이를 복복 갈며 '빌어먹을 광견 꼬맹이'로 시작하는 오만 육두문자를 고함질러대는 조조와 툭하면 '지랄맞은 영감탱이'가 그나마 제일 온건할 갖은 욕설을 뱉어내며 날뛰는 손책을 꼬박 1년 동안 감당한 끝에 이대로는 본인들의 정신건강은 물론이거니와 위와 오 모두 피폐해 쓰러질 것을 우려한 신하들의 상소로, 피는 단단히 올랐지만 어디서 물러나야 할지 정확히 가늠할 줄 아는 주군들의 머리도 좀 식어, 결국 위와 오는 휴전하고 화평 조약을 맺게 되었다. 거기, 강인한 전개라고 하지 말자.
진짜 문제는 쌍방 주군의 조약 조인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아까부터 온 몸으로 본의가 아니라는 불만의 오라를 뿜어내고 오만 욕지거리를 입안으로 중얼거리며 약속한 대면 장소를 향해 말을 몰고 있는 의형이 제발 명색이 화해의 자리에서 칼만은 뽑지 않기를 기도하는 주유의 위 언저리가 또다시 쿡쿡 쑤셨다.
그런데 모처의 성명판정에 의하면 주유(周瑜)는 이름부터 단명에 과부상이요 위통과 위궤양을 극력 주의할 팔자라는데 사실일런지?
드디어 약속 장소인 위의 진영이 눈에 들어왔다.
휘날리는 깃발. 날카롭게 번쩍이는 창검. 좌우로 늘어선 위의 이름높은 무장들이 당당하고도 늠름하다.
그리고 한가운데에 오만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떡 버티고 앉은 중원의 패자, 조조의 모습이 있었다.
Kill Kill Kill Kill 모드 전개 중에도 역시 고양이도 죽이는 호기심은 배겨내질 못했는지, 손책은 한 손으로 눈 위에 차양막을 치고 조조를 주시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소패왕의 시력은 양쪽 모두 4.0이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수염의 올올도 보인다.
"헤에~저게 조조란 말이지... 흐응."
"백부?"
예상과는 반대로 목소리에 듬뿍 묻어나는 흥미진진함을 감지한 주유가 의형 겸 주군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여기서 주의 사항. 조조는 필자의 취미에 의해 창천항로 버전이다. Crime against humanity의 한 떨기 무르익은 꽃.
마상에서 반쯤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살피는 손책의 머리 위에도 핑크빛 파스텔톤의 무수한 꽃이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잠깐, 꽃!!?
형님의 옆에 붙어 있던 손권이 허걱, 하는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시퍼렇게 질린 수행원들이 아와와와하건 말건, 실로 주유도 몇 년만에 보는 헤실헤실 풀어진 얼굴로 손책은 달뜨게 중얼거렸다.
"....좋네...... 미중년......"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엣!!!!!"
오의 가신들이 실념하고 있었던 게 한 가지 있었다.
그들의 주군, 손백부는 구제불능의 파더콤에 뼛속까지 미인밝힘증이라는 사실을.
그때 수행단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단숨에 일치단결한 건 손오 창설 이래 한 번도 없었다고도 한다.
──이대로 손책을 조조와 대면하게 해선 안 된다!!!!
호위로 따라온 태사자와 감녕이 양쪽에서 주군의 팔을 하나씩 와락 움켜잡았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주공!!"
"미안 백부 님, 하지만 당신 표정이 무진장 위험해! 남자의 육감 첨부! 빗나간 적은 한 번도 없수다!"
"자의, 흥패!? 뭐냐 너희들 이거 못 놔!?"
"아니, 절대 놓지 마! 그대로 형님을 모시고 돌아가게 그대들은!"
"존명!!"
"잠깐 중모, 너 지금 형님을 쫓아내겠다 이거냐!? 이거 반역!? 쿠데타지! 오냐 이 자식들 죽었다고 복창해라!!"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으니 제발 지금은 부디 돌아가 주세요 형님──────!!!"
"싫.어!! 나더러 저런 보기 드문 미중년을 코앞에 냅두고 손가락 빨며 물러나라고!?"
"으악 이 사람 진짜 불 붙었다─!!"
"주공, 상대는 예순이 목전인 노인네입니다. 노인이 뭐가 좋으셔서! 동오에 깔리고 널린 게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애들인데!!"
"시끄러 이놈들아! 남자 진정 만개하는 나이는 50부터다!"
"파더콤 브라콤도 모자라 오지콤인 거냐 백부─────!!!"
마련된 자리에 냉큼 착석은 안 하고 바로 코 앞에서 난데없이 지네들끼리 난투를 개시한 - 실은 손책 혼자 날뛰고 있다 - 손오의 사절단을 주시하며 하후돈 이하 위의 가신들은 거대한 식은땀을 삐질거렸다. 손오는 근본이 조폭이란 입담은 예전부터 익히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위는 위대로 바보와 변태와 문제아를 빼면 남는 게 없는 동네지만 그래도 깡패집단보다는 백만 배쯤 낫다. 하후돈이 중원에 태어나 위에 속하게 된 것을 저어기 하늘 위 어딘가의 상제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드리고 있을 때, 45도 밑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원양."
"뭐냐, 맹덕."
"분명 손토역은 세상에도 드문 은발이라 했으렷다."
"응?"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머리칼이 곤두선 하후돈은 시선을 반사적으로 내렸다 조조의 입가에 새겨진 노골노골한 미소를 보고야 말았다.
요렇게 조그마했던 어린 시절부터 이 대책없는 사촌을 줄곧 가까이서 지켜보아 그놈의 성정에 대해 너무나, 너.무.나. 잘 아는 외눈의 맹장의 등골이 얼어붙었다.
"호오... 소패왕이라 하기에 과연 얼마나 울뚝불뚝 흉악한 자가 나타날까 여겼더니, 이건 예상을 초월하는 미인이 아닌가."
"매, 맹덕───────!!!!!!!!?"
조조, 자는 맹덕. 특이한 걸 좋아하고, 재능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미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
하후돈은 당장 감사를 물리고 싶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젊은 시절부터 사역만리에 용맹을 떨친 태사자와 '위의 장문원, 오의 감흥패'라 일컬어지는 감녕을 가지고도 불 붙은 소패왕을 제어하기란 불가능했다.
하기사 이미 13살 때 예순을 넘고도 모두 펄펄한 현역인 손견 군단 사천왕이 감당을 못하게 된 인간이긴 하다.
"그─러─니─까, 난 왕성도 허공도 고대도 우길도 죽건 말건 살건 말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거야. 상관없다구. Out. of. 안중! 나한테 필요한 건 그깟 피래미들의 목숨이 아냐. 나 손백부한테 개기면 이렇게 되십니다? 라는 본보기라고. 그놈은 수 틀리면 사람 목을 파리 퉁기듯 날리더라고 저쪽에서 진작부터 몸 사리고 벌벌 떨게 만들 악명이란 말야. 근데 쟤들은 그걸 이해 못해요!"
"군주는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움을 사야 하며 필요하면 불성실해도 몰인정해도 잔인해도 용납된다는 주장이렷다?"
"오, 역시 박학다식한 조승상. 마(馬) 군도 척하면 척이구먼."
"나름대로 애독서일세."
"동지!"
"이거 반갑군. 봉효(奉孝=곽가)가 비명에 간 뒤로 찬동해 주는 자가 있어야 말이지. 문약(文若=순욱)에겐 잔소리만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네."
"아~아,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순문약은 되게 까다롭지?"
"오에까지 소문이 났나?"
"자각 없어? 요요철철 콤비로 유명하다고. 폭주하는 주군과 열심히 옷자락 물고 늘어지는 군사."
"그대 쪽은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내 군사는 주먹에 먼저 호소하거든."
"화통한걸."
"우리가 좀 그래."
"혹시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주먹과 주먹, 드롭킥과 자이언트 스윙으로 친목을 다지기도 하나?"
"기대의 눈빛을 반짝이지 마 아저씨. 시공도 차원도 틀려."
"칫."
"유감스러워하지 말고! 그야, 아무도 배신하지 않고 아무도 버리지 않고 다 안고 갈 수 있다면야 그 이상 좋을 순 없지. 안다고."
"어디까지나 이상론일 뿐이란 게 문제지만 말일세. 현세는 난세. 물리기 전에 물어뜯지 않으면 결국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게 우리가 사는 시대일세. 하물며 위에 서는 자에게 타인의 눈물과 탄식은 숙명적으로 따라붙는 것임을, 그게 무서워 몸을 사릴 자라면 애초에 그 자리에는 왜 왔던가? 악평이 두렵고 저주가 두려워 뭉기적거리는 자는 종래엔 제 신하 하나 백성 한 명 보호하지 못한다네. 나를 바라보고 따라오는 내 사람을 건사하는데 몰인정이 대수이고 잔인함이 대수인가. 내 앞길을 가로막는 자는 모두 베어버릴 뿐일세."
"우~와, 과연 백세에 이르는 원한을 술안주로 천세까지 들이키려는 남자의 발언. 화끈해서 좋구먼. 찬성. 원한 사고 보복당할 게 무서우면서 군주를 뭔 수로 해먹겠어. 동탁처럼 뭔가 저어기 피안까지 가 버리면 진짜 곤란하지만."
"동탁은 아예 논외일세. 악명이 제어의 한도를 넘어버려 사방천지가 적이 되면 남은 일은 칼로 쑤셔지는 것뿐임을 깨닫지 못한 자의 말로의 전형으로 너무 훌륭해서 달리 할 말도 없네. 두려워하면서 배제하려는 자와 두려워는 하지만 따라오는 자의 차이는 천양지차. 언제고 어느 때고 응당 후자가 많아야 함도 모른 자에게 천하를 넘볼 자격은 없어. 주변 관리는 신경 써서 철저히 해야 하는 법이거늘."
"이를테면 군주의 기본은 채찍과 당근이다?"
"그 요약 쌈박해서 좋군."
"뭐 승상은 서주 한 건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악명은 벌어놨잖아? 지금 받는 저주만으로도 백 살까진 너끈히 살 것 같은데."
"원 세상에, 그대까지 서주인가? 지겹구먼 이제."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잖아. 너무 개자식이어서 차라리 호쾌할 지경이었다구. 그것도 재주야 재주. 덕분에 유능한 인재를 듬뿍 챙겼으니 나야 뭐 오히려 감사해야지."
"여포로 인해 도중 말을 돌려야 했으니 어떤 의미 그대 좋은 일만 해 버린 셈이군 그래."
"그닥 반갑지 않은 것도 같이 묻어오긴 했지만 말야. 유학자라던가 유학자라던가 유학자라던가 유로 시작해서 자로 끝나고 중간에 학이 들어가는 거라던가."
"유학자인가."
"유학자지."
"..............."
"..............."
"그놈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유학자들!! 지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인품이고 가문이고 따지게 생겼나! 그 자는 가세가 빈한합니다 학문이 부족합니다 인격수양이 덜 됐습니다 덕행이 모자랍니다 예의범절에 밝지 못합니다 왱알왱알왱알왱알!! 내 백성이 죽고 내 땅이 유린당할 판국에 공맹의 허망한 규율이 무슨 소용인가, 써먹을 수 있으면 부모 죽인 원수라도 데려다 써먹어야 할 이 마당에 뭐가 어째?"
"곡식은 만 섬을 삼키면서 힘은 암소만도 못하다는 공융의 소 짝이죠 뭐. 절을 45도로 해야 한다는 둥 50도로 해야 한다는 둥, 소매는 손목까지 와야 한다는 둥 손등을 덮어야 한다는 둥 시시껍절한 논쟁은 차라리 애교야 애교. 우리 쪽엔 덕행을 잣대로 가신들 재능에 등급을 매기려 든 멍청이도 있었는걸. 종국엔 너 죽고 나 죽자고 칼 들고 을러서 겨우 철회시켰어. 자명(子明=여몽) 데려올 때만 해도 내가 영감님들 달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도 못한다구. 집안이 보잘것없네 범죄자네 싹수가 노랗네 쨍알쨍알쨍알쨍알쨍알... 유능한 무장 하나 눈 빤히 뜨고 놓칠 뻔했다니까!!"
"인격 파탄 난 놈 오래 붙잡고 있으면 항차 골치 아파지는 줄이야 인정해도 좋네. 그러나 그걸 어떻게 구워삶느냐도 군주의 역량 아닌가?"
"바보와 가위는 쓰기 나름이라는 좋은 말도 있구먼!"
"바로 그걸세! 내 고충을 이해하겠나!"
"뼈가 저리도록!"
"체면 따지다 아까운 청주병을 그냥 묻을 뻔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네."
"아, 아, 스톱 스톱! 청주병 얘긴 꺼내지도 마! 질투심 끓는 거 안 보여?! 그리고 빌어먹을 오환기마병! 다시 생각해도 이가 갈린다 젠장!"
"같은 말을 동오의 수군에게 고대로 돌려주겠네.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머리 주위에 아주 말벌이 빙빙 돌더구먼. 세 배로 악화된 내 편두통을 어찌 보상할 건가, 응?"
"의원한테 가, 의.원.한.테. 화타 선생 뒀다 뭐할래."
"도끼로 머리를 쪼개야 한다는 처방을 과감히 받아들이기엔 나는 좀 나이가 들었지."
"괜찮아 안 죽어. 난 배 짼 적도 있는걸. 옛날 얘기지만."
"배와 머리가 같나?"
"다를 건 또 뭔데."
"늙은이에게 모험을 강요하지 말게나."
"이럴 때만 늙은이 행세 마시고. 실은 편두통도 승상의 일부라거나 승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거나, 그런 이유 아냐? 없으면 섭하지?"
"예리하군. 손문대가 생전 걸핏하면 팔불출 모양 장남 자랑을 그리 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어."
"아─맞다. 우리 집 영감하고 동기였지 승상은? 그래, 강동의 호랑이를 바로 근처에서 목격한 감상은?"
"가능하면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였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어떻게든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지. 솔직히 내 인생에 그때만큼 원공로(袁公路=원술)가 부럽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일세. 잘했으면 지금쯤 그대도 내 휘하일 텐데."
"소름끼칠 소리는 집어치워. 우리 집 영감이 언제까지고 남 밑에서 빈둥거릴 인간이 아니었는데 뭔 말이야. 언제 원술 턱에 한 방 날려줄까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다고."
"내가 왜 모르겠나."
"하지만, 천하의 조맹덕에게 칭찬을 받다니 나쁜 기분은 아닌걸. 아하하."
".......흐음."
"응? 왜 그렇게 쳐다봐?"
"손토역 그대, 의외로 동안이로군. 웃는 얼굴이 특히."
"우와! 남의 약점을! 안 그래도 날 숙필(叔弼=셋째 손익)로 오해하는 인간들이 많아서 열받아 죽겠는데!"
"알고 있나?"
"뭘?"
"그대 말일세. 키가 9척(207cm)이며 머리는 눈처럼 희고 호랑이의 얼굴에 포효성도 호랑이요 화등잔만한 눈은 핏빛이고 입밖으로 튀어나온 엄니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전장에서 살육한 자의 고기를 씹고 피를 마신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팽배했었다네."
"뭐야 그거 인간? 머리색밖에 비슷한 게 없잖아! 나도 키가 9척쯤 되어 봤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소문이지. 허나 효력은 대단했어. 소패왕이 출몰했다 하면 뒷걸음부터 치려드는 우리 병사를 독려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아나. 정작 그대와 부딪힌 문원(文遠=장료)은 머리색밖에 기억을 못하더군. 괴물 비슷하긴 했다거나 어쨌다거나 지리멸렬한 말을 해서 오히려 부채질을 해 버렸지 뭔가."
"내가 좀 전장에선 인간의 형상이 아니래. 그치만 승상도 만만치 않수. 삼두육비(三頭六臂)에 악귀 나찰을 수족처럼 부리고 현세의 무기는 긁힌 상처 하나 못 입히며 밤이면 밤마다 시녀를 하나씩 발기발기 찢어먹는다는 바보탱이 같은 소문이 파다합디다그려."
"인간에서 마왕으로 레벨 업인가?"
"차라리 스케일 커서 낫지 뭐.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고 항복하자고 벌벌 떠는 멍청이들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나온 거라고 이래봬도."
"서로 고생이 많았군."
"응. 실제로는 이런 미중년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기왕 피터지게 싸울 바엔 미인이 좋잖아 역시?"
"동감이야.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화의를 맺었어도 좋았을 걸 그랬군."
"나도 진작 알았으면 새벽같이 날아왔지. 특산주 한 통이라도 들고 오는 거였는데, 체엣."
"듣자하니 그대의 자당(慈堂)께서는 과거 절강제일미로 명성이 높으셨다 하더라만, 자당을 닮은 겐가?"
"응. 정실 소생 5명 중에서 내가 그나마 제일."
"과연. 그리고 정처는 동오 제일의 미녀. 눈부신 한 쌍이로군."
"에, 정연(靖姸=대교) 말야? 승상, 관심 있... 었겠군, 물어보려던 내가 바보다. 위의 미녀란 미녀는 다 잡수시고도 모자라서 남의 나라에까지 눈독 들이십니까그려."
"다다익선이라 하였네. 달도 울고 가고 꽃도 수줍어 할 미녀가 시서화에 능하고 재기까지 풍부하다면 식지가 동하는 게 남자 아니겠나?"
"욕심도 많으셔. 천하제일미라는 원본초(袁本初=원소) 둘째 며느리마저 집어삼켰으면 됐지."
"누명이 지나치네. 엽락(燁珞=진씨甄氏) 그 아이는 자환(子桓=조비)이 데려갔거늘."
"승상이 한 발만 빨랐어도 지금쯤 열네 번째 처가 되어 있을 줄 세상이 다 아네요. 하지만 제발 부탁인데 정연은 관둬. 그 여자가 스물 다 되도록 집에서 썩은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 거야. 장담하는데 나밖에 감당 못해."
"아내 자랑인가?"
"아니, 엄연한 사실. 나도 공근만 아니었으면 애초에 혼인도 안 했어. 성격이 좀 거지 같아야지?"
"그 말까지 듣고 보니 호기심이 더욱 끓긴 하네만, 공근인가. 바로 뒤의 흑발 미인이 소패왕의 정진정명 오른팔이자 전속 마누라로 명망 높은 주공근이렷다?"
"중모 빼고 전부 흑발인데."
"따지지 말게. 화의의 표시로 조정에 출사시킬 생각은 없나? 그 원술마저 잠시 휘하에 두는 즐거움을 누렸다는데 이 조맹덕이 안된다면 여러 가지로 불공평하지 않은가."
"왜 하필 공근?"
"취향이네."
"보는 눈은 있어서. 하지만 안 돼, 공근은 못 줘. 자강(子綱=장굉) 한 번 강탈해가려고 했었으면 됐지, 또 뭘 바래?"
"대신 고래심줄처럼 버팅겨서 장군직을 끝끝내 뽑아간 그대도 오십보백보네."
"뭐,조맹덕의 엄마 하후돈 장군 빌려준다면 석 달 정도 맞대여는 고려해 볼게."
"호오? 왜 하필 원양인가?"
"취향이야."
"보는 눈은 있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인은 세상의 보배라는 데 승상도 이의는 없을 거 아냐."
"이의는 무슨. 발 벗고 찬동하겠네."
"소녀건 소년이건 처녀건 청년이건 중년이건 노년이건 '미'가 붙은 종족이라면 버릴 건 한 개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말을. 새삼스러우나 그대, 원공로를 참아내느라 수고가 많았겠군."
"척하면 척이네 승상! 원본초만 됐어도 요~만큼은 생각해 봤을 텐데, 같은 집안이면서 이건 순 원숭이지 심지어 무능하니 뭐 볼 맛이 나길 하나 상대할 맛이 있나!"
"얼굴이 안 되면 머리나마 뛰어나고, 머리가 안 되면 얼굴이라도 볼 만해야 하겠거늘."
"그거야 그거~아 참 맞다 승상, 한동안 무신(武神=관우) 끼고 산 적 있었잖아? 어땠어? 응?"
"후후후... 알고 싶나? 알고 싶나~?"
"흥미진진이올시다!"
"9척에 이르는 키와 그에 걸맞는 당당한 체구, 떡 벌어진 어깨와 가슴, 잘 익은 대추빛 얼굴과 한시도 벗지 않는 녹색 전포의 완벽한 조화도 황홀하였으나, 특히 배꼽 아래 세 치까지 우아하게 늘어진 수염의 감촉이 천하일품...!! 아직도 그 감촉이 선명하다네!"
"큭, 좋았겠다─! 미염공의 수염─!! 나도 만져보고 싶어─!!"
"그럼 뭐하나. 한수정후를 제수하고 미녀를 열에 금은보화를 바리바리 갖다바치고 사나흘돌이로 연회를 열고 적토마저 안겨주며 그리도 공을 들였건만 뒤도 안 보고 날아버렸는데! 오죽 경계했으면 마지막 가는 길에 내 선물조차 직접 받아주지 않았다네! 네 이놈 유비이이이이이! 혼자 수염 미인 끼고 즐기면 기분이 째지더냐!!"
"옳소! 매력 수염은 많은 이가 감상하고 널리 즐기라고 있는 거다─!! 독점 반대─!!!"
"알아주는 건가!"
"물론이지!"
아침 나절부터 해가 서산으로 까빡 넘어가도록 하라는 조약 조인은 저리 던져두고 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 끝도 없이 떠들어댄 위와 오의 군주는, 여기서 눈을 반짝이고 씨익 웃으며 서로의 손을 굳게 움켜쥐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큐에 통하는 상대는 난생 처음일세."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이제야 나타난 거야?"
"헤어져야 함이 미리부터 아쉬워지는군."
"설마 내일 당장 철수하겠다던가 그딴 야박한 소리를 꺼낼 생각은 아니겠지? 하다못해 사흘은 있어줘야 할 거 아냐. 사흘도 짧지만."
잠시 눈길이 부딪히며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깬 사람은 조조였다.
"어떤가, 손토역. 눈 딱 감고 내게 시집 올 생각은 없나?"
"우와 싫어라 승상, 제안은 고마운데, 나 일단은 마누라도 아들도 있는 몸이라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좀 미루도록 하고, 슬슬 날도 저물었으니 나머지는 막사에 들어가서 잇지."
"찬성─! 손오 명물 대게, 먹어보겠어?"
"얼마든지 환영일세. 그대, 수(酥)를 시식할 요량은 있는가?"
"엣, 설마 소문으로만 들었던 북방에서 들여왔다는 그거? 좋아!"
20년의 세대차를 뛰어넘어 사이좋게 손을 잡고 막사 안으로 사라지는 주군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몸도 마음도 지쳐 녹아떨어진 위와 오의 가신들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생각하였다.
우린 당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딴죽을 걸어야 하는 걸까.
당초의 험악한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위와 오가 한 덩어리가 되어 누구나가 등을 두드리며 서로의 노고를 위안하고 사나이의 눈물을 삼키는 분위기가 충만했을 때, 어질어질한 머리를 감싸안고 항례의 환약을 입안에 털어넣는 주유에게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주도독."
"무슨 일이시지요, 하후장군."
"외람되오나, 지금 삼킨 둥근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아도 실례가 되지 않겠소이까?"
"화원화(華元化=화타) 선생이 처방해 주신 위장약입니다만."
"..........으음."
주유는 잠자코 꽁꽁 싸인 봉지 하나를 하후돈의 눈앞에 디밀었다.
"................드시겠습니까."
"....................감사히 받겠소."
그리고 다음날.
밤새 마주 앉아 골때리는 주군들을 오징어 대신 씹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들 나름대로 굳건한 우정을 쌓은 최측근 두 사람은, 해가 중천에 떠도 도시 막사에서 나올 기색을 보이지 않는 주군들을 기다리며 평생분의 인내심을 다 써 버린 후 보통은 줘도 안 써먹는 특권을 십분 발휘하여 무조건 떠다밀고 들어갔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배, 백부───────!!!!!?"
"맹덕──────────!!!!!!"
한쪽이 눈으로 피를 토하고 한쪽이 위를 움켜쥐고 구석에 머리를 박거나 말거나, 당사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여전히 네롱내롱내니네니 한 쌍의 원앙처럼 다정히도 환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역시 나이는 공으로 먹는 게 아닌가 봐. 진짜 끝내줬어 승상. 이게 연륜의 힘?"
"천만에. 역시 젊음은 따라가질 못하겠더군. 원 아직도 허리가 지끈거리니."
연륜과 유연성 VS 패기와 격렬함.
전장에서도 도박판에서도 침대 위에서도, 플레이 스타일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법.
여기서 까닥하면 국제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의문 한 가지
.......누가 위였던 거냐.
조조의 위와 손책의 오는 치열한 격전 1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208년인데 왜 손책이 살아 있냐고 따지면 못쓴다. 이야말로 소위 일본 동인계의 패러렐이요 서양 슬래쉬의 ALTERNATIVE UNIVERSE요 역사의 IF라 불리는 물건인즉슨, 대륙의 강인한 감성이 흘러넘치는 화봉요원을 읽고 난 필자에게 이미 두려움은 없다. 여포가 우아한 미중년이건 조운이 뜬금없이 사마의와 놀고 있건 삼국시대 군사들이 모두 동문이건 손책의 강동평정전 무렵에 조운이 강동에서 설치고 다니건 아무렴 어떠냐 배째라 배째인 것이다.
하여간.
연륜과 유연함의 조조 VS 패기와 격렬함의 손책. 오지게 성질 더러운 천재끼리의 격돌은 장강 북쪽을 중심으로 대지와 강물을 피 터지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전쟁이라면 이골이 나다 못해 지긋지긋하도록 치러봤지만, 양측 모두 이토록 맘 먹은 대로 안 되는 상대는 난생 처음이었다. 이쪽을 찌를까 하면 저쪽을 찔러오고 여기 있을까 하면 저기서 나타난다. 총대장들의 사고 패턴이 너무나 닮은 나머지 흡사 은혼 제 75훈의 얼레 이거 작문? 공방과 같은 꼴로 빙글빙글 물리고 물기를 반복한 끝에, 싸울 보람 나는 라이벌이고 나발이고 저 쉐이 반드시 죽인다의 동족 혐오의 경지로 승화해 있었다.
걸핏하면 이를 복복 갈며 '빌어먹을 광견 꼬맹이'로 시작하는 오만 육두문자를 고함질러대는 조조와 툭하면 '지랄맞은 영감탱이'가 그나마 제일 온건할 갖은 욕설을 뱉어내며 날뛰는 손책을 꼬박 1년 동안 감당한 끝에 이대로는 본인들의 정신건강은 물론이거니와 위와 오 모두 피폐해 쓰러질 것을 우려한 신하들의 상소로, 피는 단단히 올랐지만 어디서 물러나야 할지 정확히 가늠할 줄 아는 주군들의 머리도 좀 식어, 결국 위와 오는 휴전하고 화평 조약을 맺게 되었다. 거기, 강인한 전개라고 하지 말자.
진짜 문제는 쌍방 주군의 조약 조인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아까부터 온 몸으로 본의가 아니라는 불만의 오라를 뿜어내고 오만 욕지거리를 입안으로 중얼거리며 약속한 대면 장소를 향해 말을 몰고 있는 의형이 제발 명색이 화해의 자리에서 칼만은 뽑지 않기를 기도하는 주유의 위 언저리가 또다시 쿡쿡 쑤셨다.
그런데 모처의 성명판정에 의하면 주유(周瑜)는 이름부터 단명에 과부상이요 위통과 위궤양을 극력 주의할 팔자라는데 사실일런지?
드디어 약속 장소인 위의 진영이 눈에 들어왔다.
휘날리는 깃발. 날카롭게 번쩍이는 창검. 좌우로 늘어선 위의 이름높은 무장들이 당당하고도 늠름하다.
그리고 한가운데에 오만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떡 버티고 앉은 중원의 패자, 조조의 모습이 있었다.
Kill Kill Kill Kill 모드 전개 중에도 역시 고양이도 죽이는 호기심은 배겨내질 못했는지, 손책은 한 손으로 눈 위에 차양막을 치고 조조를 주시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소패왕의 시력은 양쪽 모두 4.0이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수염의 올올도 보인다.
"헤에~저게 조조란 말이지... 흐응."
"백부?"
예상과는 반대로 목소리에 듬뿍 묻어나는 흥미진진함을 감지한 주유가 의형 겸 주군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여기서 주의 사항. 조조는 필자의 취미에 의해 창천항로 버전이다. Crime against humanity의 한 떨기 무르익은 꽃.
마상에서 반쯤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살피는 손책의 머리 위에도 핑크빛 파스텔톤의 무수한 꽃이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잠깐, 꽃!!?
형님의 옆에 붙어 있던 손권이 허걱, 하는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시퍼렇게 질린 수행원들이 아와와와하건 말건, 실로 주유도 몇 년만에 보는 헤실헤실 풀어진 얼굴로 손책은 달뜨게 중얼거렸다.
"....좋네...... 미중년......"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엣!!!!!"
오의 가신들이 실념하고 있었던 게 한 가지 있었다.
그들의 주군, 손백부는 구제불능의 파더콤에 뼛속까지 미인밝힘증이라는 사실을.
그때 수행단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단숨에 일치단결한 건 손오 창설 이래 한 번도 없었다고도 한다.
──이대로 손책을 조조와 대면하게 해선 안 된다!!!!
호위로 따라온 태사자와 감녕이 양쪽에서 주군의 팔을 하나씩 와락 움켜잡았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주공!!"
"미안 백부 님, 하지만 당신 표정이 무진장 위험해! 남자의 육감 첨부! 빗나간 적은 한 번도 없수다!"
"자의, 흥패!? 뭐냐 너희들 이거 못 놔!?"
"아니, 절대 놓지 마! 그대로 형님을 모시고 돌아가게 그대들은!"
"존명!!"
"잠깐 중모, 너 지금 형님을 쫓아내겠다 이거냐!? 이거 반역!? 쿠데타지! 오냐 이 자식들 죽었다고 복창해라!!"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으니 제발 지금은 부디 돌아가 주세요 형님──────!!!"
"싫.어!! 나더러 저런 보기 드문 미중년을 코앞에 냅두고 손가락 빨며 물러나라고!?"
"으악 이 사람 진짜 불 붙었다─!!"
"주공, 상대는 예순이 목전인 노인네입니다. 노인이 뭐가 좋으셔서! 동오에 깔리고 널린 게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애들인데!!"
"시끄러 이놈들아! 남자 진정 만개하는 나이는 50부터다!"
"파더콤 브라콤도 모자라 오지콤인 거냐 백부─────!!!"
마련된 자리에 냉큼 착석은 안 하고 바로 코 앞에서 난데없이 지네들끼리 난투를 개시한 - 실은 손책 혼자 날뛰고 있다 - 손오의 사절단을 주시하며 하후돈 이하 위의 가신들은 거대한 식은땀을 삐질거렸다. 손오는 근본이 조폭이란 입담은 예전부터 익히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위는 위대로 바보와 변태와 문제아를 빼면 남는 게 없는 동네지만 그래도 깡패집단보다는 백만 배쯤 낫다. 하후돈이 중원에 태어나 위에 속하게 된 것을 저어기 하늘 위 어딘가의 상제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드리고 있을 때, 45도 밑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원양."
"뭐냐, 맹덕."
"분명 손토역은 세상에도 드문 은발이라 했으렷다."
"응?"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머리칼이 곤두선 하후돈은 시선을 반사적으로 내렸다 조조의 입가에 새겨진 노골노골한 미소를 보고야 말았다.
요렇게 조그마했던 어린 시절부터 이 대책없는 사촌을 줄곧 가까이서 지켜보아 그놈의 성정에 대해 너무나, 너.무.나. 잘 아는 외눈의 맹장의 등골이 얼어붙었다.
"호오... 소패왕이라 하기에 과연 얼마나 울뚝불뚝 흉악한 자가 나타날까 여겼더니, 이건 예상을 초월하는 미인이 아닌가."
"매, 맹덕───────!!!!!!!!?"
조조, 자는 맹덕. 특이한 걸 좋아하고, 재능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미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
하후돈은 당장 감사를 물리고 싶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젊은 시절부터 사역만리에 용맹을 떨친 태사자와 '위의 장문원, 오의 감흥패'라 일컬어지는 감녕을 가지고도 불 붙은 소패왕을 제어하기란 불가능했다.
하기사 이미 13살 때 예순을 넘고도 모두 펄펄한 현역인 손견 군단 사천왕이 감당을 못하게 된 인간이긴 하다.
"그─러─니─까, 난 왕성도 허공도 고대도 우길도 죽건 말건 살건 말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거야. 상관없다구. Out. of. 안중! 나한테 필요한 건 그깟 피래미들의 목숨이 아냐. 나 손백부한테 개기면 이렇게 되십니다? 라는 본보기라고. 그놈은 수 틀리면 사람 목을 파리 퉁기듯 날리더라고 저쪽에서 진작부터 몸 사리고 벌벌 떨게 만들 악명이란 말야. 근데 쟤들은 그걸 이해 못해요!"
"군주는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움을 사야 하며 필요하면 불성실해도 몰인정해도 잔인해도 용납된다는 주장이렷다?"
"오, 역시 박학다식한 조승상. 마(馬) 군도 척하면 척이구먼."
"나름대로 애독서일세."
"동지!"
"이거 반갑군. 봉효(奉孝=곽가)가 비명에 간 뒤로 찬동해 주는 자가 있어야 말이지. 문약(文若=순욱)에겐 잔소리만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네."
"아~아,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순문약은 되게 까다롭지?"
"오에까지 소문이 났나?"
"자각 없어? 요요철철 콤비로 유명하다고. 폭주하는 주군과 열심히 옷자락 물고 늘어지는 군사."
"그대 쪽은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내 군사는 주먹에 먼저 호소하거든."
"화통한걸."
"우리가 좀 그래."
"혹시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주먹과 주먹, 드롭킥과 자이언트 스윙으로 친목을 다지기도 하나?"
"기대의 눈빛을 반짝이지 마 아저씨. 시공도 차원도 틀려."
"칫."
"유감스러워하지 말고! 그야, 아무도 배신하지 않고 아무도 버리지 않고 다 안고 갈 수 있다면야 그 이상 좋을 순 없지. 안다고."
"어디까지나 이상론일 뿐이란 게 문제지만 말일세. 현세는 난세. 물리기 전에 물어뜯지 않으면 결국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게 우리가 사는 시대일세. 하물며 위에 서는 자에게 타인의 눈물과 탄식은 숙명적으로 따라붙는 것임을, 그게 무서워 몸을 사릴 자라면 애초에 그 자리에는 왜 왔던가? 악평이 두렵고 저주가 두려워 뭉기적거리는 자는 종래엔 제 신하 하나 백성 한 명 보호하지 못한다네. 나를 바라보고 따라오는 내 사람을 건사하는데 몰인정이 대수이고 잔인함이 대수인가. 내 앞길을 가로막는 자는 모두 베어버릴 뿐일세."
"우~와, 과연 백세에 이르는 원한을 술안주로 천세까지 들이키려는 남자의 발언. 화끈해서 좋구먼. 찬성. 원한 사고 보복당할 게 무서우면서 군주를 뭔 수로 해먹겠어. 동탁처럼 뭔가 저어기 피안까지 가 버리면 진짜 곤란하지만."
"동탁은 아예 논외일세. 악명이 제어의 한도를 넘어버려 사방천지가 적이 되면 남은 일은 칼로 쑤셔지는 것뿐임을 깨닫지 못한 자의 말로의 전형으로 너무 훌륭해서 달리 할 말도 없네. 두려워하면서 배제하려는 자와 두려워는 하지만 따라오는 자의 차이는 천양지차. 언제고 어느 때고 응당 후자가 많아야 함도 모른 자에게 천하를 넘볼 자격은 없어. 주변 관리는 신경 써서 철저히 해야 하는 법이거늘."
"이를테면 군주의 기본은 채찍과 당근이다?"
"그 요약 쌈박해서 좋군."
"뭐 승상은 서주 한 건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악명은 벌어놨잖아? 지금 받는 저주만으로도 백 살까진 너끈히 살 것 같은데."
"원 세상에, 그대까지 서주인가? 지겹구먼 이제."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잖아. 너무 개자식이어서 차라리 호쾌할 지경이었다구. 그것도 재주야 재주. 덕분에 유능한 인재를 듬뿍 챙겼으니 나야 뭐 오히려 감사해야지."
"여포로 인해 도중 말을 돌려야 했으니 어떤 의미 그대 좋은 일만 해 버린 셈이군 그래."
"그닥 반갑지 않은 것도 같이 묻어오긴 했지만 말야. 유학자라던가 유학자라던가 유학자라던가 유로 시작해서 자로 끝나고 중간에 학이 들어가는 거라던가."
"유학자인가."
"유학자지."
"..............."
"..............."
"그놈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유학자들!! 지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인품이고 가문이고 따지게 생겼나! 그 자는 가세가 빈한합니다 학문이 부족합니다 인격수양이 덜 됐습니다 덕행이 모자랍니다 예의범절에 밝지 못합니다 왱알왱알왱알왱알!! 내 백성이 죽고 내 땅이 유린당할 판국에 공맹의 허망한 규율이 무슨 소용인가, 써먹을 수 있으면 부모 죽인 원수라도 데려다 써먹어야 할 이 마당에 뭐가 어째?"
"곡식은 만 섬을 삼키면서 힘은 암소만도 못하다는 공융의 소 짝이죠 뭐. 절을 45도로 해야 한다는 둥 50도로 해야 한다는 둥, 소매는 손목까지 와야 한다는 둥 손등을 덮어야 한다는 둥 시시껍절한 논쟁은 차라리 애교야 애교. 우리 쪽엔 덕행을 잣대로 가신들 재능에 등급을 매기려 든 멍청이도 있었는걸. 종국엔 너 죽고 나 죽자고 칼 들고 을러서 겨우 철회시켰어. 자명(子明=여몽) 데려올 때만 해도 내가 영감님들 달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도 못한다구. 집안이 보잘것없네 범죄자네 싹수가 노랗네 쨍알쨍알쨍알쨍알쨍알... 유능한 무장 하나 눈 빤히 뜨고 놓칠 뻔했다니까!!"
"인격 파탄 난 놈 오래 붙잡고 있으면 항차 골치 아파지는 줄이야 인정해도 좋네. 그러나 그걸 어떻게 구워삶느냐도 군주의 역량 아닌가?"
"바보와 가위는 쓰기 나름이라는 좋은 말도 있구먼!"
"바로 그걸세! 내 고충을 이해하겠나!"
"뼈가 저리도록!"
"체면 따지다 아까운 청주병을 그냥 묻을 뻔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네."
"아, 아, 스톱 스톱! 청주병 얘긴 꺼내지도 마! 질투심 끓는 거 안 보여?! 그리고 빌어먹을 오환기마병! 다시 생각해도 이가 갈린다 젠장!"
"같은 말을 동오의 수군에게 고대로 돌려주겠네.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머리 주위에 아주 말벌이 빙빙 돌더구먼. 세 배로 악화된 내 편두통을 어찌 보상할 건가, 응?"
"의원한테 가, 의.원.한.테. 화타 선생 뒀다 뭐할래."
"도끼로 머리를 쪼개야 한다는 처방을 과감히 받아들이기엔 나는 좀 나이가 들었지."
"괜찮아 안 죽어. 난 배 짼 적도 있는걸. 옛날 얘기지만."
"배와 머리가 같나?"
"다를 건 또 뭔데."
"늙은이에게 모험을 강요하지 말게나."
"이럴 때만 늙은이 행세 마시고. 실은 편두통도 승상의 일부라거나 승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거나, 그런 이유 아냐? 없으면 섭하지?"
"예리하군. 손문대가 생전 걸핏하면 팔불출 모양 장남 자랑을 그리 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어."
"아─맞다. 우리 집 영감하고 동기였지 승상은? 그래, 강동의 호랑이를 바로 근처에서 목격한 감상은?"
"가능하면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였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어떻게든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지. 솔직히 내 인생에 그때만큼 원공로(袁公路=원술)가 부럽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일세. 잘했으면 지금쯤 그대도 내 휘하일 텐데."
"소름끼칠 소리는 집어치워. 우리 집 영감이 언제까지고 남 밑에서 빈둥거릴 인간이 아니었는데 뭔 말이야. 언제 원술 턱에 한 방 날려줄까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다고."
"내가 왜 모르겠나."
"하지만, 천하의 조맹덕에게 칭찬을 받다니 나쁜 기분은 아닌걸. 아하하."
".......흐음."
"응? 왜 그렇게 쳐다봐?"
"손토역 그대, 의외로 동안이로군. 웃는 얼굴이 특히."
"우와! 남의 약점을! 안 그래도 날 숙필(叔弼=셋째 손익)로 오해하는 인간들이 많아서 열받아 죽겠는데!"
"알고 있나?"
"뭘?"
"그대 말일세. 키가 9척(207cm)이며 머리는 눈처럼 희고 호랑이의 얼굴에 포효성도 호랑이요 화등잔만한 눈은 핏빛이고 입밖으로 튀어나온 엄니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전장에서 살육한 자의 고기를 씹고 피를 마신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팽배했었다네."
"뭐야 그거 인간? 머리색밖에 비슷한 게 없잖아! 나도 키가 9척쯤 되어 봤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소문이지. 허나 효력은 대단했어. 소패왕이 출몰했다 하면 뒷걸음부터 치려드는 우리 병사를 독려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아나. 정작 그대와 부딪힌 문원(文遠=장료)은 머리색밖에 기억을 못하더군. 괴물 비슷하긴 했다거나 어쨌다거나 지리멸렬한 말을 해서 오히려 부채질을 해 버렸지 뭔가."
"내가 좀 전장에선 인간의 형상이 아니래. 그치만 승상도 만만치 않수. 삼두육비(三頭六臂)에 악귀 나찰을 수족처럼 부리고 현세의 무기는 긁힌 상처 하나 못 입히며 밤이면 밤마다 시녀를 하나씩 발기발기 찢어먹는다는 바보탱이 같은 소문이 파다합디다그려."
"인간에서 마왕으로 레벨 업인가?"
"차라리 스케일 커서 낫지 뭐.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고 항복하자고 벌벌 떠는 멍청이들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나온 거라고 이래봬도."
"서로 고생이 많았군."
"응. 실제로는 이런 미중년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기왕 피터지게 싸울 바엔 미인이 좋잖아 역시?"
"동감이야.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화의를 맺었어도 좋았을 걸 그랬군."
"나도 진작 알았으면 새벽같이 날아왔지. 특산주 한 통이라도 들고 오는 거였는데, 체엣."
"듣자하니 그대의 자당(慈堂)께서는 과거 절강제일미로 명성이 높으셨다 하더라만, 자당을 닮은 겐가?"
"응. 정실 소생 5명 중에서 내가 그나마 제일."
"과연. 그리고 정처는 동오 제일의 미녀. 눈부신 한 쌍이로군."
"에, 정연(靖姸=대교) 말야? 승상, 관심 있... 었겠군, 물어보려던 내가 바보다. 위의 미녀란 미녀는 다 잡수시고도 모자라서 남의 나라에까지 눈독 들이십니까그려."
"다다익선이라 하였네. 달도 울고 가고 꽃도 수줍어 할 미녀가 시서화에 능하고 재기까지 풍부하다면 식지가 동하는 게 남자 아니겠나?"
"욕심도 많으셔. 천하제일미라는 원본초(袁本初=원소) 둘째 며느리마저 집어삼켰으면 됐지."
"누명이 지나치네. 엽락(燁珞=진씨甄氏) 그 아이는 자환(子桓=조비)이 데려갔거늘."
"승상이 한 발만 빨랐어도 지금쯤 열네 번째 처가 되어 있을 줄 세상이 다 아네요. 하지만 제발 부탁인데 정연은 관둬. 그 여자가 스물 다 되도록 집에서 썩은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 거야. 장담하는데 나밖에 감당 못해."
"아내 자랑인가?"
"아니, 엄연한 사실. 나도 공근만 아니었으면 애초에 혼인도 안 했어. 성격이 좀 거지 같아야지?"
"그 말까지 듣고 보니 호기심이 더욱 끓긴 하네만, 공근인가. 바로 뒤의 흑발 미인이 소패왕의 정진정명 오른팔이자 전속 마누라로 명망 높은 주공근이렷다?"
"중모 빼고 전부 흑발인데."
"따지지 말게. 화의의 표시로 조정에 출사시킬 생각은 없나? 그 원술마저 잠시 휘하에 두는 즐거움을 누렸다는데 이 조맹덕이 안된다면 여러 가지로 불공평하지 않은가."
"왜 하필 공근?"
"취향이네."
"보는 눈은 있어서. 하지만 안 돼, 공근은 못 줘. 자강(子綱=장굉) 한 번 강탈해가려고 했었으면 됐지, 또 뭘 바래?"
"대신 고래심줄처럼 버팅겨서 장군직을 끝끝내 뽑아간 그대도 오십보백보네."
"뭐,
"호오? 왜 하필 원양인가?"
"취향이야."
"보는 눈은 있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인은 세상의 보배라는 데 승상도 이의는 없을 거 아냐."
"이의는 무슨. 발 벗고 찬동하겠네."
"소녀건 소년이건 처녀건 청년이건 중년이건 노년이건 '미'가 붙은 종족이라면 버릴 건 한 개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말을. 새삼스러우나 그대, 원공로를 참아내느라 수고가 많았겠군."
"척하면 척이네 승상! 원본초만 됐어도 요~만큼은 생각해 봤을 텐데, 같은 집안이면서 이건 순 원숭이지 심지어 무능하니 뭐 볼 맛이 나길 하나 상대할 맛이 있나!"
"얼굴이 안 되면 머리나마 뛰어나고, 머리가 안 되면 얼굴이라도 볼 만해야 하겠거늘."
"그거야 그거~아 참 맞다 승상, 한동안 무신(武神=관우) 끼고 산 적 있었잖아? 어땠어? 응?"
"후후후... 알고 싶나? 알고 싶나~?"
"흥미진진이올시다!"
"9척에 이르는 키와 그에 걸맞는 당당한 체구, 떡 벌어진 어깨와 가슴, 잘 익은 대추빛 얼굴과 한시도 벗지 않는 녹색 전포의 완벽한 조화도 황홀하였으나, 특히 배꼽 아래 세 치까지 우아하게 늘어진 수염의 감촉이 천하일품...!! 아직도 그 감촉이 선명하다네!"
"큭, 좋았겠다─! 미염공의 수염─!! 나도 만져보고 싶어─!!"
"그럼 뭐하나. 한수정후를 제수하고 미녀를 열에 금은보화를 바리바리 갖다바치고 사나흘돌이로 연회를 열고 적토마저 안겨주며 그리도 공을 들였건만 뒤도 안 보고 날아버렸는데! 오죽 경계했으면 마지막 가는 길에 내 선물조차 직접 받아주지 않았다네! 네 이놈 유비이이이이이! 혼자 수염 미인 끼고 즐기면 기분이 째지더냐!!"
"옳소! 매력 수염은 많은 이가 감상하고 널리 즐기라고 있는 거다─!! 독점 반대─!!!"
"알아주는 건가!"
"물론이지!"
아침 나절부터 해가 서산으로 까빡 넘어가도록 하라는 조약 조인은 저리 던져두고 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 끝도 없이 떠들어댄 위와 오의 군주는, 여기서 눈을 반짝이고 씨익 웃으며 서로의 손을 굳게 움켜쥐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큐에 통하는 상대는 난생 처음일세."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이제야 나타난 거야?"
"헤어져야 함이 미리부터 아쉬워지는군."
"설마 내일 당장 철수하겠다던가 그딴 야박한 소리를 꺼낼 생각은 아니겠지? 하다못해 사흘은 있어줘야 할 거 아냐. 사흘도 짧지만."
잠시 눈길이 부딪히며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깬 사람은 조조였다.
"어떤가, 손토역. 눈 딱 감고 내게 시집 올 생각은 없나?"
"우와 싫어라 승상, 제안은 고마운데, 나 일단은 마누라도 아들도 있는 몸이라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좀 미루도록 하고, 슬슬 날도 저물었으니 나머지는 막사에 들어가서 잇지."
"찬성─! 손오 명물 대게, 먹어보겠어?"
"얼마든지 환영일세. 그대, 수(酥)를 시식할 요량은 있는가?"
"엣, 설마 소문으로만 들었던 북방에서 들여왔다는 그거? 좋아!"
20년의 세대차를 뛰어넘어 사이좋게 손을 잡고 막사 안으로 사라지는 주군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몸도 마음도 지쳐 녹아떨어진 위와 오의 가신들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생각하였다.
우린 당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딴죽을 걸어야 하는 걸까.
당초의 험악한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위와 오가 한 덩어리가 되어 누구나가 등을 두드리며 서로의 노고를 위안하고 사나이의 눈물을 삼키는 분위기가 충만했을 때, 어질어질한 머리를 감싸안고 항례의 환약을 입안에 털어넣는 주유에게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주도독."
"무슨 일이시지요, 하후장군."
"외람되오나, 지금 삼킨 둥근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아도 실례가 되지 않겠소이까?"
"화원화(華元化=화타) 선생이 처방해 주신 위장약입니다만."
"..........으음."
주유는 잠자코 꽁꽁 싸인 봉지 하나를 하후돈의 눈앞에 디밀었다.
"................드시겠습니까."
"....................감사히 받겠소."
그리고 다음날.
밤새 마주 앉아 골때리는 주군들을 오징어 대신 씹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들 나름대로 굳건한 우정을 쌓은 최측근 두 사람은, 해가 중천에 떠도 도시 막사에서 나올 기색을 보이지 않는 주군들을 기다리며 평생분의 인내심을 다 써 버린 후 보통은 줘도 안 써먹는 특권을 십분 발휘하여 무조건 떠다밀고 들어갔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배, 백부───────!!!!!?"
"맹덕──────────!!!!!!"
한쪽이 눈으로 피를 토하고 한쪽이 위를 움켜쥐고 구석에 머리를 박거나 말거나, 당사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여전히 네롱내롱내니네니 한 쌍의 원앙처럼 다정히도 환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역시 나이는 공으로 먹는 게 아닌가 봐. 진짜 끝내줬어 승상. 이게 연륜의 힘?"
"천만에. 역시 젊음은 따라가질 못하겠더군. 원 아직도 허리가 지끈거리니."
연륜과 유연성 VS 패기와 격렬함.
전장에서도 도박판에서도 침대 위에서도, 플레이 스타일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법.
여기서 까닥하면 국제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의문 한 가지
.......누가 위였던 거냐.
(註 1) 마(馬) 군 : 중국에서는 마키아벨리를 馬基雅弗利로 표기한다. 에, 시공이 틀려? AU에서 뭘 기대하나 당신?
(註 2) 덕분에 유능한 인재를 듬뿍 챙겼으니 나야 뭐 오히려 감사해야지 : 손책 휘하의 문관들은 서주를 비롯한 중원의 대란을 피해 강동으로 피난 온 사인(士人)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손오 정치의 2대 브레인 장소와 장굉 역시 그런 케이스.
(註 3) 덕행을 잣대로 가신들 재능에 등급을 매기려 든 멍청이 : 실제로 기염(曁艶)이 손오 정권의 고관들이 품행방정은커녕 심히 문란한 것을 개탄하고 등급을 매겨 덕행이 모자라는 자를 파면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225년 경의 일이지만 슬그머니 갖다 썼음. 패러렐이니까. (그 말로 모든 게 용서되리라 생각하는 거냐 너;) 하지만 세상에 톱이 손책과 손권이면서 그 밑이 품행이 방정하길 바란다니 무슨 배짱이냐?
(註 4) 난 배 짼 적도 있는걸 : 또 <강동의 새벽> 네타. (아마도) 급성맹장염으로 오락가락하는 손책을 화타 선생이 치료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註 5) 수(酥) : 치즈의 일종. 창천항로에서도 둥글게 뭉친 걸 우물우물 씹으시는 조조 님이 등장하심.
다 썼다─!!! (털푸덕<-죽었음) 중간 대화가 영 어색해도 파탄나도 대충 넘어갑시다. 다듬을 기력 따위 남아 있지 않아! orz
역사를 가지고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긴 하지만, 불탈 때가 아니면 못 쓴다는 진리에 의해 그냥 배째기로 했음. 지하에 계신 삼국시대 무장 여러분 정말로 죄송합니다. 당신들이 모에의 덩어리인 게 나쁜 거예요 (뒤집어씌우기)
언젠가 조조 님과 손책 형님이 실제로 대면했으면 순식간에 마음이 맞아 손 맞잡고 알콩달콩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던가 동족혐오의 피바람이 불어치던가 둘 중 하나, 중간은 결코 없을 거라고 단언한 적이 있는데, 본편은 지벨 님의 요청에 의한 - 사나다테에 눈이 멀었다고도 한다; - 사이좋은 버전임. 언젠가는 피바람 버전도 꼭 쓰고야 말리...!!
(무덤을 파라 무덤을 파)
208년은 실제 역사에서는 적벽대전이 터진 해. 손책이 살아 있었으면 적벽대전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기에, 적벽대전 이후 214년 경에 발발한 합비를 중심으로 한 위오격돌전을 조금 앞으로 당겨봤음. 아니 잠깐 적벽대전이 없으면 촉한도 없는 거 아냐!? ;;;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뭐 와룡과 봉추가 알아서 어떻게든 했겠지라... 미안 유비 큰형님;; 하지만 여기선 당신이 최강이니까...;;;
208년이라면 조조 님은 만으로 쉰 셋(155년 생), 손책은 역시 만으로 서른 셋(175년 생)이다. ....좋을 나이로세. (슈릅)
여왕 受 속성끼리 어느 쪽이 위였는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음.
돈형과 주유가 어느 틈엔가 동지가 되어 있는 건 그냥 내 취미다. 한쪽은 엄마, 한쪽은 마누라. (爆) 마찬가지로 조조 님이 관우로 열변을 토하시는 것도 순 내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