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늦은 천공의 성 라퓨타. (부제 : 거기 처자 그 북의 이름이 무엇인고)

보거나 혹은 죽거나 | 2007/03/26 18:33

뒷북이지 뭐긴 뭐겠수. (...)


항례의 한 줄 감상 : 밑에 저런 기막힌 남편감이 기다리고 있다면 까짓 거 하늘 한 번 떨어져볼만 하다. (....)


사춘기 시절에는 쓸데없이 건방져서 난 미야자키 하야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도도하게 내뱉기도 했지만(기실 모노노케 히메의 '그대는 아름다워...' 가 별 게 다 낯부끄러운 사춘기 소-_-녀로선 좀 소화하기 힘들긴 했지;;), 나이를 먹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다.

별 생각없이 보았던 이웃집 토토로에 강펀치 맞고 넉다운당하고 나도 토토로 배 위에서 점프하고 싶다고 처절히 울부짖은 후로 약 4년, 어느 날 갑자기 천공의 성 라퓨타에 대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갈망이 끓어올랐다.
그렇게 느닷없이 무언가가 절실하게 고픈 날이 있다.

그래서 욕망의 소리를 충실하게 따랐고.
죽어 뻐드러졌다.


아아, 역시 소녀를 구하는 소년은 영원한 로망이에요. 내가 아무리 소녀 > 소년의 역학관계에 하아하아헐떡헐떡;하는 몸이라 한들 소녀를 구하고자 몸을 아끼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내달리는 소년에게 찡한 감명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하지. 그게 기사도 컴플렉슨지 구원자 컴플렉슨지 기타 등등의 발로인지는 아무래도 좋다. 내가 미칠듯이 사랑하는 풀메탈 패닉도 따지고 보면 그런 류의 현대적 고전인걸. 1권 제목부터 매우 고전적인 Boy Meets Girl.

하늘로 날아오를 때의 그 벅차디 벅찬 감동이라던가,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속이 메슥거리는 군인들의 초상이라던가, 공허하기 짝이 없는 무스카의 탐욕이라던가, ひとがゴミのようだ라던가 우리 문명의 미래에 대한 우화적인 경고라던가, 뭐 할 말은 들입다 많지만 이미 수천 번도 되풀이된 말들, 내가 굳이 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잘 아는 일, 다 생략하겠다.
정작 내 심금을 정신없이 두기둥당 울린 것은 초면의 여자애를 보호하고자 당연한 듯이 집안으로 끌어들이던 아주머니의 억센 팔, 아이들을 구하려고 주저없이 군인에게 수증기 세례를 퍼붓던 기관사 아저씨의 웃는 얼굴, 불길에 휩싸여 쓰러져 가면서도 시타에게 팔을 내미는 로봇의 손을 움켜쥐고 울부짖다 절망적으로 "파즈───!!" 를 절규하는 시타의 외침, 서로를 힘껏 부둥켜안고 날아가는 파즈와 시타, 시타를 팔 벌려 껴안는 도라의 푸근한 품. 그렇게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었으니까.
아직은 인간의 선의를 마음 깊이 믿어볼 수 있는 작은 보석같은 순간들.

동물과 새와 꽃과 어울려 조용히 하늘정원을 가꾸고 무덤을 지키며 살아가는 거대 로봇 같은 건 너무 로망이라 더 할 말도 없음.


자, 여기까진 공식적;인 감상이고, 슬슬 본심을 밝히겠다.

시타 저 운좋은 지지배...! T.T
대체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았으면 추락한 바로 그 밑에 착하고 튼실하고 똘똘하고 빠릿하고 용감하고 행동력 발군에 운동신경 발군이며 절망적 순간에 내 손을 꼭 잡으며 파멸의 주문을 같이 외워주겠다고, 그러다 죽더라도 끝까지 함께 가주겠다고, 난 네 손을 결코 놓지 않겠다고 흔들림없이 말하는 다나카 마유미 씨 목소리의 남자애가 팔 벌리고 기다려 줍니까 그래?! 그것도 라퓨타의 힘? T.T
폭우가 쏟아지는 날 사츠키에게 불퉁한 얼굴로 제 우산을 내밀고 마구 달려가던 천연 쯘데레의 결정판 같은 그 시골 소년도 그렇고, 미야자키 감독은 뭘 믿고 저렇게 귀엽고 좋은 남자애들을 줄줄이 생산해내는 건지. 눈만 대책없이 높아져서 3차원에 만족할 수가 없게 되잖아욧

이제 모노노케 히메와 재회하면 십에 팔구 산을 두고 저부러운년저부러운년저부러운년저부러운년...T.T 을 밑도 끝도 없이 중얼거리게 될 거라 생각함. 하지만 아시타카 총각, 비단구두 사 가지고 돌아올 오라버니 기다린다던 동생은 어찌할 거유...? (게다가 당신 부족장 아니었던가? ;;;)


덤. 센과 치히로의 가미가쿠시도 한 번 보긴 봐야 한다만... 젠장, 하쿠가 이리노 미유(= 츠바사 샤오란;)란 말야...!!! orz
(시청 도중 공황에 빠질 확률 98.99%)

덤 2. 줄줄이 올라가는 엔드 크레딧의 밑바닥에 세키토시와 하야시바라의 이름이.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당신네들 대체 어디서 나왔냐!!!! ;;;;

top
Trackback Address :: http://kisara71.cafe24.com/blog/trackback/2314775
수정/삭제 댓글
Starless 2007/03/28 23:32
라퓨타 좋은 작품이죠. 제가 처음으로 본 일어로 된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소년과 소녀 이야기는 아무리 누가 뭐라 해도 영원한 테마죠. 남자라면 하늘에서 저런 소녀가 떨어져내려왔는데 당연 해야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파즈 같은 운동신경은 좀 논외로 치더라도...

아무튼 시타는 평범한 아가씨가 아닙니다. 파즈부터 시작해서 해적단은 물론이고 무스카까지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의 혼을 빼놓는 마성의 로리입니다.
수정/삭제
KISARA 2007/03/26 20:22
평범한 아가씨일 리가 있습니까. 저런 소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면 싸나이로서 한 몸 바쳐볼 만도 하고 시타가 마성의 로리라는 데 저언혀 이의는 없습니다만...

대체 뭘 링크하신 거예요.
환상 깨지는 건 좋아하지만 이건 시작부터 너무 과하시군요.
수정/삭제 댓글
Hylls 2007/03/26 22:21
미야자키 선생님은 뭐랄까, 나로서도 별로 애써 보진 않는데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는 OTL 작품들을 내놓으시는지라. 이런저런 뒷담화를 제쳐놓고서라도 일단 재미있다는 데서는 뭐라 부정할 수가 없어-
그런 의미에서 센과 치히로의 카미카쿠시의 하쿠는 좀 심하게 반칙-!!

...랄까, starless님. 그런 링크를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걸어두시는 건 사람에 따라 웃으며 넘어가기가 좀 힘든 문제 같습니다만...;
수정/삭제
KISARA 2007/04/05 07:25
그러게 말이우. 평소에는 별 생각이 없는데 일단 한 번 봤다 하면 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감독님을 울부짖으며 끝까지 보게 되고 말지. 역시 그러니까 거장이라는 생각도 좀 하고.
근데 불행히도 센과 치히로의 가미가쿠시의 경우는... 치히로가 초반에 너무 왕짜증이어서 (평범한 여자애인 건 좋으니 성우만이라도 베테랑으로 기용해 줘!!) 하쿠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어! 우와아아아아앙!!
수정/삭제 댓글
비령 2007/03/28 17:29
천공의 성 라퓨타 정말 좋죠 정말 좋아요ㅠㅠㅠㅠ 저는 그거 OST를 처음 들었는데 그게 취향에 딱 들어맞는 겁니다. 그래서 관심이 있던 차에 작년에 일본어 캠프 가서 봤었는데......뭐냐, 모노노케 히메 만큼 가슴에 꽂히지는 않았었지만(왜일까요-_-;;;) 아무튼 옆에 앉아있는 친구도 무시하고 그냥 입만 딱 벌리고 화면만 바라봤었습니다.

아이고 파즈 이 귀여운 녀석ㅠㅠㅠㅠ 정말 소녀를 구하는 소년의 이야기는 로망이에요 너무 로망이라구요. 엉엉 정말 그거 본 다음에 거의 상사병;;; 비스무리한 거에 걸려서 힘들었습니다.

모노노케 히메......산......아시타카도 멋진 녀석이지만 산도 멋진 여자죠. 아우 다들 멋지다니까요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흑역사입니다만 모노노케 히메 처음 보았을 때는 아시타카에 당장에 폴인러브 해버렸었습니다. 나중에 저한테 DVD 빌려보신 언니랑 같이 둘이서 끌어안고 '꺄아아아아아아악!!! 너무 멋있어어어어!!!'(절규) 하기도 했었고......(먼눈) 랄까 미야자키 할아버님은 소녀의 로망을 너무 잘 알아요. 하쿠도 그렇고 하울도 그렇고ㅠㅠㅠㅠ

그런데 미야자키 선생님은 단발 여자애를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나온 여자 주인공들 중에서 단발이 아닌 애들이 누구야 대체(..) 아니 시작할 때는 단발이 아니었더라도(그런데 단발이 아니면 항상 땋은 머리였단 말이죠-_-;;) 영화가 끝날 때가 되면 늘 단발머리로 바뀌는 소녀들. 긴 머리도 좀 보여주세요 선생님 제발......llOTL 단발머리도 괜찮지만 긴머리도 로망이란 말입니다llOTL 남자주인공들은 최근 칼단발 추세로 가는 것 같던데 말이죠(..)(하쿠도 그렇고 하울도 그렇고)

......에, 조금 길어졌군요;;(식은땀)
수정/삭제
KISARA 2007/04/05 07:30
파즈 귀엽죠 정말 귀엽죠 T.T 시타는 정말 복 많고 운 좋은 기집애예요 물론 시타도 무진장 귀엽지만!
예, 실은 이거 쓴 다음에 모노노케 히메 냅다 복습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산 저 복많은 기집애를 두 시간 내내 목이 터져라 절규했습니다. 저렇게 뚝심 있고 능력 있고 선량하고 심지어 미인이기까지 한 남자가 한 눈에 반해주다니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으면 그런 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집니까? T.T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지금도 '그대는 아름다워' 는 좀 감당이 힘들었습니다만 (웃음)
수정/삭제 댓글
Starless 2007/03/28 23:32
딱히 수상쩍은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었는데 불쾌하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해당 링크는 삭제하고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수정/삭제
KISARA 2007/04/05 07:33
저 역시 Starless님께 타의가 있으셨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남성향 계열 팬워크는 - 비록 여기 주인장의 머리가 2할 가량 남성향이라고 해도 - 여자 가슴엔 엄청난 쇼크가 되기 십상이라서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