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츠바사 148화 네타를 주워듣고 벙쪄버린 S. 역시 무얼 예측해도 반드시 그 이상의 피를 튀기는 여자 오오카와 나나세!! >_<
'반전은 있지만 복선은 보이는 그대로'이며 '나쁜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CLAMP의 7계명 1절 2절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켜졌다. 아 정말 이렇게까지 철저하면 감격스러워 눈물이 앞을 가린다. 크흑, 하여간 기대를 안 저버리는 년 T.T
설마 명색 주인공이 얘기 도중에 완전 사망하진 않을 테고 그래 다음 화에 어떻게 수습하는지 두고 보자.
....솔직히 난 우리 애가 더 걱정된다우.... (언제부터 니 애냐)
하여간 그리하여 우울한 심정을 달랜다는 핑계로 - 그렇다 핑계다. 내가 감자무더기랑 부대낀 게 몇 년인데 이 정도로 우울할까 보냐 - 영원한 호프 JeGiRal님(사이트명 JEGiRAL)의 또다른 S/X 시리즈 <mid-way~The long & winding road~>를 살포시 들고 내빼었으니 배째서 등따서 줄넘기하다 2단 뛰기 할 각오가 되어 있는즉 그 만용함이 가상하다거나 어쨌다거나.
이번에는 외전격으로 처남과 매부(라고 쓰고 시누이와 올케라고 읽는...쿨럭!)의 이야기. 마스터의 말로는 부제 The long & winding road는 비틀즈의 곡에서 따온 거라고.
질에 대해 태클 걸면 늘 그렇듯 슬프다. 문제 되면 삭삭 지워버릴 예정임.
...and less.
실은 저 '란'이라고 부르는 게 내심 몹시 탐탁해서 일부러 샤오란을 고집했다는 말은... 절대 못한다.
서로 득득 긁어대기 바쁘면서 실은 싸울 정도로 사이가 좋은 시누이와 올케, 아니아니 처남과 매부가 아주 훌륭함.
(나 실은 애니에서 토야의 '체엣 별 수 없구먼, 바이크에 타라' 가 짤린 게 엄청 불만이거든 툴툴툴툴툴)
덤. 당신도 알면 정신 공격에 후달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CLAMP 7계명.
1.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 질기게 떠들어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난다. 해피엔딩? 무난한 전개? 하!!!
2. 반전은 있다. 그러나 복선은 보이는 그대로다!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3. 엄청나게 중요해 뵈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사의 일부 혹은 전부가 삭제되어 있다면 틀림없이 보이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4. 그러나 낚시질엔 속지 마라! 단순한 더미인지 진짜 복선인진 알아서 눈치까라!
5. 이렇게도 저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애매모호한 말은 무조건 기대상황과는 반대로 해석하라!
6. 오오카와는 대가 아니면 삼류나 줄창 써먹을 '실은...' 에 걸신들린 여자다! 고로 주연 내지 비중 좀 있는 조역은 무조건 비밀 한두 가지는 있는 걸로 여겨라!
7. 세상에 정말로 나쁜 사람이란 없어요! (우루우루) by 섀도우 리나
mid-way
~The long & winding road~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햇살로 그림자는 짜리몽땅하고, 인도 가장자리가 하얗게 빛을 반사하여 거리는 한결 눈부셨다.
중앙광장의 분수로 서늘해진 공기는 미풍으로 변해, 끈적끈적 들러붙는 더위로 시달리는 휴일의 상점가에 안개비처럼 포말을 흩뜨린다.
여름의 화사한 색채 속에서, 시커먼 차량은 이미 충분히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통행인이 엉겁결에 길을 비킨 것은, 위압감마저 풀풀 풍기는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이었다. 이런 차량을 자가용으로 써먹는 인종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더구나 불투명한 방풍유리가 더욱 호기심을 부채질하여, 지나가던 이들은 길을 비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慢走。(조심하십시오)"
"是。幇了大忙了。(아아, 고마웠어)"
운전석에 간단히 감사의 말을 던지고 뒷좌석의 문을 닫은 샤오란은, 차안에서 갈아입느라 채 미처 발을 다 꿰지 못한 단화를 고쳐 신으려다, 그제서야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깨달았다.
"에...."
잠시나마 언어의 차이를 고려했지만, 겨우 몇 마디로 이렇게까지 이목을 끌지 않는 줄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샤오란은 반사적으로 도로 표지부터 확인하고 보았다. 신중한 웨이가 법규에 저촉되는 일을 자진해서 할 리가 없었지만, 설마 늘 타고 다니던 차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까진 미처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금방 비킬게요."
표지판은 '주차금지'지 '주정차금지'가 아니었으나, 장소가 장소이다. 그래서 주목받는 걸로 오해한 샤오란은, 황급히 사방에 고개를 숙여보이고, 주인의 안전을 확인하고 출발하려 하는 웨이를 눈짓으로 재촉한 후 자신은 냉큼 토야가 기다리고 있을 마트로 튀었다. 물론, 바로 그 주종관계 덕분에 오히려 시선이 한층 끈덕지게 들러붙는 줄은 알 턱이 없었다.
"저기 정차도 안되는 구역이었어? 실수한 거야?"
"바보냐! 서민의 마트 앞에 으리번쩍한 차를 갖다대니까 그렇지!"
약속 장소인 마트 앞에서 일의 전말을 목격한 토야는, 등에 꽂히는 시선이 따끔거리는 모양인 샤오란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떠다밀다시피 가게 안에 처박았다.
"아얏!"
있는 힘껏 얻어맞고 샤오란이 얼결에 비명을 지르건 말건, 토야는 턱짓으로 카트를 끌고 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샤오란의 배경을 알면서도 가식없이 대해주는 몇 안 되는 인물에 속하는 토야에게는, 다소 부당한 취급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샤오란은 예상 외로 순순히 따르곤 한다.
"쬐끄만 게 쉬는 날까지 일하지 말란 말이다."
카트를 끄집어내고, 후닥닥 웅크리고 앉은 샤오란을 내려다보며 토야가 투덜거렸다.
허겁지겁 묶은 신발끈이 달리는 와중에 풀어진 모양이다.
"어린애 어린애 하지 마. 우왓, 추워..."
매장에서 플로어까지 새어나온 찬바람을 맞고, 샤오란은 부르르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연중 최고 기온을 슬슬 돌파하려 하는 바깥과 안쪽의 온도 차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한심하긴. 냉방 펑펑 틀어대기론 홍콩이 여기보다 더하잖아."
"그야 그렇지만, 우리 집에선 거의 쓰지 않는다니까."
"아 맞다."
리가(李家)에서는 기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문명의 이기는 기본적으로 사용치 않는다. 그 사실을 안 것은 꽤나 오래 전, 홍콩 여행 차 잠시 묵었을 때였다.
난방이 절실하게 그리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텔에서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차가운 밤공기에 당황해 하는 일본에서 온 손님들에게 침실을 준비해 준 웨이가 설명해 주었다. 겨울에는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영하의 날씨에나 각 방의 난로에 불을 지피고, 여름의 더위는 정원의 연못과 바닷바람으로 식힌다고.
영국풍의 구조에 다 이유가 있었다고 납득한 반면, 생각 이상으로 소박한, 달리 말하자면 원시적인 생활에 내심 크게 놀랐다.
그때 막연하게 주워들은 <기>가, 자연의 기는 물론 리가의 사람들 몸에 흐르는 기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훨씬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쨌건 그런 환경에서 자란 샤오란이 여름을 맞아도 맨션의 에어컨은 습기제거용으로 어쩌다 한 번이나 쓸 줄은 쉽사리 짐작이 갔다.
"크로운지 뭔지가 소란피우길 좋아해서 살았구먼."
"어째서?"
"일본이기 망정이지 알래스카나 남극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건 그거대로 충분히 대소동이야."
"하기야. 우럅!!"
샤오란보다 몇 발짝 앞서 가던 토야가 양파망을 던졌다.
날아오는 양파망을 허공에서 잡아챈 샤오란이 카트에 넣는다.
"대체 홍콩은 더위랑 웬수라도 졌대냐? 왜 냉방을 틀지 못해 안달이야. 오죽하면 이쪽 안내책자엔 하나같이 여름에도 가게에 가려면 겉옷은 꼭 챙기라고 쓰여 있다구."
"온도가 낮을수록 청결하다고 보니까... 아, 그거라면 우리 집에서 키워."
"아?"
대파를 집으려던 토야의 손이 딱 멎었다.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대파 키운다고. 나중에 갖다줄까?"
"미니채소밭?"
"그렇진 않아. 하여간 대파가,"
"딴 야채랑 착각한 거 아니냐?"
토야는 대파 한 포기를 집어 샤오란의 코앞에 들이댔다.
"대파는 이렇게 생겼다구."
"나도 알아! 약초로 키우고 있다니까. 돌보는 사람은 웨이지만."
"난 또 뭐라고. 취미치곤 수수하다 싶더라니. 관둬라, 사는 편이 훨씬 싸."
임시 교재를 그대로 투척한다.
"있는데 왜 사."
"건설적인 의견이야. 하지만 가지러 가는 시간과 교통비를 감안하면 오히려 비싸게 먹힌다는 걸 까먹고 있어."
"홍콩까지 가지러 가지도 않는데 뭘..."
"왕복 버스비만 쳐도 두 줄기 더 사고 거스름도 받는단 말이다."
토야는 샤오란의 손에서 대파를 빼앗아 카트에 넣었다.
"뭐, 심부름시키겠다 하지 않은 것만은 기특하다만."
차례차례 날아오는 일주일분의 먹거리를, 모의고사로 자리를 비운 사쿠라의 대리인이 순서대로 캐치한다.
기노모토 가의 가사당번표가 두 번째로 재편성된 것은 토야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였다.
첫 재편성은 몇 년 전 후지타카의 출장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할 무렵으로, 그때는 사쿠라와 토야 둘이서 분담하는 걸로 끝났지만, 지금은 토야도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아져 필연적으로 가사 대부분이 사쿠라의 몫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쿠라마저도 수험생이 되고 나서는 웬만한 장은 뭉뚱그려 1주일에 한 번씩 보도록 하고 있다.
이런 기노모토 가의 사정에 걸핏하면 샤오란을 끌어들이는 사람은 실은 사쿠라 아닌 토야다.
슬슬 놀려먹기 힘들어진 사쿠라와 반대로 동성인 샤오란은 오히려 갖고 놀기 좋아졌다는 표면상의 명목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래봤자 결국엔 시스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을 슬프게 하는 고통을 마지막까지 미소로 감추었던 나데시코에 대한 후지타카의 죄책감과, 실제로 외조부와 후지타카의 관계를 수습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잘 아는 토야는, 각자의 집안 차이로 일어날 문제를 사쿠라에게만은 짐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기회만 있으면 샤오란을 잡아다가 분풀이도 겸해 자신들의 현실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홍콩엔 뭐 전용 농장이라던가 있지 않냐?"
여전히 샤오란보다 몇 발짝 앞서가면서, 약초 얘기를 구실삼아 얼씨구나 신이 나 긁어댄다.
"농장? 그렇게 거창하진 않아."
"있긴 있냐? 히야~농담도 맘놓고 못하겠구먼."
"또 그런다. 도쿄 같은 도회지에서야 사치로 보일지 몰라도, 자급자족하던 시절 그대로일 뿐이야."
"우리도 옛날 옛적부터 소작이었다구."
토야는 여보란 듯이, 두 봉지 사면 할인이 되는 피망은 손수 카트에 넣었다.
그러나, 하는 말이나 태도는 저럴지언정 토야도 진심은 아니다. 알고 있어도, 웃고 넘길 만큼 어른이 되지는 못한 샤오란은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하여튼 사사건건..."
샤오란을 짐꾼으로 부려먹는 김에, 토야는 다음 주에 사도 될 잡화까지 카트에 마구 쑤셔박았다.
이걸로 다음 주엔 토야 혼자서도 안심이다. 다시 말해, 사쿠라에게 남는 시간이 생긴다.
"이것도!"
보름 후에 사도 문제없을 샴푸와 린스의 리필도 추가.
***
"아, 비가..."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발치의 그을린 아스팔트에 빨려들듯 사라진 커다란 빗방울을 발견하고 하늘을 올려다본 샤오란의 이마에도, 순서를 못 기다리고 있는 힘껏 뛰어내렸을 물방울이 튀었다.
집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깜박 잊고 못 산 물건을 기억해낸 토야에게 떠밀려 마트로 대쉬하는 도중 희미하게 울리던 천둥이, 되짚어 오는 사이 바싹 접근한 모양이었다.
서쪽 하늘은 새까맣다.
'금방 쏟아지겠는걸.'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사라지는 속도보다 한층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이, 순식간에 아스팔트에 하얀 횡단보도를 선명하게 그렸다.
바뀐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호가 약간 원망스럽다.
조금이라도 비를 피하려고 샤오란은 고개를 숙였다. 그 시야 한구석을 비집고 들어온....
"고양이?"
털이 길어 언뜻 보기엔 강아지로도 오해를 살 고양이가, 마치 함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려는 듯 샤오란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홈빡 젖어 들러붙은 털이 애처로웠다.
퍼붓는 빗줄기 상대로 그닥 도움은 되지 않을 거라 여기면서도, 샤오란은 탱크탑 위에 걸친 셔츠 자락을 고양이의 머리 위까지 벌렸다.
고양이는 귀를 살짝 움찔했을 뿐 여전히 앞만을 보고 앉아 있었다.
점점 세차지는 빗줄기가 또다시 횡단보도와 아스팔트의 콘트라스트의 경계선을 지웠다.
신호가 바뀌었다.
샤오란은 셔츠를 놓고, 고양이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며 앞서서 부옇게 흐려진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위험해!!"
반대쪽에서 건너온 자전거와 스쳐지나간 직후, 등뒤에서 짤막한 비명과 자전거의 브레이크 소리가 울렸다. 샤오란은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자전거에 하마터면 치일 뻔한 고양이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뻣뻣이 굳어 있었다.
작게 혀를 차고, 샤오란은 왔던 길을 서둘러 되짚어갔다. 고양이를 집어들고 깜박이기 시작한 신호가 바뀌기 전에 황급히 보도를 건넜다.
어설픈 온기는 줄 수 없다. 그러나 맑은 날이라면 혹여 모를까, 이 폭우에. 다소 찜찜한 기분이 되면서도, 샤오란은 차도에서 떨어진 곳에 고양이를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빗소리에 먹힌 발소리 대신 기척이 졸졸 따라온다.
멈춰서서 돌아보면, 고양이도 그 자리에 선다. 다시 내달리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온다. 몇 차례 똑같은 일을 반복한 후, 마침내 질려버린 샤오란은 고양이를 옆구리에 끼고 기노모토 가를 향해 단숨에 달렸다.
*
"걸레?"
샤오란이 인터폰으로 부탁한 수건을 들고 현관으로 나온 토야는, 샤오란의 품안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구는 털뭉치를 굽어보고 물었다.
"아냐. 이 녀석도 좀 닦아줘야겠는데, 수건 써도 괜찮겠어?"
부탁대로 두 장 가져온 수건 중 하나를 받아들면서 고양이를 토야의 눈앞에 내밀어보였다.
"고양이잖아. 어디네 고양이냐?"
"모르겠어. 따라오길래 우선은 데리고 왔지만. 주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비가 그치면 원래 자리에 도로 데려가야지."
"너란 녀석은 어지간히 고양이과한테 사랑받는구먼."
토야는 핀잔을 주고는, 고양이부터 닦아주고 있는 샤오란의 머리에 남은 한 장을 난폭하게 씌우고 대신 고양이를 빼앗아갔다.
"고마워."
"내가 못 산다. 그칠 때까지 어디서 비를 긋든지, 싫으면 우산이라도 사."
"아, 그런 수가 있었나."
"뭐시라?"
"아니,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아서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전에 우선 뛰고 보기로 했거든. 우산은 생각도 못했어."
"옆에 시중꾼이 항상 있으면 간단한 일도 까먹게 되나 보다?"
개인적 용무로 차를 대절하는 법이 없는 샤오란이, 우산 하나 없다고 웨이를 호출하진 않을 줄은 쉽사리 상상이 갔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순순히 홀딱 젖어와서야 어지간한 토야도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웨이? 여기서 웨이가 왜 나와. 우산이 없으면 젖는 게 당연하지."
"크아─진짜 철두철미하다 니네 집. 파를 사다 우산값까지 다 쓴 줄 알고 괜시리 후회할 뻔했네. 복도 좀 젖는다고 뭐랄 사람 없다. 냉큼 들어와. 마른 옷 빌려줄 테니까."
흠뻑 젖어 풀기 힘들어진 신발끈과 한참 격투한 끝에 샤오란이 겨우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을 때, 벼락에 쫓기듯 돌아온 사쿠라가 현관에서 샤오란의 신발을 발견하고 거실까지 한달음에 달려들어왔다.
"샤오란 군 왔구나─! 어라? 없네?"
"비는 안 맞았냐?"
"아, 토야 오빠. 다녀왔어요. 응, 토모요가 차로 바래다줬어."
사쿠라는 소파에 가방을 놓고, 마침 부엌에서 티 세트를 갖고 나온 토야에게서 쟁반을 넘겨받았다.
"걘 쫄딱 젖어왔다. 옷 갈아입고 있어."
"그랬구나. 갑자기 쏟아졌으니까 말야."
주거니받거니 하며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려던 사쿠라의 눈이, 시야 한켠을 스친 마루의 한 점에서 멎었다. 경계의 빛을 보이기는커녕 푸욱 잠들어 있는 봉제인형 같은 고양이.
"웬 거야?"
"아─? 아아, 그거. 란을 졸졸 쫓아왔댄다."
쟁반을 사쿠라에게 패스하고 주방으로 돌아갔던 토야는, 거실을 내다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듣고 사쿠라도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여전히 고양이과 동물한테 사랑받네, 샤오란 군."
거의 전력으로 질주하는 샤오란을 따라잡느라 지쳤는지, 슬슬 마르기 시작한 털을 쓰다듬어도 고양이는 곤히 자고만 있었다.
"맞다! 저 있지, 나 다음 주에도 장보러 못가겠는데..."
"뭐야, 또 모의고사?"
"아아니, 알바야."
"알바? 용돈 모자라냐?"
"왜애─? 오빠도 용돈 주려고?"
"누구 맘대로. 돈이 많이 드나 좀 궁금했을 뿐이다."
토야가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건 대개 샤오란 관련으로 탐색할 때이다.
사쿠라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실은 샤오란 군보다는 오히려 친구들이랑 놀 때 돈이 더 들긴 해~. 어디 가면 케이크가 맛있다던가, 어디 가면 귀여운 옷이 있다던가, 샤오란 군은 와안전히 먹통이고 말이지이~."
그리고는 문득 생각난 듯 부엌에 대고 말했다.
"토모요네 어머니 회사에서 도우미 알바야. 전시회에 출품한대. 오빠, 듣고 있어─?"
"쨍쨍대지 마라. 다 들린다."
토야의 대답을 들은 사쿠라는 만족스럽게 생글생글 웃으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목을 쓰다듬자 고양이가 조금 뒤척인다.
"아하하, 자는 폼이 샤오란 군이랑 똑같애─!"
"란!! 쌀도 안 사왔다!!"
~The long & winding road~
by JeGiRal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햇살로 그림자는 짜리몽땅하고, 인도 가장자리가 하얗게 빛을 반사하여 거리는 한결 눈부셨다.
중앙광장의 분수로 서늘해진 공기는 미풍으로 변해, 끈적끈적 들러붙는 더위로 시달리는 휴일의 상점가에 안개비처럼 포말을 흩뜨린다.
여름의 화사한 색채 속에서, 시커먼 차량은 이미 충분히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통행인이 엉겁결에 길을 비킨 것은, 위압감마저 풀풀 풍기는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이었다. 이런 차량을 자가용으로 써먹는 인종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더구나 불투명한 방풍유리가 더욱 호기심을 부채질하여, 지나가던 이들은 길을 비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慢走。(조심하십시오)"
"是。幇了大忙了。(아아, 고마웠어)"
운전석에 간단히 감사의 말을 던지고 뒷좌석의 문을 닫은 샤오란은, 차안에서 갈아입느라 채 미처 발을 다 꿰지 못한 단화를 고쳐 신으려다, 그제서야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깨달았다.
"에...."
잠시나마 언어의 차이를 고려했지만, 겨우 몇 마디로 이렇게까지 이목을 끌지 않는 줄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샤오란은 반사적으로 도로 표지부터 확인하고 보았다. 신중한 웨이가 법규에 저촉되는 일을 자진해서 할 리가 없었지만, 설마 늘 타고 다니던 차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까진 미처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금방 비킬게요."
표지판은 '주차금지'지 '주정차금지'가 아니었으나, 장소가 장소이다. 그래서 주목받는 걸로 오해한 샤오란은, 황급히 사방에 고개를 숙여보이고, 주인의 안전을 확인하고 출발하려 하는 웨이를 눈짓으로 재촉한 후 자신은 냉큼 토야가 기다리고 있을 마트로 튀었다. 물론, 바로 그 주종관계 덕분에 오히려 시선이 한층 끈덕지게 들러붙는 줄은 알 턱이 없었다.
"저기 정차도 안되는 구역이었어? 실수한 거야?"
"바보냐! 서민의 마트 앞에 으리번쩍한 차를 갖다대니까 그렇지!"
약속 장소인 마트 앞에서 일의 전말을 목격한 토야는, 등에 꽂히는 시선이 따끔거리는 모양인 샤오란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떠다밀다시피 가게 안에 처박았다.
"아얏!"
있는 힘껏 얻어맞고 샤오란이 얼결에 비명을 지르건 말건, 토야는 턱짓으로 카트를 끌고 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샤오란의 배경을 알면서도 가식없이 대해주는 몇 안 되는 인물에 속하는 토야에게는, 다소 부당한 취급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샤오란은 예상 외로 순순히 따르곤 한다.
"쬐끄만 게 쉬는 날까지 일하지 말란 말이다."
카트를 끄집어내고, 후닥닥 웅크리고 앉은 샤오란을 내려다보며 토야가 투덜거렸다.
허겁지겁 묶은 신발끈이 달리는 와중에 풀어진 모양이다.
"어린애 어린애 하지 마. 우왓, 추워..."
매장에서 플로어까지 새어나온 찬바람을 맞고, 샤오란은 부르르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연중 최고 기온을 슬슬 돌파하려 하는 바깥과 안쪽의 온도 차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한심하긴. 냉방 펑펑 틀어대기론 홍콩이 여기보다 더하잖아."
"그야 그렇지만, 우리 집에선 거의 쓰지 않는다니까."
"아 맞다."
리가(李家)에서는 기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문명의 이기는 기본적으로 사용치 않는다. 그 사실을 안 것은 꽤나 오래 전, 홍콩 여행 차 잠시 묵었을 때였다.
난방이 절실하게 그리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텔에서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차가운 밤공기에 당황해 하는 일본에서 온 손님들에게 침실을 준비해 준 웨이가 설명해 주었다. 겨울에는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영하의 날씨에나 각 방의 난로에 불을 지피고, 여름의 더위는 정원의 연못과 바닷바람으로 식힌다고.
영국풍의 구조에 다 이유가 있었다고 납득한 반면, 생각 이상으로 소박한, 달리 말하자면 원시적인 생활에 내심 크게 놀랐다.
그때 막연하게 주워들은 <기>가, 자연의 기는 물론 리가의 사람들 몸에 흐르는 기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훨씬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쨌건 그런 환경에서 자란 샤오란이 여름을 맞아도 맨션의 에어컨은 습기제거용으로 어쩌다 한 번이나 쓸 줄은 쉽사리 짐작이 갔다.
"크로운지 뭔지가 소란피우길 좋아해서 살았구먼."
"어째서?"
"일본이기 망정이지 알래스카나 남극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건 그거대로 충분히 대소동이야."
"하기야. 우럅!!"
샤오란보다 몇 발짝 앞서 가던 토야가 양파망을 던졌다.
날아오는 양파망을 허공에서 잡아챈 샤오란이 카트에 넣는다.
"대체 홍콩은 더위랑 웬수라도 졌대냐? 왜 냉방을 틀지 못해 안달이야. 오죽하면 이쪽 안내책자엔 하나같이 여름에도 가게에 가려면 겉옷은 꼭 챙기라고 쓰여 있다구."
"온도가 낮을수록 청결하다고 보니까... 아, 그거라면 우리 집에서 키워."
"아?"
대파를 집으려던 토야의 손이 딱 멎었다.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대파 키운다고. 나중에 갖다줄까?"
"미니채소밭?"
"그렇진 않아. 하여간 대파가,"
"딴 야채랑 착각한 거 아니냐?"
토야는 대파 한 포기를 집어 샤오란의 코앞에 들이댔다.
"대파는 이렇게 생겼다구."
"나도 알아! 약초로 키우고 있다니까. 돌보는 사람은 웨이지만."
"난 또 뭐라고. 취미치곤 수수하다 싶더라니. 관둬라, 사는 편이 훨씬 싸."
임시 교재를 그대로 투척한다.
"있는데 왜 사."
"건설적인 의견이야. 하지만 가지러 가는 시간과 교통비를 감안하면 오히려 비싸게 먹힌다는 걸 까먹고 있어."
"홍콩까지 가지러 가지도 않는데 뭘..."
"왕복 버스비만 쳐도 두 줄기 더 사고 거스름도 받는단 말이다."
토야는 샤오란의 손에서 대파를 빼앗아 카트에 넣었다.
"뭐, 심부름시키겠다 하지 않은 것만은 기특하다만."
차례차례 날아오는 일주일분의 먹거리를, 모의고사로 자리를 비운 사쿠라의 대리인이 순서대로 캐치한다.
기노모토 가의 가사당번표가 두 번째로 재편성된 것은 토야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였다.
첫 재편성은 몇 년 전 후지타카의 출장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할 무렵으로, 그때는 사쿠라와 토야 둘이서 분담하는 걸로 끝났지만, 지금은 토야도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아져 필연적으로 가사 대부분이 사쿠라의 몫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쿠라마저도 수험생이 되고 나서는 웬만한 장은 뭉뚱그려 1주일에 한 번씩 보도록 하고 있다.
이런 기노모토 가의 사정에 걸핏하면 샤오란을 끌어들이는 사람은 실은 사쿠라 아닌 토야다.
슬슬 놀려먹기 힘들어진 사쿠라와 반대로 동성인 샤오란은 오히려 갖고 놀기 좋아졌다는 표면상의 명목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래봤자 결국엔 시스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을 슬프게 하는 고통을 마지막까지 미소로 감추었던 나데시코에 대한 후지타카의 죄책감과, 실제로 외조부와 후지타카의 관계를 수습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잘 아는 토야는, 각자의 집안 차이로 일어날 문제를 사쿠라에게만은 짐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기회만 있으면 샤오란을 잡아다가 분풀이도 겸해 자신들의 현실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홍콩엔 뭐 전용 농장이라던가 있지 않냐?"
여전히 샤오란보다 몇 발짝 앞서가면서, 약초 얘기를 구실삼아 얼씨구나 신이 나 긁어댄다.
"농장? 그렇게 거창하진 않아."
"있긴 있냐? 히야~농담도 맘놓고 못하겠구먼."
"또 그런다. 도쿄 같은 도회지에서야 사치로 보일지 몰라도, 자급자족하던 시절 그대로일 뿐이야."
"우리도 옛날 옛적부터 소작이었다구."
토야는 여보란 듯이, 두 봉지 사면 할인이 되는 피망은 손수 카트에 넣었다.
그러나, 하는 말이나 태도는 저럴지언정 토야도 진심은 아니다. 알고 있어도, 웃고 넘길 만큼 어른이 되지는 못한 샤오란은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하여튼 사사건건..."
샤오란을 짐꾼으로 부려먹는 김에, 토야는 다음 주에 사도 될 잡화까지 카트에 마구 쑤셔박았다.
이걸로 다음 주엔 토야 혼자서도 안심이다. 다시 말해, 사쿠라에게 남는 시간이 생긴다.
"이것도!"
보름 후에 사도 문제없을 샴푸와 린스의 리필도 추가.
***
"아, 비가..."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발치의 그을린 아스팔트에 빨려들듯 사라진 커다란 빗방울을 발견하고 하늘을 올려다본 샤오란의 이마에도, 순서를 못 기다리고 있는 힘껏 뛰어내렸을 물방울이 튀었다.
집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깜박 잊고 못 산 물건을 기억해낸 토야에게 떠밀려 마트로 대쉬하는 도중 희미하게 울리던 천둥이, 되짚어 오는 사이 바싹 접근한 모양이었다.
서쪽 하늘은 새까맣다.
'금방 쏟아지겠는걸.'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사라지는 속도보다 한층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이, 순식간에 아스팔트에 하얀 횡단보도를 선명하게 그렸다.
바뀐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호가 약간 원망스럽다.
조금이라도 비를 피하려고 샤오란은 고개를 숙였다. 그 시야 한구석을 비집고 들어온....
"고양이?"
털이 길어 언뜻 보기엔 강아지로도 오해를 살 고양이가, 마치 함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려는 듯 샤오란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홈빡 젖어 들러붙은 털이 애처로웠다.
퍼붓는 빗줄기 상대로 그닥 도움은 되지 않을 거라 여기면서도, 샤오란은 탱크탑 위에 걸친 셔츠 자락을 고양이의 머리 위까지 벌렸다.
고양이는 귀를 살짝 움찔했을 뿐 여전히 앞만을 보고 앉아 있었다.
점점 세차지는 빗줄기가 또다시 횡단보도와 아스팔트의 콘트라스트의 경계선을 지웠다.
신호가 바뀌었다.
샤오란은 셔츠를 놓고, 고양이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며 앞서서 부옇게 흐려진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위험해!!"
반대쪽에서 건너온 자전거와 스쳐지나간 직후, 등뒤에서 짤막한 비명과 자전거의 브레이크 소리가 울렸다. 샤오란은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자전거에 하마터면 치일 뻔한 고양이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뻣뻣이 굳어 있었다.
작게 혀를 차고, 샤오란은 왔던 길을 서둘러 되짚어갔다. 고양이를 집어들고 깜박이기 시작한 신호가 바뀌기 전에 황급히 보도를 건넜다.
어설픈 온기는 줄 수 없다. 그러나 맑은 날이라면 혹여 모를까, 이 폭우에. 다소 찜찜한 기분이 되면서도, 샤오란은 차도에서 떨어진 곳에 고양이를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빗소리에 먹힌 발소리 대신 기척이 졸졸 따라온다.
멈춰서서 돌아보면, 고양이도 그 자리에 선다. 다시 내달리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온다. 몇 차례 똑같은 일을 반복한 후, 마침내 질려버린 샤오란은 고양이를 옆구리에 끼고 기노모토 가를 향해 단숨에 달렸다.
*
"걸레?"
샤오란이 인터폰으로 부탁한 수건을 들고 현관으로 나온 토야는, 샤오란의 품안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구는 털뭉치를 굽어보고 물었다.
"아냐. 이 녀석도 좀 닦아줘야겠는데, 수건 써도 괜찮겠어?"
부탁대로 두 장 가져온 수건 중 하나를 받아들면서 고양이를 토야의 눈앞에 내밀어보였다.
"고양이잖아. 어디네 고양이냐?"
"모르겠어. 따라오길래 우선은 데리고 왔지만. 주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비가 그치면 원래 자리에 도로 데려가야지."
"너란 녀석은 어지간히 고양이과한테 사랑받는구먼."
토야는 핀잔을 주고는, 고양이부터 닦아주고 있는 샤오란의 머리에 남은 한 장을 난폭하게 씌우고 대신 고양이를 빼앗아갔다.
"고마워."
"내가 못 산다. 그칠 때까지 어디서 비를 긋든지, 싫으면 우산이라도 사."
"아, 그런 수가 있었나."
"뭐시라?"
"아니,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아서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전에 우선 뛰고 보기로 했거든. 우산은 생각도 못했어."
"옆에 시중꾼이 항상 있으면 간단한 일도 까먹게 되나 보다?"
개인적 용무로 차를 대절하는 법이 없는 샤오란이, 우산 하나 없다고 웨이를 호출하진 않을 줄은 쉽사리 상상이 갔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순순히 홀딱 젖어와서야 어지간한 토야도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웨이? 여기서 웨이가 왜 나와. 우산이 없으면 젖는 게 당연하지."
"크아─진짜 철두철미하다 니네 집. 파를 사다 우산값까지 다 쓴 줄 알고 괜시리 후회할 뻔했네. 복도 좀 젖는다고 뭐랄 사람 없다. 냉큼 들어와. 마른 옷 빌려줄 테니까."
흠뻑 젖어 풀기 힘들어진 신발끈과 한참 격투한 끝에 샤오란이 겨우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을 때, 벼락에 쫓기듯 돌아온 사쿠라가 현관에서 샤오란의 신발을 발견하고 거실까지 한달음에 달려들어왔다.
"샤오란 군 왔구나─! 어라? 없네?"
"비는 안 맞았냐?"
"아, 토야 오빠. 다녀왔어요. 응, 토모요가 차로 바래다줬어."
사쿠라는 소파에 가방을 놓고, 마침 부엌에서 티 세트를 갖고 나온 토야에게서 쟁반을 넘겨받았다.
"걘 쫄딱 젖어왔다. 옷 갈아입고 있어."
"그랬구나. 갑자기 쏟아졌으니까 말야."
주거니받거니 하며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려던 사쿠라의 눈이, 시야 한켠을 스친 마루의 한 점에서 멎었다. 경계의 빛을 보이기는커녕 푸욱 잠들어 있는 봉제인형 같은 고양이.
"웬 거야?"
"아─? 아아, 그거. 란을 졸졸 쫓아왔댄다."
쟁반을 사쿠라에게 패스하고 주방으로 돌아갔던 토야는, 거실을 내다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듣고 사쿠라도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여전히 고양이과 동물한테 사랑받네, 샤오란 군."
거의 전력으로 질주하는 샤오란을 따라잡느라 지쳤는지, 슬슬 마르기 시작한 털을 쓰다듬어도 고양이는 곤히 자고만 있었다.
"맞다! 저 있지, 나 다음 주에도 장보러 못가겠는데..."
"뭐야, 또 모의고사?"
"아아니, 알바야."
"알바? 용돈 모자라냐?"
"왜애─? 오빠도 용돈 주려고?"
"누구 맘대로. 돈이 많이 드나 좀 궁금했을 뿐이다."
토야가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건 대개 샤오란 관련으로 탐색할 때이다.
사쿠라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실은 샤오란 군보다는 오히려 친구들이랑 놀 때 돈이 더 들긴 해~. 어디 가면 케이크가 맛있다던가, 어디 가면 귀여운 옷이 있다던가, 샤오란 군은 와안전히 먹통이고 말이지이~."
그리고는 문득 생각난 듯 부엌에 대고 말했다.
"토모요네 어머니 회사에서 도우미 알바야. 전시회에 출품한대. 오빠, 듣고 있어─?"
"쨍쨍대지 마라. 다 들린다."
토야의 대답을 들은 사쿠라는 만족스럽게 생글생글 웃으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목을 쓰다듬자 고양이가 조금 뒤척인다.
"아하하, 자는 폼이 샤오란 군이랑 똑같애─!"
"란!! 쌀도 안 사왔다!!"
실은 저 '란'이라고 부르는 게 내심 몹시 탐탁해서 일부러 샤오란을 고집했다는 말은... 절대 못한다.
서로 득득 긁어대기 바쁘면서 실은 싸울 정도로 사이가 좋은 시누이와 올케, 아니아니 처남과 매부가 아주 훌륭함.
(나 실은 애니에서 토야의 '체엣 별 수 없구먼, 바이크에 타라' 가 짤린 게 엄청 불만이거든 툴툴툴툴툴)
덤. 당신도 알면 정신 공격에 후달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CLAMP 7계명.
1.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 질기게 떠들어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난다. 해피엔딩? 무난한 전개? 하!!!
2. 반전은 있다. 그러나 복선은 보이는 그대로다!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3. 엄청나게 중요해 뵈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사의 일부 혹은 전부가 삭제되어 있다면 틀림없이 보이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4. 그러나 낚시질엔 속지 마라! 단순한 더미인지 진짜 복선인진 알아서 눈치까라!
5. 이렇게도 저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애매모호한 말은 무조건 기대상황과는 반대로 해석하라!
6. 오오카와는 대가 아니면 삼류나 줄창 써먹을 '실은...' 에 걸신들린 여자다! 고로 주연 내지 비중 좀 있는 조역은 무조건 비밀 한두 가지는 있는 걸로 여겨라!
7. 세상에 정말로 나쁜 사람이란 없어요! (우루우루) by 섀도우 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