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와 패자.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07/06/02 00:53

<토시조 살아서 다시(歳三往きてまた)>가 하도 안 오는 나머지 시바탱의 <세상을 사는 나날(世に棲む日日)>로 잠시 도피 중인 S. 1권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메인이고(솔직히 관심없음;) 2권부터는 그 정통 <후계자>인 다카스기 신사쿠가 주역인 소설인데, 시작부터 신사쿠가 미칠듯이 쳐웃겨서 호흡 곤란으로 반 죽어가고 있다. 아 정말 그 온후한 햄스터 집안에서 무얼 잘못 주워먹고 이런 굇수가 다 나왔대니...! (데굴데굴)
소하치의 도노가 명색 태합 전하 앞에서 나 안 졸았으며 이건 용의 호흡이랍시고 열라 개땡깡을 부리시던 이후 최고의 히트임. 근데 뭐, 오늘 <토시조 살아서 다시> 발송했어!?
(사, 사람 살려...;)

다만 동인녀 이전에 한국인, 한국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1867년 대정봉환 이후의 도막파인지 신정부인지는 손톱만큼도 신경 쓰고 싶지 않다. 하물며 메이지는 더더욱. 그 다음부터 얼마나 막장을 치는지 너무나 뻔히 아는데. 어차피 신사쿠도 료마도 다 죽고 없는걸. 관심 꺼도 돼.

승리 뒤에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허망함이 찾아오고 패배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열정이 솟아나면서 위안이 찾아온다. 그것은 왜 그런가? 아마도 승리가 우리로 하여금 똑같은 행동을 지속하도록 부추기는 반면 패배는 방향 전환의 전주곡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패배는 개혁적이고 승리는 보수적이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영리한 사람들은 가장 멋진 승리를 거두려고 하지 않고 가장 멋진 패배를 당하려고 노력했다. 한니발은 로마를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고, 카이사르는 로마력 3월 15일의 원로원 회의에 나갈 것을 고집하다가 브루투스의 단검을 맞고 죽었다.
이런 경험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실패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고, 우리를 물이 없는 수영장에 뛰어들게 해줄 다이빙 대는 높을수록 좋다.
명철한 사람의 삶의 목표는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만한 참패에 도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승리로부터는 결코 배울 게 없고, 실패를 통해서만 배우기 때문이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흔히 시대의 패자에게 관대하고 그들을 사랑해 마지 않는 것은 판관편애가 어쩌고 이전에 베르베르가 지적한 대로 관건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이기 때문이며, 권력을 잡은 승자는 십에 팔구는 뒤끝이 아주 거지발싸개 이상으로 더러워지기 때문이리라고. 타협하되 동화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므로(리린 님) 대부분의 이들은 주류 권력에 편입되는 순간에 과거의 이상주의와 순수성과 기타 등등을 모조리 상실하고 '찌들고' 마는 법이다.
기실 근대 일본의 경우 일단 당장 생각나는 인종들만 꼽아봐도,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는 <일본 최초의 부패 정치가>라는 어따 내놓을 수도 없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달았고,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인권운동 탄압으로 한 200년은 살 만큼 악명을 번 데다 인간이 하도 좀스럽고 음습해서 국장에 시민은 거의 참여도 안 했대지, 이토 히로부미는... 내가 꼭 말해야 하리? (먼 산) 종래엔 아주 판타스틱하신 방향으로 날아가버린 사이고는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지금 일본 정계를 꽉 잡고 있는 게 시마즈 계열이라 전국 시절 적대 세력이었던 이에야스가 오랫동안 정당한 평가를 못 받았다고 분명 어디선가 주워들었는데 (그리고 그걸 한 방에 뒤엎은 게 소하치다. 아저씨, 굿 잡!) 시마즈가 바로 사츠마인 거라. 그러니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일본 정계의 목불인견 뻘짓은 저언부 사츠마/죠슈 유신지사의 후예들의 소행이라는 얘기가 되지 않겠수. 아이고 두야.
그런 이유로 나는 료마도 신사쿠도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기 전에 후딱 죽어주어서 정말 다행이라 여긴다. 어떤 순수했던 이상도 일단 권력의 달콤한 맛 한 번 보게 되면 99퍼센트 눈뜨고 볼 수 없는 꼴로 변질해 버리는 게 인간 세상이거늘 (뭐 기적이 아주 없다곤 할 수 없으니까 1퍼센트는 남겨두자) 저 두 사람은, 거 참으로 기가 막히게 절묘한 타이밍에 - 하나는 대정봉환 직전, 하나는 대정봉환 직후 - 할 일은 다해놓고 꽥 죽어버림으로써 그 사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열정적이고 지극히 순수했던 <혁명가>의 모습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했거든. 시대의 승자 측으로서 이 이상의 완벽한 결말도 드물다.
유신지사 중에서 사카모토 료마와 다카스기 신사쿠가 가장 인기가 높은 건 - 물론 막강한 빠돌동인남 역사소설가 2인조의 농간도 있겠지만 - 바로 그런 까닭이겠지. 세월과 권력에 때묻지 않은 영구한 청춘과 정열의 잔영. 가장 순수했던 시절에서 영원히 멎어버림으로써 회상할 때마다 아련함과 향수가 함께 감도는 존재. 얼레, 메텔?
(하긴 내가 시바탱이나 소하치여도 뒤끝 더러운 놈들로 소설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체 게바라가 계속 쿠바의 2인자로 남아 있었으면 오늘날처럼 전세계적으로 인기 얻었을까나?)

그래서 신선조 또한 그렇게 불변의 인기를 누리는 것일 게다. 신선조는 본질적으로 정치나 권력 맛하고는 한참 동떨어진 무식하도록 우직하고 순수한 무투집단이었으니까. 존왕이고 양이고 지랄이고 눈앞의 적을 가차없이 도륙하는 자신들의 역할과 본분에만 철두철미하게 충실한 집단. 오로지 한 목적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는 고집스럽고 어리석고 또한 아름답다(by 다카스기 신'스케'). 그러니 그 벼려진 칼날 같은 곧고 단순하면서 또한 단단한 아름다움에 존왕양이라는 쓰잘데기 없는 장식을 달려 한 야마나미와 이토는 죽어야 했고, 시바탱은 그 외골수 같은 순수성을 해칠 조짐이 슬쩍슬쩍 보일 때마다 곤도에게 대놓고 악의를 풀풀 뿌려대는 것이다.


덤. 카츠라 코고로(키도 다카요시라고 해야 하나)의 경우 한 번 권력 중심까지 들어갔지만 그나마 나은 게, 말이 좋아 유신 삼걸이지 이 사람은 권력에 취하고 어쩌고 할 여유도 없이 사이고 놈과 오오쿠보 사이에 끼여 직살나게 고생하다가 딱 마흔 넷에 뇌종양으로 픽 죽어버렸거든; 오죽하면 임종 자리에서 최후로 남긴 말이 "이제 제발 그만 좀 하게, 사이고"(...) 였대잖수. 설마 그게 사세의 구? 어, 어머니...! 눈물이 앞을 가려요...!

top
Trackback Address :: http://kisara71.cafe24.com/blog/trackback/2314818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