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세상을 사는 나날 ① : 그 남자, 낚싯밥에 약하다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07/06/06 10:26

<토시조 살아서 다시>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때마다 냅다 <세상을 사는 나날(世に棲む日日)>로 도피하고 있는 S. 이쪽은 반대로 시작부터 너무 유쾌해서 곤란할 지경이다.
그래 절대로 나 혼자만 즐기지는 못하지라. (이것이 물귀신 스킬!)


시바 료타로 作 <세상을 사는 나날> 문예문고 신장판 제 2권 280page~284page

그 다음날 아침, 해가 높직이 떴을 무렵 신사쿠가 사쿠라다 저(桜田邸)에 돌아와보니,
──즉각 아자부(麻布)의 번저(藩邸)로 출두하도록.
라는 스후(周布)의 호출장이 와 있었다. 그 길로 번저를 나섰다. 아자부 번저는 류도쵸(竜土町)에 있다.
번저에 도착해 스후가 있는 곳을 묻자, 정무실(御用部屋)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길다란 낭하(廊下)를 따라 걸었다.
정무실에 들어가니 놀랍게도, 평소 칠칠치 못하게 무릎을 세우고 앉기 일쑤인 스후가, 몬푸쿠(紋服)와 카미시모(裃) 차림으로 단정하게 정좌하였다.
(나가이 암살 모의, 들통났군
눈치빠른 신사쿠는 단박에 깨달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반항적인 태도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긴 얼굴을 쳐들고 노골적으로 불퉁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스후는 부채를 한쪽 무릎에 세운 채로 침묵만을 지켰다. 한참 후에야,
「어젯밤에, 꿈을 꾸었느니라」
스후가 말했다. 신사쿠는 일부러 옆의 장지 쪽에 시선을 두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떤 꿈이었느냐 하면, 바보 녀석 대여섯이 시나가와(品川)의 도조사가미(土蔵相模)에 모여서는, 번의 중역을 베겠답시고 수작을 하지 않겠느냐」
(역시 들통났구나
내심 등골이 서늘해졌으나, 자극이 주어지면 순식간에 온 몸이 간덩이로 된 듯 배짱이 두둑해지는 남자는 잽싸게 받아 말했다.
「그 꿈은 틀림없는 정몽(正夢)입니다. 실은 어젯밤에, 저와 쿠사카와 나라사키 셋이서 나가이 우타(長井雅楽)의 방을 습격해 죽여버렸거든요. 시체는 해자에 집어던졌습니다」
「헉, 벌써, 죽인 겐가」
스후씩이나 되는 사나이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지만, 신사쿠는 오히려 더욱 침착해졌다.
「예, 막 해자에 처박은 찰나에 잠이 깨 버렸지 뭡니까」
「아, 그대도 꿈 얘기였나」
스후는 떫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나 아직 놀란 가슴이 가라앉지 않은 듯 틀림없이 꿈이겠지? 하고 다짐하였다.
「그렇습니다. 꿈에는 꿈이 좋은 법이죠」
이쯤 되고 보면 스후도 평범한 남자가 아닌지라, 「화제를 바꾸자」며 평소의 태도로 돌아가,
「실은 곤란한 일이 생겼다. 그에 대해 자네와 상담하고자 여기까지 불렀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후는 길고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의외의 이야기였다. 일본은 본디 쇄국 국가로 해외로 도항(渡航)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내년 초, 막부에서 파견사절로 회계(勘定方) 네다테 스케시치로(根立助七郎)와 시오자와 히코지로(塩沢彦次郎)가 상하이로 가게 된다고 했다. 그에 따라 죠슈번으로서는 번내에서 영재를 선발하여, 이들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동행시켜 세계 정세를 파악하고 오도록 할 예정이며, 일본인이 처음으로 해외를 견문하게 되는 만큼 안목이 뛰어난 자를 선택하고 싶지만 그 인선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스후는 말했다.
「허나 스후 선생님께는 의중의 인물이 있으시겠지요」
신사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물었다.
「물론, 있네. ───그대일세」
「저를?」
신사쿠는 상반신을 불쑥 내밀었다. 스후의 낚싯줄에 걸려들었다. 스후는 짐짓 침통한 표정을 가장하고,
「그러나 물거품이 되었네」
라고 말했다.
「어째서 물거품이 됐다는 겁니까」
「그렇지 아니한가. 번의 중역을 암살하면 그대는 사형을 면치 못해. 죽은 자를 무슨 수로 상하이에 보내나」
「기다리십시오. ───」
신사쿠는 손을 들었다.
「나가이 우타 암살은 중지하겠습니다」
(이놈, 제정신인가)
스후는 어이가 없어졌다.
「중지라고 해봤자, 상하이에서 돌아온 후에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단념했다고 하게」
「아하하하하, 단념했습니다」
「허나 쿠사카가」
스후는 주의깊게 말했다.
「승낙하지 않을 터인데」
「아뇨, 승낙시키겠습니다. 까짓 나가이 하나 죽이는 것보다 상하이를 보고 일본의 백년지계를 세우는 편이 훨씬 시급하지요. 쿠사카라고 일의 경중을 모르겠습니까」
(낚았다)
스후는 내심 기뻐했다.
「설마 사무라이 입으로 두 말을 하지는 않겠지? 나가이의 건 말일세」
신사쿠는 기가 막히다는 투로,
「거 참 질기십니다. 그건 애초부터 꿈 얘기였습니다. 스후 선생님 스스로도 꿈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라고, 뒷부분은 일어나면서 말한 후, 등을 돌리고 느긋이 방을 나갔다. 신사쿠가 떠나고 나자, 스후는 어느 쪽에서 이 승부를 걸었는지 알 수가 없어졌다.
(저놈은 제 아비의 감시 밑에서 여태껏 몸을 움츠리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카츠라보다 훨씬 단수가 높은 모양이야)
새삼스럽게, 스후는 죠슈번에 기묘한 인재가 태어났음을 실감하였다.

바로 직전까지 사람 하나 죽일 꼼수를 부리고 있더니 상하이란 미끼 드리워주자마자 언제 내 그랬냐는 듯 저요! 저요저요저요저요저요! 저 갈래요! 하고 날뛰는 신사쿠가 너무 웃겨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방약무인에다 에이타 말마따나 고삐 풀린 황소마냥 날뛰는 주제에 부모 앞에선 영 고갤 못 들고,
지멋대로 사시는 인간이 할머니가 정해준 통금시간은 꼬박꼬박 지키고,
과격파 혁명가 주제에 열라 리얼리스트에 번주에 대한 충성심 하난 겁나게 확고하고,
번명(藩命)은 뭐든지 잘 들으면서 뻑하면 탈번(脫藩)하고,
카츠라를 친형처럼 존경하는 주제에 형님 위에다 구멍은 지 혼자 다 내고,
절라 병약한 주제에 행동력은 짱이요 성욕은 과다고,
여자 밝힘증이라더니 죠슈 제일 미녀인 마누라는 내팽개치고 남자들끼리 팔랑팔랑 놀러다니고,
금전감각은 꽝이어서 공금을 유용하질 않나 애먼 몬타를 달달 볶아대질 않나 (오죽하면 이노우에가 비리 정치가 된 건 5할이 허구헌날 자금 조달하라 쪼아대는 신사쿠 땜에 니 것 내 것 구분이 흐려진 탓이라는 설마저 있다;)
하는 짓 벌이는 짓이 전부 규격 바깥인 주제에 어머님이랑 정처가 온대니까 애첩 숨길 델 못 찾아서 아와와와하며 우왕좌왕하고,
워낙 천재라서 하면 다 제법 잘하는데 질리는 속도는 빛의 속도에 맞먹고,
신기한 거 재밌는 건 무조건 다 좋아하고 공갈협박은 누워서 떡먹기요 사세의 구까지 농짓거리고 세상만사를 재는 척도가 재미있다/없다이며,
사람 부려먹는 게 취미인 인간이 권력엔 털끝만치도 흥미가 없어 메이지까지 용케 살았으면 동기들이 전부 높은 자리 앉을 때 유럽으로 냅다 튀던가 사흘만에 때려치고 하기로 도망갔으리라 만인의 의견이 일치하는 남자.

진짜 왜 이렇게 쳐웃기냐 다카스기 신사쿠! (데굴데굴데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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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삭제 댓글
드베리 2007/06/06 23:52
신사쿠 완전 귀엽습니다!!!ㅜㅠ 상하이가 그렇게 가고 싶었나!!! 방금전까지 세게 나가던건 언제고 바로 "중지하겠습니다"하는 게 완전...이 남자 정말 왤케 귀엽나요OTL '지멋대로 사시는 인간이 할머니가 정해준 통금시간은 꼬박꼬박 지키고'라니, 최고입니다 ㅜㅠb 너무너무 읽어 보고 싶지만 번역본은 당연히 없겠죠?(먼산) 그런 의미에서 KISARA님, ①이라는 건 다음 편도 있다는 거겠죠!!(두근두근)<-이미 신사쿠만큼 낚였다
수정/삭제
KISARA 2007/06/12 21:16
물론 다음 편도 있습니다. 이 남자의 대책없는 귀여움을 저만 혼자 즐길 수야 없지요, 핫.핫.핫!!

...걍 일본어 공부하세요... 번역본을 기대하느니 그 편이 백 배 천 배 낫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일본 역사소설 한국어 버전은 질이 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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