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바보는 몇 년이 지나도 바보. (S, 오리지널로 복귀하다)

무한번뇌의 소용돌이 | 2007/06/19 20:21

지벨 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만 오랜만에 불이 붙었달지 애정이 되살아나 한 편 후딱 갈겨써 보았다. 만날 막말 이야기만 떠들어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 시작해 버렸으니 이제 참담한 결과는 결코 책임 못 집니다 뮤즈 님...!
이제까지 수도 없이 찔러본 무수한 오리지널 중 S가 가장 깊은 애착을 품고 있는 아포스톨리카 편이다. 설정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친구 H짱의 신세를 잔뜩 졌음. 새삼스럽지만 사의를 표하겠소 허니.


아스칼린드체 페사디나 디토스 렌──발음하다 혀를 두어 번은 깨물 것 같은 풀 네임의 아포스톨리카 제 7대 교황은 눈앞에 일렬로 무릎을 꿇은 문제아 여덟 놈 + 축생 한 마리를 원자의 움직임이 정지하는 절대영도보다 대략 1도쯤 낮은 썰렁한 눈으로 깔아보았다.
경동맥을 그었을 때 분수처럼 솟구치는 선명한 피와도 같고 맹렬하게 불타오르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폭력적인 불꽃과도 같은 붉은빛의 눈동자가 저렇게까지 차가워질 수도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지- 라고,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 자리에서 벌 선 티아라는 생각했다. 현실 도피라고도 한다.

늘 하듯이 일은 성실한 부관과 행정관에게 맡기고 인간계에 한 주 가량의 예정으로 외유(外遊)를 나갔다 모종의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사흘 빨리 복귀한 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흔적도 없이 날라간 8할을 훌쩍훌쩍 울며 죽어라고 복구하고 있는 엘뤼드니르(마계궁)였다.
이때 그의 다이내믹한 표정의 변화에 대해서, 144년 전 티某 총사령관과 디某 어의가 유치찬란한 싸움 끝에 교황께서 아끼시는 찻잔을 박살낸 이후 가장 꿈에 볼까 두려운 형상이었소, 라고 행정관 도리안=크메노 아트리드르가 후에 먼 눈으로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는 이야기고, 기억 정보를 바탕으로 15분만에 엘뤼드니르 전체를 1주일 전의 모습으로 복구해낸 렌은 뒤편에서 물색없이 감탄하며 박수치는 디오의 머리터럭을 잠자코 잡아채 바닥에 메다꽂아 버렸다.

그 후 반 시각도 채 지나지 않아 제 발 저린 놈들이 자수하여 광명 찾고자 교황실로 자진 출두한 결과가 현재의 이 상황이었다. 오른쪽에서부터 에즈, 네스, 태비-로더, 프리그, 리온, 스란두, 토트, 티아라, 디오. 이래봬도 마계의 최고통치기관 아포스톨리카(Apostolica)의 면면들이다.


렌은 실룩실룩 경련하는 눈가를 손으로 애써 누르며 뇌까렸다.

"...그래, 대강 정리하자면 이런 거냐? 바보 같은 티아라 녀석과 얼간이 같은 토트 놈이 또 시비가 붙어 치고 받고 아웅다웅하다 디오가 들고 가던 표본병을 깨먹었고, 막 사귄 연인을 잃어버린 디오가 격분해 메스를 난사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고, 최근에 세 명 연속으로 유혹하는 데 실패해 프러스트레이션이 장난 아닌 프리그가 짜증을 내며 되는 대로 파괴의 춤을 추고, 지나가다 말려든 로더가 울화통을 벌컥 터뜨리며 흉폭한 이계 식물을 왕창 소환했고, 벌레잡이충에게 붙들려서 반쯤 삼켜진 스란두가 에라이 혼자는 못 죽겠다고 그림자를 몽땅 폭주시켰고, 덕분에 잘 졸다가 숨쉬기 운동을 훼방받은 리온이 홧김에 저주를 난사했고, 그 저주가 이리 부딪히고 저리 튀어 수습이 불가능해졌을 무렵에 스트레스와 프레셔를 못 버텨낸 에즈가 절규하며 폭주하고 얼결에 왕년이 그리워진 네스가 마장룡 버전으로 돌아가 꼬리를 휘두르고 불을 뿜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엘뤼드니르의 80퍼센트가 없어져 있더라... 이거야?"

"이예이~파이널 앤서──! 정답입니다 교황 성하!"
근 척추반사적으로 평소 하던 가락따라 촐랑맞게 대답을 날린 티아라는 0.0001초만에 본인의 행위를 후회했다. 나란히 벌 선 나머지 일곱 명 + 축생 한 마리의 싸늘한 눈길이 옆얼굴에 퍽퍽 꽂히는 일쯤이야 전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으나, 무언가의 스위치가 들어가 버린 렌이 대략 16세기만에 구경하는 만면의 미소를 띄운 채 손가락을 우득 꺾으며 지저세계를 관통하는 목소리로 간결하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전원, 이 악물어라."






'봐, 봤어!? 지금 봤냐 디오!? 손바닥도 아니고! 핀터! 핀터가아아아아!'
'오오, 멋진 소리였다. 하악골에 손뼈가 절묘한 각도로 부딪혔을 때야 비로소 발생하는 저 완벽한 울림! 과연 공주님이야!'
'니가 암만 해부 변태기로서니 지금이 그딴 소리나 할 때야!? 에즈가 벽에 처박혔다구요!?'
'우하하하하, 까짓 거 죽기밖에 더 하겠냐. 울어도 발버둥쳐도 공주의 핀터에선 도망치지 못해. 마음을 비우고 기꺼이 결과를 받아들이자구, 티아라.'
'우왓, 이 자식 돈오의 경지로 혼자 들어가버리지 마──!!'

그나마 진작부터 렌에게 늑실하게 두들겨맞은 경험이 풍부한 티아라와 디오는 텔레파시 통신을 할 여유나마 있었지만 나머지는 그러고 자시고 할 정신도 없었다. 표현형은 키 174cm 체중 56kg, 호리호리한 체격의 17세 소년이지만 그들의 교황은 천마계 최강 투톱 중 하나. 아무리 '너무나 인간스러워 마족으로선 실패작'일지언정 애초가 살육과 파괴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배틀 머신. 천계와 마계와 심지어는 이계까지 통틀어도 렌과 맞짱을 뜰 수 있는 개체는 그쪽도 왕년에 한가닥 했다는 천계의 현 서약자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2번 타자인 네스 - 현재의 표현형이 전장 30cm 가량의 노오랗고 살찐 병아리인 - 는 "마, 마스터, 설마 이 가련하고 쪼매난 생물한테꺼지 폭력 휘두를 기가!? 용권(龍權)유린이데이! 부하폭행이데이! 직권남용이데이! 내가 때릴 데가 우딨노! 니는 피도 눈물도 읎나!!" 라는 둥 "폴리모프는 몬한다! 개그에 목숨 건 내 용생을 예서 작살낼 끼가! 그렇게는 몬한다, 차라리 날 쥑이삐라!" 라는 둥 어설픈 경상도 방언으로 떠벌떠벌댄 끝에 핀터 대신 뇌천찍기를 선사받고 승천하였다.

'우옷! 태비 대단해! 렌의 핀터를 맞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어! 태비 대단해!'
'역시 오기로 뭉친 여자는 달라...! 오오, 프리그가 나가떨어졌다! 이건 나온다... 나온다... 나왔다! 아빠한테도 맞아본 적 없는데!'
'왓! 리온도 날아갔어! 머얼리 날아갔어!'
'스란두 녀석, 오오오, 목이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270도 돌아갔어!'
'후후후... 토트... 날아가라! 문짝 채로 날아가버려...! 그대로 요단강을 종단해서 돌아오지 마라 Fucking bastard fox...!'
'오오오오, 티아라, 지금 안면 그라데이션이 굉장해! 앞으로 니가 어떻게 되건 토트의 불행이 깨소금 맛이라 이거지!'
'두말하면 산소 낭비일 뿐... 히에에엑!!?'

"티아라."

소리소문도 없이 접근한 렌이 문짝을 뚫고 복도로 내팽개쳐진 토트를 바라보며 사악하게 키들키들 쪼개던 티아라의 정수리를 꽈아아아아아아아악 움켜쥐었던 것이다.

"반성은커녕 아까부터 나불나불 떠들어대더니 이젠 한눈 팔 여유까지 있으시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꺄아아아아악! 자자자자자자잘못했어요! 단지 이건, 그 뭐냐, 마족은 욕망에 충실하니까...! 저기 렌, 눈이 죽어 있는데... 무진장 무섭습니다만!! 서서서서서서설마!!? 초크슬램 프롬 더 헬을 시전할 생각만은....아니시겠....!!"

"───지옥에나 떨어져!!!!!"







50cm 깊이로 거꾸로 처박혀 움찔움찔 떨고 있는 명색 친구의 다리를 창백하게 질려 바라보는 디오에게 렌이 조용히 물었다.
"특별 대우를 원하나?"
"아뇨!"
디오는 즉답했다.

"공평하게 모두와 같은 핀터로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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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벨. 2007/06/20 21:31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_=
부추기기 여왕 지벨이라 불러주셔요. 역시 사람은 찌르고 봐야 하는 거군용 :D 이대로 연재로 이어지면 좋겠는데요오?
수정/삭제
KISARA 2007/07/04 11:33
우하하하 이걸 어쩌실 거에요 지금 계속 네타가 떠오르고 있단 말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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