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고의.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07/06/20 21:57

방금 전까지 <열한 번째의 지사>를 읽다 집어던졌다. '그것은 너의 피해망상' 이라면야 전혀 할 말 없지만 신사쿠가 텐도 신스케를 살살 꼬드기는(...) 장면에서 자꾸 다른 신스케가 니조한테 작업 걸 때의 삘이 난단 말이오.... OTL 더구나 행간마다 내 맘대로 깽판을 치고야 말겠다는 시바탱의 굳건한 의지가 보여서 도저히 쪽팔려서 살질 못하겠다. 나 이거 당분간 안 읽어...

고래부터 옛 성현들도 말씀하셨으니 쪽팔림은 다른 쪽팔림으로 중화해야 하는 법(뭣) 실은 어제 6월 19일은 음력으로 5월 5일, 즉 오리지널 부장님의 생신이셨다. (챙겨 임마!) 그리고 다가오는 25일은 음력으로 5월 11일, 오리지널 부장님의 기일이시다. 고로 한동안은 부장님 특집으로 밀어붙이겠다 결심하고 나왔음. 젠장 내 모에를 알리지 말... 아니 날 말리지 마라──!!!


시바 료타로 作 <불타라 검> 문예춘추판 598page~600page

토시조는, 오두막의 봉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영주 저택의 시녀인 듯한 젊은 여자 다섯이, 병자로 보이는 부인을 둘러싸고 비장한 얼굴로 은장도를 움켜쥐고 있었다.
토시조는, 본인의 이름과 신분을 밝히고, 해를 끼칠 의도는 없으며, 사정을 알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히지카타 토시조 님?"
여자들은, 쿄에서 명성을 떨쳤던 이 무사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어떠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지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가운데의 부인은 임신 중이었다. 이제 스물을 갓 넘겼을 뿐으로, 미인은 아니었지만 기품이 있었다.
"내 이름을 고하십시오."
라고, 시녀들에게 지시하였다.
마쯔마에(松前) 번주 마쯔마에 시마노카미 노리히로(松前志摩守徳広)의 정실이었다.
토시조는 여기서, 그답지도 않게 지극히 온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였다.
"시마노카미는 지금 에사시(江差)에 계시겠지요."
공성전 직전에 에사시로 향한 것은 이미 간첩의 보고에서 들었다. 어째서 홑몸이 아닌 번주 부인만이 남겨졌는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다.
"에사시까지 대사(隊士)가 호위해 드릴 겁니다."
라고 말했다.
토시조는 그 대사를, 순간적인 판단으로 지명하였다.
사이토 하지메와 마쯔모토 스테스케(松本捨助).
이 두 사람이었다. 어느 쪽도 신선조(신선대)의 지휘관이 아닌가.
더구나,
"에도까지 모셔다 드리게."
라는 명령을 내렸다.
"히지카타 씨, 제정신입니까?"
사이토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정신일세."
"거절하겠어요. 당신하고는 신선조를 결성했던 무렵부터 줄곧 함께 했습니다. 이제부터 에조치(蝦夷地 = 홋카이도)에서 크게 일을 벌여보려는 차에 갑자기 에도로 가라니, 죽어도 싫습니다."
"에도에 가거든, 고향으로 돌아가."
"……."
사이토와 마쯔모토는 크게 놀랐다.
토시조는 두 사람을 험악한 얼굴로 노려보며,
"대명(隊命)에 불복하는 자는 벤다. 신선조의 법도를 이미 잊은 건가."
라고, 가차없이 승낙시킨 후, 부대의 회계를 불러, 전별(餞別)로 일금을 주었다.
전별에도 차이가 있어, 마쯔모토 스테스케는 열 냥이었지만 사이토 하지메는 서른 냥이었다.
까닭을 물으니, 거기에는 토시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미나미타마(南多摩) 군 출신(사이토는 반슈 아카시播州明石의 낭인의 아들)이지만, 사이토는 고향에 가족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스테스케는 양친도 건재하거니와 집도 땅도 있었다.
"그래서다."
그 말을 끝으로, 토시조는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에사시에서 에조치를 벗어나, 그 후, 메이지 말년까지 살아남았다. 살려보내는 것이, 토시조가 이별을 강요한 가장 큰 이유였다.
──묘한 사람이었다.
만년까지 야마구치 고로(山口五郎, 사이토 하지메 개명)는 토시조를 그런 식으로 회상하였다.

여기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 하~이 손 들어보세요──!!!
에조치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신정부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고양이 손도 아쉬울 이때, 불과 열 여섯밖에 안 된 이치무라 테츠노스케는 최후의 결전 직전에야 탈출시켰으면서 유능하기 짝이 없는 사이토를 묘한 토를 달아 쫓아보낸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 분, 예, 그렇고 말고요, 당신은 옳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실제의 사이토는 홋카이도는커녕 아이즈에서 부장과 헤어졌기 때문이다.

사이토를 비롯한 신선조는 아이즈번의 지휘 하에 들어가, 윤4월 5일에는 시라카와구치(白河口)의 전투에 참전, 8월 21일에는 보나리(母成) 고개의 전투에도 참가하였다. 히지카타와 합류한 것은 본 전투에서 철수하던 도중, 이나와시로(猪苗代)에서였다. 이후 히지카타는 쇼나이(庄内)번으로 향하고, 오오토리 케이스케 등 구 막신(幕臣)의 부대는 센다이로 떠났으나, 사이토는 아이즈에 남아 아이즈 번사와 더불어 성 밖에서 항전을 계속한다. 9월 22일 아이즈번이 항복한 후로도 사이토는 계속 싸웠으며, 가타모리가 파견한 사자의 설득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신정부군에 투항했다. 항복한 후에는 포로가 된 아이즈 번사들과 함께, 처음에는 구 아이즈번 영지인 시오카와(塩川)에서, 그 뒤에는 에치고 다카타(越後高田)에서 근신하였다. (from 우리의 친절한 이웃 위키페디아)

예 그렇습니다. 히지카타 부장이 쇼나이번으로 원군을 청하러 갔다가 실패하고 센다이로 옮긴 사이, 오오토리의 육군 부대와 더불어 아직 아이즈에 남아 있었던 신선조 대사들 중 사이토를 비롯한 13명이 센다이 이전을 거부하고 주저앉았던 것이다. 어느 자료를 살펴봐도 사이토는 아이즈에 잔류한 게 100퍼센트 틀림없다. (심지어는 아이즈는 이제 글렀다고 투덜대는 부장에게 사도[士道]에 어긋난다는 폭언을 퍼부었다는 설마저 있음;)
그런데 시바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엉뚱하게도 그 사이토를 센다이는 고사하고 홋카이도까지 데리고 가 버렸으니...!! ;;;

좀 더 조사해 본 결과 사이토 하지메와는 별개로 부장과 함께 홋카이도까지 건너간 사이토 이치다쿠사이(斉藤一諾斉)라는 신선조 대사가 실존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교토 시절에는 검술이 강하기만 할 뿐 이렇다 할 특징은 없는 인물이었지만, 각지를 전전하면서 무슨 까닭인지, 점점 성격이 익살맞아져, 하루는
"대장, 내 아호(雅號)를 지었습니다. 오늘부터는 그 호로 불러주었으면 좋겠군요."
라고 말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다쿠사이(諾斎)입니다."
웃고 있었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주제에, 마치 은둔자와 같은 이름이었다.
토시조도 웃음을 터뜨리며 이유를 질문했다.
"무엇이든 대장이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다쿠사이."
라고 말했다.
(<불타라 검> 문예춘추판 562page~563page)

어~이 시바탱....? 여보세요...? ;;;; (남의 이름에 그럴듯한 핑계 붙이지 마쇼!?)

여담이지만 시바탱은 사료 수집에는 가히 광적인 집착을 보여, 평생 동안 몇천만 엔 단위로 돈을 처바르고 헌책방에서 관련 서적의 씨를 말렸다고 한다(...). 칸다 진보쵸(神田神保町)의 그 유명한 헌책방 거리에 경트럭 한 대를 몰고 와서는 책방에 쳐들어가자마자 손에 걸리는 대로 트럭에 집어던져 깡그리 싣고 바람처럼 떠났다는 얘기도 있고,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를 집필할 때는 러일전쟁에 대한 기술이 있는 책이란 책은 다 사쳐들이는 통에 비슷한 시기 같은 소재로 희곡을 쓰려던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가 고서점에 갔더니 한 권도 남아 있는 게 없더란(...) 일화마저 있다.
저렇게 사료에 미친 인종이 설마 자료 미비로 요딴 실수를 할 리도 없고, '나이들어, 미나미타마 군 유키무라(由木村) 나카노(中野)의 초등학교 교원이 되었다'라는 구절도 사이토 이치다쿠사이의 경력이긴 하지만 '메이지 말년까지 살아 남았다'고 하거나 굳이 '나이들어'라는 말을 붙인 걸 보면 (이치다쿠사이는 나이들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1873년에 교원이 되었다가 1874년에 사망했고, 사이토 하지메는 1891년부터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재직한 경력이 있으며 다이쇼 4년인 1915년에 병사했다) 시바탱이 이치다쿠사이와 하지메를 순 고의로 두름쳐서 하나로 취급한 건 거의 확실하므로, 이건 장담하건대 필경 그거다 그거.

"나의 히지카타를 끝까지 곁에서 지켜도 모자랄 판에 중도탈락이라니 괘씸하다 사이토! 메이지 정부에서 경찰관이 되었다니 더더욱 괘씸하다! 용서할 수 없어! 사료가 뭐라 하건 난 하코다테까지 데려갈 테야──!! 키익───!!! 젠장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이토 이치다쿠사이랑 확 퓨전시켜 주마 으하하하하하!!! 나의 히지카타에게 절대복종하는 거다!!" (...)

그렇다고 최후의 고료카쿠 전투까지 붙들어 놓자니 사이토가 게서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지 않으면 이상한데 또 거기까지 막 나가긴 좀 찔리고 한즉 전투 발발 전에 치워버리긴 해야겠고(실제의 이치다쿠사이는 1869년 5월 하코다테 정부가 무너졌을 때 신정부 측에 투항했다), 그래서 저런 어정쩡한 형태로, '부장 자신의 의사'에 의해 사이토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엄청난 꼼수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게다.
즉 부장이 자발적으로 손을 놓는 건 용납할 수 있지만 사이토 주제에 감히 부장을 먼저 버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단 얘기(...). 야 이 망할 놈의 영감탱이야...! 그렇게 부장이 좋냐!? 그렇게 부장이 좋아!!!?

덤. 역시 남자가 남자에게 한 번 정념을 품으면 여자는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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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삭제 댓글
스즈카 2007/06/21 00:58
읽을 때는 그냥 부장의 심정을 나타내기 위한 소설적 장치라고만 생각했는데 키사라 님의 글을 읽고 보니 실은 시바 선생의 빠돌이 기질이 역력히 드러나는 대목이었군요.;;(이젠 시바 선생께 존경심마저 듭니다;;)
수정/삭제
KISARA 2007/07/04 11:34
시바 선생 아닙니다. 저 천인공노할 남자에게 선생자 달아주기 아깝습니다. 시바탱입니다(...). 악의를 담아서 씹어뱉듯 발음하시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전 일본 역사소설가들에 대해선 이미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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