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의 언덕에서.

듣거나 혹은 죽거나 | 2007/06/21 19:08

멀고 먼 옛날, 어느 곳인가, 어지러운 세상의 한 구석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도둑질을 익혔죠.
추하게 살찐 어른들의 발로는
결코 따라잡지 못할 바람과 같이
당장 주린 배를 채워야 했으니까
옳고 그름을 넘어, 그저 달렸어요.

그 깨끗한 마음은, 더럽혀지지 않은 채 죄업을 쌓아갔죠.
천국이든, 설령 지옥이라도, 이곳보다만 낫다면 기꺼이 찾아갈 텐데!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니, 어느 사기꾼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빵을 안고 도망치다가, 스쳐지나간 행렬 속의
아름다운 소녀에게 시선을 빼앗겨 그 자리에 못박혔어요.
머나먼 거리에서 팔려온 걸까요.
내리깐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죠.
부호의 저택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소리를 지르며, 그저 달렸답니다.

그 깨끗한 몸을, 더러운 손으로 더듬고 있는 걸까.
소년은 무력하고, 소녀에게는 어떤 사상도 소용이 없어요.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째서 우리들은 사랑해주시지 않는 거지"

땅거미를 기다려 검을 훔쳤죠.
묵직한 검을 끌며 걷는 모습은,
바람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슬펐어요.
카르마의 언덕을 올랐지요.

분노와 증오를 실은 칼날을 휘두르며,
피에 젖어 찾아낸 소녀는 이미,
부서진 영혼으로 미소지었어요.
최후의 일격을 소녀에게.

우는 것도 잊어버렸어요. 주린 배만을 기억해냈죠.
소년 또한 있는 그대로의 고통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어요.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 멀고 먼 옛날, 어느 곳에선가 있었던 이야기─



- 포르노그라피티, 카르마의 언덕(カルマの坂)


포르노그라피티가 쳐죽일 놈들인 줄이야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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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삭제 댓글
비령 2007/06/23 05:15
하느님 맙소사;; 막 호주 신세대 작가 공모전(..) 같은 거에 보내려고 비슷한 주제의 글을 쓰고 있던 차였는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문법체크(..)하기 전에 KISARA님 블로그에 와봤더니 이런 글이......OTL 비슷한 주제라기보단 진행방향이 비슷한 거지만;

아무튼 이거, 상당히 좋네요. 이런 것 좋아합니다. 부서진 영혼으로 미소지었다는 구절이 좋아요.
수정/삭제
KISARA 2007/07/04 11:35
포르노그라피티가 원래 좀 나쁜 놈들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뒤통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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