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열받은 김에 또 오리지널.

무한번뇌의 소용돌이 | 2007/07/01 23:35

온통 검은색으로 휘감은 그 소년은 마치, 수면 하의 거대한 빙산과도 같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흩뿌리고 있었다.


외관과 시간의 흐름이 단절된 마계에서 연령층을 가리키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지만, 난다 긴다 하는 조폭들이 체격에서도 인상에서도 도무지 비교가 안 되는 <소년>에게 하나같이 식은땀을 구슬처럼 흘리며 길을 내주는 광경을, 완력 하나로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와 마계 최대의 무정부 폭력조직 <인페르노>의 보스로 자리매김한 티아일레인─티아라는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험악한 불량배들의 벽을 어렵잖게 통과한 소년은, 일심동체의 대쇄겸을 곁에 세워두고 단상에 아무렇게나 퍼지르고 앉은 티아라의 앞에 섰다.
외관은 열 여섯에서 열 일곱 사이. 키는 174 가량, 체중은 57이나 될까. 보기에는 좀 미덥지가 못할만치 호리호리한 체격이었지만 이 바닥에서 구를대로 굴러본 그녀는 단순히 마르기만 한 것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노출이라고는 손 끝이 고작인 복장 밑에 숨어 그저 가늘어만 보이는 팔에도 다리에도 실제로는 균형 잡힌 근육이 빈틈없이 붙어 있을 줄은 쉽사리 상상이 갔다.
불필요한 살을 일체 배제하고 완벽한 기능미만을 극한까지 추구한 디자인이다. 더더욱 티아라의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그쪽은 그쪽대로 티아라를 품평하듯 죽 훑어본 소년이 입을 열었다. 살짝 가라앉은 테너.



"─네가 티아일레인인가?"



엄지손가락으로 죽 밀어올린 고글 밑으로 드러난 것은,
선혈을 유리구슬에 담아놓은 듯한, 아무런 감흥도 없는 붉은 눈이었다


척추에 전류가 흘렀다.
오장육부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야수의 흥분을 짐짓 감추며, 티아라는 도발적으로 응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그땐 말야, 진짜로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대니까. 그 뭣이냐, 정수리에 벼락이 떨어졌달까 승룡권으로 한 방 얻어맞았달까 다른 세계가 보였달까 아무튼 대략 그런 느낌이었어. 난 있지, 이쁘고 작고 귀여운 여자애가 좋단 말이지. 시커멓고 딱딱한 사내새끼 따윈 거저 줘도 안 먹는단 말이지. 사은품 붙여서 딴 데로 던져버린단 말이지. 근데 쟬 한 번 봤더니 한숨에 성적 기호고 지랄이고 아무래도 좋아지대. 저 새빨간 눈동자 속에 일렁이는 조용한 야수성에 걍 숨이 꼴딱 넘어갔다구. 왜 진정한 강자는 닥치고 가만 있어도 다 알아본다 그러잖아. 딱 그랬다니까. 머리에 털나고 난생 처음으로 남자한테 반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다 했어. 내가! 이 내가! 이 개망나니 티아라가! 헌데 그 자리에서 조직 걷어치우고 군말하는 짜식은 몽땅 때려눕힌 담에 쫄레쫄레 따라왔구먼 아 글쎄, 이놈의 교황 알고 보니 야수는 얼어죽을, 순 규중에서 곱게 자란 공주님♡입디다!! 겁나게 아방하지 멍하지 둔해빠졌지 감성은 쓰잘데없이 소녀지 천연이지 고지식하지 지 일에 열라 절라 무심하지 명색 마족이 돼갖고 어른의 놀이♥엔 면역이라곤 없지 주제에 오지랖은 드럽게 넓어갖고 아무 일에나 껴들지 이건 모에계!? 모에계 캐릭터냐!!? 순 사기다! 기만이다! 위조다! 난 속았어어어어어! 인생에 배신당한 이 절망적인 심경을 알겠냐? 홀딱 반해서 쫓아온 남잘 이젠 동인에서 굴리는 것 말곤 달리 써먹을 데도 없는 내 심정을 니가 알어?! 그거, 이를테면 첫사랑 같은 거였다구. 그 귀중하고 달콤한 경험을 어디 바칠 구석이 없어 요런 데서 날려먹다니...! 젠장, 내 인생 돌려다오, 내 첫사랑 물어내라아아아아아아아──────────!!!!"


렌은 잠자코 결재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은 후 시끌시끌하게 아우성치는 총사령관을 깔끔한 옆차기로 일격에 날려버렸다.





"요즘 폭력이 늘지 않았수, 공주님?"
"말로 해서 안 되는 놈은 무조건 패는 게 제일이란 진리를 드디어 터득했을 뿐이다. 그리고 공주라고 하지 마."


PC가 스트라이크를 일으켜 복구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그 와중에 기껏 썼던 카이짱 생일 축하용 SS는 허공으로 증발했음(....).
너무 열받고 울화통이 터져서 홧김에 오리지널 꽁트나 한 편 더 써 버렸다. 설정은 여기 참조. 근데 대체 답글은 언제 달 거냐?

그래서 Love at first sight는 안된다던가 You can't judge the book by the cover라던가 대강 그런 얘기임. 뭔 소리야.
캐릭터가 정확히 잡힌 티아라나 디오가 쓰기 편해서 자꾸 이놈들만 등장시키게 되다 보니 패턴이 무진장 안이해진다. 니 능력이 없어서란 쯧코미는 반사하겠음. 다음에는 과감하게 래더가스트에게 도전해 볼까. 이거 명색이 R&R이고. Rest and Relaxation도 Rock'n Roll도 아님.

덤. 깜박할 뻔했는데 '선혈을 유리구슬에 담아놓은 것 같은' 이란 표현은 H짱에게 빚지고 있다. 언제나 고마우이 친구여. 그러니 빨랑 천계 설정 내놔라~ (원고 중이라는 사실은 고의적으로 까먹고 시위부터 한다)
하여간 말 나온 김에 그녀가 그려주었던 좋고도 좋은 일러스트 중에서 가장 이거다아아아아! 싶었던 렌을 은근슬쩍 붙여 보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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