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8만 히트 기념. (이게!?)
현재 S의 명예의 전당(= 일명 '그래 내가 졌다 니네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봐라 뷁')에는 총 열 여섯 커플이 등재되어 있다. 8만 히트를 빙자하여 이 기회에 커플지옥 시리즈나 한 번 두르륵 풀어볼까 생각 중. 번역일수도 있고 헛소리일 수도 있고 짤방 하나 쩔꺽 붙여놨을 수도 있고 하여간 그렇단 얘기. 1번 타자는 물론 카이신카이다.
이하, 카이신카이의 여신님 토마토 마치(苫戸マーチ) 님의 사이트 THE GREEN BANANA에서 쌔벼온 <흩날리는 눈을 녹이다(降る雪解かす)>. 여기 주인장이야 언제나 배 째고 등 따고 장으로 이단뜀뛰기 정도는 할 각오가 있으므로, 무단으로 가져가실 분은 (없겠지만) 쿄고쿠도의 저주 7대분을 각오해 주십시오. 끝.
문제 되면 스스슥 지워버립니다. 질에 대한 태클은 슬프므로 받지 않겠음.
...and less.
흩날리는 눈을 녹이다
아침 나절에 쌓였던 눈은 미처 다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해는 저물고, 차디찬 밤바람이 불어닥친다. 밟혀 다져진 인도의 눈은 미끄러운 얼음으로 변해, 리드미컬하게 팔랑팔랑 걷던 쿠로바의 스니커가 기세좋게 좌악 미끄러졌다.
「우오!」
나란히 걷는 쿠도의 어깨를 엉겁결에 움켜쥐는 통에, 쿠로바와 함께 쿠도도 성대하게 비틀거렸다. 두 사람 다 타고난 균형감각으로 꼴사납게 넘어지는 일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서로를 부축하며 자세를 바로잡고,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추위로 오그라붙은 몸을 갑자기 격하게 움직인 탓인지, 심장이 활발하게 펌프질을 개시하고, 체온도 조금 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목도리 위에 얹힌 입술에서 하얀 숨결이 새어나와 허공에 퍼졌다.
「위험하잖아」
쿠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쿠로바의 발치를 보았다. 하얀색과 투명한 반점이 뒤섞인 얼음이 벽돌로 마감한 인도의 일부분을 뒤덮고, 가로등을 반짝반짝 반사하고 있었다. 미끄러져도 별 수 없겠다고 여기면서도, <그> 괴도 키드가 까짓 눈 때문에 미끄러졌다고 생각하니 무턱대고 우스워졌다.
「미안 미안」
쿠로바는 살짝 웃으며 쿠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쿠도도 그에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미끄러워서 무서워용, 하며 쿠로바가 쿠도의 팔에 철썩 들러붙는 걸, 바보냐, 의 한 마디로 일축은 했으되 굳이 잡아뜯어낼 기력도 아까웠으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쿠도네 집까지 앞으로 수십 미터.
주택가의 무수한 집들 사이사이로 쿠도 가의 지붕도 엿보였다. 당장은 눈이야 내리지 않지만, 몰아치는 바람은 뺨과 손끝까지 순간 냉동되어 버릴 것처럼 사정없이 싸늘해서, 얼른 따뜻한 집안으로 굴러들어가고픈 마음뿐이다. 자연히 발걸음이 빨라졌다.
빨라졌을 텐데, 항상 매끄러운 쿠로바의 발걸음이 다소 신중해졌음을 느끼고, <그> 괴도 키드가 말이지, 하며 쿠도는 마음속으로 피식피식 웃었다.
「맞다 맞다, 하쿠바 말론 괴도 키드는 스케이트엔 젬병이라더라, 쿠로바 군」
「쿠도, 걔 말은 진지하게 안 듣는 편이 이로워~」
「오, 그럼 한 번 같이 스케이트장에 가서 확인해 볼까. 난 탈 줄 알거든」
「……상관없지만, 그 다음은 노래방이야?」
「시간없어」
「그럼 캔슬」
스케이트와 노래방 풀코스의 데이트는, 단박에 겨울의 질풍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쿠도 저택까지 거의 근접했을 때, 옆집의 문기둥에 기대선 커다란 눈사람의 존재를 깨달은 쿠로바는
「아, 눈사람이다. 아이짱 솜씰까나?」
라며 다가가 보았다. 눈사람에겐 한쪽 눈이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거뭇거뭇한 견과류를 주워, 본디 눈이 있었을 자리에 도로 박아넣었다.
「그 녀석이 퍽도 하겠다. 탐정단이겠지」
「나도 알아」
정문 틈새로 아가사 저택을 들여다보니, 정원에는 크고 작은 눈사람이 잇달아 늘어섰고, 녹다 만 눈뭉치가 굴러다니고 있어 격렬한 눈싸움이 있었음을 수이 짐작케 했다.
「좋았어, 우리도 눈사람 만들자구」
「추우니까 패스. 혼자 잘 놀아봐라」
「알았어, 알았다고」
몇 발짝만 떼면 바로 쿠도 가 앞이다. 문턱을 넘어, 아침과 마찬가지로 고스란히 눈에 뒤덮인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쿠로바는 정원을 주욱 훑어보고 변한 게 없네, 라며 새하얀 숨결을 토해냈다. 쿠도가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려고 악전고투하는 틈을 타, 즉석에서 손바닥만한 크기의 눈사람을 만들어 현관 포치에 내려놓았다. 너무나도 조그마해서, 내일 아침쯤에는 녹아서 형체도 찾아볼 수 없으리라.
「하려면 더 크게 만들어」
「쿠도 군은 심술쟁이──」
「바─보」
둘이서 구르다시피 들어간 현관은, 외부의 바람마저도 완전히 차단한 무음(無音)의 공간이었다.
문이 끝까지 닫히는 소리를 들을 여유도 없이, 두 사람은 신발을 신은 채 서로를 끌어안았다.
정신없이, 양팔에 힘을 주어 상대를 확인하였다.
불조차 켜지지 않은 컴컴한 현관은, 바깥의 추위를 잊을 만큼 따뜻하고, 서로의 존재 이외의 것은 모두 잊어버릴 만큼 조용했다.
상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온도가 급격히 변했기 때문이리라, 코를 훌쩍였다.
「미안, 많이 늦었지」
「늦어도 크리스마스까지는 온댔으면서」
「응, 아슬아슬했네」
「반 년만에 키드한테서 예고장이 왔다고 알려주면서, 나카모리 경감님 얼굴이 어땠을 것 같아?」
「기뻐보이대?」
「날아가려 하더라」
「응, 그렇겠지」
쿠로바가 마지막으로 쿠도 가의 베란다를 박차고 떠나간 것은, 반 년 전, 늦봄의 어느 날이었다.
이후 소식 한 통 없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반 년간. 그 시간은, 오늘 아침 하늘에서 쏟아지는 가랑눈과 더불어 괴도 키드의 예고장이 쿠도에게 배달되면서 막을 내렸다.
좀 전의 현장에서, 실로 오랜만에 출현한 괴도 키드가 나카모리 경감과 하쿠바 사구루와 쿠도의 얼굴을 차례대로 주시하고,
「이것 참, 멋진 손님들이 모두 오셨습니다. 크리스마스 파티로군요」
그렇게 기쁜 듯이 중얼거렸던 것을 쿠도는 문득 떠올리고, 또다시 코를 훌쩍였다.
「안에 들어가자. 여기 엄청 춥다」
쿠도의 어깨에서 얼굴을 떼어내며 쿠로바가 말했다. 그 말에 쿠도 역시 고개를 들고, 응, 이라고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방기 타이머, 맞춰놓고 나왔어. 냉장고에 요리도 케이크도 있고. 하이바라가 만들어줬다」
서로의 어깨를 짚고 신을 벗었다.
「케이크도 있어? 파티가 따로 없네」
「선물은……」
「난 쿠도 신이치로 충분해」
「입만 살아서」
「넌 쿠로바 카이토 필요없어?」
「있어」
아침나절 쌓였던 눈은, 미처 녹지 못하고 남아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그들은 오늘밤 끝까지 풀어헤칠 수 있을 것인가. 뜨겁게.
카이신카이는 기본적으로 러브러브논실난실상호상애닭살커플을 추진하지만 아무래도 카이토가 신이치를 약간 더 좋아하는 게 훨씬 내 취향인 모양이다. 정확히는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신이치를 마구마구마구마구(곱하기 무한대) 과보호하는 카이토가 좋은 것임.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은 전부 휠스짱에게 있다)
그런 이유에서, S의 카이토는 신이치가 조금이라도 싫어할 일은 죽어도 안 하기 때문에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여왕님께서 "난 아픈 건 싫어" 라고 당당하고 뻔뻔하게 한 마디만 하옵시면 앞으로의 참상을 예상하고 속으로 막 울면서도 양보하고 만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는 카이신, 육체적으로는 신카이라는 희한한 구도가 성립. 땅, 땅,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