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뒤집어져도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으리.

읽거나 혹은 죽거나 | 2007/12/23 22:57

1. 편집자를 죽여라(編集者を殺せ, 원제 : Murder by the Book) - 렉스 스타우트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너무나도 궁금한 나머지 큰맘먹고 한 개 구입한 네로 울프 시리즈 일본어판. 늘 생각하지만 왜것들의 제목 짓는 센스는 참으로 황이라니까. 툴툴툴툴.

한 줄 감상 : 아치의 1인칭이 무려 ぼく. 끗. (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닥 잘된 번역이 아니었다. 모두 알다시피 울프 시리즈의 정수는 세상 끝날 때까지 쩍 들러붙어 주절주절주절주절나불나불나불나불 쉴새없이 혓바닥을 놀려대는 개싸가지독설만담난사콤비의 속을 긁고 복장은 뒤집는 독설전인데 영어의 열라 천박한 맛;까진 훨씬 유한 일본어에 기대 안 했을지언정 응당 은혼 레벨은 되어야 하거늘 행간행간마다 촘촘촘촘촘촘히 박힌 독기와 가시가 모조리 망각의 강물 속에 던져졌으니 아니 이게 웬 오밤중에 엘리제의 우울. 역시 스타우트는 원서로 읽는 게 짱이다.

하지만 콤비는 여전히 귀여웠고 なんと答えたら良いのかしら? 私、知らないファンから贈り物を貰えるとは夢にも思えないタイプの女の子だから聞かれたらどう説明したらいいか分からないわ 기타 등등등을 고.대.로. 재현하는 아치는 끝내주게 쳐웃겼으므로 대충 넘기기로 하였음. 근조 대한민국을 살아서 목도했는데 뭔들 용서 못하랴...


2. 젊은 사자(若き獅子) - 이케나미 쇼타로

제목부터 열라 쪽팔리지만 외면 외면.
이케나미 신사쿠가 끝내주게 뱃속 시커멓다는 소문을 주워듣고 오옷! 하며 가열찬 검색 워즈 끝에 애써 구입하였더니 시커멓긴 개뿔이었다. 이케나미 아니라 시바탱과 소하치와 켄땅을 다 데려와도 고작 12여 장(...)에 규격을 때려부수고 삐져나간 그 인간의 무엇을 무슨 재주로 밀어넣으리...? 초반 막말 사정을 논하는 작가의 시선이 뭣같이 껄쩍지근하여 특수 필터로 열성껏 거르고 났더니 남는 건 한줌이더이다. 이런 씨(자체 검열)
뒤쪽에 '신선조패주기'란 제목부터 후덜덜한 단편도 수록되어 있었으나 보지도 않고 집어던졌음. 아서라 고마 다 치워라... 이제야 정신 들어 회상하여 보니 이케나미는 사나다 태평기 적부터 문체가 영 내 취향이 아니었더란 말이지...

....혹여, 이케나미 쇼타로가 아니라 딴 이케나미였단 결말은 아니겠지!?


3. 하코다테 팝니다(箱館売ります) - 토가시 린타로

히로세 니키의 <히지카타 토시조 산화>가 기대에 영 못 미쳤고, 아키야마 여사의 제목부터가 개폭의 예감으로 선열한 <신선조포획첩 겐 상의 사건부>는 스스로 교토 신선조에 애정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함을 미처 상기 못했던 내 패배였으며(부장님의 존재로도 도저히 커버가 안된다;), 이 바닥에서 <토시조 살아서 다시>와 더불어 부장 총수의 레전드(...)로 명성 높은 하기오 미노리의 <산화 히지카타 토시조>는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중고 문고판 주제에 6000엔!? 미쳤냐!) 복간될 때까진 거의 포기 중이고, 켄땅의 <흑룡의 관>이 나름 흥미진진한 첩보전으로 열라 잘 나가다 최후의 최후에 정말 으악할 전개로 아닌 밤중에 거품 물게 하는 등 총체적으로 부장 관련 서적에서의 수확은 그닥 대단치 못했다. 정확히는 <불타라 검>의 막강한 뽀오쓰에 비견할 물건이 없는 것이다. 시바탱이 괜히 시바탱이 아니랑께요앗흥(...)
그래도 본질이 부장님 빠순인지라 내가 까다로운 탓이려니 여기고 새로운 책을 찾아 방황하던 차, 그간 미루고 또 미뤄왔던 토가시 린타로(富樫倫太郎)의 제목부터 하 수상쩍은 <하코다테 팝니다~막말 가르트너 사건 이문록~>을 결국 구입했더니 아 이게 예상 이상으로 걸물이지 않겠는가. 으하하하하.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가르트너(Gaertner) 사건이란, 1869년 초엽에 하코다테 정부가 - 아마도 재정난을 해결해 보려는 속셈으로 - 프러시아인 리하르트 가르트너와 콘라트 가르트너 형제에게 나나에(七重), 이이다(飯田), 오오카와(大川), 나카지마(中島) 일대의 경지 300만 평을 99년간 기한으로 조차한 것을 그 다음 해에 메이지 정부가 62,500달러를 배상금으로 지불하고 겨우 손 턴 사건을 말한다. 괜히 '이문록'이 아니므로 이미 있는 이런 사실에다 픽션과 음모와 술수와 액션과 활극과 부장님(...)을 적절히 버무려 꽤 그럴싸한 첩보물 하나를 뽑아내고 있음은 한 마리 독자로서 아아주 좋은 일이나 거기서 끝나면 내가 이러고 주절주절 떠들어댈 리가 없고, 이 소설이 얼마나 범상찮은 물건인지는 일단 후르륵 넘긴 찰나에 잽씨덕 튀어나온 <프리메이슨>(두둥-) 단어 하나로 설명이 완료된다. 물론 바로 개폭하며 쓰러졌다. 나는 프리메이슨과 장미십자회가 등장하는 소설을 제정신으로 볼 수 없는 병을 타고난 몸이란 말이다...!!

어찌저찌 그럭저럭 제정신을 수습하고 개폭을 애써 참으며 차근차근 읽어나가고 있다만, 아직 반은커녕 3분의 1도 읽지 않았는데 오오토리가 얼마나 거식한 앤지 동정의 눈물을 금할 수가 없다. 오, 오라버니!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그 와중에 부장님은 여전히 적과 아군을 불문하고 열라 유능하신 만인의 아이돌이옵시니 하기사 부장님 빠순빠돌치고 둘째 남편 곱게 보는 애가 드물긴 하지. 이 사람의 부장님은 엄청 유능할 뿐만 아니라 은근히 귀여워서 참 마음에 든다.

토가시 린타로 作 <하코다테 팝니다> 하드커버판 244page~245page

히지카타는, 화로를 감싸안듯이 등을 구부리고 바닥에 앉아, 떡이 새까맣게 타지 않도록 바지런히 뒤집어주며 그때마다 간장을 조금씩 뿌려나갔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이 사람은, 정말 섬세하구나)
킨쥬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킨쥬로였다면, 철망에 떡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기다렸다가 적당히 부풀었을 때쯤에 집어 간장을 찍어먹는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허나 히지카타는, 마치 구운 떡의 전문가라도 되는 양, 간장을 뿌린 떡을 꼼꼼하게 굽는 작업에 온 신경을 쏟아 열중하고 있었다.
예전 브뤼네의 길라잡이가 되어 순찰에 동행했을 때도, 킨쥬로는 몇 번인가 히지카타와 함께 식사를 했었다.
그때마다 경이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밥공기에 그득 담긴 밥을, 히지카타는 마치 여성처럼 품위 있게, 더구나 밥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물론 아까운 밥을 남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히지카타의 경우, 그 자세가 실로 우아할 뿐더러 단순히 허기가 져서 쌀 한 톨도 아낀다기보다는, 흡사 그러한 행위 자체가 본인의 미의식에서 자연스레 유발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킨쥬로는 히지카타가 떡을 뒤집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킨쥬로가 히지카타의 방을 방문했을 때 마침 히지카타는 막 떡을 굽기 시작한 참으로,
「곧 끝나네. 거기 앉아서 기다리게나」
라고 한 마디 했을 뿐, 그 후로는 줄곧 입을 다물고 떡을 굽는 일에 몰두했다. 어쩔 수 없이 킨쥬로도 입을 다물고 작업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다 됐다」
작은 접시에 구운 떡을 얹었다.
탄 곳 하나 없이 전체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져 있었다. 히지카타는 만족스런 얼굴로 떡을 응시하고는,
「히라야마 군도 들게」
접시를 내밀었다.
「식사는 벌써 끝냈습니다만」
「떡 하나쯤 못 들어가겠나」
「그게……」
「사양하지 말게」

엄마야, 까짓 떡 하나 구워놓고 열라 만족스런 얼굴이래...! (데굴데굴)
은혼 부장이라면 필시 저기다 떡이 안 보일 만큼 마요네즈를 처발라놓고 꿀항아리를 앞에 둔 한 마리 곰탱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겠지. 아이고 귀여워라.

토가시 린타로는 하코다테 정부 소재로 <살생석(殺生石)>이란 물건을 하나 더 썼는데, 이놈은 무우려 생제르망 백작(...)과 칼리오스트로(...)가 악역으로 등장하고 - 어째서!? - 이름부터 나 아베노 세이메이! 아베노 세이메이 후손이야! 라 아우성치는 음양사(...) 한 마리가 꼽사리 끼며 출판사의 짤막한 리뷰만으로도 충분히 후덜덜한 작품이다. 아... 안 봐! 안 볼 거야! 절대 안 본다니까!?


4. 도스코이(どすこい。) - 쿄고쿠 나쯔히코

이 책에 대한 감상은 딱 열한 글자로 축약할 수 있다.
쿄고쿠 나쯔히코는 변태다.

백기도연대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 인간 진짜 변태다....!!! 목차 좀 봐라 목차!!!

이케미야 쇼이치로의 <47인의 자객>의 패러디인 <47인의 역사>(...)
세나 히데아키의 <패러사이트 이브>의 패러디인 <패러사이트 뚱땡>(...)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패러디인 <모든 것이 뚱땡이가 된다>(...)
스즈키 코지의 <링>/<나선>의 패러디인 <링(土俵 : 씨름판)>/<뚱땡선>(....)
오노 후유미의 <시귀(屍鬼)>의 패러디인 <지귀(脂鬼)>(...)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의 패러디인 <이유理油(의미불명)>(...)
다케모토 켄지의 <우로보로스의 기초론>의 패러디인 <우로보로스의 기초대사>(....)

한 마디로 끝에서 끝까지 기름과 살덩이와 지방으로 얼룩진 패러디 모음집이라는 것만으로도 미치고 팔짝 뛰겠는데 작가진(...) 리스트는 더 후덜덜하다. 나 혼자 죽지 못하겠으니 살짜쿵 공개하겠음.

신쿄고쿠 나쯔히코(新京極夏彦)
1975년 교토부에서 출생. 87년 신쿄고쿠 상점가 어린이 스모 대회에서 준우승. 98년 <도스코이(どす恋)>로 제 1회 히가시신바시 네코마타 상점가 진흥문학상 가작 입선. 실은 난쿄쿠 나쯔히코 著 <패러사이트 뚱땡>의 등장인물.

난쿄쿠 나쯔히코(南極夏彦)
1942년 시마네현에서 출생. 수상 경력은 없음. 통칭 발빛나리(簾禿げ). 주된 작품으로는 <종마의 길고 긴 요의(種馬の長い尿意)>, <육우의 삼바(肉牛のサンバ)>, <토사견의 한숨> 등이 꼽힌다. 실은 N쿄쿠 개정해서 쯔키기메 나쯔히코 猪 <모든 것이 뚱땡이가 된다>의 등장인물.

N쿄쿠 개정해서 쯔키기메 나쯔히코(N極改め月極夏彦)
1968년 도쿄도에서 출생. 성별 불명의 복면 작가. 본작은 그의 조모가 동인지 <살>에 게재한 작품을 수정한 것이라 한다. 실은 쿄즈카 마사히코 著 <링・뚱땡선>의 등장인물.

쿄즈카 마사히코(京塚昌彦)
1950년 후쿠시마현에서 출생. 호러 작가. 데뷔작 <피칠갑한 꼬마가 명치를 쓰다듬다>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주된 작품으로 <귀에서 도마뱀이>, <좀비의 딥 키스> 등을 들 수 있다. 실은 쿄고쿠 나쯔바쇼 猪 <지귀>의 등장인물.

쿄고쿠 나쯔바쇼(京極夏場所)
학생 작가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의 나이와 출신지 등은 일절 비밀에 붙여져 있다. 모 작가의 필명을 흉내내어 게릴라식으로 발표한 것이 본작이라 한다. 그러나 실은 쿄고쿠 나쯔히코 著 <이유(의미불명)>의 등장인물.

쿄고쿠 나쯔히코(京極夏彦)
1963년 홋카이도에서 출생. <망량의 상자>로 제 49회 추리작가협회상 장편상을, <웃는 이에몬>으로 제 25회 이즈미 쿄카 문학상을, <엿보는 코헤이지>로 제 16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후 항설백물어>로 제 130회 나오키상을 수상하였다. 오랫동안 실존 인물로 여겨져 왔으나, 실은──.

료고쿠 후미시코(両国踏四股)
1970년 혼죠(本所)에서 출생. 논픽션 라이터. 12대에 걸친 뼛골까지 에도 토박이. 선조의 일기를 토대로 한 <혼죠 우베에 일기>로 각광을 받았다. 그 후로는 미스터리 작가로 전업하여 활동 중이다.

더 뭐라 할 기력도 없다. 미쳤나 봐 이 인간 OTL
목차만 봐도 돌아버릴 것 같아 읽다가 던지고 읽다가 또 집어던지고 읽다가 묻어버릴까 삽 들고 오길 반복하는 생산적이지 못한 짓을 하고 있다. 그래 이런 순 변태같은 본성을 억누르고 음침꿀쩍우울한 얘기나 쓰려니 얼마나 피곤하시겠수...;

슈에이샤에서 낸 문고판은 이 미친 것 같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딱 70년대 순정풍 그림체인 권말 부록 만화 <괴기! 오오모리 니쿠히코 군(怪奇! 大極肉彦くん)>(...)이 정말 무섭게 진국이다. 쿄고쿠 나쯔히코의 미친 정신세계에 관심이 있는 분은 한 번쯤 꼭 보시길. 물론 그 후에 받는 정신적 외상은 책임질 수 없다 (외면)

top
Trackback Address :: http://kisara71.cafe24.com/blog/trackback/2314981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