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왔다.

보거나 혹은 죽거나 | 2008/04/15 23:54

속공으로 지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속공으로 클리어했다.

항례의 한 줄 감상 : 젠장 대체 내가 뭘 본겨.... OTL

어머니가 같이 봐주셨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불행한 주화입마를 일으킬 뻔했다. 어찌하여 이놈의 감독은 내가 죽.어.라.고. 약한 요소요소만 쏙쏙 잘도 골라뽑아 버무린 거시냐 아 젠장 이래서 영국넘들은 안돼...
이런 못돼처먹은 얘길 정말 저지르고 싶어? 저지를 거야 미즈시마? 응? 응? 응?

현재의 스코어는 '제발 나 좀 살려줘'와 '씨바 그래 갈 데까지 가 봐라 샛갸'가 20대 80. 누가 너 앵스트 서커 아니래더냐 이년아.


마음이 다소 진정된 후의 덤.

1. 심정적으로는 물론 데미언에게 동의하지만 테디를 무턱대고 비난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파드릭 딜레이니 생긴 게 딱 내 취향이라서가 아니고(...) 누구나 아프고 괴로운 건 싫은 법이다. 피 철철 흘려가며 절반이나마 쟁취했으면 그걸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게 당연하다. 녹슨 펜치에 손톱이 생으로 뽑히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너는 시네드의 품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언젠가 이런 조약은 갈가리 찢어버리겠다던 처절한 호소는 분명 테디의 진정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이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았다는 걸.
북아일랜드는 지금도 영국령이다.

2. 그들이 동지이자 친우였기 때문에야말로 일선을 넘는 순간 애정은 순식간에 불타는 증오로 탈바꿈한다.
독립전쟁에서 목숨 잃은 이들보다 내전의 와중에 희생된 이가 더욱 많다는 이 아픈 아이러니.

3. 나름 적절히 균형 잡아가던 영화에서 유일하게 진정으로 숭악한 돌덩이 움켜쥐고 싸닥션 시전하고팠던 놈은 가톨릭 사제였다. 설치지 좀 마라 교회. 부자와 힘 있는 자의 편을 드는 종교, 신의 권위를 앞세워 모든 의견을 무자비하게 찍어누르는 종교가 얼마나 밥맛인진 여기서 이미 지겹게 봤다.

4. 영국이 잘한 짓 한 개도 없는 거 맞고 영국군이 실제로 저질렀을 일에 비하면 화면 위는 엄청 나이브하더만 - 나는 더욱 지독한 꼬라지를 상상했었더랬다. 일본이 대체 어디서 그 지랄을 배워왔느냔 말이지 - 뭐어가 매국노고 영국을 사랑하지 않고 레니 리펜슈탈(..)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보면 꼭 영화는 한 컷 보지도 않은 놈년들이 입에 거품물고 왈왈컹컹대더라 -_-;;;)
이런 영화가 아일랜드 아닌 영국 감독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국은 켄 로치에게 삼종부배 해야 할 판이다. 자국이 저지른 끔찍한 과오를 돌아볼 용기는 뭐 아무나 갖는 줄 아쇼.

5. 킬리언 머피는 요물이다(....) 아니 뭔 놈의 인간 눈이 저리 투명하게 반짝일 수 있는겨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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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린 2008/04/16 19:31
...레니 리슈펜탈......꼬로로록.
아니, 나름 영국산 감독으로써 자제하긴 했구나 근데 거기까지 들이대지 못하는 걸 딱히 까대고 싶진않고. 무엇보다 다큐가 아니거덩 <-요런 생각하던 제 어이를 깔끔하게 날려주는군효(.....)

근데 정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아니라 보리밭을 뒤엎는 허리케인 아닌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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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08/04/17 09:08
위키페디아에 좀 전말이 실렸길래 대강 훑어봤는데, 대강만 훑어봐도 보리밭에 대한 우파 언론들의 반응은 정말 웃기지도 않더라고요 (한숨) 실컷 감독을 나치 같은 인간이다 뭐다 비난해 놓고 절라 당당하게 그 영화 안 봤다 찌질할 게 뻔하니까 안 본다 뭐 이러고 나불대는데 진짜 싸닥션 시전의 욕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라고요. 염통에 털이 나도 유분수지요.
저도 진짜 영화 많이 자제했구나 생각했거든요. 폭력의 수위가 제가 상상했고 실제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보다 한참 낮아서... 하지만 말씀대로 딱히 뭐라 하고 싶지 않은 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신 후달렸거든요 orz 열라 덤덤하게 영광의; 독립전쟁에서 내전 쪽으로, 동족상잔으로 슬슬 사람 몰고 가는 데 정말 환장하겠더이다... OTL

맞아요 바람은 무슨 바람입니까 허리케인 맞아요 허리케인에 토네이도에 사이클론이 한꺼번에 몰려왔어요 어흑흑흑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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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iel 2008/04/18 12:38
...엊그제 거북이, 방금 보리밭을 클리어하고 후달리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들어왔습니다. 두 분 말씀대로 이건 바람이 아니라 허리케인이에요ㅜ.ㅜ

KISARA님 감상에 구구절절 동감합니다ㅜ.ㅜ 1,2,3,4,5 모두 직격이지만 본 직후인 지금은 1번과 4번에 급 공감합니다. 특히 그 사제... 종교인이 정치에 끼어들어 나불거리는 걸 미친듯이 싫어하는데 그걸 콕 찝어서 보여주니 그대로 교회 부숴버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역사와 현재 티벳까지 자꾸 생각이 나서 남의 일 같지 않아 거의 숨도 못 쉬겠더군요.

거북이는 보셨는지요? ...개인적으로 보리밭은 정신을 들었나 놨다 영화 내내 실컷 발리고 후달렸다면 거북이는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차마 눈물도 흘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KISARA님의 감상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야!)

단지... 대체 그럼 <더블오에서 다루고 싶은 주제>가 뭐란 말입니까ㅜ.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인간들이면서ㅜ.ㅜ 그래놓고 배드 엔딩은 아닐 거라고 우기는 저 신경줄OTL

이러다가 KISARA님 댁에 덧글로 감상문을 써버릴 것 같으니 이쯤에서 자제하겠습니다;; (제정신이 들면 감상을 제대로 써보고 싶지만 영화가 너무 훌륭해서 오히려 머뭇거리게 되네요...)
이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으로 마무리해야겠군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떡밥을 물고 낚여 싹싹 발리는 서글픈 생선의 신세란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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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RA 2008/04/22 11:34
....살아 계십니까 meliel님.

거북이는 한국 땅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아직 보류 중입니다. 곧 보게 될 것 같긴 합니다만... 전 간덩이가 작아 시간이 좀 필요해요 (먼 눈)
감상문 꼭 쓰십시오. 모에는 나누면 네 배, 발림은 나누면 여덟 배가 됩니다. 혼자 죽을 수 없지 않습니까.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 영화를 보게 만들어야...! (야)

다루고 싶은 주제가 뭐긴 뭐겠습니까. 보리밭은 결국 처음에 한 마음 한 뜻으로 손잡고 출발했던 이들이, 심지어는 사이좋았던 형제마저도 입장과 가치관의 차이로 찢어지고 총부리 들이대고 서로 증오하며 죽고 죽이는 얘기잖아요. 제일 가능성이 높은 건 지금 시점에선 아무래도 마이스터즈끼리 분열해서 피투성이로 치고 받는 거고 차점이 형님을 대신하는 세츠나와 라일의 피 터지는 싸움이겠죠.... 먼 눈.
2기는 진짜 각오하고 있어야 될 성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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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 2008/08/30 17:35
보고 왔습니다.

참 좋은 영화였고 감독이 무서운 놈이었고(영국인이면서!) 덤덤하고 건조하게 어떻게 사람들이 갈라서고 싸웠는지를 보여주어서 정말 정신줄 놓아가면서 봤습니다.

2기와 보리밭과의 관련성을 전면부정하고 싶어집니다 OTL
더블오? 그게 뭐였죠, 먹는 건가요 맛있나요? 어떻게 요리해 먹으면 맛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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