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김에 팍팍 해치우자. 청승과부(그러니까 오타 아님)의 궤적은 앞으로 두 파트 남았습니다. 頑張れオレ!
제 13장. 낙차(落差)
어휴 저놈의 쩌는 마초 냄새. 누구냐 나의 캐맛초한 주공근을 히메우케 따위로 만든 썩을 년들은!!!!
적벽대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손권전의 <손권・조조・유비……각 진영의 내정>, <적벽의 전초전>, <적벽대전>을 읽어주세요. 여기에서는 주유에게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항전을 결의한 후, 주유는 3만 수군을 이끌고 하구(夏口)로 향했습니다. 헌데 정작 군의 구성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손권은 주유의 전황분석을 통해 철저항전을 결심하고도 도독(사령관)을 두 명이나 임명했던 거예요.
좌도독(左都督) 주유
우도독(右都督) 정보
물론 좌도독이 상관에 해당하긴 하지만, 손권은 어째서 도독을 둘이나 두었을까요? 손권의 판단 미스로 치부하면 이야기는 빠르지만, 요는 주유에게 일임하기가 영 불안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습니다. 손권이 취임한 후 정보와 주유의 전적은 거의 비등비등했거든요. 그럼 여기서 양쪽의 전적을 살펴봅시다.
특히 손권 취임 시 일어난 반란을 주유가 진압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게 걸립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손권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실전능력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정보는 고참으로서의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고, 국운이 걸린 이 정도 규모의 큰 전쟁은 자신이 지휘해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모양이에요. 사령관끼리 대립하는 날엔 <국가지대사를 말아먹기 직전>(손교전孫皎傳 참조)까지 몰리기 십상입니다. 그럭저럭 대립하지 않고 넘어간 건 오로지 주유가 저자세를 마다않고 지극히 정중하게 정보를 대접했기 때문이죠. 정보는 성품이 격하고 괄괄해 곧 죽어도 자기 쪽에서 화해를 청할 타입은 아니에요.
훗날 주유와 화해한 정보는 「주공근과 잔을 기울이노라면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마시는 듯하여 취기도 느끼지 못한다오」라고까지 했다니, 얼마나 주유가 신경써서 배려했을지가 엿보입니다.
이런 진통을 겪으면서 주유는 하구로 향했습니다. 하구에는 유비 일파가 한 발 앞서 도착해 있었죠. 그러나 유비 일파와 합류한 주유는 정보에게 보인 정중함을 유비에게는 털끝만큼도 보여주려 하지 않습니다. 유비전의 주석(강표전)에 기록된 주유의 언동을 한 번 볼까요.
● (유비가 환영의 사자를 보내자) 군무가 있어 자리를 뜰 수 없으니 그쪽에서 와라.
● (유비가 전략에 대해 질문하자) 전쟁은 우리가 하겠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
● (유비가 노숙을 만나고 싶어하자) 군무가 있으니 다음 기회로 미뤄라.
와아 넘해. 대체 어째서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했을까요? 주유는 딱히 거만한 타입도 아닙니다. 딴에는 이유가 있었겠지요.
즉 주유의 속마음은 이게 아니었을지요. <니네들은 있어봤자 도움도 안돼>. 수상전이라면 유비 일파의 힘을 빌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니까. 주유는 이미 승기를 잡고 있었고, 적벽대전에서 주유의 전략적 구상 속에 유비는 들어 있지 않았어요. 더구나 사령관끼리 대립하지 부하들은 물고 뜯지(감녕과 능통), 조조군은 물론이고 손권군도 이래저래 말썽이었습니다. 군무가 어쩌네 저쩌네 앵무새마냥 속이 빤한 변명을 되풀이하는 걸로 보이지만, 실제로 군무에 치여서 허덕이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에요.
허나 정보를 대할 때의 배포나 너그러움을 유비에게도 발휘할 수는 없었던 걸까요? 이 낙차는 대체 무슨 연유일까요? 어쩌면 주유가 뼛골까지 군인이었다는 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외교적 정치적 입장에서 보자면, 유비를 섭섭하게 대해서 좋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주유는 그때까지의 경력을 훑어보아도, 군사분야에만 집중하고 정치와 외교에는 담을 쌓은 듯한 경향을 보입니다.
주유와 분위기가 영 껄끄럽기도 했던 까닭에, 유비는 적벽에서는 후방에 진을 치고 군을 움직이지 않았어요. 하란 대로 한 거죠. 훗날 주유만큼 역사적 사실과 삼국지연의로 대표되는 허구 사이에 어마어마한 낙차가 지고 만 사람도 잘 없습니다. 주된 원인은 주유가 유비 일파에게 필요 이상으로 매몰찼던 탓이겠지요. 주유가 악역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본래라면 연의에서 괜찮은 배역이 얻어걸렸을 노숙마저 갭이 생겼습니다. 더구나 현대에 들어서는 멀끔한 미남이라는 이미지만 부풀어 다카라즈카냐고 따지고 싶으리만치 미소년으로 진화하고 있고 말예요. 하긴 눈에 확 뜨이니 굴리기도 좋지 않겠습니까.
항전을 결의한 후, 주유는 3만 수군을 이끌고 하구(夏口)로 향했습니다. 헌데 정작 군의 구성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손권은 주유의 전황분석을 통해 철저항전을 결심하고도 도독(사령관)을 두 명이나 임명했던 거예요.
좌도독(左都督) 주유
우도독(右都督) 정보
물론 좌도독이 상관에 해당하긴 하지만, 손권은 어째서 도독을 둘이나 두었을까요? 손권의 판단 미스로 치부하면 이야기는 빠르지만, 요는 주유에게 일임하기가 영 불안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습니다. 손권이 취임한 후 정보와 주유의 전적은 거의 비등비등했거든요. 그럼 여기서 양쪽의 전적을 살펴봅시다.
정보 | 3군(단양・오・회계)의 불만세력을 일소. 강하토벌에 참전, 예장, 낙안(樂安)을 토벌. 태사자와 교대하여 해혼(海昏)의 수비를 전담. |
주유 | 손유의 감시역으로서 마보요새 토벌. 예장에 진입한 황조를 격파. 황조토벌에 전부대독(前部大督)으로 참전. |
특히 손권 취임 시 일어난 반란을 주유가 진압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게 걸립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손권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실전능력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정보는 고참으로서의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고, 국운이 걸린 이 정도 규모의 큰 전쟁은 자신이 지휘해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모양이에요. 사령관끼리 대립하는 날엔 <국가지대사를 말아먹기 직전>(손교전孫皎傳 참조)까지 몰리기 십상입니다. 그럭저럭 대립하지 않고 넘어간 건 오로지 주유가 저자세를 마다않고 지극히 정중하게 정보를 대접했기 때문이죠. 정보는 성품이 격하고 괄괄해 곧 죽어도 자기 쪽에서 화해를 청할 타입은 아니에요.
훗날 주유와 화해한 정보는 「주공근과 잔을 기울이노라면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마시는 듯하여 취기도 느끼지 못한다오」라고까지 했다니, 얼마나 주유가 신경써서 배려했을지가 엿보입니다.
이런 진통을 겪으면서 주유는 하구로 향했습니다. 하구에는 유비 일파가 한 발 앞서 도착해 있었죠. 그러나 유비 일파와 합류한 주유는 정보에게 보인 정중함을 유비에게는 털끝만큼도 보여주려 하지 않습니다. 유비전의 주석(강표전)에 기록된 주유의 언동을 한 번 볼까요.
● (유비가 환영의 사자를 보내자) 군무가 있어 자리를 뜰 수 없으니 그쪽에서 와라.
● (유비가 전략에 대해 질문하자) 전쟁은 우리가 하겠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
● (유비가 노숙을 만나고 싶어하자) 군무가 있으니 다음 기회로 미뤄라.
와아 넘해. 대체 어째서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했을까요? 주유는 딱히 거만한 타입도 아닙니다. 딴에는 이유가 있었겠지요.
즉 주유의 속마음은 이게 아니었을지요. <니네들은 있어봤자 도움도 안돼>. 수상전이라면 유비 일파의 힘을 빌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니까. 주유는 이미 승기를 잡고 있었고, 적벽대전에서 주유의 전략적 구상 속에 유비는 들어 있지 않았어요. 더구나 사령관끼리 대립하지 부하들은 물고 뜯지(감녕과 능통), 조조군은 물론이고 손권군도 이래저래 말썽이었습니다. 군무가 어쩌네 저쩌네 앵무새마냥 속이 빤한 변명을 되풀이하는 걸로 보이지만, 실제로 군무에 치여서 허덕이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에요.
허나 정보를 대할 때의 배포나 너그러움을 유비에게도 발휘할 수는 없었던 걸까요? 이 낙차는 대체 무슨 연유일까요? 어쩌면 주유가 뼛골까지 군인이었다는 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외교적 정치적 입장에서 보자면, 유비를 섭섭하게 대해서 좋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주유는 그때까지의 경력을 훑어보아도, 군사분야에만 집중하고 정치와 외교에는 담을 쌓은 듯한 경향을 보입니다.
주유와 분위기가 영 껄끄럽기도 했던 까닭에, 유비는 적벽에서는 후방에 진을 치고 군을 움직이지 않았어요. 하란 대로 한 거죠. 훗날 주유만큼 역사적 사실과 삼국지연의로 대표되는 허구 사이에 어마어마한 낙차가 지고 만 사람도 잘 없습니다. 주된 원인은 주유가 유비 일파에게 필요 이상으로 매몰찼던 탓이겠지요. 주유가 악역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본래라면 연의에서 괜찮은 배역이 얻어걸렸을 노숙마저 갭이 생겼습니다. 더구나 현대에 들어서는 멀끔한 미남이라는 이미지만 부풀어 다카라즈카냐고 따지고 싶으리만치 미소년으로 진화하고 있고 말예요. 하긴 눈에 확 뜨이니 굴리기도 좋지 않겠습니까.
어휴 저놈의 쩌는 마초 냄새. 누구냐 나의 캐맛초한 주공근을 히메우케 따위로 만든 썩을 년들은!!!!
제 14장. 전략가 주유(戦略家・周瑜)
...이 남정네가 손책-주유는 골든 콤비라능 소릴 대체 몇 번째 하고 있는지 세어보고 싶은 강력한 충동을 느꼈지만 지그시 깨물어 참기로 했다. 뿜다 죽긴 싫다.
번구(樊口)에서 유비와 합류한 주유 일행은 그 즉시 육구(陸口)로 향합니다. 육구는 장강 방어의 요충지로, 점령당하는 날에는 시상(柴桑)까지 육로로 위협받을 공산이 큰 거점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육구에는 노숙, 여몽, 육손과 같이 오 제일의 지휘관이 주둔하곤 했습니다. 한편 조조군 역시 육구를 목표로 삼았지만 주유가 한 발 빨리 차지한 모양입니다. 지도를 보면 번구-육구 사이의 거리와 강릉(江陵)-육구 사이의 거리는 거의 비슷하지만, 장강을 따라내려오는 조조 쪽이 한결 유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유에게 선수를 뺏긴 건, 규모가 큰 조조군의 느린 이동속도, 수군운용능력의 차이, 연고지의 유리함, 역병 발생으로 인한 사기 저하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죠. 그리고 최초로 전선이 깔린 곳은 적벽이었습니다. 주유전에도 적벽대전은 접근전이라 기록되어 있어, 화공(火攻)을 썼던 장소는 아닙니다. 이미 역병에 시달리고 있던 조조군은 접근전에서 패하고 장강 북쪽의 오림(烏林)에 새로이 진을 쳤습니다. 주유측은 남쪽 기슭에 진을 두었죠. 대치상황이 한동안 지리하게 이어지다 황개가 진언한 거짓투항작전이 채택되었고, 그 결과 조조가 오림에 주둔시킨 군선의 대부분이 불탔으며, 여파는 육지의 진지까지 미쳤습니다. 병력면에서는 대단한 손실을 입지 않았으나 군선에 심한 타격을 받은 조조군은 그 이상 오림에 있어봤자 진군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전략적 의미를 상실한 셈이었죠. 오히려 기승을 떨치는 역병이 많은 병사를 앗아갔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조조는 회군을 결정합니다. 조조는 강릉(남군南郡)에 조인과 서항을, 양양(襄陽)에 악진을 남기고 허도로 퇴각했습니다. 이상이 역사적 사실에 거의 근접할 것으로 여겨지는 적벽대전의 전모입니다.
(주) 주유전에는 훗날 연의의 재료가 되었으리라 짐작가는 기술이 상당수 눈에 뜨여 재미있습니다. 황개가 「조조군의 군선은 선수와 선미가 붙어 있습니다」라 보고하는 장면이 있고, 방통의 연환계는 여기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건 군선을 줄줄이 잇대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군이 오림에 집결하였고 좁은 곳에 군선이 빽빽하게 모였더라는 뜻이 아닐까요? 배와 배를 서로 연결하면 움직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대체 무슨 재주로 방향 전환을 하라고요. 조조가 아무리 수상전에 익숙치 못했기로서니 병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짓을 저질렀을까요?
한편 황개는 거짓항복문서에 「승산도 없으면서 주유와 노숙 두 놈이 설레발쳐서 이러고 있다」고 써 보냈다는군요. 황개가 주유를 두고 투덜거린 것에 상상력을 덧붙여 고육지책의 계략을 창작한 셈이겠지요. 항복사자를 대하는 조조의 태도도 지극히 신중하여, 허허실실의 줄다리기를 구경하는 듯한 긴박감을 안겨줍니다.
화공을 결행한 날 동남풍이 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강표전의 주석). 그 지역에선 진짜로 겨울이 되면 보통 동남풍 아닌 남서풍이 불어닥치지만, 장강 남쪽에서 따뜻한 날이 계속되면 겨울에도 동남풍이 불 수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기상정보로도 확인된다는 모양입니다. 따라서 주유측은 그럴만한 날을 신중히 골라서 일을 결행했을 터이고, 더구나 실행 당사자가 형주 출신인 황개라는 점이 더욱 그럴싸해요. 연의에서는 극적인 재미를 더하기 위해 제갈량이 바람을 빌었다는 일화를 창작했지만, 평소 동남풍이 불지 않는다는 점까지 조사해보고 썼다는 얘기가 되니 작가란 정말 대단하지요. 개인적으로는 유비 일파가 동남풍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면, 제갈량보다도 유기(劉琦)에게서 나왔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점치고 있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
이야기를 되돌리죠. 적벽대전은 주유의 정확한 상황 파악에 그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황개의 계책이 지니는 의미도 만만치 않지요. 행간을 읽어보자면, 주유란 인물의 사고판단 패턴이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납니다.
주유는 분명히 승산이 있었으므로 개전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조조군을 퇴각시킬 전술 레벨의 방책까지 준비한 건 아니었지요. 그쪽은 황개의 공적입니다. 주유의 공적은 전략 레벨에서 조조군의 약점을 파악하고 승산이 충분히 있음을 꿰뚫어보아, 항복으로 기울어지는 군신들을 설득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손책과의 차이점이 있죠. 손책은 전략적인 시야도 충분히 갖추었지만, 오히려 전술 레벨에서의 발상이 가히 천재적이었습니다. 주유는 그쪽 면에서는 사실상 대단한 재주는 없어요. 상대의 의표를 찌르고 기상천외한 계책을 세우는 것은 주유 자신의 몫이 아닙니다. 때문에 적벽에서는 황개의 진언이 필요했고, 이후의 강릉포위전에서도 전술적 발상력이 뛰어난 여몽과 감녕의 진언을 채용했습니다. 다시 말해 주유는 정확한 상황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가입니다. 때문에 손책과 주유가 태그를 짜면 상황파악과 전술적인 발상 전환의 2대 요소가 서로를 보완하여 무시무시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상적 콤비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주) 주유전에는 훗날 연의의 재료가 되었으리라 짐작가는 기술이 상당수 눈에 뜨여 재미있습니다. 황개가 「조조군의 군선은 선수와 선미가 붙어 있습니다」라 보고하는 장면이 있고, 방통의 연환계는 여기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건 군선을 줄줄이 잇대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군이 오림에 집결하였고 좁은 곳에 군선이 빽빽하게 모였더라는 뜻이 아닐까요? 배와 배를 서로 연결하면 움직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대체 무슨 재주로 방향 전환을 하라고요. 조조가 아무리 수상전에 익숙치 못했기로서니 병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짓을 저질렀을까요?
한편 황개는 거짓항복문서에 「승산도 없으면서 주유와 노숙 두 놈이 설레발쳐서 이러고 있다」고 써 보냈다는군요. 황개가 주유를 두고 투덜거린 것에 상상력을 덧붙여 고육지책의 계략을 창작한 셈이겠지요. 항복사자를 대하는 조조의 태도도 지극히 신중하여, 허허실실의 줄다리기를 구경하는 듯한 긴박감을 안겨줍니다.
화공을 결행한 날 동남풍이 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강표전의 주석). 그 지역에선 진짜로 겨울이 되면 보통 동남풍 아닌 남서풍이 불어닥치지만, 장강 남쪽에서 따뜻한 날이 계속되면 겨울에도 동남풍이 불 수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기상정보로도 확인된다는 모양입니다. 따라서 주유측은 그럴만한 날을 신중히 골라서 일을 결행했을 터이고, 더구나 실행 당사자가 형주 출신인 황개라는 점이 더욱 그럴싸해요. 연의에서는 극적인 재미를 더하기 위해 제갈량이 바람을 빌었다는 일화를 창작했지만, 평소 동남풍이 불지 않는다는 점까지 조사해보고 썼다는 얘기가 되니 작가란 정말 대단하지요. 개인적으로는 유비 일파가 동남풍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면, 제갈량보다도 유기(劉琦)에게서 나왔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점치고 있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
이야기를 되돌리죠. 적벽대전은 주유의 정확한 상황 파악에 그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황개의 계책이 지니는 의미도 만만치 않지요. 행간을 읽어보자면, 주유란 인물의 사고판단 패턴이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납니다.
주유는 분명히 승산이 있었으므로 개전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조조군을 퇴각시킬 전술 레벨의 방책까지 준비한 건 아니었지요. 그쪽은 황개의 공적입니다. 주유의 공적은 전략 레벨에서 조조군의 약점을 파악하고 승산이 충분히 있음을 꿰뚫어보아, 항복으로 기울어지는 군신들을 설득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손책과의 차이점이 있죠. 손책은 전략적인 시야도 충분히 갖추었지만, 오히려 전술 레벨에서의 발상이 가히 천재적이었습니다. 주유는 그쪽 면에서는 사실상 대단한 재주는 없어요. 상대의 의표를 찌르고 기상천외한 계책을 세우는 것은 주유 자신의 몫이 아닙니다. 때문에 적벽에서는 황개의 진언이 필요했고, 이후의 강릉포위전에서도 전술적 발상력이 뛰어난 여몽과 감녕의 진언을 채용했습니다. 다시 말해 주유는 정확한 상황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가입니다. 때문에 손책과 주유가 태그를 짜면 상황파악과 전술적인 발상 전환의 2대 요소가 서로를 보완하여 무시무시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상적 콤비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이 남정네가 손책-주유는 골든 콤비라능 소릴 대체 몇 번째 하고 있는지 세어보고 싶은 강력한 충동을 느꼈지만 지그시 깨물어 참기로 했다. 뿜다 죽긴 싫다.
제 15장. 실록 강릉공략전(実録・江陵攻略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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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러니까..............
당신이 유책 지지자라는 건 확실히 알았습니다.그러니까 그만 좀 해 쓰바야 쪽팔려 죽겠다
적벽대전에 승리한 주유측은 강릉(남군)을 제압하고자 합니다. 적벽에서의 승리로 강하군 일대는 손오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어요. 따라서 우선 상류에 해당하는 강릉을 점거하는 것이 선결 문제가 되었습니다. 강하→강릉의 순서로 함락시키면, 양주와 형주의 장강유역을 전부 손에 넣게 될 뿐더러, 방어적 관점에서도 강릉은 반드시 함락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상류지역이 조조의 수중에 들어가 있으면 강하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릉공략전은 오림에서 수륙 양방향으로 진군했다고 주석의 오록(呉録)은 기록합니다. 적벽대전에서는 뭘 했는지 알 도리가 없는 유비군도 강릉공략전의 시점에서는 동향이 보이게 됩니다. 즉, 육로에서 진군한 쪽에 유비군이 끼여 있었습니다. 반대로 주유측은 적벽과 마찬가지로 수군 위주 편성이었던 만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지요. 적벽대전과는 달리 강릉공략전은 손권-유비 연합군의 싸움이었습니다. 유비는 장비의 부대를 주유와 동행시키는 대신 병사를 원조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전력 교환은 동맹을 맺었음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었겠지요. 주유도 이에 응해, 강릉은 양측이 연합하여 공략합니다. 다시 말해 강릉공략전에서는 주유의 전략적 구상 속에 유비군이 오롯이 들어 있었어요. 유비 일파의 풍부한 육전경험과 현지에 대한 지식을 높이 사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강릉에는 조인과 서황을 비롯해 진교(陳矯), 이통(李通), 우금과 같은 역전의 맹장이 주둔하였고, 식량 비축도 충분했으므로 결코 만만한 성이 아니었습니다. 전술했다시피 주유는 상세한 정보와 정확한 분석을 무기로 하는 정통파 전략가입니다. 강릉은 반드시 확보해야 하지만, 적벽 때처럼 손오의 수군만으로 강행돌파해도 먹힐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비와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가 있었죠. 유비측도 여기서 전과를 올리지 않으면 앞날이 불안한 판국이었으므로, 장비를 주유와 동행시키고, 관우에게 조인의 퇴로를 끊도록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왔습니다. 이리하여 하수(夏水) 남쪽 기슭의 주유와 북쪽 기슭의 조인이 대치하게 되었죠.
(주) 하수는 장강에서 갈라져나온 지류입니다. 강릉에서 장강과 갈라졌다가 하구(夏口) 근처에서 합류하지요. 오록의 주서는 유비가 하수에서 조인을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기록합니다. 다시 말해 오림에서 수륙 양쪽으로 출발한 주유-유비 연합군은 최종적으로는 하수와 장강 합류지점쯤에서 다시 만나, 남쪽 기슭에 주유가, 북쪽 기슭에 조인이 주둔한 형태로 맞서게 되었을 터입니다. (강을 가운데 끼고 노려봤다는 기술이 다수 보입니다) 따라서 강릉공략전은 적벽대전과 같은 수상전이 아닌 도하전의 성질을 띠게 됩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릉(夷陵)을 먼저 치자는 감녕의 계책은 이릉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제압하여 조인의 퇴로를 끊는 것이 목적이었겠지요. 유비가 북쪽으로 관우를 파견한 이유도 같았습니다. 주유의 강릉공략전 전략은 조인의 퇴로를 차단하고 농성전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조인은 감녕의 계책에도 관우의 행동에도 흔들림없이 대응하여 그가 그저 용맹하기만 한 필부가 아님을 훌륭히 입증합니다.
대국적인 전략구상은 주유의 분석이 옳았지만, 이야기가 전술 레벨로 옮겨가면 주유는 부하의 진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적벽대전과 똑같습니다. 강릉공략전에서는 우선 수비가 약한 이릉부터 먼저 치자는 감녕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를 이릉으로 급파했습니다. 이릉은 텅텅 비었다시피 했던 듯, 감녕은 천 명 규모의 소대로 이릉을 쉽사리 함락시킵니다.
반대로 강릉에 틀어박힌 조인은 전술 레벨의 맹자였습니다. 거점 방어 및 공격에 있어 조인은 조조군에서도 톱클래스에 속하는 인재였어요. 조조의 인재배치는 여전히 적재적소를 자랑했습니다. 조인은 감녕이 이릉성을 점거했다는 말을 듣자, 이를 좌시하지 않고 오륙천의 중대를 보내 성을 포위했습니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감녕은 주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자를 보냈죠.
감녕의 연락을 받은 여몽은 본진을 능통에게 맡기고 주력을 이끌어 이릉으로 향해 단기간에 감녕을 구출하고, 동시에 패퇴하는 조인군 진로의 요소마다 말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설치하면 조인군은 말을 버리고 도주할 수밖에 없으리라 진언합니다. 주유는 이 안도 채용하여 주력부대를 이릉으로 파견해 감녕을 구했고, 조인군은 여몽의 예측대로 말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끽해야 말이나 노획하다니 좀스러운 잔재주 같아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매우 중요한 성과입니다. 주유측은 적벽대전에서 편성한 수군을 그대로 강릉공략전까지 데리고 왔기 때문에, 육상전에 필요한 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거든요. 그에 반해 중원의 장병은 특히 기마대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지요. 적군의 말을 줄이고 아군의 말을 늘리는 것은 실로 효과적인 전술이었습니다.
(주) 이 무렵, 주유는 이미 여몽의 전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던 모양입니다. 주유는 익주에서 투항한 부장의 병력을 쪼개 여몽의 부대를 증원해주기도 했어요. 한편 감녕구출작전을 들여다보면, 본진을 비우고 주력부대를 파견하자는 진언은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기책의 범주에 속합니다. 즉 주유에게 여몽은 전술적 유연성을 보완해 주는 중요한 위치의 부장으로 굳어지고 있었다는 얘기죠.
이릉을 빼앗기고 배후가 위험해진 조인은 대진을 포기하고 농성전에 돌입합니다. 전술한 대로 강릉은 식량을 충분히 비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 도하작전은 이미 성공하였으므로 주유는 하수를 건너 강릉성을 포위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조인은 나무랄데없이 강인하고 끈질겼습니다. 위기에 처한 우금을 거의 단신으로 구출하는 무서운 용맹을 선보여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이어서 주유군과 조인군의 주력부대가 충돌하였고, 주유는 왼쪽쇄골에 화살을 맞아 한때 지휘가 불가능해지기까지 합니다. 이 사실을 안 조인은 단숨에 주유의 진을 덮칩니다. 전술 레벨에서 전략 레벨의 불리함을 뒤엎으려면 적의 사령관을 제거할 수밖에 없죠. 어딘가의 스페이스오페라 소설에서 들은 것도 같은 말이지만 신경 쓰시면 밉습니다. 이 경우엔 조인이 양이고 주유가 라인하르트가 되나요? 아무튼 주유는 이를 알고 사력을 다해 제발로 진을 돌았습니다. 조인은 9회말 역전 홈런을 날릴 기회를 잃었음을 알고 강릉에서 퇴각하여, 마침내 강릉공략전은 막을 내립니다.
자아 여기서 총괄해 보겠습니다. 전략 레벨에서의 우위를 차지하면, 다시 말해 조인의 퇴로를 끊고 농성전으로 몰아가면, 아무리 강릉성에 식량이 충분해도 보급이 끊어지고 원군을 바랄 수 없게 되면 (조조는 허도로 돌아갔지요) 조인이 전술 레벨에서 분전해봤자 최종적인 승리는 주유에게 돌아갑니다. 때문에 조인은 주유가 건재함을 확인하자 깔끔하게 퇴각했습니다. 대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유의 전황분석력에는 감탄만이 나옵니다. 다만 전술 레벨에서는 주유와 조인이 거의 호각이고, 주유는 부하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인에게 어드밴티지를 얹어주어도 좋겠지요. 또한 조인은 주유에게 큰 부상을 입혀 역전을 노릴 기회를 잡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으므로, 조인의 분전이 돋보이는 전투였습니다. 여담이지만 부상 후에 주유가 취한 행동은 단양공략전에서 손책이 써먹은 수법과 지극히 비슷합니다. 자력으로 일어나기도 어려운 중상을 입은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손책의 흔적을 좆지는 않았을까요.
강릉공략전은 오림에서 수륙 양방향으로 진군했다고 주석의 오록(呉録)은 기록합니다. 적벽대전에서는 뭘 했는지 알 도리가 없는 유비군도 강릉공략전의 시점에서는 동향이 보이게 됩니다. 즉, 육로에서 진군한 쪽에 유비군이 끼여 있었습니다. 반대로 주유측은 적벽과 마찬가지로 수군 위주 편성이었던 만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지요. 적벽대전과는 달리 강릉공략전은 손권-유비 연합군의 싸움이었습니다. 유비는 장비의 부대를 주유와 동행시키는 대신 병사를 원조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전력 교환은 동맹을 맺었음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었겠지요. 주유도 이에 응해, 강릉은 양측이 연합하여 공략합니다. 다시 말해 강릉공략전에서는 주유의 전략적 구상 속에 유비군이 오롯이 들어 있었어요. 유비 일파의 풍부한 육전경험과 현지에 대한 지식을 높이 사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강릉에는 조인과 서황을 비롯해 진교(陳矯), 이통(李通), 우금과 같은 역전의 맹장이 주둔하였고, 식량 비축도 충분했으므로 결코 만만한 성이 아니었습니다. 전술했다시피 주유는 상세한 정보와 정확한 분석을 무기로 하는 정통파 전략가입니다. 강릉은 반드시 확보해야 하지만, 적벽 때처럼 손오의 수군만으로 강행돌파해도 먹힐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비와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가 있었죠. 유비측도 여기서 전과를 올리지 않으면 앞날이 불안한 판국이었으므로, 장비를 주유와 동행시키고, 관우에게 조인의 퇴로를 끊도록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왔습니다. 이리하여 하수(夏水) 남쪽 기슭의 주유와 북쪽 기슭의 조인이 대치하게 되었죠.
(주) 하수는 장강에서 갈라져나온 지류입니다. 강릉에서 장강과 갈라졌다가 하구(夏口) 근처에서 합류하지요. 오록의 주서는 유비가 하수에서 조인을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기록합니다. 다시 말해 오림에서 수륙 양쪽으로 출발한 주유-유비 연합군은 최종적으로는 하수와 장강 합류지점쯤에서 다시 만나, 남쪽 기슭에 주유가, 북쪽 기슭에 조인이 주둔한 형태로 맞서게 되었을 터입니다. (강을 가운데 끼고 노려봤다는 기술이 다수 보입니다) 따라서 강릉공략전은 적벽대전과 같은 수상전이 아닌 도하전의 성질을 띠게 됩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릉(夷陵)을 먼저 치자는 감녕의 계책은 이릉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제압하여 조인의 퇴로를 끊는 것이 목적이었겠지요. 유비가 북쪽으로 관우를 파견한 이유도 같았습니다. 주유의 강릉공략전 전략은 조인의 퇴로를 차단하고 농성전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조인은 감녕의 계책에도 관우의 행동에도 흔들림없이 대응하여 그가 그저 용맹하기만 한 필부가 아님을 훌륭히 입증합니다.
대국적인 전략구상은 주유의 분석이 옳았지만, 이야기가 전술 레벨로 옮겨가면 주유는 부하의 진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적벽대전과 똑같습니다. 강릉공략전에서는 우선 수비가 약한 이릉부터 먼저 치자는 감녕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를 이릉으로 급파했습니다. 이릉은 텅텅 비었다시피 했던 듯, 감녕은 천 명 규모의 소대로 이릉을 쉽사리 함락시킵니다.
반대로 강릉에 틀어박힌 조인은 전술 레벨의 맹자였습니다. 거점 방어 및 공격에 있어 조인은 조조군에서도 톱클래스에 속하는 인재였어요. 조조의 인재배치는 여전히 적재적소를 자랑했습니다. 조인은 감녕이 이릉성을 점거했다는 말을 듣자, 이를 좌시하지 않고 오륙천의 중대를 보내 성을 포위했습니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감녕은 주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자를 보냈죠.
감녕의 연락을 받은 여몽은 본진을 능통에게 맡기고 주력을 이끌어 이릉으로 향해 단기간에 감녕을 구출하고, 동시에 패퇴하는 조인군 진로의 요소마다 말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설치하면 조인군은 말을 버리고 도주할 수밖에 없으리라 진언합니다. 주유는 이 안도 채용하여 주력부대를 이릉으로 파견해 감녕을 구했고, 조인군은 여몽의 예측대로 말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끽해야 말이나 노획하다니 좀스러운 잔재주 같아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매우 중요한 성과입니다. 주유측은 적벽대전에서 편성한 수군을 그대로 강릉공략전까지 데리고 왔기 때문에, 육상전에 필요한 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거든요. 그에 반해 중원의 장병은 특히 기마대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지요. 적군의 말을 줄이고 아군의 말을 늘리는 것은 실로 효과적인 전술이었습니다.
(주) 이 무렵, 주유는 이미 여몽의 전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던 모양입니다. 주유는 익주에서 투항한 부장의 병력을 쪼개 여몽의 부대를 증원해주기도 했어요. 한편 감녕구출작전을 들여다보면, 본진을 비우고 주력부대를 파견하자는 진언은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기책의 범주에 속합니다. 즉 주유에게 여몽은 전술적 유연성을 보완해 주는 중요한 위치의 부장으로 굳어지고 있었다는 얘기죠.
이릉을 빼앗기고 배후가 위험해진 조인은 대진을 포기하고 농성전에 돌입합니다. 전술한 대로 강릉은 식량을 충분히 비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 도하작전은 이미 성공하였으므로 주유는 하수를 건너 강릉성을 포위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조인은 나무랄데없이 강인하고 끈질겼습니다. 위기에 처한 우금을 거의 단신으로 구출하는 무서운 용맹을 선보여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이어서 주유군과 조인군의 주력부대가 충돌하였고, 주유는 왼쪽쇄골에 화살을 맞아 한때 지휘가 불가능해지기까지 합니다. 이 사실을 안 조인은 단숨에 주유의 진을 덮칩니다. 전술 레벨에서 전략 레벨의 불리함을 뒤엎으려면 적의 사령관을 제거할 수밖에 없죠. 어딘가의 스페이스오페라 소설에서 들은 것도 같은 말이지만 신경 쓰시면 밉습니다. 이 경우엔 조인이 양이고 주유가 라인하르트가 되나요? 아무튼 주유는 이를 알고 사력을 다해 제발로 진을 돌았습니다. 조인은 9회말 역전 홈런을 날릴 기회를 잃었음을 알고 강릉에서 퇴각하여, 마침내 강릉공략전은 막을 내립니다.
자아 여기서 총괄해 보겠습니다. 전략 레벨에서의 우위를 차지하면, 다시 말해 조인의 퇴로를 끊고 농성전으로 몰아가면, 아무리 강릉성에 식량이 충분해도 보급이 끊어지고 원군을 바랄 수 없게 되면 (조조는 허도로 돌아갔지요) 조인이 전술 레벨에서 분전해봤자 최종적인 승리는 주유에게 돌아갑니다. 때문에 조인은 주유가 건재함을 확인하자 깔끔하게 퇴각했습니다. 대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유의 전황분석력에는 감탄만이 나옵니다. 다만 전술 레벨에서는 주유와 조인이 거의 호각이고, 주유는 부하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인에게 어드밴티지를 얹어주어도 좋겠지요. 또한 조인은 주유에게 큰 부상을 입혀 역전을 노릴 기회를 잡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으므로, 조인의 분전이 돋보이는 전투였습니다. 여담이지만 부상 후에 주유가 취한 행동은 단양공략전에서 손책이 써먹은 수법과 지극히 비슷합니다. 자력으로 일어나기도 어려운 중상을 입은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손책의 흔적을 좆지는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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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유책 지지자라는 건 확실히 알았습니다.